IT로 원어민처럼 일하는 방법…얼마나 들까

#외국계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작업에 열심인 A씨. 하루가 멀다 하고 작업지시서와 영수증이 원문 그대로 날아온다. 단어 하나하나를 긁어 파파고에 옮겨 넣느라 마우스 글씨가 지워질 지경. 그래도 어쩌랴 해낼 수밖에.

#갑자기 끌려온 세미나. 미국에서 온 백발이 성성한 교수님의 말을 듣자 하니 내 짧은 영어 실력이 원망스럽다. 남몰래 파란 아이콘의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외국어 번역 업무. 작은 영수증 하나를 점검하든 긴 업무 메일을 보내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오늘도 외국어와의 씨름을 벌인다. 다행히도 몇 년 전과 비교해서는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 2017년 나온 네이버의 파파고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풀어줬고, 말을 그대로 받아쳐 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손과 귀의 피로를 덜어준다.

선택권이 넓어진 건 반가운 일. 부족한 외국어 실력 핑계를 대기에는 너무 많은 솔루션이 나왔다. 한 달에 얼마를 쓰면 그럴싸하게 원어민처럼 일할 수 있을까.

대세는 딥엘?

딥엘(DeepL)은 최근 한국에 유료 버전인 프로를 출시했다. 2월 한국어를 지원한 뒤로 반 년 만에 번역 글자 수 제한을 없앤 버전을 내놨다. 프로 버전 라이선스는 총 3가지다. 가장 저렴한 스타터(Starter)부터 어드밴스드(Advanced), 얼티밋(Ultimate) 등 3가지 플랜으로 나뉜다.

딥엘의 강점은 글맛을 살린 자연스러운 번역이다. 딥엘은 합성곱 신경망(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 방식을 고도화해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문장을 병렬로 번역하고 서로 거리가 떨어진 단어의 연관성을 분석해 이해 능력을 높인 형태다. 딥엘의 자연스러운 번역 비결로 꼽힌다.

딥엘 측은 어드밴스드 라이선스를 추천하지만 회사 업무에 개인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스타터로 충분하다. 무료 버전과 프로 버전의 가장 큰 차이는 한 번에 번역할 수 있는 텍스트 수인데, 이것 하나만 풀려도 한 층 일이 편해진다. 글자 제한 수를 푼 스타터 라이선스 가격은 1년 기준 한 달에 8.74달러. 우리돈으로 1만원 정도다.

보통의 업무환경에서  어드밴스드(28.74$)와 얼티밋(57.49$)의 요금을 내기에는 장점이 크지 않다. 스타터는 문서 통번역을 5개 지원하고, 어드밴스드와 얼티밋은 각각 20개, 100개를 지원한다. 또한 어드밴스드 버전부터는 싱글사인온(SSO) 기능을 제공하지만 조금 과한 면이 있다. SSO는 로그인 하나로 여러 앱을 쓸 수 있는 기능이다. 한 번에 관리시스템이나 인트라넷에 로그인하면 별도의 과정 없이 딥엘 프로를 쓸 수 있는 형태지만 어차피 개인 업무 차원에서는 스타터로 충분하다.

아울러 스타터부터 얼티밋까지 모든 프로 버전은 특정 단어나 문구 번역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용어집(Dictionary)’ 기능을 제공하지만 한국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딱히 위 버전만의 이점이 되지 않는 셈이다. 컴퓨터 보조 번역(CAT) 툴 제공도 일반 직장인 입장에서는 크게 효용이 없는 기능이다.

딥엘 프로 버전의 라이선스 요금. SSO와 CAT 툴 호환은 개인 사용자 측면에서는 과한 기능일 수 있다. 한달에 1만원 정도인 스타터만으로도 업무에는 지장이 없다. (출처=딥엘)

현명한 조합은?

번역은 일단 딥엘에 1만원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치자. 이제는 번역을 위한 녹취록 원본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예컨대 해외 세미나에 출장을 갔다고 치자. 강연을 모두 알아들어 영타로 타이핑할 수 있다면 딥엘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게 문제. 이때 구세주가 되는 솔루션이 ‘오터(Otter)’다.

스크립트를 만들어 주는 녹취 솔루션 오터는 단어 하나하나의 복잡한 스펠링까지 또박또박 잡아낸다. 놀랍게도 ‘Stable diffusion XL’ 같은 최신 솔루션 이름까지 제대로 받아친다. 더 재밌는 건 CEO의 이름이나 고유명사 첫 글자에 대문자를 박아주는 기술이다. 꼭 추후에 번역을 돌리지 않고 녹취록으로만 사용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아마존의 올해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을 오터에 돌린 모습. 기본적인 스크립트 제작의 정확도는 물론, CFO 같은 단어나 일반 회계기준을 뜻하는 GAAP까지 대문자로 받는 등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해외 세미나라면 오터로 녹취록을 만든 후 딥엘을 비롯해 파파고나 구글 번역을 돌리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터로 녹취한다→녹취본을 번역 앱에 올린다→(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러 번역 앱을 돌려 가장 효과적인 단어 버전으로 다듬는다’ 

단 오터 기본 버전은 세트당 30분, 한 달에 총 300분의 녹취만 지원한다. 통상 세미나 세션당 40분, 하루 세미나가 4~5개의 세션으로 이뤄지는 것에 비춰보면 하루에 한 달치 사용량을 다 쓰는 셈이다.

여기서 돈을 좀 쓰자. 1년 계약 기준 월 10달러의 프로 버전을 추천한다. 현장에서 쩔쩔 매는 것보다 1만3000원을 쓰는 게 낫다. 세트당 90분씩 총 1200분의 녹취를 지원해 개인 용도로 쓰는 데 무리가 없다. 특히 중간에 녹음이 끊어져 흐름이 달라지거나 일부 부분을 누락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파일 녹취 풀기도 무료버전(3개)와 달리 월 10개까지 지원한다. 1만3000원 정도니까 투자할 가치가 있다.

(출처=오터)

HWP 지원하는 파파고도 괜찮아

프로 버전이 나온 딥엘을 기준으로 설명했지만 여전히 파파고와 구글 번역 또한 훌륭한 기능을 자랑한다. 단 무료인 구글과 파파고는 여전히 5000자 제한이 걸리는 건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한글을 영어 등의 외국어로 뽑아낼 때는 파파고가 편리할 수 있다. 외산인 구글과 딥엘과는 달리 .hwp 문서 번역을 지원해 공공 문서를 더 쉽게 외국어로 번역할 수 있다.

조금 더 생산성을 높이고 싶다면 곧 출시될 ‘마이크로소프트365 코파일럿(Copilot)’도 함께 쓰는 것을 고려해보자. 번역본을 토대로 예쁜 PPT나 엑셀 파일을 생성AI로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세미나 발언 내용 중 중요한 언급을 따 프리젠테이션에 담거나 실적 발표 내용을 엑셀로 정리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건 지갑이 두툼해야 쓸 수 있는 옵션이다. 이르면 올해 공식 출시될 코파일럿 이용료는 월 30달러로 책정됐다. 한국돈 3만9000원가량. 마이크로소프트365의 구독료와 별도로 붙는 가격이라 비싼 경향이 있다.

정리하면 1만원(딥엘 스타터)+1만3000원(오터 프로)+3만9000원(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이면 한 달에 6만2000원가량이다. 누구에게는 적은 돈일지 모르지만 무시할 만한 금액은 아니다. 딥엘과 오터만 쓰면 한 달에 2만3000원. 외국어 관련 업무에 머리를 싸매느니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금액이다. 이 또한 부담스럽다면 오터 정도는 프로로 쓰는 것도 괜찮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