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당근이 이메일을 버리고 지역 인증을 도입했을 때

성공한 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결정적 순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중요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에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기업은 없습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간 8주년을 맞아 창간 기획 시리즈 <결정적 순간>을 연재합니다. 국내 대표 테크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 순간을 돌아봄으로 해서 많은 스타트업과 창업가, 테크 기업이 그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 성공의 길을 선택하길 기대합니다.

<연재 순서>
네이버, 커머스 사업을 위한 꽃을 피우다
곰인 줄 알았던 사자 한 마리, 카카오를 뒤흔들다
③ 10년 전, 쿠팡은 어떻게 49일만에 로켓배송을 내놓게 됐나
④ 토스 건물 외벽에 “해냈고,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고 쓰인 순간
⑤ 숙박 예약하던 야놀자는 어떻게 글로벌을 꿈꾸게 됐나
크래프톤, “인도에서도,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배달의민족, 1등도 절박해야 살아남는다
돈 못벌던 카카오택시, ‘가맹’으로 상황을 뒤집다
물이 들어오면 고민 말고 노를 저어라, 업비트
당근이 이메일을 버리고 지역 인증을 도입했을 때
갑자기 춘천으로 이사간 소프트웨어 기업, 더존비즈온

“자기가 사는 동네를 인증하는 건 어떨까요?”

2015년 여름. ‘판교장터’의 회의에 나온 말이다. 이 한 마디에서 국내 최대의 로컬 플랫폼이 시작됐다.

2015년 설립된 판교장터는 판교테크노밸리 내 직장인들이 직접 만나 중고 디지털 기기를 거래하는 플랫폼이었다. 카카오에 재직하던 김용현, 김재현 등이 사내 중고 거래 게시판을 보고, ‘신뢰’할 수 있는 이용자끼리 중고 거래를 하면 기존 중고 플랫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만들었다.

판교장터 초창기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회사 이메일 인증’이었다. 판교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중고거래 상대로 신뢰할만하기 때문이다. 판교에 있는 회사라면 대부분 IT와 관련된 업체들이고, 이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을 것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판교 IT맨들이 주요 타깃이었는데, 판교의 육아맘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디지털 기기뿐만 아니라 육아용품 등을 거래하기를 원했다.

문제는 인증이었다. 직장인이 아닌 주부들이 상호 신뢰 아래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인증 방식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해답 중 하나가 ‘동네 인증’이다. 자기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아야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당시 판교장터 내부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을 두고 서로 다른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동네인증이라는 것이 허들이 높아 아무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과 동네 인증이 통한다면 로컬 기반 차별화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가설이 오갔다. 토론 끝에 판교장터 직원들은 동네 인증을 도입하되,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아닌 간편한 방식으로 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 결과, 판교장터는 ‘로컬’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휴대폰 인증 번호와 GPS 기반 동네 인증을 도입했다. 전화번호 인증으로 본인 인증 시스템을 갖추고, 2차로 같은 동네 주민과 믿고 거래할 수 있도록 동네 인증을 더한 것이다. 30일마다 동네 인증을 하도록 해 실제 동네 주민임을 인증하도록 했다.

2015년 10월. 판교장터는 ‘동네 인증’과 함께 ”당’신 ‘근’처’라는 뜻의 당근마켓(현 당근) 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당근의 이야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용자층을 확대한 결과, 당근마켓의 판교 지역 내 거래량은 10배 가량 늘어났다. 당근마켓은 이후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 등 서비스 지역을 확장했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서비스를 열어도 이용자가 쉽게 늘지 않은 곳도 다수였다. 주민 200~300명이 모여 서비스 오픈을 신청하면 해당 지역에 서비스를 출시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확장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부천과 제주도에서 이용자 지표가 크게 뛰었다. 제주도는 택배비가 비싸 직거래가 활발한 지역이다.

이후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던 당근마켓은 2018년 1월에 전국 단위로 서비스를 열었다. 그 당시 당근마켓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50만명에 불과했으나, 올해 들어 2000만명을 돌파했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판교라는 한 동네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당근은 이제 전국 동네를 6577개로 분류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실 바이라인네트워크 <결정적 순간> 취재 과정에서 당근마켓(현 당근)의 내부인들은 ‘결정적 순간’으로 다양한 시기를 짚었다. 판교를 넘어 서비스의 전국 확장을 꼽은 이와, 당근이 매너온도를 도입한 시기를 꼽은 이도 있었다. 매너온도는 당근 내 이용자간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이용자의 매너 평가, 거래 후기, 제재 등을 종합해 계산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전국 확장과 함께 비즈프로필을 도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한 내부인도 있었다. 결국 비즈프로필이 지역 상인들의 입점과 함께 광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근에게 ‘동네인증’이 중요한 이유는 신뢰할 수 있는 동네 주민 간 직거래를 기반으로 성장한 ‘지역생활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김용현 창업자를 포함한 당근 초기 멤버들이 ‘동네 인증’을 중요한 순간으로 본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당근은 ‘동네’를 핵심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 비즈프로필을 모은 ‘내근처’ 서비스를 시작으로, 현재 중고거래를 넘어 커뮤니티, 중고차, 구인구직, 부동산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히고 있다. 광고 또한 300m 반경 내 세밀한 지역 타기팅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해외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북미, 미국 내 뉴욕 및 뉴저지, 영국, 일본 4개국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창업자인 김용현 대표는 캐나다에 머무르며 사업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분명 당근은 이전 <결정적 순간>에 선정한 기업들에 비해서는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당근의 매출은 1276억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근을 주목한 이유는 이웃의 얼굴도 모르는 시대에 전국 곳곳에서 “당근이세요?”라는 질문이 퍼질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당근의 존재감은 이미 한국 모두가 알고 있다.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지는 당근이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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