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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엔터프라이즈 DNA로 클라우드 시장 겨냥하는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의 대명사인 기업. DB 안 쓰는 곳이 없는 현실에서 선두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는 기업이 있다. 학생으로 치면 항상 전교 1등을 도맡았던 건데, 새로운 과목이 나오니 다른 친구에게 1등을 내줬고 주변에서는 왜 제대로 하지 못하냐고 성화다.

주변이 뭐라고 해도 가장 속이 끓는 건 자신일 테다. 게다가 나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친구가 앞서가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고진감래 끝에 결국 새 과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모양새다. 엔터프라이즈 업계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클라우드 시장까지 겨눈 오라클 이야기다.

나정옥 한국오라클 부사장(사진)은 최근 바이라인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오라클의 데이터 비즈니스 성과도 40년 세월의 노력이 있었다”며 “공격적인 투자가 클라우드에서도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클라우드 시장 선두기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06년이다. 오라클클라우드인프라스트럭처(OCI)는 ‘젠(Gen)2’를 활용해 2세대 클라우드를 표방하면서 2019년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사표를 냈다. 선발대와 10년이 넘는 격차가 있다.

오라클은 반대로 늦은 진출을 자신들의 강점으로 본다. 오히려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기술적 우위가 있다는 것. 클라우드 시장 초창기 장점으로 꼽던 경제적 이점이나 효율성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깨진 상황에서 이제는 진짜 기술 경쟁이 이뤄질 거라는 게 나정옥 부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실제로 클라우드를 도입해보면 필요한 용량보다 더 많이 사용하거나 데이터를 옮기는 이그레스(Egress) 비용 등 숨겨진 지출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엔터프라이즈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고 1세대 클라우드의 여러 결점을 보완해 안정성과 성능, 보안, 그리고 경제성 면에서 가장 우수한 클라우드 플랫폼과 인프라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엔터프라이즈 DNA와 분산 클라우드

결국 클라우드도 데이터를 다루는 분야다. DB 업계 대표주자인 오라클은 데이터 기술에서는 여타 기업에 뒤처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기업용 서비스를 제공한 오라클에는 ‘엔터프라이즈 DNA’가 있다는 게 나 부사장의 설명이다.

엔터프라이즈 기업과 오랜 시간 살을 부대꼈던 만큼 이들이 원하는 건 오라클이 가장 잘 안다는 뜻이다. 비즈니스의 씨앗인 데이터를 만지는 건 오라클이 제일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OCI는 인터페이스 자동화 툴, 머신러닝, 서버리스, 컨테이너 등 클라우드 환경을 지원하는 다양한 파트너십으로 개발 작업 전반이 용이한 클라우드로 설계했다.

나 부사장은 “OCI는 리소스 추가가 쉬운 확장 아키텍처, 네트워크의 낮은 지연 시간,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 연결과 가용성을 위한 클러스터화 등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라클은 ‘분산 클라우드’를 시장 전략으로 삼는다. 다른 업체가 이미 클라우드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을 자신들의 서비스로 가져오는 데 집중한다면, 오라클은 프라이빗 클라우드와 퍼블릭 클라우드 모두를 아우르는 한편 기존의 온프레미스의 클라우드 전환에도 초점을 맞춘다.

나 부사장은 단 하나의 클라우드 업체에 의존하는 건 실용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특정 업체에 종속되지 않고 최적화된 서비스를 복수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멀티 클라우드 전략은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오라클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업들이 자체 인프라를 구축해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 비즈니스를 펼치는 것도 지원한다. 지난해 새롭게 내놓은 ‘알로이(Alloy)’는 일정 개수 이상의 OCI 서버랙을 구입한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CSP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오라클은 시스템 유지보수만 맡을 뿐 과금체계나 서비스 영업 전략 등은 이용사가 정하면 돼 기업들은 자체적인 CSP 사업을 꾸릴 수 있다. 일종의 주문자상표부착(OEM) 형태로 각 기업이 OCI 기반 클라우드 사업을 꾸릴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시장 외연을 넓히고 OCI 사용 경험을 확산할 수 있다.

데이터 주권 문제도 오라클이 주목하는 요소다. 오라클은 지난 6월 새롭게 ‘EU 소버린 클라우드’를 출시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EU 소버린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운영은 EU 내 설립된 별도의 법인이 맡는다.

나 부사장은 “오라클의 소버린 클라우드는 유럽 지역 고객을 위해 기존 퍼블릭 OCI 리전과는 시스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분리됐다”며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주권 요구사항에 대해 폭넓은 제어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나정옥 한국오라클 부사장은 인터뷰 내내 OCI의 기술적 장점과 더불어 성장 곡선을 강조했다. (사진=한국오라클)

고전한다는 평가에는 손사래 

나 부사장은 오라클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고전한다는 세평에는 선을 그었다. 오히려 성장 곡선을 주목하라는 주문이다. 오라클은 지난해 가트너의 매직 쿼드런트의 ‘클라우드 인프라 및 플랫폼 서비스(CIPS)’ 부문 비저너리(Visionary) 기업으로 선정됐다. 앞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이들을 뜻하는 니치플레이어(Nitch Player)로 선정된 것보다 나아간 평가다.

그는 “기업들의 요구를 대폭 반영하고 멀티 클라우드 환경에 힘쓴 점을 인정받은 결과“라며 “개인적으로 올해 말 같은 조사의 평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빅3 CSP의 성장이 지지부진한 것과 비교하면 OCI의 약진은 도드라진다. AWS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구글클라우드(GCP)의 매출 성장률이 모두 둔화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OCI는 2~5월(오라클은 이 기간을 회계연도 4분기로 잡는다) 성장률이 지난해 19%에서 올해 54%로 3배가량 뛰었다.

연결도 OCI 약진을 이끄는 전략이다. 수많은 리전을 통한 글로벌 연결과 타 CSP와의 협업으로 후발주자라서 인프라가 부족할거라는 편견을 지운다. 오라클은 한국 2곳을 포함해 23개 국가에 총 45개의 OCI 리전을 설립했다. 전체 CSP 가운데 가장 많은 리전을 갖췄다는 게 나 부사장의 설명이다.

모든 OCI 리전은 유니버설 크레딧(Universal Credit) 정책을 통해 동일한 과금체계를 유지한다. 예를 들어 한국 리전을 활용하던 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면 이 유니버설 크레딧을 사용해 동시에 미국 리전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형태다.

여기에 자사 DB 서비스인 ‘MySQL 히트웨이브(Heatwave)’를 OCI뿐만 아니라 다른 CSP를 통해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AWS, 애저에도 설치해서 쓸 수 있다. 타 CSP 인프라를 활용해 자사 서비스의 외연을 넓히는 전략이다.

또한 앞서 지난해 초에는 애저와 OCI를 상호 연동하는 인터커넥트 서비스를 출시, 양 클라우드 리전을 마치 하나의 클라우드처럼 쓸 수 있도록 했다. 저지연(Low latency) 연결을 통해 애저 가상머신과 OCI 가상머신(VM) 간의 왕복 지연성은 1.2 마이크로초(ms)에 불과하다. 반대로 보면 먼저 애저를 쓰던 사용자를 추후 OCI로 끌어올 수 있는 전략도 된다.

다수의 기업이 자체 생성AI 기술 개발에 힘 쏟는 상황. 오라클의 생성AI 여정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나 부사장은 “현재 시점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긴 어렵다”면서도 “오는 9월 개최되는 오라클 클라우드 월드 2023을 주목해달라”고 전했다. 물밑에서 관련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선택권’을 강조했다. 기업들이 하나의 CSP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고, 멀티, 하이브리드, 온프레미스의 클라우드 전환 등 다채로운 접근 방향에 대응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나 부사장은 “최근 많은 기업들이 그동안 클라우드의 비용과 록인(Lock-in) 효과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동시에 경기침체로 인한 IT 비용 절감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대비해 오라클은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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