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면 디지털 패전국 될 수도…패스트팔로어 여전히 유효”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 대한민국은 없다!’ 대담 개최

“잘못하면 디지털 패전 국가가 될 수도…”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 회장이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 격화하는 디지털 패권 경쟁에 대한 한국 정부 대응에 전문가들의 우려가 제기되자, 진행 도중에 스쳐 지나가듯이 말했다. 박 회장이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눙친 발언이었으나, 그 속에 뼈가 있었다. 마냥 웃어 넘길 수만 없는 상황이다.

인기협이 16일 서울시 양재동 소재 협회 대회의실에서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 대한민국은 없다!’를 주제로 제86회 굿인터넷클럽을 개최했다.

박성호 회장이 행사 진행을 맡았고, 국내 디지털 패권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상배 교수, 국제정치경제분야 최고 전문가인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이승주 교수,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학회장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김현경 교수, 기술경제 분야 전문가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혁신전략팀 김준연 팀장(박사)이 참석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 규제를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소위 말하는 갑질 플랫폼이 있다면 규제를 하되, 원칙을 가지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미국 빅테크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전례 없는 강력한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 DMA)을 내세운 점을 간과하고, 자국 플랫폼 기업을 갑질로 규정해 국내외 기업간 역차별을 만드는 규제 도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 사이버 주권을 지키고 소프트파워를 가질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일관된 의견이 나왔다.

적정 규제하되 원칙 가져야…세계 정세 알고 대응 필요

“’규제를 하지 말자’고 오해할 수 있는데, 아니다. 소위 갑질 플랫폼이라면 규제해야 한다. 알고리즘으로 장난하는 플랫폼은 공공성의 잣대를 가지고 적정 규제가 필요하다. 과잉 규제, 과소 규제 우려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게 흘러가고 게임의 룰은 선진국이 만들어간다. 그걸 이해하고 대응해도 시원찮은데, 단순하게 이해하고 대응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봐야 한다. 바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고뇌가 (미국과 중국 디지털 패권 전쟁 사이에서, 중국 일본 사이의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에선 역사적 고뇌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나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국내에 시야가 고정돼 있다. 세계 정치의 패턴과 미중 패권 전쟁의 현황을 정확하게 알고 난 다음에 대응해야 한다.”(김상배 교수)

“싹을 잘라버리는 정책은 좋은 게 아니다. 기술 경쟁을 계속하는 핵심은 자체 기술력을 갖는 것인데, 기술력이 있으니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것이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자국 플랫폼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인데, 플랫폼은 인터넷에선 영토 개념이자 문지기 개념 아닌가. 지키지 못하면 데이터나 사이버 미래 주권을 지킬 수 없다. 그걸 제대로 해야 소프트파워가 되고 (기술과 표준 경쟁을 넘어) 매력이 될 수 있다.”(김상배 교수)

“미국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패키지 규제 법안을 냈다. 하원에서 5개, 상원에서 대형 앱마켓 법안을 각각 냈었다. 하나 빼고 회기종료에 따라 자동 폐기됐다. 그 뒤 입법하자라는 움직임이 나오진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을 특별히 규제해서 얻는 실익이 없다는 게 전제됐다고 본다. 플랫폼 규제가 산업 혁신을 저해하고 소상공인 생존을 위협한다는 인식과 기조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일본의 경우 관여 규제를 최소한으로, 대상사업자 역시 아마존 야후 라쿠텐 등 최소화한 것을 우리나라 정부는 경쟁적으로 부처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많은 법안을 냈다. 국내 몇 개 플랫폼을 갑으로 전제하고 대규모 유통사업자에 준하는 규제에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담았다. 이것은 자국 이익의 우선 추구도 아니고, 열린 국익 추구도 아니고 의도하지 않은 타국 이익주의로 가는 게 아닌가 한다. 타국에 유리한 상황을 초래하는 게 아닌가. 인터넷실명제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세계 최초 선제적인 규제를 만들어 국내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미국에 내주지 않았나. 유럽 DMA는 시장규모와 시장성이 있지만, 우리(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고 그 규모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나 의문이다.”(김현경 교수)

‘열린 국익’ 지혜도 필요…역차별론 넘어서야

“우리는 제3자 혁신을 견인하고 산업 간 융합을 촉진해서 잉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고, 사회 위기에선 혁신 인프라가 될 수 있는 판을 가졌다. 동남아 국가가 갈구하고 중동이 중남미도 유럽도 이런 판이 없어서 4차산업혁명 대응이 어렵다. 한국적 플랫폼이 글로벌하게 매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만의 국익이 아닌 열린 국익이 될 수 있다. K플랫폼의 매력이 다른 국가에게도 의미를 줄 수 있다. 그런 측면에 방점을 두면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김준연 팀장)

“균세(힘의 균형) 관점에선 우리 플랫폼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잘 지키면서 언어적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해외 진출하는 것인데, (네이버 라인, 웹툰 등) 구체적 사례가 잘 말해준다. 무주공산에 가서 깃발을 꽂는 게 아니다. 글로벌 지배 플랫폼과 경쟁이 이뤄져야 하고, 중국 기업과 경쟁도 중요하다. 전체 판세 속에서 읽어내야 하고 우리가 끼어 있는 나라 딜레마가 있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관계 설정을 잘해서 (선진국 룰에) 올라타서 편승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현지 진출해 토착 기업과 관계, 현지 기업과 제휴나 연대 이런 식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국가 전략은 종합적일수밖에 없다.”(김상배 교수)

“판을 바꾸는 전략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특수하다. 토착 플랫폼을 가졌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담론에도 일정 변화가 필요하다. 역차별론에 매몰돼선 안 된다. 보호주의적 관점에서 우리 시장을 막아 놓고 다른 국가의 시장을 연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게 떨어진다. 해외 시장을 열려면 우리 시장도 열어야 한다. 선순환 방정식이 고민의 지점이 돼야 한다. 역차별론이 현실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이걸 넘어서야 한다. 적극적 공세적인 게 필요하다. 프로액티브(상황을 주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이승주 교수)

‘디지털 패권 경쟁’ 격화 전망

“디지털 영역의 국제 정세 변화는 험악하게 갈등이 증폭되는 방향으로 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논리를 찾아야 한다. 이것을 얘기할 때 플랫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중요하다. 플랫폼은 운영 주체와 참여하는 서드파티(입점업체)가 있다. 서드파티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플랫폼 운영자에 의해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로, 그러다 보니 플랫폼은 기업이라기보다 기업들과 이용자들의 개념이다. 어느 사업에 속하는지 짚기가 어렵다. 멀티섹터적이고 멀티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생태계인데, 이런 생태계가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기존 기업 독점으로 보기 보다는 생태계의 독특한 측면을 인식하면서 봐야 한다. 네카쿠라배당토(네이버·카카오·쿠팡·라인·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가 희망을 주는 직업으로 등장하고, 마스크가 모자를 때 네이버와 카카오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백신접종 증명도 하는 등 위기 상황에서 토종 플랫폼이 있어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카카오 먹통 사태는 카카오가 가지고 있던 통신 인프라의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이지, 서비스 철퇴를 추진해야 할 사건이 아니었다. 만약 외국 플랫폼에 서비스 의존을 했을 때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었다는 부분을 더 심도 있게 논의했어야 한다.”(김준연 팀장)

“디지털 플랫폼 전망이라면, 싸우는 국면이 10~20년 간다고 본다. 미국 대선이 변수가 되긴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싸우는 얘기로 갈 거 같다. 전략적 선택에 대한 얘기다. 미중 플랫폼 경쟁 상황을 계속 쳐다만 보면, (디지털 접점이 없는) 남북한은 쪼개질 것이다. 최근 중국 플랫폼이 북한에 접근해가는 부분, 미국의 글로벌 플랫폼이 못 가는 제약 속에 (디지털 협력 없이) 남북한이 이런 식으로 가면, 남북이 통일까지도 갔을 때, 사이버공간에선 오히려 분단이 될 수 있다. 표준의 게임인데, 완전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 10년이 가면 돌이킬 수 없다.”(김상배 교수)

불확실성 시대, 패스트팔로어 전략 유효…미래 보면서 가야

“기업 간 경쟁이 국가 간 경쟁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있다. 그런 가운데 때로는 국가와 기업이 갈등하고 부딪히는 게 없지 않다.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이런 시대엔 국가와 기업 이해관계가 다른 부분을 줄이고 이익의 접점을 키우는 게 원칙론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은 바쁘게 부지런하게 살수밖에 없는 중견국이다.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엔 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먼저 움직이면 위험하다.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그때 기민하게 움직이는 패스트팔로어 전략, 이 시점엔 그 전략이 유효하지 않겠는가 한다.”(이승주 교수)

“롱사이클을 얘기하고 싶다. 기후기술이 또 하나의 스탠다드 플랫폼으로 오고 있다. 바이오 제약 기술 패러다임도 중요해졌다. 포스트 디지털 기술 지평을 전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디지털 패권국이 되는 게) 살아생전에 발생할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후배들에게 화두를 던져야 하지 않나 싶다.”(김상배 교수)

“거시적 안목으로 미래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이용자들은 디지털 혁신 서비스로 쏠릴 수밖에 없다. 제가 의지하는 플랫폼이 요즘엔 네이버 카카오 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다. 저를 더 잘 아는 거 같다. 그런 상황에서 규제는 답답한 부분이 있다. 글로벌에서 유리한 입지로 가기 위해선 규제 관련 정책이 중요하다. 세계 최초 규제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검증이 된 후에 가져와야 한다. 무분별한 선진국 규제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GDPR(개인정보보호규정)로 미국 기업의 견제가 이뤄질 줄 알았는데, 구글과 페이스북 매출이 현격히 더 늘어났다. 시행 이후 규제 적응력을 키워준 것이다. 작은 기업들에겐 또 다른 진입규제가 될 수 있는 작용 사례를 보여준 예이다. (국내 규제법안이) 유럽의 DMA를 상당히 많이 참고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제적 시각에서 산업 전략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김현경 교수)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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