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채용] “AI 때문에 일자리 사라진다? 과장된 공포”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전 산업군이 채용 빙하기를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대표적 수혜업종인 정보기술(IT)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IT 기업들이 올해 보수적 인력 운용 기조를 밝혔습니다.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다 돌연 중단하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대기업 인재 쏠림에 스타트업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런 때일수록, 구인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정보가 중요합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립 7주년을 맞아 IT 채용 시장을 구인·구직 양면에서 살펴보는 [요즘채용]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채용 전문가와 현직 종사자가 전하는 일자리 시장 진단과 취·창업 노하우, 기술로 인한 시장 변화 그리고 흥미가 당길만한 직업 정보를 담아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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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AI 때문에 일자리 사라진다? 과장된 공포”

채용절벽과 노동시간 개편, 플랫폼 노동과 뛰어난 인공지능의 도래. 일하는 환경은 계속해 바뀌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언급된 모든 키워드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걸로 보인다. 함께 잘사는 것보다, 각자도생이 현실적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사는게 덜 팍팍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가져가버리면 인간에게 일은, 노동은 어떤 의미가 될까.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지난 6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하 교수는 지난 30년간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노동의 현실과 미래를 가장 깊이 고민한 이 중 하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더 풍요롭게 한다고 꾸준히 말해온 이이기도 하다. 일자리의 변화로 일어나는 두려움도, 결과적으로는 각자도생보다는 함께 잘사는 법을 찾아야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차분한 목소리의 그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파생될 노동의 가치 하락도 염려했다. 산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늘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기술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면서.

<바이라인네트워크> 창간 특집 기획의 주제가 채용절벽이다. 기업의 관점에서도 채용을 바라보지만, 노동의 관점에서도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때 제일 처음 생각난 사람이 하종강 선생이었다

오래한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웃음).

요새는 노동 관련 이슈가 참 많다. 선생도 엄청 바쁘실 같은데

많이 바빠졌다. 노동자가 힘들어지면 우리가 많이 바빠진다

선생이 한가할수록 노동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웃음)

내가 실업자가 되어야 한다(웃음)

그런 지금 노동정책은 시대를 역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에는 최대 69시간 노동 들어있다

그 안이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발표됐을 때, 민주노총에서 계산해 본 최대 노동시간이 96시간이었다. 노동부 정책담당관이 민주노총의 계산법이 너무 과장된 것이고, 우리가 계산해 보니까 80.5시간이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노동부에서는 그러니까, 80.5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다고 안을 짰던 거다. 그걸 나중에 69시간으로 확정해 발표한 것인데 반발이 그렇게 셀 줄은 몰랐던 거다.

(** 참고: 노동개혁안의 핵심 하나는 단위 규제를 단위 규제로 바꾸는 것에 있다. 현행 노동법에서는 40시간에 추가 노동을 최대 12시간을 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월간 규제로 바꾸면, 하루 최소 휴식 시간과 휴게시간을 제외한 80.5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하여

관점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바라봐야 할까?

정부도 지금 제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이 인터뷰는 “5월 중 설문조사를 실시,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더 듣겠다는 정부 발표 이전인 4월 6일에 실시됐다). 그럼에도 계속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개혁이 안 되는 장면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기득권 노동운동 세력이 야당과 야합해서 노동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니까 다음 총선에서 우리를 다수당으로 만들어달라”라고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화물연대 파업 때, 노동운동을 공격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걸 깨달은 거다. 회계장부 공개를 하라고 요구했던 것도 그렇고, 노동운동을 흠집내려는 시도를 계속해 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말이다.

69시간 노동이 현실성이 있다고 보나

미래 시장 노동연구회에서 발표한 중요한 두 가지가 노동시간 개편하고 임금 체계 개편이다. 임금 체계 개편은 지금의 연봉, 호봉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급 체계로 바꾸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왜인가?

우리나라 사업체 수가 총 140만개 정도 되는데, 그중 61%에 해당하는 100만개 이상이 아예 임금 체계가 없다.

소규모 기업이라 그런가?

소규모 사업장의 상황이 그런데, 고용할 때 사장이 임금을 임의로 정한다. 그러니까 임금 체계를 바꾼다기보다 임금 체계가 없는 사업장에 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실제로 연공서열 제도나 직무 성과급 제도가 시행되는 비율을 보면 비슷하다. 압도적으로 연봉, 호봉 승급 체계만 높은 것이 아니다. 덧붙여서, 직무급 체계가 불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기업체마다 직무가 수십, 수백, 수천개로 다르다. 같은 직무 안에서도 난이도에 따른 구분도 있어서 사실상 세분화하기 어렵다.

IT 산업계에서는 꾸준히 노동시간 재편이 이슈가 되어 왔다. 성공한 IT기업인 하나인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도 지금의 40시간 노동(최대 52시간)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해왔는데. 모바일 게임과 같은 산업은 일할 몰아서 하고 그다음에 있도록, 유연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도 그런 적은 계속 있었다.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그런 요구는 계속해 반복됐다. 조만간 윤석열 정부 역시 ‘파견 허용 업종 확대’를 들고 나올 거다. 이 역시 보수적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 했던 이슈다.

물론 집중적으로 업무가 투입되는 기간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 융통성이 필요할 때 최대 52시간까지만 (연장근무를) 허용하라는 것이 지금 제도 취지다. 자꾸만 ‘주 52시간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정확히는 ‘주 40시간제’인 나라다. 주 52시간제라는 말을 쓰고 싶다면, ‘주 최대 52시간제’라고 표기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제한한 것은, 그 시간이 넘어가면 노동자의 삶이 비인간화되고 인체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참고하자면, 프랑스는 주 35시간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글로벌 스탠다드와 무관하게 한국만 주 단위로 노동시간을 제한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다른 나라들은 12주 단위, 6개월 단위로 노동시간을 규제하면서 주 단위 노동 시간 제한 규정을 병행해서 두고 있다. 6개월 단위로 노동 시간을 제한하면서도, 주당 최대 노동  시간은 정해져 있는 거다. 우리처럼 무리하게 69시간 씩 일하자고는 못한다.

지금 그래도 IT 업계에 노조가 생겼다. 개발자들은 자유로이 능력대로 이직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 IT 산업도 업력이 쌓이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같다

네이버가 촉발제가 됐다. 네이버 직원들을 만나보니까 “옛날의 네이버가 아니다”라는 불만이 있더라. 초창기 수평적이고 활발했던 소통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불만이 상당히 축적돼 있던 거다. 삼성이 무노조를 오랜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업계 최고 기업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깨졌을 때, 삼성에도 돌발적으로 노조가 설립됐다.

그런 노조가 다른 IT 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유 중 하나는, IT 업종의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경쟁업체의 노동조건이 많이 좋아졌다. 우수한 인력이 빠져나갈 염려도 있고, 또 (노동조건이 나쁘면) 어차피 노조가 생길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동종 업계에서 만들어지는 노동조건을 비슷하게 유입시킨 거다.

또, 네이버와 카카오- 특히, 네이버가 그런 경향이 강한데- 본사 노동조합이 교섭할 때 항상 계열회사 교섭도 끌고 들어간다. (자기들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계열사 문제를 같이 해결하기 위한 건데, 자기네 것이 타결돼도 계열사 문제가 해결 안되면 교섭을 타결 안 한다. 계열회사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본사와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다.

노동운동가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제 성장의 성과가 두 방향으로 가서 쌓인다는 것이다. 기업에 쌓이거나, 노동자의 가정에 쌓이거나. 이게 기업 소득이고 가계 소득이다. 외환위기 전에는 가계 소득과 기업 소득 성장률이 각각 8% 씩으로 비슷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 소득만 너무 많아지기 시작했다. 기업이 어려우니까 일단 기업부터 살리자는 경제적 마인드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 거다.

이런 마인드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은 특히 그 정도가 심각하다. 우리나라 가계 소득이 전체 총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속도가 OECD 평균 2배가 빠르다. 그에 반비례해 기업소득의 비중이 증가하는 속도는 평균 4배가 빠르고. 최근 거시경제학 분야의 중요한 학문적 성과 중 하나가 무엇이냐면 “빅데이터를 분석해볼 때 양극화를 초래하는 성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환위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계속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위기론이 계속해서 기업에 이윤을 몰아주게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경제염려증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모든 도덕 가치 위에 군림하게 된 거다. 특히, 우리나라는 학교 교육이나 언론이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이 다른 나라와 굉장히 다르다. 한국 언론처럼 노동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은 세계적으로 없고, 한국 학교 교육처럼 노동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도 세계적으로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역사상 우리나라처럼, 100년 안에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식민지와 분단, 군사정부를 겪으면서 자본주의를 건설한 나라가 없다.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한 거다. 물론, 식민지를 겪은 나라는 굉장히 많다. 동남아 국가는 거의 다 겪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과거청산부터 했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이 되고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과거청산을 전혀 못했다. 사회개혁이 안 된 채 식민지 시기의 가치 철학이 지금까지 유지가 되고 있고, 기업이나 권력의 상층부에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채용절벽과 관련해서

<바이라인네트워크> 창간 기획 기사 주제가 <채용절벽>이다. 다들 일자리 구하기가 정말 너무 힘들다고 한다

나는 IT 전문가는 아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본다면, 일단 코로나19 때 IT 업계가 크게 확장이 됐다. 코로나라는 상황이 IT 업계에서는 사실 대목이었다.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IT쪽 업무는 굉장히 확장됐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일상이 회복되면서 주춤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리고, IT 업무의 직종이 단순한 코딩 업무부터 데이터 마이닝, 빅데이터 연구, 딥 러닝 등 굉장히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채용절벽이라고 보기도 좀 어려워 보인다. 호황기에 일어난 급격한 확장이 주춤한 상태라서, 이걸 장기적인 추세로 IT가 더 이상 고용 창출 능력을 상실했다고 보기엔 성급한 것 같다.

지금은 호황에 대한 반작용일 , 진짜 채용절벽인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왜냐하면, IT 업체도 영세한 곳은 인력을 지금 못 구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는 곳도 있고.

 챗GPT 비롯한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전을 하면 개발자의 일자리도 많이 대체될 거라고들 이야기한다. 특히 지식 노동자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질 거라고. 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되면 가지 문제가 생길 같다. 하나는 부의 분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느냐다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이것 역시 처음 제기된 문제도 아니고. 1차 산업혁명 당시 기계가 투입될 때, 3차 산업혁명에서 컴퓨터가 도입될 때 똑같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산업혁명의 공통적 특징은 초기에 실업이 발생할 뿐이지 일자리 총량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만 전체 일자리 총량을 줄일 것이라는 말은 제가 볼 때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리버럴을 대표하는 연구집단에서는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실종을 “과장된 공포”라고 본다. 실제로는 일자리가 그렇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학문적 연구성과도 굉장히 많다.

또 다른 예로, ‘로지’라는 가상 모델이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제가 아는 한 여성 노동자 위원장이, 그 모델을 보고서는 바로 “저런 AI가 일자리를 뺏앗는 게 아닌가”라고 걱정하더라. 실제로 그 로지라는 가상 모델 때문에 다른 한 모델의 일자리는 없어진거니까. 그런데, 그 로지를 개발한 대표가 TV에 나와서 한 인터뷰를 보면 가상모델을 개발하는 데 인력이 엄청나게 많이 채용이 됐다. 몇 달 사이 3배 정도 채용을 늘렸더라. 이런 예를 하나만 봐도 이런 AI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과장된 공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 GPT 실질적으로 업무 능력이 있어보인다

챗GPT한테 “하종강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했더니 “노동운동을 하다가 1974년에 사형선고를 당했다”라는 식으로 답하더라(웃음).

깜짝 놀랐겠다

AI가 그렇다. 다시 물었더니,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로서 젊은 시절 통닭구이 집에서 일하다가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이렇게 설명을 하기도 하고. 이건 내가 통닭구이 고문을 당한적이 있는데, 그 정보가 섞인 거다. AI가 팩트와 거짓을 섞어서 설명을 하는데, 이게 구분이 안 되지 않나. 그러니, 이런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직업이 엄청나게 늘어날 거다. 이 AI들이 만들어내는, 팩트와 거짓이 섞여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하고 검증해야 하니까, 그런 직종이 굉장히 많아질 거다. 사라지는 직종은 분명히 생기겠지만, 일자리 총량은 전체적으로 줄어들진 않을 거라고 보는 연구 성과도 꽤 많이 있다.

과장된 공포일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자리가 사라진 이후의 분배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 논의는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영어권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셜미디어 레딧에서 명사들이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게시판 이벤트 같은 걸 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치 내게는 유언처럼 들렸는데- 단 댓글이 있다. 당시 질문을 요약하자면 “자동화를 도입하면 대량 실업이 발생할텐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그랬더니 호킹 박사가 간단하게 뭐라고 답했느냐면 “기계로 창출된 부를 고르게 공유, 분배하면 인류 사회 전체가 행복해지겠지만, 기계 소유주가 그것에 반대하는 로비에 성공한다면 인류가 불행해질 것”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자동화 도입 초기에 로봇이 생산에 투입되면 실업이 발생할 거다. 그렇지만 생산성은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창출되는 부의 크기는 커진다. 이걸 나누면 된다는 이야기다.

기계에 나온 가치를 나누려면 지금부터 논의를 해야 할텐데

논의가 빨리 진행돼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기본 소득이다. 직업이 없는 사람과도 “골고루 최소한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지원”을 하면, 그게 그 사람을 위한 일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유익한 거다.

예를 들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파렴치한 짓이라고 여겨졌다. 그걸 요구하는 것 자체를 범죄행위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런데 일하지 않아도 돈을 골고루 나눠줄 수 있고, 그것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걸 알게 한 것이 재난기본소득이다. 경제 원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비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경제가 몰락한다는 것”이다.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 때 강제로 소비를 만들어내기 위한 거였다. 이게 미래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거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이 꽤 오래전에 나왔는데, 그 책에서도 이미 예견한 내용이기도 하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노동을 조금씩 적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마지막 모습은 노동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이 ‘노종의 종말’의 진짜 뜻이다. 더 이상 인간이 노동하지 않고 기계가 모든 걸 대신할 때, 기계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양극화가 벌어지면 상당한 사회 혼란을 초래할터이니 지금부터 골고루 공유, 분배하는 걸 준비하라는 이야기다.

제레미 리프킨의 탁월한 점은 공공의 목적과 기업의 이윤 추구가 결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걸 이야기한 거다. 정부가 예산을 조금만 쓰면 인류 사회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에 언젠가는 이를 것이라고 보는데, 예를 들어 요즘 금융 앱 중에서는 어느 위치에 가면 돈이 10원, 20원씩 축적되는 그런 것들이 있다. 그걸 보고 떠오른 것이, 폐지 줍는 노인들이 있는데 이분들이 일정 지점을 통과할 때 소득이 생기게 하는 거다. 정부의 예산과 기업의 광고 효과를 결합하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플랫폼 노동 중요한 주제다

플랫폼 노동은 유럽연합과 미국에서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규정이 계속해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이었다. 우버 같은 기업이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하려면 세 가지 굉장히 엄격한 관문을 통과하도록 한 것이다. 이게 결국 주민투표로 부결돼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IT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플랫폼이 일하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그와 같은 대우를 했을 때 이윤이 나는 수익 모델을 짜기 어렵다

표면적으로 그렇게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법안 발의 노력이 있는 배경에는 “이윤을 가져가는 기업이 노동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이를 부담하게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는 거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에는 인도주의적 관점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두번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전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금융위기 발발 직전에 IMF가 낸 보고서에는, 한국이 지금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면 향후 10년 동안 매년 1.1%의 추가 경제성장률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제금융 자본이 왜 그런 분석을 했을까? 1.1%라는 건 굉장히 큰 수치다.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 기관이 한국 경제 성장 전망치를 0.2%만 낮춰서 발표해도 며칠 동안 뉴스에 나올 만큼 큰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비정규직 없애는 것만으로 향후 10년 동안 매년 1.1%의 추가 성장률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게 경제 성장에 왜 유익할까? 이건 이제 경제 문제다. 크게 두 가지인데, 비정규직은 생산성이 낮다. 예를 들어서 서울 지하철이 구의역 사건 이후 노동자 41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스크린 수리 인력이 418명이었는데,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던 사람을 전부 직고용으로 바꿨다.

그리고 3년 뒤에 전체 고장 건수가 5분의 1로 줄었다. 왜 생산성이 다르냐면, 비정규직은 자기 사업장에 대한 애정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 끝나면 더 좋은 직장으로 가야 할 사람들이고,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당장 내일이라도 더 좋은 회사에서 연락을 받으면 바로 떠날 사람들이다. 그래서 업무를 수행하다가 문제가 발견 돼도 개선할 의지가 없다. 그런데 정규직이 되면 여기서 자기가 30년, 40년 일하게 될 테니까 문제가 발견되면 계속 개선하려는 의지가 생긴다. 스스로 생산성이 엄청 높아진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이 너무 많아지면 소비가 창출이 안 된다. 그래서 경제 성장 전체가 둔화된다. 비정규직이 일정 수준의 경제 능력을 가지지 못하면 당사자의 비인간적 삶만 초래되는 게 아니다. 장기적으로 소비를 창출할 능력을 점점 상실하므로, 이게 전체 경제 성장에 굉장한 저해 요소가 된다.

기업에서 채용절벽이나 고용이 일어나는 이유 하나로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해고가 어렵고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한국 노동유연성은 국제적인 지표로 볼 때 그렇게 낮은 편이 아니다. 사실은 그 정도로 고용이 보장되는 게 정상이다. 미국에는 노동법에 해고 관련 규제 조항이 없어서 굉장히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라고 이야기 하는데, 노동법 내에 해고 관련 규정이 없을 뿐이지 다른 법에서 그런 상황을 막는 규제를 한다. 예를 들어, 해고 사유에 만약 인권 침해 요소나 차별이 있다면 징벌적 배상금 제도가 있으므로 거의 회사가 도산할 정도로 타격을 크게 입는다. 미국도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해고가 쉬운 나라는 아니다.

타다 카카오택시가 택시 기사와 부딪혔던 사례도 있다. 당시에는, IT 기술이 기존의 산업이 부딪히는 갈등으로 사례가 많이 보도됐다

타다와 같은 것은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새로운 업종은 아니다. 성신여대 법학부 권오성 교수가 이쪽 연구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혁신 뽕을 맞아서 이게 혁신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타다와 같은 플랫폼 노동은) 기존에 있던 노동에서 회사가 가진 인사 노무상의 의무만 빼버린 것이다. 혁신적인 기업이 절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미래 지향적인 혁신 기업과, 기존에 있는 업무 중에서 회사가 노동권을 제약하기 위한 꼼수로 혁신을 들고 나온 것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기업의 이윤이 사회 전체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단기적 이윤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배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자본주의 사회는 일단 최대한 규제하는 것이 전체에 유익하다. 왜냐하면, 규제를 많이 해도 기업은 이걸 어떻게든 뚫고 나가는 생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한다고 해서 기업의 이윤추구를 제어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워낙 자본이 노동의 우위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므로 최대한 규제해도 그 규제가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미래의 노동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린다

IT 기업 노동자를 만나면 “여러분이 제다이 기사의 선배들”이라고 말한다. 미래 사회를 그린 SF 영화를 보면, 소수의 지배 세력이 독점한 권력과 자본을 골고루 공유하려는 선한 저항 세력들이 항상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역할을 노동조합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도 노동운동은 아닐지라도 그런 노력은 계속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들이 노동운동의 후예들일 것이고, 지금의 노동운동이 굉장히 커야만 나중에 그 세력도 클 수 있지 않겠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약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구성원과 강자에 유익하다는 걸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봐야지, 약자를 마치 “노력하지 않고 대우를 요구한다, 정규직은 노력한 사람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고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은 이가 받아야 할 마땅한 형벌”처럼 보는 시각은 사회 전체에 해롭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4 댓글

  1. “양극화를 초래하는 성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공멸을 향해 뛰는 줄도 모르고 눈앞의 홍당무만 좇는 기업가, 재력가들이 떠오르는 기사입니다. 깊이 있는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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