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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채용] “지역 특성 인재 양성해야…혜택은 더 강화”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전 산업군이 채용 빙하기를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대표적 수혜업종인 정보기술(IT)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IT 기업들이 올해 보수적 인력 운용 기조를 밝혔습니다.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다 돌연 중단하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대기업 인재 쏠림에 스타트업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런 때일수록, 구인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정보가 중요합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립 7주년을 맞아 IT 채용 시장을 구인·구직 양면에서 살펴보는 [요즘채용]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채용 전문가와 현직 종사자가 전하는 일자리 시장 진단과 취·창업 노하우, 기술로 인한 시장 변화 그리고 흥미가 당길만한 직업 정보를 담아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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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차전지, 디지털. 모두 국가전략기술로 정부 차원에서 인재 양성에 팔을 걷어 붙였거나, 교육 정책 마련을 고려하고 있는 분야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인재 양성 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을 꼽을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는 지난 해 7월 합동으로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는 2031년까지 10년에 걸쳐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이끌 인재를 15만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산학연 연계 프로젝트를 확충하고 장학금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한편, 첨단 분야에 한해서는 지역구분 없이 각 대학이 기존 학과 정원을 증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권 대학을 제외한 반도체 관련 학과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의학 계열의 경우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경쟁률이 높아졌다. 논술전형의 경우에는 여전히 세자리수에 육박하는 경쟁률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국가전략기술 관련 인재 양성에 나섰지만, 사실상 큰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의미다.

빠른 지원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정부는 올해에만 디지털 인재양성에 4537억원을 투입하고, 반도체 부문에서는 관련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8곳을 선정해 540억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나름의 파격 지원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지원 대학을 선정 중으로, 5~6월 사이에는 결과가 발표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학 원서 접수가 9월부터 시작되는데, 6월 전에는 보조금 지급 대학 명단과 구체적인 혜택 등이 나와야 학생들이 이를 참고해 대학을 지원할 수 있다”며 “이후에 나오게 되면 학생들이 정책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입시에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입시에 큰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에서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인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생들 사이에는 반도체, 배터리 모두 ‘마냥 어려운 분야’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혀 있는데, 구체적인 메리트를 제공해야 학생들을 끌어 모으고 인재 양성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국내 반도체 중소업체 관계자도 “인재를 양성하려면 우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마냥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 산업의 가치를 알려주고, 학생들이 충분히 학생들이 해당 분야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성호 대표는 “의학계열도 많은 공부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반도체나 배터리 관련 학과가 어려워서 학생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의학계열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취업이나 장학금 등 실제로 학과에 입학했을 때 학생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위권 대학 중심 지원은 산업 밸류체인에 부정적”

다만 학계에서는 그 기준이 세부적이지 않아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이차전지, 디지털 등 각 산업마다 밸류체인과 생태계가 구성돼 있는데, 이 세부적인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는 결국 전반적인 대학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채 혜택이 상위권 대학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야기하고, 수도권 외 반도체 학과는 별다른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반도체 학과에 입학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모두 상위권 대학에 한정되는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내 수도권 대학 교수는 “통상 정부의 인재 양성 정책이 나오면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이 혜택을 받기 위해 지원하지만 결국 선정되는 학교는 상위10위권에 들어있는 대학이 대부분”이라며 “세부적인 지침 없이 상위권 대학 중심으로만 지원 정책을 펼치면 비효율적일뿐만 아니라 추후 각 산업 밸류체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교수는 반도체 학과를 예시로 들어 설명했다. 반도체는 웨이퍼 제조부터 마지막 테스트, 패키징까지 8대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여기에 반도체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작업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과정으로 세분화돼 있다. 반도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공정 과정에 걸맞은 인재가 균형 있게 발굴돼야 한다.

이 모든 공정을 하나의 학교에서만 담당하기란 어렵다. 전공정만 해도 시설을 별도로 건설해야 하고, 생산 장비도 도입해야 하는데 이에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 미세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중에서도 기본형은 1억6000만유로(약 2200억원), 차세대 하이NA EUV 노광장비는 3억5000만유로(약 4900억원) 가량 된다. 여기에 설계, 패키징 등 후공정까지 특정 대학에만 교육 인프라를 건설하게 되면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교수는 “반도체의 경우에는 국내에는 상위권이 아닌 대학 중에서도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 있고, 패키징이나 설계 등 특정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대학도 있다”며 “어느 산업 분야든 각 지역과 대학의 특성을 잘 살린다면 더 적은 비용으로 다방면의 많은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 텐데, 이에 대한 고려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 입법조사관도 “반도체 산업 구조와 인력 수요를 기반으로 양성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반도체 계약학과는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돼 있는데, 지방대학 관련 학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관련 학과 개설을 지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야”

그렇다면 기업 입장은 어떨까. 첨단 산업의 경우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에서도 석사 이상의 인재를 원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에 고급 인력이 몰리다 보니 늘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결국 일부 중소기업은 직접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특정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 해도 신입을 직접 끼고 육성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내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반도체나 배터리 기업에서는 한 명의 석사급 이상의 인재가 아웃풋을 내고 기업을 키우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그들이 신입을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다 보니 역량이 분산되고 있다”며 “적어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의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육성 과정을 2~3년 정도 거쳐야 하는데, 경력자를 뽑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인재 양성에 에너지를 할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직접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이 산업군 내에서도 특정 분야에만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반도체 인력은 대부분 메모리에 편중돼 있다. 또 다른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인력 부족의 가장 큰 이유는 전기전자 인력이 메모리 중심으로 편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기업만 부각이 되다 보니 생태계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인력난과 채용난이 동시에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와 학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국가첨단산업 인재를 효과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각 산업의 생태계를 고려한 세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업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상위권 대학, 대기업에 편중된 인재를 분산하지 않으면 인력 불균형 형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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