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는 왜 필요한가 (feat.아뽀키)

지난해 12월 19일. 가수 아뽀키(APOKI)가 네번째 싱글 앨범의 컴백무대를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 가졌다. 제목은 <웨스트 스윙(West Swing)>. 뉴 잭 스윙 장르로, 미국의 유명 래퍼 E-40이 피처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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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케이팝 가수 아뽀키는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버츄얼 휴먼(가상인간)이다. 아뽀키는 여러 면에서 주목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선 가상인간 중에서는 현실의 가수처럼 엠카운트다운에서 컴백무대를 가진 얼마 안 되는 사례의 주인공이다. 심지어 돌체앤가바나나 타미힐피거와 같은 브랜드로부터 무대 의상을 협찬받는다. 유튜브 구독자 30만, 틱톡 팔로워 450만명을 확보한 유명세에, 평론가들로부터는 음악성과 세계관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아뽀키는 최근 ‘무드 V5’라는 신곡을 발표, 뮤직비디오(=사진)를 공개하고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아뽀키를 만든 ‘에이펀인터렉티브’는 원래 기술 회사다. 실시간 3D 그래픽을 구현하는데 강점을 가졌다. 이 그래픽 기술이 버추얼 엔터테인먼트로 이어졌다. 아뽀키는 이 회사의 대표적인 지적재산권(IP) 사례다. 아뽀키를 대표 주자로, 매년 50명의 새로운 IP를 개발해 일반적인 사람 연예인과 거의 동일한 활동을 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뽀키가 음악방송에 등장하고, 판을 키운데는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CJ 그룹을 우군으로 확보한 덕을 봤다.

CJ는 왜 에이펀인터렉티브에 돈을 넣었을까?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연 ‘AWS 스타트업 위크’ 컨퍼런스에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와 권도균 에이펀인터렉티브 대표가 함께 등장했다. CJ인베스트먼트는 CJ그룹이 만든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로, 에이펀인터렉티브의 투자사다. 권도균 대표는 이 자리에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CJ와 같은 회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콘텐츠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여기까지 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권도균 에이펀인터렉티브 대표,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 맨 오른쪽은 모더레이터 역을 한 이경희 AWS스타트업 사업개발 매니저.

CJ 의 사정

CJ그룹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다. 그중에는 유튜버와 같은 크리에이터를 확보,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MCN 사업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 음악,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면서 미디어 업계의 지배력을 키워온 CJ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에서 MCN마저 잘했다. 그러나 2020년, 유튜브 뒷광고 사건이 터졌다. 수익성 악화와 사람 유튜버 관리라는 여러 이슈 사이에서, 당시 CJ 측이 주목한 것이 ‘버튜버’, 즉 버츄얼 유튜버다.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조금 더 진보된 기술로 ‘리얼타임 랜더링’이라는 굉장히 활용 범위가 넒은 기술을 주목하고 있었던 때에, 이 기술이 실제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준 에이펀인터렉티브에 투자하게 됐다”며 “음악방송에 나온 아뽀키의 사례를 봤듯, 퀄리티(품질)가 검증되고 글로벌 팬덤도 확보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CJ인베스트먼트와 에이펀인터렉티브는 CVC가 전략적 투자를 어떻게 집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기도 하다. CJ는 그룹 차원에서 미래의 먹을 거리 중 하나로 ‘버추얼 엔터테인먼트’를 골랐고, 이를 구현하게 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에이펀인터렉티브 역시 자신들의 기술을 대중적인 서비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자본과 네트워크를 지원할 수 있는 투자사를 원했다. 김도한 대표는 “CJ인베스트먼트에 들어오는 투자문의의 대부분은 전략적투자”라고 말했다. 벤처 투자는 크게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재무적 투자와 향후 사업에서 시너지를 고려하는 전략적 투자로 나눠진다.

CJ는 물론 충분히 큰 회사지만 홀로 새로운 기술을 모두 만들어낼 수 없다. 시야를 글로벌로 넒히면, 경쟁력 있는 더 많은 기술과 콘텐츠가 필요하다. 김 대표가 “IP의 대표주자는 미우나 고우나 디즈니인데, 디즈니 이후의 IP 회사가 딱 보이지 않는다”면서 “(버츄얼 엔터테인먼트로) 적당히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글로벌에서 충분히 통하는 중독적인 콘텐츠를 국내 스타트업들과 같이 만들어내보면 어떨까, 그래서 굉장히 의미 있는 지향점을 글로벌에서 찍어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펀의 계획

권도균 에이펀인터렉티브 대표는 전략적 지원을 토대로 활동의 범위를 넓혀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나의 세계관 위에서 유기적으로 활동하는 캐릭터를 50명 넘게 한꺼번에 선보이려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를 계속해서 에이펀만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누구나 3D 랜더링을 통해 실시간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도 세웠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언젠가 버추얼 휴먼이 인간의 동작을 일일이 캡처해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적절한 행동을 만들어가는 상황을 대비하고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캐릭터의 행동 패턴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데, AI가 충분히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고 나면 적절한 행동을 생성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권 대표는 “지금 같은 경우에는 모션 캡처를 1시간 해서 1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만, 이 속도를 (AI의 데이터 학습을 통해) 높이게 되면 하루에 1만 시간 이상의 콘텐츠도 나올 수 있게 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생성한 대본을 버추얼 휴먼이 연기하고, AI가 쓴 곡을 버추얼 휴먼이 부를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다음 세대 K팝스타는 버추얼 휴먼에서 나오게 될까. 자본과 기술이 합작해 만드는 콘텐츠의 미래가 실험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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