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테크 키우려면 ‘판례’부터 공개하라”
알파고가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이후, 전 산업에서 인공지능(AI)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법조계도 그렇다. 법조계는 ‘판례’라는 데이터가 많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에 매우 유리한 분야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의 국가에서 법과 데이터를 접목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국내서는 이런 이야기가 아직은 남의 일이다.
금융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핀테크(혹은 테크핀), 부동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프롭테크라고 부르듯이, 법에서 일어나는 이런 디지털트래스포메이션을 글로벌로는 ‘리걸테크(legal tech)’라고 일컫는다. 법과 기술을 합성어인데, 인공지능(AI)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를 뜻한다.
그런데 국내서는 아직 ‘리걸테크’의 발전을 말하기 민망한 것이, 지난 2015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국내에서 리걸테크에 투자한 금액은 대략 135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 기간 미국에서 리걸테크에 대한 투자는 2조원을 훌쩍 넘겼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5일 아산나눔재단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AWS 등이 함께 발간한 ‘2020 스타트업코리아 정책제안’ 발표에서 나왔다. 이들은 발표에서 시장 잠재력이 매우 높지만, 국내서는 여러 조건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로 리걸테크를 꼽았다.
만약 지금까지의 모든 싸움의 기록, 즉 모든 판례가 디지털로 데이터화가 된다면 어떨까? 법이 일반인들에게 예전만큼 어려운 분야가 아닐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온라인으로 판례와 같은 법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거나, 소송을 하게 될 경우 승소할 확률이 얼마인지 합의나 조정 내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을 데이터 기반으로 조언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왜 리걸테크가 발전하지 못할까? 보고서에서는 원인을 크게 인프라와 정책/규제에서 찾는다. 첫째, 인프라 측면에서 인공지능 발전의 토대가 되는 데이터가 부족하고 둘째, 정책/규제 측면에서는 전자증거개시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도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먼제 데이터다. 데이터는 4차산업혁명의 쌀이라고 불리는 원천 자원이다. 그런데 유독 법률 부문에서만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판결문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내에서는 드문 리걸테크 스타트업 인텔리콘의 임영익 대표가 출연했는데 그는 “우리나리 시민들 대부분은 판결문이 대법원 종합 법률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공개 수준이 전체의 2~3% 밖에 안 된다”며 “골드데이터라 불리는 하급심판례의 경우는 거의 공개를 안 하고 있는 충격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서는 현재 온라인으로는 제한적인 수의 판결문만 공개되고 있고, 이들 대부분도 상급심 확정 판결이다. 그런데 대체로 일반인들은 소송을 갈지 말지 등에 대해서 1심과 2심 판례를 많이 참고하게 된다. 즉, 상급심 위주의 제한된 판례만 공개가 되어서는 활용성이 떨어지게 된다.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법원이 이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발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법조계 내부적으로 변호사의 경우에는 판결문 전면 공개를 찬성하고 있는데, 판사 측에서 주저하고 있다”며 “법률절으로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판사가 공개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법원 측에서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근거다. 일단, 판례에는 소송 당사자들에 대한 개인 정보가 많이 들어 있는데 이를 비실명으로 전화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가, 바꾼다고 하더라도 완전하게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AI를 통해 개인정보를 걸러내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수년째 나오고 있는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법원에서는 AI를 통한 비식별처리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영익 대표는 이와 관련해 “AI를 활용해 개인정보 침해를 피해가는 방법이 있고 작년에도 논의가 되었지만 되지 않고 있다”며 “시민이 데이터를 직접 볼 수 있는 권리의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두번째는 전자증거개시제도다. 최근에는 소송의 증거가 전자적 형태인 경우가 많은데, 이 중 유의미한 것만 빠르게 골라내야 하는 게 소송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민사 소송시 서로 보유한 증거 일체를 소송 전에 상호 교환하도록 강제하는 전자증거개시제도를 국내에서도 강제화하자고 주장한다. 보고서에서도 해당 내용이 담겼는데, 전자증거개시제도를 실행할 경우 어느 한 쪽만 증거를 갖고 있는 편재성을 해소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사례로 든 것이 개인과 기업 간 분쟁 사례였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BMW 화재사건이다.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 경우, 기업의 병확한 불법 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이 어려워 소송 자체가 장기화 되고 피해자 구제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일 등을 비추어봤을 때 증거개시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전자증거개시제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여러번 도입 논의가 이뤄졌으나 무산됐다.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 판결 신뢰성이 높아지고 쟁점파악과 승소 확률 등을 빨리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증거 개시 과정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또, 기업의 경우 증거 개시 과정에서 영업 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해당 제도 도입의 단점으로 꼽혔다.
관련해 보고서는 “단기적으로는 증거보전제도, 문서제출명령 등 기존 제도들의 실효성을 강화하거나, 증거개시제도의 효익이 가장 높은 영역을 선별해 개별법 차원에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타개별법및 민사소송법전체에확산 적용하는 방향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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