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숙박 예약하던 야놀자는 어떻게 글로벌을 꿈꾸게 됐나

성공한 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결정적 순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중요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에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기업은 없습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간 8주년을 맞아 창간 기획 시리즈 <결정적 순간>을 연재합니다. 국내 대표 테크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 순간을 돌아봄으로 해서 많은 스타트업과 창업가, 테크 기업이 그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 성공의 길을 선택하길 기대합니다.

<연재 순서>
네이버, 커머스 사업을 위한 꽃을 피우다
곰인 줄 알았던 사자 한 마리, 카카오를 뒤흔들다
③ 10년 전, 쿠팡은 어떻게 49일만에 로켓배송을 내놓게 됐나
④ 토스 건물 외벽에 “해냈고,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고 쓰인 순간
⑤ 숙박 예약하던 야놀자는 어떻게 글로벌을 꿈꾸게 됐나
크래프톤, “인도에서도,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배달의민족, 1등도 절박해야 살아남는다
돈 못벌던 카카오택시, ‘가맹’으로 상황을 뒤집다
물이 들어오면 고민 말고 노를 저어라, 업비트
당근이 이메일을 버리고 지역 인증을 도입했을 때
갑자기 춘천으로 이사간 소프트웨어 기업, 더존비즈온

2018년. TV만 틀면 ‘초특가 야놀자’ 광고가 나왔다.  당시 야놀자라는 브랜드는 숙박을 넘어 레저까지 ‘여행 앱’으로 정체성을 확장하고 있었다.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이 광고는 브랜드 인지도를 한층 올렸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여행앱으로 정체성이 변환되던 그 때, 아이러니하게도 야놀자 경영진은 어떠한 ‘벽’을 느끼고 있었다. 국내 숙박과 여행 시장을 모두 그러모아도, 심지어 독점을 이뤄낸다고 하더라도 시장 자체의 파이가 작아 지속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 판단 때문이었다.

안이 좁아 밖을 내다보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번째, 내가 원래 잘하던 것을 밖으로 들고 나간다. 다만, 밖에는 더 쟁쟁한 경쟁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 두번째, 원래 잘 하던 것은 아니나 밖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들고 나가 공급한다. 훨씬 험난한 가시밭길이겠지만, 희박한 확률을 뚫고 성과를 낸다면 대박이다. 2018년의 야놀자는 두 카드를 모두 들고 글로벌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길목에 있었다.

지금 야놀자 클라우드 그룹을 이끄는 김종윤 대표는 구글과 맥킨지 출신이다. 야놀자 합류 후 그에게 주어진 숙제는 숙박앱의 확장성 한계를 딛고 회사를 키우는 것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클라우드 회사가 된 아마존처럼. 숙박에서 레저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던 김 대표는 ‘여행앱’으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글로벌 진출’이라는 다음 미션 준비에 나섰다. 야놀자가 일본 라쿠텐 라이플스테이와 파트너십을 체결한지 얼마 안 지난 시점이었다.

“일단 나가서 잠재 파트너를 모두 만나봅시다”

글로벌 진출의 방향성과 파트너십을 고민하던 그에게, 이수진 사업총괄 대표가 권유했다. 이 총괄대표의 말에 둘은 배낭만 하나 메고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일본 라쿠텐과 제휴 이후, 자연스레 중국으로 눈을 돌렸으나 주한미군 사드(THAAD) 재배치로 인한 갈등 탓에 더 이상의 대화 진전이 어려운 때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면  “선도 여행기업인 트래블로카나, 티켓닷컴 등의 잠재 파트너들도 만나고, 수십개의 클라우드 솔루션 기업들을 만나서 시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야놀자의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실적 성장 추이. 오른쪽은 연결재무제표를 반영한 것이다. 단위는 원.

위의 그래프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야놀자의 11년간 매출과 영업이익 추이를 나타낸다. 2018년 즈음, 야놀자는 국내 한정 가장 점유율이 높은 숙박 예약 앱이었다. 경쟁사인 여기어때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모텔 검색과 예약 시장을 두 회사가 나눠 먹는 구도를 가져갔다. 그러나 업계 1위 회사의 성장 곡선은 매우 완만했고, 매출도 수백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그래프가 드라마틱하게 꺾어지는 것은 2018년 이후다. 이 당시 야놀자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잘 하던 것을 들고 나가기

야놀자는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플랫폼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지 분석했다. 글로벌 여행 시장은 수천조 원에 달하는 큰 시장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시장을 분석했을 때 야놀자 플랫폼이 익스피디아 그룹, 부킹닷컴 그룹 등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플랫폼 시장의 특성상 후발주자가 네트워크 효과를 이기고 시장을 전복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야놀자는 직접적으로 국내 플랫폼을 해외에 들고 나가는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현지 유력 플랫폼과의 협업을 택했다. 가지고 있는 숙박 상품을 각자의 플랫폼에서 교차 판매하는 식이다. 야놀자가 가진 글로벌 진출 전략 투 트랙 중 하나인데 2018년 일본 라쿠텐과의 협업 이후, 이 방식이 통한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소비자는 일본 라쿠텐에서, 한국의 여행객은 야놀자에서 두 나라의 상품을 골라 예약할 수 있는 형태다.

2019년에는 이 방식을 더 확대했다. 미국의 트립어드바이저, 대만의 공유숙박 플랫폼 아시아요와 손잡았다. 앞서 김종윤 대표가 동남아에서 만났다고 언급한 트래블로카나, 티켓닷컴 등은 현재 야놀자의 파트너 기업들이기도 하다.

이 전략이 유리한 이유는 불필요한 자금 출혈을 막을 수 있어서다. 직접 진출을 하면 좋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매우 적다. 국내에서도 양대 플랫폼이 어디 하나 독식하기 어려운데 글로벌로는 아고다와 호텔스닷컴 같은 더 쟁쟁한 앱이 즐비하다. 해외 여행객을 잡는다는 것은 이동네 원래 강자들과 부딪혀서 이겨야 한다는 뜻이 된다. 마케팅비 출혈은 물론이고, 그렇게 피를 흘린다고 해서 일등이 된다는 보장도 당연히 없다.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을 겨냥해서는 국내 주요 플랫폼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우는 전략도 썼다. 야놀자는 지난 2021년 인터파크 여행, 공연 등의 사업 부문을 인수했는데, 해외 여행객이 숙박과 레저 상품을 야놀자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해외여행 수요를 흡수해 이 시장에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려는 목적에 부합한 선택이다. 

낯선 것을 들고 나가기

이수진 대표와 김종윤 대표가 배낭을 메고 동남아로 갔던 그 때, 그들이 만난 회사 중에는 젠룸스가 있다. 젠룸스는 동남아 지역의 이코노미 호텔 체인이다. 야놀자는 800억원을 들여 동남아의 호텔 체인인 젠룸스를 인수했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지금와서 말한다면, 젠룸스 인수는 실패한 투자다. 2018년 인수한 젠룸스를 야놀자가 2022년에 청산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다. 다만, 젠룸스를 인수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수진 야놀자 총괄대표는 지난해 스타트업 축제인 ‘컴업 2023’에 연사로 참석해 “젠룸스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800억원의 가치는 했다”고 평가했다.

김종윤 대표도 당시를 회상하면서, 젠룸스로 인해 이어진 인연이 지금의 야놀자의 새로운 축이 됐다고 말한다. 지금 야놀자클라우드솔루션의 전신인 이지 테크노시스를 젠룸스의 솔루션 파트너로 소개받아 만나서다.이지 테크노시스는 글로벌 채널 관리 시스템(Channel Management System, CMS)과 객실관리 시스템(Property Management System, PMS) 사업을 하던 곳이다. 인도 회사로, 김 대표는 이 회사 경영진과 만나기 위해 수랏까지 날아갔다.

클라우드로 숙박 예약부터 호텔 관리까지 아우르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것은 야놀자가 원래 잘 하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숙박 중개만으로는 한계를 느끼던 야놀자에게, 클라우드 솔루션 시장은 한 단계 점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였다. 동남아를 비롯해 글로벌 대부분 숙박업체들의 디지털 전환이 매우 느린 것도 야놀자가 파고들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봤다. 이는 야놀자의 글로벌 사업을 이끄는 또 하나의 트랙이 됐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시 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2021년 7월,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II로부터 총 2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것. 당시 야놀자 측은 “국내 시장에서는 슈퍼앱 전략글로벌 시장에서는 클라우드 기반 자동화 솔루션 확장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았다. 또, “투자유치금을 활용해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도적인 기술개발 및 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설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023년 1월부터 12월(17) 야놀자의 실적.

최근 야놀자는 지난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23년, 1년간 야놀자는 7666억원의 매출을 냈고, 1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를 맞췄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클라우드 부문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단 것이다. 그간 야놀자 안팎에서는 클라우드 사업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올해 전체 매출에서 클라우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2.6%. 재작년 10.18%에 비하면 그 비중이 두배 넘게 껑충 뛰었다. 플랫폼 부문의 매출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부문의 매출이 늘어나면서 비중을 많이 차지하게 됐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관련 기사: 야놀자 클라우드가 도대체 뭐야?

야놀자가 클라우드로 그리는 그림은, 여행객의 여행 전 과정에서 빈 구멍 없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거의 끊임 없이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야놀자 측은 “데이터와 사람으로부터 탄생한 초연결된 여행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이 회사의 표현대로라면 “파편화된 전 세계 여행 정보와 데이터를 야놀자의 플랫폼 및 클라우드 솔루션 기술을 통해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AI·빅데이터 기술로 누구나 여행을 통해 꿈을 실현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이다.

야놀자의 글로벌 진출은 아직 성공을 점치기엔 이르다. 야놀자는 이제 막 글로벌로 출사표를 던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솔루션 기업이 글로벌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적이 거의 없다. 작은 성과라도 눈여겨 보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다.

지난해 5월 야놀자가 여행 인벤토리를 취급하는 이스라엘 B2B 솔루션 회사 고글로벌트래블(GGT)을 인수했을 때, 나스닥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축하 메시지를 띄운 것은 상징적이다. 이수진 총괄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스닥으로부터 축하를 전광판으로 받으니, 원톱 트래블 기업이라는 목표에 한발 한발씩 걸어 가고 있다 느낀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야놀자가 언젠가 정말로 세계적 여행 솔루션 기업이 될 수 있을까? 변화는 모두 한발짝 떼어 놓는 그 도전의 첫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