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10년 전, 쿠팡은 어떻게 49일만에 로켓배송을 내놓게 됐나

성공한 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결정적 순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중요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에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기업은 없습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간 8주년을 맞아 창간 기획 시리즈 <결정적 순간>을 연재합니다. 국내 대표 테크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 순간을 돌아봄으로 해서 많은 스타트업과 창업가, 테크 기업이 그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 성공의 길을 선택하길 기대합니다.

<연재 순서>
네이버, 커머스 사업을 위한 꽃을 피우다
곰인 줄 알았던 사자 한 마리, 카카오를 뒤흔들다
③ 10년 전, 쿠팡은 어떻게 49일만에 로켓배송을 내놓게 됐나
④ 토스 건물 외벽에 “해냈고,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고 쓰인 순간
⑤ 숙박 예약하던 야놀자는 어떻게 글로벌을 꿈꾸게 됐나
크래프톤, “인도에서도,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배달의민족, 1등도 절박해야 살아남는다
돈 못벌던 카카오택시, ‘가맹’으로 상황을 뒤집다
물이 들어오면 고민 말고 노를 저어라, 업비트
당근이 이메일을 버리고 지역 인증을 도입했을 때
갑자기 춘천으로 이사간 소프트웨어 기업, 더존비즈온

 

“플랫폼에서 상품 가격이 비싸요, 그리고 배송이 언제 올지 몰라 불안해요. 교환이랑 환불도 힘들고요, 배송이 느린 것도 힘들어요. 상품 종류는 왜 이리 적나요?”

2013년, 쿠팡 경영진의 아침은 고객의 소리(VoC)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당시 회사 대표였던 김범석 쿠팡 창업자(현 의장)이 경영진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한 이야기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 즉, 고객의 애로사항이다.

당시 쿠팡에 있던 이들은 성공의 비결로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대표님은 이커머스를 몰랐어요. 이 시장에서 당연한 게, 김범석 대표님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었죠.”

회사의 대표가 산업과 업계에 대해 모르면 둘 중에 하나로 이어진다. 망하든가, 아니면 기존 업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쿠팡의 김범석 대표는 후자다. 이커머스에 대해 잘 몰랐던 김 대표는 모든 걸 낯설게 보고 서비스 이용자가 느낄 모든 불편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2014년, 49일 만에 로켓배송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쿠팡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소셜 커머스’라는 키워드로 이커머스 산업에 뛰어든 기업이다. 하지만 김범석 대표는 이커머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커머스를 모르는 대표와 이커머스를 잘 아는 직원들 사이의 간극이 있었다. 직원들은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들도 김 대표는 이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봤다.

김 대표는’페인포인트(Pain Point)’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고객들이 고통스러워 하는데, 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냐고 직원들을 압박했다.

당시 쿠팡 내부에서 VoC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감지한 건 배송 관련 지표다. 배송으로 인한 구매 경험이 좋지 않으면, 고객 재방문율이 떨어졌다. 예를 들어 배송이 주문일 기준 이틀 이상 늦으면, 두 달 내 재방문율이 70% 이상 감소했다. 판매자에게 패널티를 줘도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택배사의 과실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서다.

쿠팡이 처음에 해결책으로 내놓은 건 CS의 내재화다. 2011년, 24시간 소비자에게 응답하는 고객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먼저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우선으로 한 것이다. 첫 전화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걸 목표로 했다.

배송비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당시 쿠팡의 건당 평균 주문금액은 1만~2만원 사이. 배송비는 2500~3000원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문 금액의 20%가 배송비로 나갔다. 배송료는 소비자들이 쿠팡을 선택하게 하는 데 진입장벽이 됐다.

쿠팡은 고객의 이런 페인포인트를 받아들여 업계 최초의 무료배송을 시작했고, 이 결정은 회사가 이커머스 회사로 성장하는 모멘텀이 됐다. 9800원 이상 상품을 구매하면 무료배송을 실시키로 했다. 이후 나올 로켓배송의 근간이 되는 순간이다. 무료배송을 실시한 이후,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김 대표가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무료배송으로 인한 손실은 컸다. 하지만 쿠팡은 당장 손실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입점 업체들 입장에서도 쿠팡의 무료 배송은 반가운 정책이었다. 쿠팡이 업체들에게 무료 배송이 가능하도록 상품을 번들 단위로 구성, 배송비를 어느 정도 포함한 가격에 상품을 팔아달라고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쿠팡의 투자가 이득을 주는 데다 무료 배송으로 쿠팡의 점유율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다양한 이커머스 채널에 대한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업체들이 요청에 응했다. 

이와 동시에 쿠팡이 고민한 건 배송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방안이었다. 당시 택배는 지역별로 서비스가 표준화되지 않았고, 고객 입장에서 불친절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일부 여성 소비자 입장에서는 택배 기사가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로 느껴지기도 했다. 쿠팡이 쿠팡맨을 이용해 직접 배송하는 서비스를 구상한 이유 중 하나다.

처음 시작은 신발이었다. 아마존이 인수한 자포스를 본따왔다. 신발은 온라인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상품이기 때문에, 세 개를 보내고 두 개를 받아오자는 구상을 펼쳤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사업을 접어야 했다. 택배 기사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 후 나머지 반품 제품을 가져가는 게 소비자에게도, 기사에게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발 이후 서비스를 개선해 나온 ‘2.0’ 버전이 2013년 출시한 유아상품 전문 서비스 베이비팡이다.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해 모든 상품을 사전 매입하고 재고 관리와 포장을 했다. 쿠팡 고객의 80%에 달하는 여성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시점이 출산 이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때 쿠팡은 자체 배송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신뢰도 있는 배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아이를 키우다보면, 분유나 기저귀 등이 갑작스럽게 필요할 때가 있다. 쿠팡은 이 수요를 파악했다.

자체 배송을 위해 쿠팡은 여러 테스트를 진행했다. 초기에는 새벽배송이 아니었다. 오전 주문 오후 배송을 시도했다. 2013년 진행한 A/B테스트는 로켓배송 전신인 와우딜리버리 이벤트의 시작이다. 쿠팡은 당시 직접배송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아파트단지를 선정해 A/B테스트를 진행했다. 기존 택배 서비스와 동일한 A군과 쿠팡 직원들이 직접 배송하는 B군이다. B군이 재구매율이 높았다. 당시 회사는 일산에서 3시간 배송까지 실험하기도 했다.

2014년 쿠팡이 조직한 와우딜리버리 프로젝트는 로켓배송의 전신이다. 회사는 기존 택배와 물류와 관게된 경험이 없는 20대 직원들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오아시스팀’을 꾸렸다. 어차피 기존 유통에서는 답이 없다는 게 회사의 판단이었다. 당시 인터넷 서점인 YES24 출신 인재를 필두로, 그 아래 직원들이 직접 현장을 뛰며 물류 시스템을 설계했다. 쿠팡맨의 시작도 이 팀에서 나왔다.

이 때 짚어볼 만한 점은 쿠팡이 사전에 상품을 미리 구매해놓는 직매입이다. 빠른 배송을 하기 위해서는 직매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거주지 인근으로 상품을 미리 보관해놓을 캠프를 배치해야 했다.

그간 이커머스 기업들이 직매입을 하지 않은 이유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상품 종류 수(SKU)를 관리하려면 직매입이 필요하다는 게 당시 쿠팡의 판단이었다. 이를 위해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의 바이어를 대거 영입했다.

하지만 업체들에게 직매입을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재고 100개 중 쿠팡에게 50개를 주게 될 경우 업체로서는 상품 판매의 자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물류센터 입고를 위해 상품 바코드 등 규격을 만들어 전달하는 작업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쿠팡 직원들이 이마트에서 하기스 기저귀를 사들인 건 유명한 일화다. 처음에 하기스 기저귀를 판매하는 유한킴벌리에서 상품을 공급하지 않자, 이마트에서 사들이고 오히려 사온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했다. 이후 유한킴벌리와 협의해 직매입을 시작했다. 당시 쿠팡은 유아동 용품에서 시작해 펫 카테고리, 생활용품까지 순차적으로 직매입 상품을 확대했다.

그 당시 쿠팡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국내에서 전례 없이 온라인 기업이 물류센터를 짓고, 상품 구매와 배송이 컨트롤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가격에 매입하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큰 싸움이었다. 2013년 당시 온라인에서 물류센터를 가지고 판매하는 기업은 쿠팡이 유일했다.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 출시까지 걸린 기간은 49일이다. 2014년 3월 24일 대구를 중심으로 대전과 울산에서 첫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1호 쿠팡맨도 대구 출신이다. 서울에서 시범으로 시작하기에는 어렵고, 지방도시에서 시작하자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었다. 5월에는 서울, 김포, 용인으로 지역을 넓혔으며, 1년 뒤에는 경기와 광주, 부산 등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쿠팡맨의 감성도 이 시절의 이야기다. 택배 기사들이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양이 일 250~300건이라면, 당시 쿠팡맨이 처리한 물량은 일 40~100건 수준이었다. 박스에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했다. 감성 서비스는 교육이 아닌, 쿠팡맨이 자발적으로 했었다는 게 당시 쿠팡 재직자의 설명이다.

그 당시 쿠팡은 큰 압박에 시달렸다. 회사 안보다는 회사 밖에서의 압박이다. 당시 임직원들은 매일같이 쿠팡이 망한다는 뉴스가 나오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바이라인네트워크>와 인터뷰한 당시 쿠팡 직원 중 하나는, “외국인 출신의 멋모르는 대표가 저런 일을 벌인다”던 남들의 말을 전했다.

그럼에도 로켓배송을 시작할 당시를 회상하는 이들은 회사가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당시 쿠팡을 운영하던 이가 전문경영인이 아닌 창업자라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장단점이 있는 부분이지만, 회사가 막 성장할 당시의 쿠팡의 상황에서는 이것이 성장의 동력이 됐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봐야 한다’고 말했던 김범석 창업자가 당장의 수익이 아니라 도전적 선택과 중장기적 비전을 그렸고, 그를 위한 비용 집행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현재 쿠팡은 유통업계 1위로 부상했다. 한때 이마트에서 하기스 기저귀를 사들였던 쿠팡은, 이제 이마트를 넘어섰다.

하지만 또 다른 위협도 시작됐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한국에서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산 제품이 제조처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면서, 초저가 공산품 시장을 점령하려고 하고 있다. 쿠팡 역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유아동 상품 매입에서 시작한 쿠팡은 이제 럭셔리와 뷰티까지 카테고리를 확장했고, 대만에서 사업을 강화하는 등 여전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범석 창업자의 ‘도전’은 아직도 남아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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