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사가’ 한줄 평: 이 게임을 앉아서 하느냐, 누워서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 아더왕과 같은 온갖 전설을 끌어온 후 신구, 유아인, 오정세, 조여정, 이경영처럼 한 번에 부르기 어려워보이는 기라성 같은 배우를 총 동원해 찍은 게임 예고편 광고 ‘연극의 왕’을 봤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뭐야, 이거. 게임에 얼마나 자신이 있어서 이렇게 광고에 돈을 때려부은 거지? 세상에 이 광고, 출연료만 해도 대체 얼마야?

하여튼 광고는 흥행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이 게임의 이름 ‘그랑사가’는 몰라도,  “왜 그거 있잖아, 유아인이랑 신구 배우 나온 광고, 필구(드라마 ‘동백꽃필무렵’에 나온 아역배우 김강훈 분) 나온 그 게임 몰라?”하고 되물으면 십중팔구 알아들었으니 말이다.

그 광고를 보면서 마음먹었던 게 있다. 이 게임 나오면 꼭 해봐야지. 뭔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대단한 철학적 내용도 들어 있을 것 같고, 광고만큼 재기발랄한 내용도 많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개발사인 엔픽셀도 게임 업계에서 워낙 주목받던 곳이다. 게임이 출시되기도 전에 수천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아 600억원의 투자를 받았었다. 그랑사가 개발을 이끈 주역이 인기 모바일 게임 ‘세븐나이츠’를 만든 스타 개발자 정현호, 배봉건 대표라서다.

그랑사가는 어떤 게임?

지난달 26일 출시된 MMORPG다. 이름은 ‘위대한 전설’을 뜻한다. 시대는 바야흐로 인류를 위협하던 흑룡이 어느 용감한 기사에 의해 잠들게 된 이후다. 사람들은 여왕의 기사단을 ‘그랑 나이츠’라고 칭송하지만, 사실 기사 입장에서는 할일이 사라진 상황이니 실직자와 다름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느 애송이 기사단이 기억을 잃은 한 소녀를 만나 사건을 해결하면서 멋있게 성장하는 모험담을 그린다.


겜알못 사전_ MMORPG란?

겜알못에게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라는 단어가 어려울 수 있다. 한글로 풀면 대규모 다중 사용자 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다.한글로 풀어도 어렵다. 쉽게 말하면 온라인 게임에 수십, 수백명이 한꺼번에 접속해서 각자의 역할을 맡는 게임이다. 그 안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키우면서, 게임 안에 심어져 있는 여러 요소를 즐기거나 다른 플레이어와 싸우는 등 상호작용을 한다. 대표적 사례가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이다.

스타 개발자 때문이든 광고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간에 처음부터 큰 주목을 받으면서 태어난 게임이 그랑사가다. 초반 반응도 괜찮다. 출시 후 대략 일주일이 조금 넘게 흐른 3일 오전 기준, 그랑사가는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 4위에 올라 있다. 지난번 겜알못에서 리뷰한 ‘쿠키런:킹덤’도 그렇고, 최근 나온 기대작들이 대체로 차트에서 선방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래서 해봤다, 그랑사가


MMORPG는 겜알못이 느끼기에 다소 어려운 장르다(나만 그런지도 모른다). 자동 플레이가 아니면 조작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레벨을 올리는데도 무한 인내가 필요해보인다. 게임 출시 초반에 들어가지 못하면 겉도는 느낌도 받는다. 빨리 게임에 진입해 캐릭터를 키워 레벨을 올려 고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인상이 있다. 크게 보면 대체로 스토리 흐름이 비슷해 게임 간 차별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패배. 겜알못의 시그니처.

역시, 그랑사가도 우려했던 대로 초반 진입에 약간의 난이도를 느꼈다. 지난번 쿠키런:킹덤 리뷰를 보고 회사 동료가 “게임을 너무 잘하게 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정말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그랑사가를 시작하고 바로 초심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모바일로 시작했는데, 작은 화면 안에서 조작해야 할 요소가 많아 하나하나 눌러보며 각 버튼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오, 그런데 곧 동아줄을 잡았다. 그랑사가는 스마트폰 외에 PC 버전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본적으로 모바일 MMORPG라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지원하지만 PC용 윈도우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 즉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언제든 PC로 이어서 할 수 있다는 뜻이다(모바일로 하다가 PC로 옮겨타면 기존 스마트폰에서 하던 창은 중복접속으로 닫히고, PC 화면에서 하던 게임을 그대로 이어 받게 된다).

 

PC 지원이므로 키보드 단축키를 활용해 화려한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거로 보인)다. 왜 추정이냐면, 겜알못은 어차피 자동 전투를 돌리기 때문에 단축키를 외울 필요가 없다.


일단, 개발자들에 존경부터 보낸다


PC 화면으로 넘어와서 널찍한 화면으로 조작하다보니 조금 더 빨리 게임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왜 게임 고인물들이 PC방에 가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나니까 복잡해 보이기만 했던 인터페이스가 사실은 복잡한 세계관 구현을 위한 것 아니었나 하는 추정까지 하게 됐다. 그리고 곧 든 생각, 와 이거 만드느라 개발자들 진짜 고생했겠다. 여러 요소가 얽히고설킨 게임을 무리 없이 스토리에 따라 끝까지 끌고 나가도록 설계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닌 것으로 보여서다.

캐릭터들이 화려하게 예쁘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착각이 든다. 게임 개발자는 게임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조물주와 같다.

우선 그랑사가에는 여러 콘셉트가 많이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여섯명의 기사가 한 팀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각각 ‘땅, 물, 불, 바람, 어둠, 빛’의 속성을 가진다. 마치 어릴 때 본 만화 캡틴 플래닛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이 하나로 뭉치면” 이 노래가 기억 나는 사람, 반갑다 친구야.

각각의 속성은 상대에 따라 강하거나 약한 영향력을 가진다. 불이 물을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전투에 나설 때는 배경(늪지대냐 물이냐, 사막이냐 등)을 잘 고려하고 상대편의 속성도 살핀 후 전투에 나설 캐릭터를 골라야 한다.

캐릭터들은 전투 중 체력이 소모되거나 혹은 특정 속성에 유리한 상황이 닥치면 태그를 통해 전투에 참전하는 이를 바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 기사단에 여섯 속성이 모두 고르게 배치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나의 경우에는 불 속성이 두명이 배치됐고, 대신 빛 속성이 없다.

각 속성간 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속성 외에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인 ‘그랑웨폰’이 ‘거인족=생명체’라는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바로 이 그랑웨폰이 그랑사가의 과금 포인트다. 더 좋은 무기를 빨리 뽑아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것이 빠르게 만렙을 찍는 비결일텐데 그랑웨폰을 얻는 방법은 주로 카드 뽑기다(가끔 게임 내 업적을 달성하거나 퀘스트를 성공하면 보상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그랑웨폰은 제일 낮은 R부터 최고인 SSR까지 총 세개의 등급이 있다. 눈치챘겠지만 SSR 등급이 나올 확률은 1% 다. 낮다. 한번에 열개씩 뽑으면 SSR 등급을 가지게 될 확률도 높아지지만, 열개씩 뽑는다는 것은 게임 내 재화인 보석을 빨리 소비하는 일이라 과금을 앞당기는 상황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SSR은 물론, SR님 모시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그랑웨폰이나 싸움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티팩트, 보호 장비 등의 레벨업 과정도 필요하다. 이곳 역시 과금을 유도하는 부분이다. 같은 종류의 그랑웨폰을 뽑아 합치면 능력치가 올라간다. 사람 심리가, ‘레벨업’ 단추를 보면 누르고 싶게 되기 마련이다.

시간을 들일 만큼 즐거움을 주는 게임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늘 말하듯, 다짜고자 지르다보면 어느새 천장을 보게 된다.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하겠다. 지갑 사정을 먼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좋은 무기를 뽑아서, 속성에 맞춰 싸우는 것 외에 소소하게 신경써야 할 부분들도 있다. 이 게임은 자신이 키우는 캐릭터와 계속해 대화하고 선물해가며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캐릭터들이 머무는 공간인 기사단 회관에 하루 한번은 들러서 오늘 나와 대화를 희망하는 기사들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캐릭터와 친밀도가 높아진다. 캐릭터와 친밀도가 높아져야 할 수 있는 별도 퀘스트가 있다.

아, 등장 캐릭터들의 목소리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김영선, 시영준, 서유리, 박지윤 등 유명 성우 60여명이 캐릭터 목소리를 만들었다. 캐릭터별 관리 창을 눌러서 미리 녹음된 여러 대사를 성우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재택근무 시대, 사람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친구없는 자에게 주는 대화의 즐거움.

 

먹을 것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

레벨이 올라가면 각 캐릭터의 잠재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능력치를 어디에 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인데, 벌집모양 구조가 재미있다. 하나씩 선택하면서 캐릭터들의 잠재능력이 어떤 모양을 그려내는지 확인하는 것이 흥미롭다.

참, 나와 같은 겜알못들에게 전하는 팁 한가지. 장비 가방 안에 들어있는 아이템들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잘 확인해보고 늦지 않게 적절히 써야 한다. 초반에 레벨을 바로 올리게 하는 물약 같은 걸 주는데, 레벨 30 이하에서만 쓸 수 있는  게 있다. 그걸 나중에 발견하면 내가 왜 그 노동을 했던가 세상 허무하다. 내다 팔아봤자 몇백 골드 되지도 않는다. 아끼면 ㄸ 된다, 바로 확인하고 쓰자.


여섯개의 전투 시스템


아마도, 그랑사가 개발진은 숫자 6을 좋아하나 보다. 기본으로 주어지는 기사단 숫자도 6인데, 전투 시스템도 여섯개다.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단계별로 캐릭터를 키워가도록 구성되어 있으나, 별도 전투 시스템들도 지원한다. 다음은, 엔픽셀이 공개한 각 전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다.

토벌전 : 3명의 기사단 팀을 구성해 보스와 전투하는 시스템. 보스는 다양한 속성과 패턴으로 플레이어에게 도전 요소를 제공한다. 이기려면 그랑웨폰과 아티팩트의 전략적인 세팅이 필요

심연의 회랑 : 각 속성을 대표하는 몬스터와 전투해 그랑웨폰의 한계 레벨을 올려주는 그랑스톤을 획득할 수 있는 콘텐츠

섬멸전 : 기사단과 힘을 합쳐 진행하는 멀티플레이가 중요. 내가 플레이할 캐릭터 하나를  선택해 많은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공격하거나, 버프를 통해 지원을 하거나, 아군을 회복시켜주는 등 협력 플레이 가능

결투장 : 다른 기사단과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콘텐츠. 자유롭게 캐릭터를 편성하고 셋팅해 전략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는 것이 특징

무한의 서고 :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도전 콘텐츠. 미로와 같은 공간을 탐색하며, 전투를 진행을 할 수 있고 퍼즐적 요소가 가미

보스 강림 : 특정한 시간대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보스 처치 기여도에 따라 보상 획득. 여러 기사단이 한데 뭉쳐 보스를 공략하고 보스를 처치할 때 더욱 많이 기여를 한 기사단은 더 높은 보상을 획득

결투장. PvP 콘셉트다.

토벌전 참여. 그리고 예정된 순위. 캐릭터 레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최하위를 기록하는 겜알못 클라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화려한 그래픽과 스토리


이 게임 그래픽을 만든 사람은 최소 (좋은 의미로) 집착이 장난 아니다. 그림이 일러스트와 같이 화사해서 스토리를 그냥 넘기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다 보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특히 PC 화면으로 볼 때 몰입도가 커진다.

우아한 캐릭터가 대사를 읊을 때면 연극을 보는 기분도 든다. 심지어 적도 우아하게 걸어와서 말을 거는 바람에 싸우기 싫다는 생각을 해봤다. 앞서 광고 얘기를 했는데, 왜 유명 배우들을 잔뜩 섭외했는지도 캐릭터를 보면 조금은 알것 같다. 각각의 캐릭터는 마치 하나의 배우처럼 게임 안에서 활동한다. 각 캐릭터의 개성을 아름다운 그래픽과 성우의 목소리가 살려낸다.

안타까운 점은 몇 그랑웨폰들이 쓸데 없이 헐벗었다는 점이다. 어린 여성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노출이 심한 것은 보기가 불편하다. 무기답게 단단하게 입으면 더 좋으련만.


모바일과 PC를 오가다 새벽을 맞다


모바일과 PC를 오가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니. 처음에는 같은 화면이 모바일과 PC라는 다른 모니터 환경에서 어떻게 다른 느낌을 줄 지가 궁금했는데  이튿날 새벽에 드디어 깨달았다. 스마트폰과 PC를 동시 지원한다는 말은 “앉아서는 PC로, 누워서는 모바일로” 게임을 하게 된다는 것이란 걸.

밤에 레벨업을 위해 PC로 게임을 돌려놓고 잠에 든다는 것이 어떤 행동과 마음인지도 알아버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지 모른다더니, 나는 기어코 밤새 게임을 실행시키기 위해 노트북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겜알못에게 게임의 세계는 매일이 놀랍다.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쪼개서 산다고 하는데, 일을 하는데다 게임까지 즐기는 사람은 하루를 한 번 쪼개서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랑사가 사흘차. 이런게 주경야겜인가. 나는 이제 잠을 좀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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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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