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9일, 나는 마지막으로 핸들을 잡았다. 도로주행에 합격한 날이다.

왜 운전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다닐거면 차를 몰고 다니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충고다. 모르는 소리. 어차피 대리기사님 부르게 될 텐데 왜, 가 아니라 다 다른 이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도로주행 연습 중 차량이 드문 차도 위, 족히 100m는 멀어보이는 곳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보곤 시속 5km도 안 되는 속도로 천천히 인도로 올라타던 나다. 순간 당황하면 도로 위 가장 위험한 짐승이 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면허를 주던 정부가 있었다. 그럼 돼? 안 돼?

현실 도로에선 달릴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상세계에서 풀어보기로 했다. 넥슨이 지난달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를 출시했다. 정식 발매 되기 전에 500만 사전 다운로드를 기록하더니, 17일 만에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1000만을 넘긴 인기 게임이라 했다. 2004년 출시해 16년 간 아성을 지켜온 PC온라인 게임 ‘카트라이더’의 후광을 입었다. 모바일 캐주얼 게임으로는 드물게 구글플레이에서 네 번째로 높은 매출 순위에 올랐다는 점도 흥미를 당겼다. 레이싱은 누군가와 속도를 겨루는 게임이므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미가 배가되지 않겠나. 이 정도면 게임을 받아? 안 받아?

받지. 늘 그렇듯, 게임을 다운로드 하고 캐릭터를 정하다 두 눈을 비볐다. 다지니? 어, 나 다 지는거 어떻게 알았어?

실제 캐릭터의 이름은 ‘디지니’다.

홀린듯 다지니, 아니 디지니를 선택해 게임에서 쓸 고유 닉네임을 정했다. 이때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내 운명을 예측했던 것도 같다.

정신을 차리고, 조작법을 배우기 위한 튜터리얼 모드에 들어간다. 이때는 모두 알다시피 ‘우쭈쭈’ 단계다. 뭐 제대로 따라하는 건지 아닌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참 잘했다”고 칭찬한다.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그 칭찬이 결국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자세한 것은 조금 나중에.

화면 내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면 우선 나타나는 것이 ▲스피드전 모드 ▲아케이드 모드 ▲랭킹전 ▲시나리오 모드 ▲타임어택이다. 이중 한 모드를 골라 실행하면 된다. 물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초심자를 위한 ▲훈련장과 ▲라이선스 테스트도 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나는 ‘훈련장’을 택했어야 옳다. 그러나 변명할 기회가 생긴다면 “작은 글씨는 보지 못했다!”고 나를 변호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다.

 

실패의 기록

잇달아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훈련장을 찾아 트랙을 여러번 혼자 돌아봤다면 이런 결과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8등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이다. 게임에서 누군가는 꼴등을 해야만 한다. 그게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부끄러웠던 것은 ‘나 홀로 완주 실패’라는 것이다. 심지어, 최선을 다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시간 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냐.

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유는 안다. 역주행, 그놈의 역주행 때문이다.

울지마 바보야

코너링에서 속도를 내려면 드리프트와 부스터 기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터치는 짧고 정확하게. 그렇지만 초보운전은 자꾸만 어깨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저도 모르게 버튼을 꾹 길게 눌러버리게 된다. 그렇게 방향이 틀어지면 나만 도로 위에서 뒤를 보고 있는 역주행을 하게 되고 캐릭터는 곧 당황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린다. 저 슬픈 표정을 계속 보다보니 내 마음도 아파졌다.

스피드전은 말 그대로 빨리 결승전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렇지만 무조건 엑셀만 밟는다고 승자가 될 순 없다. 드리프트와 부스터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즉,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코너링을 할 때 좌회전 우회전 버튼을 길게 눌러 버리면 핸들을 확  꺾을 때 처럼 자동차가 휙휙 돌아가버린다.

그렇다고 계속 풀죽어 있을 필요는 없다. 바보짓도 한 두번 반복하다보면 좀 나아진다. 아, 마음이 아니라 실력이. 실제 도로 주행을 할 때처럼, 핸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작법을 조금 더 배우고 핸들을 꺾어야 할 때마다 버튼을 살짝씩만 터치해주니 크게 노선을 벗어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심지어 겜알못 최고의 성적인 것 같은데, 스피드 모드에서 2등씩이나 했다. 어? 나 운전해도 되겠는데?

스피드전은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레이스를 하도록 리그가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나처럼 자꾸 역주행 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큰 차이 없이 경기 완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랭킹이 매겨지는데, 세상은 4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3등까지만 단상 위에 올라 승리를 만끽한다. 단체전은, 블루팀과 레드팀으로 나눠 1등이 들어온 사람이 속한 팀이 승리를 거두는 방식이다.

스피드전에서 생의 슬픔과 기쁨을 맛본 나는, 빠르게 다음 모드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번엔 아케이드 전. 그렇다. 많은 이들이 PC 온라인 카트라이더를 사랑하게 만든 그 버전이다. 달리면서 각종 아이템을 획득하고, 그 아이템으로 내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혹은 다른 경쟁자가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방해도 할 수 있다. 스피드전보다는 조금 더 콘트롤할 게 많아지는데, 일단 아이템을 적절한 시간에 적절하게 쓸 정신을 같이 챙겨야 해서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jpg

확실히 아케이드 전이 재미있긴 하다. 남들이 나를 공격해서 발목을 잡을 땐 초조하지만, 또 내가 남을 잡는 재미도 있다. 추억의 아이템인 물풍선, 자석, 대포 같은 것이 러쉬플러스에도 살아 있다. 오랜만에 물풍선에 갇혀 도로 위에서 빙글 빙글 돌다보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 옛날 PC방에서의 그 기억. 참, 나는 못해봤지만 러쉬플러스에는 두 명의 이용자가 팀을 이뤄서 각자 한 랩씩 맡아 달리는 ‘이어달리기’ 모드도 있다.

도장 깨듯 세번째 모드도 깨보자는 마음을 먹었는데,  ‘랭킹전’은 레벨 10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레벨2부터 들어갈 수 있는 시나리오 모드로 향했다. 여기는 팀이 아닌 혼자 플레이하는 구간이다. 퀘스트를 깨나가면서 카트라이더의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다. 도망간 해적선장인 로두마니를 잡으러 다니는 게 메인 스토리다. 스테이지를 깨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인데, 로두마니는 자꾸 간발의 차이로 도망을 가버린다.

맨 오른쪽의 얄밉게 생긴 캐릭터가 바로 로두마니다.

자, 시간이 없다. 타임어택 모드로 넘어간다. 트랙을 설정해 혼자 달리면서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구간이다. 0.01초라도 줄이기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첫 경기에서 1분51초라는 기록을 세우고 화면위로 ‘신기록’이라는 글자가 나왔을 때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심장은 빠르게 제 위치로 돌아왔다. 이 기록이, 내가 세운 최고 기록이라는 걸 깨달았다. 첫번째로 뛴 선수가 다음 선수의 등판 전까지는 늘 1등인 것과 비슷한 셈이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른 최고 기록자=고수의 경기 내용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1분07초에 트랙을 완주했다. 거의 내 절반 속도다.

그러나 기록차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한 것은, 고수의 동영상을 보면서 “와, 잘한다”라고 순수하게 감탄을 할 수조차 없었다는 현실이다. 빠르긴 빠른데,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벽에 부딪힐 듯 말 듯 화려한 기술을 써가면서 속도를 유지하는데, 다른 유저들이 적어놓은 감탄사가 계속 화면 위로 떠오른다. 운전을 잘 한다는 게 차선에 맞춰 정속으로 달리는 걸 말하는게 아니었어? 나는 틀렸어.

참, 말 안하고 넘어간게 있다. 여기서도 면허증을 발급한다. 루키부터 L3, L2, L1까지 순서대로 등급이 올라간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내 등급 시스템이기도 한데, 몇 가지 테스트를 통과하면 바로 자격증이 나온다. 겜알못이 자격증도 딸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루키 라이선스는 6개 테스트만 통과하면 바로 나온다. 도로 기능 시험에서 50m 직진만 하면 바로 합격을 시켜주던, 2012년의 그 면허 시험과 같다.

싸이월드 감성의 ‘마이룸’이란 곳도 있다. 내 차고에서 자동차를 꾸미거나 혹은 친구를 초대해 같이 미니 게임도 할 수 있게 했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내 인싸들이 매우 애용할 것만 같은 공간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넌 안 와.jpg

다시 말해서 나에게는 외로운 공간이다. 물론, 친구가 아니더라도 최근에 같이 게임한 사람을 초대할 순 있다. 낯가림이 없고 주행에 자신 있다면 얼마든 전에 게임했던 이들을 초대해 대전하고 친구를 맺는 단계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그러나 나는 겁쟁이. 내 초대를 달가워 하지 않을까 쓸쓸히 혼자 트랙을 돈다. 혼자 돌면 1등도 할 수있다. 쓸쓸.

 

그러다 한줄기 빛을 보았다. 레벨8이 된 후부터는 게임하기를 누르면, 놀 곳을 찾던 다른 사람들이 내 방에 놀러올 수 있게 시스템이 열린다. 와, 나 게임 풀 인원인 8명이 다 차서 너무 놀랐잖아. 바나나 껍질을 피해 달리면서 동전을 모으는 게임인데, 자꾸만 미끄덩 한다. 나의 마이룸에서 진행된 이 미니게임에서 나는 또 8등을 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아하하하하하하,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구나. 내 방에 놀러오고, 다시 나를 초대까지 해준, 내 첫 친구 XX스,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내게도 친구가 생겼어.

 

… 그러니까, 울지마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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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