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누구에나 넘기 힘든 시련을 준다. 내게는 그것이 게임이다. 누구냐, 내게 ‘동물의 숲’이 힐링게임이라고 한 사람.

모든 건, 나에게 “자꾸 경쟁하는 게임 하지 말고, 동물의 숲을 해봐요. 지친 마음이 힐링이 돼요”라고 악마의 속삭임을 한 그 사람 때문이다. 닌텐도 스위치가 없는 난 동료에게 구걸해 닷새의 말미를 얻었다. 그래, 동물이든 무엇이든 총질 없이 놀아주마.

그러나, 힐링게임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도 험난했다. 우선, 게임 타이틀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오프라인으로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팩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 들었으므로, 온라인 다운로드에 도전하기로 했다. 닌텐도 홈페이지는 내게 집 근처 편의점에서 ‘닌텐도 카드’를 사면 된다고 조언했다.

수요일 오후. 그렇게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홈페이지의 실물 카드 사진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봤다. 혹여나, 내가 엉뚱한 카드를 사 와서 “아하하하하 겜알못”이라는 비웃음을 또다시 사고 싶지 않았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동료1’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바람 불어 춥던 날, 동료와 나는 네 군데의 편의점을 돌았다. 첫 번째 편의점에서는 ‘구글플레이 카드’를 살 뻔했다. 이게 맞는가. 게임 전문 매체에 다니는 겜잘알 기자에게 S.O.S를 쳤다. 카드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안 돼요 ㅠㅠ 구글플레이 용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체없이 그곳을 떠나 다른 편의점에 갔다. 그곳에는 5만원짜리 닌텐도 카드가 딱 한 장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내게 현금만 된다고 했다. 게다가 동물의 숲 가격은 7만원이 넘었다.  다시 그곳을 떠나 현금 인출기로 향했다. 10만원을 찾아 또 다른 편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닌텐도 카드가 있는 곳은 없었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고, 그래서 동행해 준 동료에게 “우리 그냥 갈비만두나 먹을까?”라고 물었고, 동료가 “떡볶이도요”라고 답했고, 그렇게 어묵을 추가한 후 결정했다. “이번 리뷰의 제목은 ‘동물의 숲으로 가는 길, 에 만난 젤다’야”라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모든 건 닌텐도가 다운로드 카드를 편의점에 깔아놓지 않은 까닭이며,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한 후 이미 닌텐도에 깔려 있는 “젤다의 전설”을 리뷰해보겠다고 선언했는데, 기기 주인이 말했다.

“신용카드로 살 수 있어.”

 

주로 ‘동숲’ 혹은 ‘동물의 숲’이라 불리는 이 게임의 정식 명칭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나는 동물의 숲에서 자본주의 지옥을 맛봤다’로 고치고 싶다.

막상 동숲을 할 수 있다니까 조금 떨렸다. 경쟁 없는 게임이라니 조금 더 편해야 하는데, 하루 이틀 리뷰해서 참재미를 알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의 결정을 하고는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 와이파이 사정이 안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리뷰를 하려고 할 때마다의 징크스인지 모르겠는데 게임을 모두 내려받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기본적인 설정은 이렇다. 도시를 떠나, 자유를 갈망하는 나는 너구리 두 마리가 운영하는 여행사를 찾는다. 이름은 ‘Nook INC’. 이곳에서 나는 안내를 받아 무인도 거주 상품을 고른다. 몇 가지 지도가 선택지로 나오는데, 나름 고심했다. 인류 문명은 강가에서 발생하였으니 가능한 강줄기가 많은 곳을 고르자. 혹여 처음에 위치를 잘못 잡아도 언제든 또 다른 거주지를 찾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두 줄기 강물이 흐르는 섬을 택하니 “물건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시겠냐”는 질문이 나왔다.

잠깐 고민했다. 식량이나 침낭이냐. 고민 끝에 침낭을 골랐다. 생각보다 귀하게 자란 몸이다. 그러나, 이 너구리 놈들은 답을 듣고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물어본 거예요.”

 

콩알만 해서 콩돌이, 밤돌이라 이름 붙여진 (것 같은) 너구리 두 마리는 조롱도 잘한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길래 한국인이라 답했더니 저런다. 이때부터 깨달아야 했다. 무인도의 삶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섬을 고르고 여권을 만들고 이러저러한 수속을 밟고 나면 비행기를 탄다. 멀리 떠나는 느낌이라 온갖 감상이 든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여행사가 미리 만들어 놓은 안내 센터로 안내된다. 무인도라더니, 대장 너구리와 콩돌이 밤돌이가 문명의 인간에게 필요한 꽤 많은 것들을 미리 갖춰놓고 있다.

다 갖춰진 무인도에서 시스템을 이용해 편리하게 산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리조트겠지. 그러나 동숲에서는 모든 게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이 섬에서는 너구리들이 만들어 놓은 화폐만 써야 하며, 그  화폐를 갖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 너구리 놈들은 이주 환영인사를 하자마자 내게 항공료와 인건비, 설비비, 스마트폰(무인도라며…) 대금 등으로 4만9800벨을 청구했고, 선심 쓰듯 이걸 마일리지로 바꿔 5000마일로 갚으라 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노동, 노동, 노동의 삶.

 

고맙게도 텐트가 (외상으로) 주어지고, 가까이 물이 있고 복숭아나무가 있는 곳에 터를 잡았다. 배고프면 복숭아를 따 먹어야지. 게임을 하다 보면 너구리가 “나무를 흔들어서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데, 내가  이 게임에서 거의 유일하게 배우지 않고 먼저 터득한 스킬이 그거다. 나무 흔들어서 복숭아 따 먹기.

 

… 니가? 니가 펭수라고? 무인도라고 내가 유튜브 안 보는 줄 아나보네.

 

앞서 잠깐 펭수가 등장했지만, 이 섬은 무인도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여행사 직원 세 명 외에 나와 함께 이주한 두 명의 주민이 더 있다. 하나는 펭수고, 또 다른 하나는 다람쥐였다. 이름은 까먹었다. 거주하는 동안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이주 첫날, 주민들이 모두 모여 섬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어차피 프로세스대로 내가 정한 이름이 결정된다. 나는 세상 성의 없게 ‘겜알못’이라 지었는데 다른 주민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나보다 더 성의 없었다. 스트레칭이 뭐냐, 스트레칭이.

 

 

섬에서 제일 좋았던 두 가지 기억 중 하나다. “건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취침이다.

 

잠자리에 들었더니, 음악이 깔리면서 강아지 한 마리가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치면서 세뇌를 시킨다. 뭔가 긴 설명을 하는데 요점은 두 가지다. 1) 독립하면 좋다, 자유롭지 않냐, 이 숲에서 너의 삶을 즐겨라 2) 눈을 뜨면 이 숲의 시간이 현실의 세계와 똑같이 흐를 거다.

그런데 배경 음악과 강아지 말투가 묘하게 웃기다. 실실거리다보니, 이제 눈을 뜨라고 한다.

 

새날이 밝았고, 우체통엔 엄마에게서 편지가 와 있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내가 생각이 나신다고 한다. 엄마, 나 여기 상수동이야.

 

 

시스템에 의해 반강제로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스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절레절레.

 

 

무인도지만, 웬만한 건 다 있다. 에이스 티셔츠와 할로 티셔츠는 모양이 똑같은데 값이 다르다. 약간 이상하지만 어쨌든, 무엇을 파는지만 둘러봐놓는다. 왜냐면 지금은 돈이 없다.

 

 

돈을 벌려면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돌아다니면서 나뭇가지나 돌멩이를 줍는다. 재료를 얼추 모으면, 너구리가 사는 안내센터에 가서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있다. 때때로 너구리에게 말을 걸고 답으로 돌아오는 장황설을 열심히 듣다보면 이러저러한 꿀팁도 준다. 실제로 도구들은 ‘레시피’라는 걸 얻어야 제작이 가능한데, 초기에 필요한 레시피는 내가 적극적인 섬 생활을 할 때 보상으로 주어진다.

 

 

엉성한 낚싯대 레시피를 얻어 제작에 성공한 나는, 현실과 똑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월을 낚았다.

 

 

농어다!
물고기 그림자가 보이는 곳에  찌를 드리우고 기다리다가 그림자가 찌 옆에 다가왔을 때 낚싯대를 잡아당기면 미끼를 문 물고기가 빙글빙글 돌면서 진동이 온다. 캬, 손맛.

 

 

곤충 채집도 한다. 힐링 게임이라면서, 왜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며 무엇을 잡느냐면,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주 비용. 이놈의 섬은 무인도라면서 모든게 다 돈이다. 그놈의 돈 돈 돈.

 

 

벌목하다가 벌에 쏘이기도 한다. 제때 약을 발라줘야 하는데(약은 만들면 된다. 아니면 돈 주고 살 수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범죄자 상이 된다.

 

잡은 물고기나 여기저기 주워 모은 물건, 혹은 만들어낸 것들은 안내데스크로 가 판매할 수 있다. 이러면 약간의 현금(단위는 벨)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또다시, 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데 쓰인다.

 

그렇게 노동한 물건을 팔아 돈을 번 나는, 무인도에서 최고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뭐긴 뭐겠어, 쇼핑이지. 콩돌이(너구리 조수2 이름)가 파는 물건을 모두 둘러본 후, 닥치는 대로 사기 시작했다. 역시 탕진잼.

 

 

이 무인도에 뭐 볼 거 있다고 굳이 이주해 들어온 부(엉이) 선생이다. 생태 박물관을 짓겠다고 물고기나 곤충 따위를 기증받는다. 그냥 기증만 받으면 되는데, 굳이 해당 생물의 특징을 길게 설명한다. 예컨대 “방아깨비의 수컷은 날아갈 때 딱딱딱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따닥깨비라는 별명이 있기도 하다”는 등의 이야기다. 상사의 설교를 듣듯, 공손한 표정으로 ‘다음(A)’ 버튼을 누르다 보면 이 지루한 시간도 곧 끝이 난다.

 

 

닷새 동안 나는 꾸준히 복숭아를 따고, 나무를 하고, 물고기를 잡고, 높이뛰기용 장대를 만들어 옆 섬으로 건너가 생태를 조사하고, 이렇게 해서 얻은 물건을 기증하거나 사고팔았다. 미션을 클리어해야만 마일리지가 쌓여 이주 비용을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기를 반납할 시간이 다가오니 초조해졌다. 어서 빚을 갚아야 하는데.

사실 이게 제일 아이러니한데, 어차피 한정된 시간 동안 이 섬에서 사는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는 걸까. 나는 왜 이 숲의 시간에 이리도 충실해지는 걸까.

 

 

기계를 반납해야 하는 날 아침, 게임을 켜니 비가 오고 있었다. 그제 심어 놓은 팬지꽃이, 따로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비를 맞고 활짝 피었다. 텐트 밖 광경을 보고는 소오름 돋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연이 좋긴 좋구나”

 

*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세심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읍니다.

깨끗하게 포맷해서 모두 지운 줄 알았는데 망했다. 젠장.

닷새의 소감을 정리하는 게임 한 줄 평이다.

“자본주의에서 고통받는 인간이, 게임에서조차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고통받으며 힐링 받는 이 모순이라니. 안녕, 동물의 숲. 나는 이제 현실에서의 빚에 충실할게.”

게임 안에서 따로 친구를 사귀지 않고 혼자 노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런데 동료들 말로, 동숲의 진짜 재미는 게임 내에서 친구를 사귀고 서로를 돕거나 (혹은 괴롭히거나) 하면서 네트워크를 다지는 거라고 했다. 현실이 지옥인 이유는 돈과 사람 때문인데, 동숲은 힐링 게임이라면서 자본주의 지옥의 요소를 모두 갖췄구나.

조금 더 길게 게임을 해봤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네트워크의 재미 때문에라도 동숲에서 벗어나질 못한다고 했다. 이 안에서 친목도 다지고 거래도 일어나고, 우정과 사랑과 배신을 모두 맛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 내 이름으로 너무 나쁜 짓 하고 돌아다니면 안 돼. 도끼 들고 다니지 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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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