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 ‘바람의나라:연’은 고구려 유리왕 시절 수도가 된 국내성이 무대다. 나는 수련을 받는 전사로, 하급무사의 지령을 받아 무예를 익힌다. 소환수를 불러 말을 타고 나를 필요한 곳으로 달린다. 그곳엔 내가 지켜야 할 백성이 있다.

여기까지 말하면 무언가 멋있는 캐릭터가 예상되겠지만, ‘바람의나라: 연’의 가장 큰 특징은 2D 게임이라는 것이다. 2D가 뭔지 아래 그림을 보면 한 방에 이해될 것 같다. 그렇다. 2D는 2등신을 말한다(아님. 2D의 진짜 뜻은 2차원 컴퓨터그래픽을 뜻함).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딱 이 비율이다. 플레이어든, NPC든 마찬가지다.

한때는 화려한 그래픽이 감싸는 멋진 캐릭터가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줄 알았다. 넥슨의 2D 캐릭터들이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를 휘젓고 다니기 전까진 말이다. ‘바람의나라:연’은, 이 리뷰를 쓰는 21일 현재 안드로이드 게임 매출 순위 2위다. 리니지2M과 2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중이다. 지난해 11월, 리니지2M이 출시된 이후 항상 매출 순위 1‧2위를 지켜왔던 ‘리니지M-리니지2M’ 형제 사이에 균열을 낸 첫 게임이다. 잠깐의 인기겠지, 라는 생각도 했으나 출시 한 달이 지난 지금도(7월 15일 서비스 시작) 매출 최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이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MMORPG가 어떤 재미가 있길래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좀 느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어느날 저녁 식당 옆 자리에 앉은 커플이 대화 한 마디 없이 각자 스마트폰 터치만 하다가 가끔 쳐다보고 웃는 걸로 애정 확인을 하길래 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연인간 대화보다 앞서나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젓가락을 집으려 잠깐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보인 화면이 바람의나라:연이었다. 또 겜알못에 가끔 조언을 해주는 겜잘알 기자도 바람의나라:연을 꼭 해보라 추천했던 기억도 났다. 겸사겸사 다운로드를 받았다.


원작은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다. 역시 IP가 짱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김진 작가는 넥슨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13년 넥슨이 제주에 컴퓨터박물관을 열던 현장에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김진 선생은 바람의나라가 게임으로 만들어지던 때를 회상하며 “그래픽을 넣은 첫 게임을 만든다고 이야기하더라. 세상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란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아, 김진 선생님…

게임로딩을 하는 첫 화면은, 저 유명한 만화 ‘바람의 나라’ 원작 그림이다. 국사 교과서에 잠깐 스쳐가는 고구려 역사에 김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그려낸 만화다. 1992년 잡지 댕기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나, 이후 잡지 만화 시대가 저물면서 연재처가 없어 완결을 맺지 못했다.

바람의나라는 한국 만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선생은 그의 저서 ‘시대를 읽는 만화’에서 바람의 나라를 두고, “김진이 보여준 인간 내면의 어두움에 대한 탐구는 1980년대 이후 한국만화의 서사를 풍부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웹툰의 시대가 들어서고 꽤 많은 미완결작이 새로 연재되곤 했는데 다행히 바람의나라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현재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4부가 연재 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어느 만화가, 다음 세대에서 게임으로 사랑 받는다는 건 흥미로운 모습이다. 일단, 로딩을 하면서 향수에 젖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 게임이 가지는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플러스 일점.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 중인 바람의나라SE 4부.

게임 실행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버 선택과 캐릭터 생성이다. 서버 이름은 대체로 유리왕과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빌려 왔다. 해명, 무휼, 호동 등이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나, 각 시점에 가장 입장이 원활한 곳은 ‘추천’이라는 단어가 뜬다.

선택 후에는 캐릭터를 설정하는데 2D 인지라 뭐 머리스타일이나 외모에 신중을 기해봤자 음…, 조금 허탈할 수 있다. 대신 국적과 신수 선택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일단, 국적 선택부터 해야 하는데 고구려와 부여 중 택 1이다. 왜인지 주인공들이 고구려 사람이니까 고구려를 택해야 유리할 것 같지만, 먼저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의 평을 검색해보니 국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구려 맵이 부여보다 커서 이동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기가 국내성.

사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신수’선택이다. 주작과 백호, 청룡, 현무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만화 원작에서도 등장인물과 그에 맞는 신수가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 세계에서도 직업에 맞는 신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바람의나라:연에는 전사와 도적, 주술사, 도사 등 네 가지 직업이 있는데, 각자에 맞춰 조금 더 적합한 신수가 있다는 뜻이다. 또, 신수별로 각자 잘하는 일이 다르기도 하다.

따라서 첫번째 신수를 잘 고르는 것이 게임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그러나 첫 신수 선택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또 그렇게 슬퍼할 일도 아니다. 먼저 게임을 시작한 이들이 팁을 소개한 어느 리뷰에서는 나중에 99레벨이 된 이후에 일정 정도 신수를 강화하고 나면 또 다른 신수를 고를 수도 있고, 이때 신수가 게임 내 실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 신수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될 것 같다. 즉, 겜알못이 벌써부터 연장 탓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리뷰의 머리에 말했지만, 내가 ‘바람의나라’라는 세계에 고른 직업은 전사다.  그러나 말이 좋아 전사이지, 하는 일이 엄청난 것은 아니다. MMORPG의 특성처럼, 처음에는 레벨업을 위한 여러 단순 작업이 수련자의 임무다.

직업은 여러가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성별이 남자로 되어 있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하급무사의 명령에 따라 주로 쥐나 뱀을 잡는 일에 동원된다. 쥐 떼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구인, 피리부는 사나이). 또, 작은 동물과 싸우는 것은 이 세계관에서 수련을 받는 전사가 실제로 현장에 투입될 자격이 있는지를 테스트받는 임무이기도 하다.

여튼, 시키는 데 가서 명령 받은 만큼의 동물을 잡으면 되는데, 요즘 세상 좋아진 거 다 알지 않나? 자동 플레이가 된다. 단순 임무 같아 보여도 수동으로 일일이 조작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자동플레이를 눌러 놓으면 알아서 척척이다. 사람이 할 일은, 내 캐릭터가 일을 마치고 나면 다음 임무를 받도록 명령을 수락하는 터치 정도다.

사진 속의 귀.. 귀여운 다람쥐와 토끼가 내 적이다. 귀엽지만 적은 적이다. 요래요래 열심히 잡아야 한다.

위 사진 오른쪽 하단이 적과 싸울 때 사용하는 스킬 모음이다.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기능이 추가되는데, 한 번 쓰고 나면 일정 시간 쿨타임(다음 기능 재생 때까지 잠깐 못 쓰는 시간) 이 있다. 개별로 조작하는 것이 힘들다면 그 위에 ‘AUTO’를 누르면 된다. 자동플레이를 뜻한다.

단, 자동플레이의 단점은 잘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반이라서 그럴 수 있다. 겜알못이 안 죽고 레벨이 올라가니까 안절부절이다.

캐릭터 움직임 조정은 (모르는 이는 드물겠지만) 왼쪽 하단의 동그라미를 움직이면 된다. 이 게임의 어려운 점은, 나의 적 이름이 ‘귀연 다람쥐’ ‘깨문 다람쥐’ ‘민다람쥐’ 등이라는 것이다. 왜.. 왜 귀엽게 해놨어. 다람쥐, 악역 아니었어?

악역이 귀엽다는 것이 변수다.

내리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고 중간 중간 왈숙아지매가 운영하는 주막에 가서, 마을의 필요한 일에 동원되기도 한다. 이 게임 시작 즈음에 왈숙이 내게 “순이네 근황을 보고 오라”고 권한다. 순이의 혈색이 안 좋으니 걱정이 된다고 다녀오라는 이야기였다. 신선했다. 동네 사람 근황이라니. 엄마 심부름 하는 기분으로 왈숙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막상 만난 순이는 내게 자기 걱정은 말라며(내 기억에서의 순이 대사) 털보에게 다녀올 심부름을 시킨다. 이날 나의 동선은 왈숙-> 순이 -> 털보 -> 왈숙 -> 하급무사였다. 헐, 뺑뺑이 시키네?

이렇게 많이 움직이려면 기동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탈 것을 써야한다(말아, ‘것’이라고 표현해서 미안해). 처음에는 일반 탑승을 위한 말이 주어진다. 말을 타고 다그닥 다그닥 달린다. 그렇지만, 더 빠른 이동을 위해선 ‘순간 이동 비서’라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필수는 아니지만, 안 썼다가는 답답함을 견뎌야 한다. 초반에는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들로만 써도 충분하지만, 나중에는 돈을 내고 사야한다. 아이템 가게에서 비서 파는 걸 봤다.

어쩌면 이 게임의 인기 요소는 이런 아재개그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우릴 막지 못한다람쥐‘라니. 야, 이거 언제적 개그냐. 이거 2012년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유행어 아니었나. 세상에. 게임 전반에 추억의 개그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예를 들어,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 같은, 예전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머 등이다.

잠깐 궁금해서 ‘내정보’를 눌러봤는데, 사실 여기서 살짝 감동했다. 한낱 조연에 불과할 나에게도 이야기가 있다. 바람의나라라는 세계에 발을 딛고, 생애 첫 민원을 해결하고, 전사의 길을 선택한 것 등 내 캐릭터의 역사 말이다. 플레이어의 (아마 모든 플레이어가 유사한 내용이겠지만은) 서사를 만들어주는 것, 여기 이 전사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부분이다.

바람의나라:연의 특징을 하나 더 말하자면, 게임에 스민 ‘철학’이다. 내 캐릭터는 누군가와 싸워 이겨서 레벨업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힘이 있는 내가 누군가를 돌보거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힘을 쓰고, 그 결과로 레벨업을 한다.

때문에 개인의 서사를 보여주는 것 외에도 약간의 뭉클 포인트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특히 몬스터들을 죽이면서- 대사에 감명 받는 일은 드물었는데, 바람의나라:연이 그렇다. 다음은 내게 명령을 내리는 하급무사의 대사다.

“네가 하는 업무 중에는 성 안 사람들을 돌보는게 있다. 저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는 법이지. 그러니 도움을 베푸는 걸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

헐, 소오름. 그런데 이 감동은 게임 과금에서 조금 무너졌다. 물론, 게임이 돈을 벌려면 과금이 필요하다. 게임사도 먹고 살아야지, 안 그런가? 그런데 아직 초보인 나는 제대로 체감 못했지만 여러 후기에서 ‘돈슨’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역시 게임은 장비발이다. 좋은 장비를 갖추려면 돈이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역대급 현질을 유도한다는 비판이다.

내가 없어서 그렇지, 좋은 장비는 많다.

내가 게임을 못하는 것은 게임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오만’을 가지고서는 게임 시작 전 유튜브를 찾아 잠깐 살펴봤는데 많은 유튜버들이 아이템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더라. 아이템 강화를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한데 열심히 레이드를 뛰거나, 돈을 쓰면 된다(다만, 검색을 하면 ‘무과금 꿀팁’ 같은 포스팅들도 있다).

다른 장비들도 레벨업을 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열심히 강화 재료를 모아야 한다. 즉, 열심히 미션을 수행하라는 이야기다.

나도 했다. 아이템 강화. 물론, 무조건 처음에 주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목검’을 0에서 1단계로 한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레벨 20이 되어서, 조금 더 좋은 단검인 비철단도를 얻긴 했는데 강화하려면 필요한 재료가 많더라. 눈물을 머금고 강화는 다음으로.

겜알못 리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썼던 말이 ‘외롭다’였다. 회사 동료 중 한 명은 “게임만 하면 왜 자꾸 외롭냐”고 물어보더라. 왜나면, 초보랑은 아무도 안 놀아주기 때문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나도 그룹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레벨이 되지 않으면 합류하기 어렵다. 열심히 레벨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 게임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지금 현재 이 리뷰를 쓰면서 노트북 옆에 스마트폰 거치대를 세워놓고는 자동 플레이를 돌리고 있다고 답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쥐를 잡는 건 싫지만, 그래도 잡는 대상이 주로 귀여운(?) 동물, 예를 들어 다람쥐나 토끼 사슴이고(레벨이 올라갈수록 싸울 대상의 덩치도 커지고 힘도 세지긴 한다), 잠깐의 살육의 고통을 참으면 명소 탐방도 보내주니까. 다른 MMORPG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때때로 감동 포인트를 안겨주기도 하니까.

주모는 나를 명소 탐방을 보내면서 “아직은 빈 명소지만, 덕분에 한적해서 좋다네”라고 말한다. 허허, 주모가 내가 한량인 걸 잘 알고 있구만. 알겠네, 주모. 나 잠시 다녀오겠네. 잘 다녀오면 약속한대로 새 미투리를 주는 게지? 기다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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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