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2020, 2020년의 제품들
올해의 노트북 – 애플 실리콘 맥북 에어
올해는 스마트폰보다는 랩톱의 해였다. 전례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원격 근무와 학습을 위한 노트북이 대량으로 판매됐는데, 학습을 도와줄 중저가 노트북들이 올해의 노트북으로 선정돼야 한다. 그러나 애플 실리콘의 임팩트가 너무 크다. 애플은 스마트폰용으로 쓰던 ARM 기반 프로세서를 PC용으로 재설계하고, 엄청난 성능을 선보이며 세상을 들었다 놨다. OS와 하드웨어를 모두 만드는 애플만이 할 수 있는 시도였다. 기왕 할 거면 무게도 좀 줄여주기 바란다. 1.29kg짜리에 에어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얇은 13인치 제품 중 제일 무겁다.
올해의 게임 콘솔 – XboX Series X, PS5, 스위치
올해는 게임 수요가 폭발한 해기도 하다. 창궐 초기에는 동물의 숲과 스위치 링피트를 사용하기 위한 스위치가 웃돈까지 얹어 팔렸으며, 11월에는 Xbox와 PS의 신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제품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을 최고라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덕분에 행복했다.
이중 Xbox는 클라우드까지 붙이며 엑스박스 없이 엑스박스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Xbox를 할부에 스마트폰이나 PC로 게임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Xbox All Access까지 붙인 것이다. 이런 끼워팔기 크게 환영한다. 월 2만9900원이라 얼마 안 한다고 자신을 속이기 좋다. XboX 시리즈 X는 월 3만9900원이다. 24개월 할부이므로 총비용은 시리즈 S 71만7600원, 시리즈 X는 95만7600원이다. 그렇다면 Xbox를 살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은 지금 혹은 24개월 후 당근마켓에서다.
올해의 스마트폰 – 아이폰 SE
사실 갤럭시 S20이 올해의 스마트폰이어야 할 수도 있다. 1억800만화소로 스마트폰 카메라 품질을 상당히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삼성과 샤오미가 이렇게 나오자(원래 샤오미용으로 삼성전기가 개발한 렌즈다)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도 고화소 렌즈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제조사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건 주로 소니의 6400만화소 렌즈였다. 그리고 2019년 이전 고화소 렌즈 기준이 주로 1200만화소 정도였으니 얼마나 크게 늘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1억800만화소로 찍은 사진을 보고 놀라 다시 스노우와 유라이크를 쓰게 되었다. 카메라 해상도는 높지만 내 얼굴 해상도는 높지 못했다. 100배 줌을 의미하는 스페이스 줌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사용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최고 스마트폰의 공은 중저가 폰으로 돌려야 하겠다. 애플은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당시 시점의 최신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과거의 아이폰 모양을 활용한 아이폰 SE 2세대를 무려 45만원에 판매해버리며 수직계열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덕분에 급하게 스마트폰이 필요해진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스마트폰을 살 수 있게 됐다. 같은 의미로 갤럭시 S20 FE 역시 좋은 스마트폰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올해의 폴더블 – 씽크패드 X1 폴드
갤럭시 Z 폴드 2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올해는 랩톱이 폴더블로 태어난 첫해다. 레노버가 씽크패드를 폴더블 랩톱으로 만들었다. 비록 2019년에 발표하고, 2020년 초 CES에서 프로토타입을 보여주고, 2020년말이나 되어서야 실 제품 후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원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초창기 제품이 미완의 느낌임에도 일단 출시하고 보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기획 단계부터 접착이 가능한 블루투스 키보드와 펜, 접었을 때 키보드를 어떻게 사용할지, 폈을 때 제품을 어떻게 놓을지를 완벽하게 고려한 것이 눈에 띈다. 2500달러로 비싸긴 하지만 현시점 가장 아름다운 노트북임은 자명하다.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올해의 눈물 – LG 벨벳
카툭튀를 탈피하기 위한 LG 벨벳의 아이디어는 굉장했다. 렌더링이 공개될 시점만 해도 ‘LG 폰이 달라졌다’는 엘레발을 치기 좋았다.
설계에 많은 공을 들여 카메라 본체 안에 망원 렌즈까지 넣는 데 성공했으며, 이 아이디어는 출시 전 공개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출시 때 놀이공원 풍선 색을 도입하며 벨벳은 다시 LG 폰이 돼버렸다.
그러나 아이디어 자체는 훌륭했으며, 가격을 낮추고 성능을 보장하는 스냅드래곤 765를 탑재한 선택도 좋았다. 스냅드래곤 765는 물론 865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칩 안에 5G 모뎀을 넣었고 앱 실행 부스트 기능을 넣어 865보다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성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품이었다. CPU와 5G 모뎀이 통합된 칩이기 때문에 전력 소비 역시 적다. 이외에도 LED 스크린, 노이즈 캔슬링 마이크 등 프리미엄 폰에 가까운 좋은 사양들이 많이 탑재됐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LG 생각으로는 합리적인 80만원대에 출시됐지만 벨벳 출시 직전 아이폰 SE가 45만원에 공개되며 벨벳이 비싸 보이는 문제가 발생했다. 눈물 난다.
올해의 그러면 안 됐어 – LG 윙
LG 윙 그건 그러면 안 됐다. 다른 제조사가 폴더블 폰 2세대와 폴더블 랩톱까지 선보이는 마당에 20년 전 아이디어를 들고나오다니. 창피해서 전철에서 폰을 꺼낼 수 없었던 치욕을 잊지 않겠다. 내년에 공개될 롤러블 폰이 LG의 자신감을 다시 살려내길 바란다. IT 강국에서 갤럭시와 아이폰밖에 선택할 수 없다니 좀 아쉬운 일이다. 결국 윙은 반값폰이 되었다.
올해의 발견 – 휴대용 모니터
랩톱을 쓸 일이 많아져서 새롭게 수요가 늘어난 제품군이 있다. 휴대용 모니터다. 랩톱 화면을 늘리기도 좋고, 스위치 등의 게이밍 모니터로 쓰기도 괜찮다. 또한 삼성 덱스나 안드로이드 데스크톱 모드를 붙이면 랩톱 없이 랩톱 같은 사용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고가 제품은 약 40만원 이하, 저가 제품은 20만원대도 있는 등 가격적인 매력도 있다. 레노버, 에이수스, 국내 중소기업 제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있으니 예산이나 사용성에 맞춰서 선택하면 된다. 맥북 사용자는 그냥 사이드카 쓰자.
올해의 무쓸모 – 서피스 프로 X 2세대
서피스 프로 X 2세대는 아마 가장 완벽한 윈도우 랩톱이 아닐까 한다. 가볍고 우아하며 키보드와 마우스의 완성도도 높다. 다만 윈도우에서 쓸 수 있는 앱이 대부분 x86 프로세서, 인텔이나 AMD 칩셋에 맞춰져 있어 ARM 기반 칩셋을 쓰는 이 제품은 예쁜데 쓸모가 없다.
올해의 어쩌냐 – 고프로 9 히어로 블랙
터프한 야외의 환경에 맞춰져 있는 고프로는 액션캠의 대명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갑자기 집콕 시대가 열리며 액션캠을 쓰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에 고프로는 기존의 액션캠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을 강화하고 페이스북, 트위치, 유튜브 고프로닷컴에서 스트리밍을 할 수 있게 하며 액션캠과 더불어 일반 웹캠으로도 쓸 수 있게 했다. 모듈 몇 개를 달면 방송용 카메라처럼도 사용할 수 있는 고프로 히어로 9 블랙은 이제 야외를 포함한 어느 곳에서도 쓸만한 카메라로 발전했다. 진작 도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기능이 대부분 올해 추가됐다.
올해의 화들짝 – 루시드 에어
테슬라를 넘겠다는 전기차 제조사들은 많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아무도 테슬라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드디어 양산 근처까지 도달한 업체가 있다. 전기차 부품 업체였지만 2016년 루시드 모터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전기차를 개발하는 루시드는 루시드 에어 드림을 발표하고 테슬라급의 디자인과 테슬라 이상의 편의 사항을 넣은 제품을 공개했다. 총 주행 가능 거리 역시 809km 수준으로 굉장하다. 그러나 가장 저렴한 제품이 8만달러(약 9500만원)인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다시 테슬라 보조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올해의 엑스레이 – 원플러스 8 프로
원플러스 8 프로가 출시되며 너무 좋은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하는 바람에 얇은 플라스틱이 투과돼 촬영되는 현상이 발견됐다. 원플러스는 소프트웨어로 이 기능을 막아버렸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다니 대단하다. 물론 실제로 엑스레이로 사용할 수는 없다.
올해의 사이버펑크 – RTX 30 시리즈
레이 트레이싱 기능이 강화된 GPU인 RTX 30 시리즈가 공개됐다. 코어 수를 늘리고 그래픽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해 성능을 대폭 강화했다. 특히 세 라인업 중 가장 저렴한 RTX 3070이 전작 최고 제품인 RTX 2080 Ti의 성능을 뛰어넘으며 2080 Ti를 구매한 사용자를 눈물흘리게 했다. RTX 3070의 가격은 2080 Ti의 절반 수준이다. 뒤늦게 공개된 보급형 RTX 3060 Ti 역시 2080 Super의 성능을 넘었다.
올해의 매드맥스 – 대동공업
대동공업이 인텔과 오픈비노의 엣지 AI를 활용해 자율주행 제품을 선보였다. 트랙터나 콤바인 등에 카메라를 적용해, 이 농기계들이 논이나 밭을 인식하고 스스로 작업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논밭에 사람이 별로 없는 만큼 실제 도로 주행을 해야 하는 자율주행차보다 안전 문제도 적다. 자율주행차가 갖춘 대부분의 센서와 AI를 갖추고 있다.
올해의 인물 – You
힘든 시국임에도 방역 수칙을 잘 준수하고, 마스크를 잘 착용하며, 거리두기를 완벽하게 해낸 당신이 올해의 인물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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