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곰인 줄 알았던 사자 한 마리, 카카오를 뒤흔들다

성공한 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결정적 순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중요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에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기업은 없습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간 8주년을 맞아 창간 기획 시리즈 <결정적 순간>을 연재합니다. 국내 대표 테크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 순간을 돌아봄으로 해서 많은 스타트업과 창업가, 테크 기업이 그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 성공의 길을 선택하길 기대합니다.

<연재 순서>
네이버, 커머스 사업을 위한 꽃을 피우다
곰인 줄 알았던 사자 한 마리, 카카오를 뒤흔들다
③ 10년 전, 쿠팡은 어떻게 49일만에 로켓배송을 내놓게 됐나
④ 토스 건물 외벽에 “해냈고,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고 쓰인 순간
⑤ 숙박 예약하던 야놀자는 어떻게 글로벌을 꿈꾸게 됐나
크래프톤, “인도에서도,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배달의민족, 1등도 절박해야 살아남는다
돈 못벌던 카카오택시, ‘가맹’으로 상황을 뒤집다
물이 들어오면 고민 말고 노를 저어라, 업비트
당근이 이메일을 버리고 지역 인증을 도입했을 때
갑자기 춘천으로 이사간 소프트웨어 기업, 더존비즈온

 

2016년 1월, 카카오톡에 얼핏 곰처럼 생긴 캐릭터 하나가 등장했다. 이름은 라이언(Ryan). ‘곰처럼 생겼는데 왜 라이언인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이 친구는 곰이 아니라 사자라고 한다. 심지어 수사자다. 그런데 수사자라면 으레 가지고 있어야 할 멋진 갈기가 라이언에게는 없다.

어쩌면 콤플렉스가 가득할 것 같은 이 친구는 곧바로 ‘라전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시기 카카오의 급속한 성장을 견인해 고위급 임원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평가 덕분에 생긴 별칭이다. 겨우 캐릭터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겠냐 싶겠지만, 라전무의 역할은 상상 이상이었다. 라이언 캐릭터만 붙여서 내놓으면 카카오의 거의 모든 서비스가 성공을 거뒀다. 전국 도로를 달리는 택시마다 라이언이 그려져 있는 이유다. 지금은 여러 논란 속에 카카오라는 브랜드 가치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라 전무가 구축한 ‘친근한 카카오’라는 브랜드는 카카오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바이라인네트워크 창간기획 <결정적 순간>으로 라이언의 등장을 꼽았다. 물론 카카오의 성공을 돌아보며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순간이 있다. 단순한 인스턴트 메신저가 플랫폼으로 진화한 ‘for kakao’도 있고, 카카오도 매출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비즈보드’의 탄생도 있으며, 국내 2위 포털 다음과 합병을 하던 순간도 있다.

하지만 바이라인네트워크는 그 어떤 순간보다 카카오만이 보유한 라이언의 등장을 <결정적 순간>으로 꼽았다.

이에 윤영진 카카오프렌즈 성과리더<=사진>를 만나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리고 최근 라이언을 넘어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는 춘식이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윤 리더는 라이언 출현 전후를 1기와 2기로 나눴다. 3기 시작은 춘식이의 등장이다. 아직 4기는 오지 않았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찾아올 수 있다. 그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키즈 프렌즈 라인업이 나올 것이라고 귀띔도 했다.

윤영진 카카오프렌즈 성과리더 (사진=카카오)

전설의 시작 ‘라이언’

라이언 등장 이전에도 카카오프렌즈 사업은 잘 되고 있었다. 라이언이 워낙 성공하는 바람에 이전 카카오프렌즈의 역사가 가려졌다고 할까. 2014년 카카오가 처음으로 현대백화점 신촌점에 카카오프렌즈 팝업스토어를 열자 많은 인파가 몰렸다.

“IT회사에서 하기 힘든 팝업스토어를 처음 열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줄을 섰죠. 부산도 내려가고 다른 지역에 팝업스토어를 여러 개 진행하면서 사업적으로 굉장히 확장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까지를 카카오프렌즈의 1기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윤 리더는 라이언 때부터 카카오프렌즈 사업에 본격 참여했다. 그 즈음 정규 매장이 생기면서 카카오프렌즈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인기가 예전만 못하나 했던 시기였다. 그러다 라이언이 2016년 나오게 된다.

“라이언 마케터로 PM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합류했을 때 라이언 디자인은 다 나와있었죠. 그 당시 기획된 배경을 들어보면 사실 이 정도로 뜰 거라고 아무도 당시에 생각 못했을 거예요. 그때 기획 취지는 어떤 거였냐면……”

성공의 키워드는 ‘절제’

“이모티콘이라는 게 작은 화면에서 감정을 표현해야 되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어요. 화나게 하고 엉엉 울고, 테이블을 집어 던지죠.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에겐 되게 부담스러운 거예요. 나하고 맞지 않는 거죠. 요즘 말로는 극I(내향형)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감정이 표현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갭을 메꾸기 위해 표현이 절제된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첫 기획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기존 개성 강한 프렌즈들을 옆에서 의연하게 도와주는 조언자 포지셔닝으로 라이언이 나왔습니다. 조금 귀엽기도 하지만, 무표정에 듬직하고 옆에서 토닥토닥거리고 그냥 끄덕이고 말없고 그런 캐릭터로 페르소나가 만들어진 거죠. 그런 조언자로 ‘갈기 없는 수사자’ 콘셉트 캐릭터가 나왔는데 대박을 쳤죠.”

라이언을 페이스북에 처음 공개했을 때, 부정 댓글이 많았다. 기존 캐릭터와 결이 다르단 이유에서였다. 내부에서도 걱정이 앞섰다. 며칠 후 이모티콘이 나오고, 라이언이 움직이는 모습과 기존 캐릭터와의 관계성이 알려지자 부정 의견이 싹 없어졌다는 게 윤 리더의 회고다.

“무표정 캐릭터의 원조라고 하면 헬로키티예요. ‘무표정이 더 많은 공감을 일으키는 어떤 도화지 역할을 한다’는 그런 해석도 있고요. 그런 내용이 검색에서도 많이 나오죠. 라이언도 결국 그런 심리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카카오톡 친구탭 ‘펑’에서 연재하는 ‘요즘 춘식이’

‘냥줍에 이은 간택’ 춘식이의 등장

춘식이는 앞서 나온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라이언 옆 사이드킥(조수) 같은 캐릭터’를 고민하다 탄생했다. 2020년 7월이었다.

“카카오프렌즈에 네오라는 고양이 캐릭터가 있었죠. 그런데 네오는 고양이보다는 여성의 페르소나가 조금 더 강조가 됐었고, 제대로 된 고양이의 어떤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진, 엉뚱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묵직하고 의연한 라이언 옆에서 계속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캐릭터로 개발을 했죠.”

그러나 라이언 옆은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기업의 심볼로 쓰이는 까닭에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윤 리더도 춘식이를 곧바로 라이언 옆에 두기에 의사 결정의 부담감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래서 론칭이 아닌 인큐베이팅을 해보자 해서 처음에 라이언 인스타그램에 짤막한 툰으로 올라갔습니다. 라이언 일상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는, ‘냥줍(고양이를 데려와 기르는 일)’을 하는 에피소드를 넣어보고, 그러다 라이언이 간택(고양이 집사로 선택) 당한 거죠. 초보 집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댓글과 DM으로 소통하면서 우회를 한 거죠. 저희가 인터랙션을 주고 반응을 보고, 사람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여러 좋은 반응들을 가지고 잘 론칭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죠. ‘다시 입양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저희가 에피소드를 끝냈습니다.”

춘식이 생일은 7월 21일이다. 라이언과 만난 날을 냥줍데이로 정하고 기념일로 만들었다.

“춘식이 이름도 댓글로 신청을 받았어요. 그전 상표 권리를 확보하고 다 생각했던 이름은 있었죠. 그런데 누가 ‘얘는 딱 봐도 춘식이예요’라고 이름을 짓더라고요. 거기에 사람들이 막 좋아요를 눌렀죠. 저희가 생각지도 않았던 이름인데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저는 카카오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초기 카카오의 B급 이미지랄까요. 상표 등록을 할 수 있더라고요. 원래 계획을 틀어서 확신을 가졌죠.”

춘식이 오프라인 행사 이미지

포스트 춘식이는?

윤 리더는 춘식이의 인기가 라이언을 뛰어넘어 세대 교체가 됐냐는 질문에 “완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춘식이 캐릭터는 2020년 7월, 이모티콘은 그해 11월 나왔고, 인기의 정점은 2022년 이후다. 이후 새로운 캐릭터의 출현을 물었더니, 윤 리더는 말을 아꼈다.

“어떤 한 캐릭터가 성장하는 데 한 2년은 걸리는 거 같아요. 사실 2년은 굉장히 빠르게 되는 거죠. 앞으로의 캐릭터는 신규라고도 볼 수 있고, 어떤 스핀오프라고 볼 수도 있고요. 어쨌든 기존 캐릭터는 약간 피보팅해서 조금 다른 식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것도 있고, 올해 하반기부터 더 다양한 캐릭터 플레이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많이 준비돼 있습니다.”

키즈 캐릭터도 준비 중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3~5세 타깃으로 키즈 프렌즈 라인업을 론칭했다. ‘내 마음은 무지’라는 이름으로 키즈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내 마음은 무지의 경우, 시청 타깃에 맞게 외형까지 과감하게 바꿨죠. 발달이 덜 된 아이들은 눈도 크고 팔다리도 조금 길어서 액션이 좀 커야 되잖아요. 기존 캐릭터들은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카카오프렌즈 키즈라는 서브 브랜드를 완전히 분리해서 키즈 타깃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쑥스러워하는 감정, 화가 나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는데 우리가 제대로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방향으로 교육적 의미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감정 탐험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세미 뮤지컬 형태로 론칭했고,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좀 다르다는 평이 많아서 부모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좀 더 가지고 놀 수 있는 제품까지 가서 키즈 라인업이 나올 거 같아요.”

캐릭터와 브랜드 자산 양 축으로 간다

윤 리더는 카카오의 아이덴티티가 라이언이고, 이 덕분에 여느 기업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봤다. 그는 최근 출시한 ‘춘식이 미니 이모티콘’으로 이용자들이 새로운 대형 이모티콘을 만들거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등의 창의적 활용을 의미있게 봤다. 캐릭터가 IT 서비스에 녹아들어가 플랫폼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서 기업 브랜드 자산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독립적인 캐릭터 사업과 브랜드 자산이라는 굉장히 강력한 두 축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양 축의 장력이 굉장히 팽팽하게 있는 게 가장 건강한 상태 같아요. 어느 한쪽이 기울어진다면 과연 지금보다 좋을까 하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이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카카오프렌즈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고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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