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은 기름회사다. 세계 곳곳에 있는 유전에서 원유를 채취하고 VLCC(Very Large Crude Carriers, 유조선)로 원유를 수송하고, 정제소에서 정제하여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납사를 활용해서 화학제품 원료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그 중 SK이노베이션이 자랑하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 플랜트 복합단지가 있으니 울산 CLX(Complex)다. 기간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총면적은 약 250만평. 120여개의 플랜트와 34기의 원유 저장고, 600기의 석유제품 저장고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저장능력은 약 4000만 배럴인데, 한국 전체 정유 소비량의 20일을 감당할 수 있는 숫자라고 한다. 2018년 기준 울산 CLX의 원유 처리능력은 84만 배럴(화학 생산능력 549만톤)로 세계 3위 수준이고, 원유와 석유화학제품을 수송하는 데 이용하는 파이프라인의 길이만 60만km라고 한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38만4400km라고 하는데 그것보다 길다.

SK이노베이션 울산 CLX의 모습(사진: SK이노베이션)

압도적인 규모만큼 돈 버는 규모도 압도적인데 SK이노베이션의 2018년 매출은 약 54조 5109억원이다. 울산 CLX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72%가 해외로 수출된다. 울산에서 가장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은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이다.

기름집의 고민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SK이노베이션도 고민은 있다. 첫 번째는 예전만큼 잘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유가 하락과 정유화학 산업의 침체 등으로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매년 수십%씩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 편에서는 산유국인 UAE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직접 정제소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는 현상 또한 나타난다.

직원의 고령화 또한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다.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25년 차 입사자가 아직도 막내라 야간 근무를 하면 라면 끓이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가 돈다. 물론 오랜 업력만큼 전문성은 높은 인력들이지만, 이들이 은퇴하는 시기인 5~10년 뒤 예상되는 기술 단절 은 분명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고령화된 직원들의 신체적인 능력 저하로 발생하는 안전사고 증가와 물리적인 업무의 어려움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직원의 숫자가 부족하기도 하다. SK이노베이션 울산 CLX의 250만평 부지에서 실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약 340여명(1374명, 4조 3교대)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한 명의 직원이 1만평에 가까운 부지에 설치된 수많은 설비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김범수 SK이노베이션 기계기술유닛 PL은 “정유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엑슨모빌 같은 글로벌 탑티어 정유사들은 선행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 또한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인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DT

그래서 SK이노베이션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하 DT) 전선에 뛰어들었다. SK이노베이션의 DT는 크게 세 단계의 추진 전략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데이터 디지털화(Data Digitalization)다. 우선 오프라인에 산재된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취합한다. 두 번째는 스마트&인텔리전스(Smart&Intelligence)다. 취합한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확충한다.

마지막은 자동화(Automation)다. 여기서 SK이노베이션이 말하는 자동화는 일반적인 정의와 조금 다르다. 단순히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원격 통제하는 것을 자동화 공정이라 본다면 이미 울산 CLX는 90% 이상 자동화를 마쳤다는 게 SK이노베이션측 설명이다. 김 PL은 “SK이노베이션이 말하는 자동화는 자동보다는 ‘자율화’에 가깝다”며 “앞으로는 사람이 기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스스로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역할까지 하는 식으로 자동화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울산 CLX는 SK이노베이션의 DT 전략에 따라 ‘스마트플랜트’화 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 울산 CLX에서는 스마트플랜트화의 결과로 이런 것이 가능하다. 먼저 원유 구매의 자동화다. 울산 CLX에서 구매하는 원유는 약 100여종이고, 구매 주기는 3개월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정 상황에서 어떤 원유를 얼마나 더 구매해야 하는지 시스템이 최적화해서 알려준다.

생산 또한 자동화가 진행됐다. 각각의 원유는 서로 특성과 처리하는 공정이 다르다. 이렇게 구매하는 원유를 어떻게 배합해야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시스템이 최적화해서 알려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두바이유 몇 %, UAE유 몇 %, 베트남원유 몇 %를 섞어야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추천해주는 식이다.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결과는 생산 담당자에게 전달되고, 실제 공정 작업에 투입된다.

김 PL은 “원유를 반제품으로 생산한 이후에도 제조할 수 있는 레시피는 여러 개가 있다. 같은 휘발유를 만들더라도 레시피마다 스펙이 다를 수 있는 것”이라며 “생산 원가를 절감하면서 동시에 품질을 높게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최적화하는 방법이 이미 프로그래밍 돼 있고, 제품 수출에 있어서도 어떤 국가에 파는 것이 가장 이익인지 시세 정보를 모니터링하여 최적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디지털을 위한 다음 과제

현재 SK이노베이션이 스마트플랜트화에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80~90년대부터 상당부분 자동화를 만들어낸 생산 분야에 비해 뒤떨어지는 설비 관리(Maintenance)와 안전보건환경(SHE, Safety, Health & Environment) 분야다. 특히 지난해 고양 저유소 화재 사고 등으로 ‘안전 관리’에 대한 기업 책임 여론이 증가함으로, SHE 영역에 대한 투자와 조직 강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먼저 설비 관리 영역에서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예지 정비’ 수준의 프로세스를 ‘예측 정비’까지 발전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예지 정비란 사람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설비의 문제 발생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다. 반면, 예측 정비란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분석 기법을 통해 문제 발생을 사전 예측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전사적으로 추진하는 DT의 최종 단계인 ‘자동화’를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다.

안전보건환경 측면에서의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다. 종전 정유공장의 굴뚝(Flare Stack) 정비를 헬기를 띄워서 했다면, 지금은 무인 드론을 통해서 진행한다. 사람이 투입하기엔 위험한 작업환경을 최대한 무인화 시키는 방향이다.

현장에는 혹여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상황을 대비하여 작업자에게 바로 알림을 보낼 수 있는 무선 센서(산업용 IoT)를 부착했다. 열기와 가스, 진동 변화를 동시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스마트 CCTV를 설치해서 문제가 발생한 곳을 상황실에서 즉각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 PL은 “현재 SK이노베이션은 약 70~80% 정도의 자율화(사람이 아닌 기계가 판단하고 분석하는 자동화)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운영 측면에서는 자동화(Automation)보다는 최적화(Optimization)에 초점을 맞춰 개선하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의 전사적 DT 추진 방향에 맞게 스마트플랜트를 구축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