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만화가를 거리로 나서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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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가 한 번 뒤집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할 때였거든요. 그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분들, 지금도 참 고맙지요.”

둘리 아버지 김수정 작가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만화가협회장으로 일했다.  검찰이 이현세 작가의 만화 ‘천국의 신화’에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딱지를 붙여 재판을 진행하던 때였다. 만만한 게 만화라고, 정부는 툭하면 ‘청소년을 해치는 유해물질을 만드는 자’로 만화가를 걸고넘어졌다. 만화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시민들이 연대했다. 김수정 작가는 지금도 그날의 종로를 생각하면, 함께해준 시민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말한다.

만화가들이 협회를 만들어 한목소리를 낸 지 50년이 됐다. 지난 11일 서울 명동의 라루체 웨딩홀에서는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협)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만협이 생긴 해는 1968년이다. 협회는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도 했지만, 유사시에는 한데 뭉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짬짜미해 독점체제를 만든 일부 출판사와 싸우고 일본 만화를 베껴 모작 장사를 하는 이들을 퇴출하기 위한 자정 운동을 한 것이 그 시작이다.

협회 1대 회장을 역임한 박기정 선생은 당시를 “(만화가) 사회에서 불량 만화처럼 공격을 받았으니까, 살아남으려면 정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만화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지만, 작가들이 만화처럼 늘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어떤 해에도 평탄한 적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김수정 선생의 이야기다. 1980년대, ‘보물섬’을 비롯한 만화잡지들이 생겨나며 만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기 시작했고, 작가들의 활동 무대도 넓어지는 것 같았으나 그 행복한 시기는 짧았다. 정부가 미성년자 보호법을 근거로 만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벌어져서다.

이현세 작가는 1998년 2월, 자신의 만화 ‘천국의 신화’가 미성년자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검찰의 기소에 분개했다. 300만 원의 벌금을 내고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대로 검찰의 처분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창작자들이 계속해 똑같은 위기에 처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선생은 “(후배들이 보니까) 이거는 그냥 물러설 문제가 아니라 싸워야 되겠구나, 투쟁을 해야 할 부분이구나” 생각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6년의 지리한 싸움 끝에 대법원은 “이현세 무죄”를 선고했다. 만화 ‘임꺽정’의 이두호 선생도 이 싸움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 이 아까운 시간 동안 표현의 자유를 작가들이 마음껏 누리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만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두호 선생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선생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사회적으로 억압을 받지 않았으면 작가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작품을 했을 것”이라며 “재능이라는 거는 우리가 일본 못지않아 어깨를 나란히 해서 갈 수도 있는데 그런 제약 때문에 우리가 마음껏 표현을 못 했다”며 아쉬워했다.

 

윤태호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미래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들어 표현의 자유 논란은 줄었으나, 만화계에는 안팎으로 여전히 여러 문제가 있다. 내부적으로 큰 갈등은 ‘웹툰으로의 플랫폼 변화’에서 왔다. 종이 만화를 그리던 선배들과 웹툰으로 만화에 진입한 후배들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충호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협회에 웹툰 작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노화해버린 만협은 웹툰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만화계의 현안에 더이상 대응할 수 없는 조직이 돼버렸었다”며 “이사회를 설득해서 ‘쇄신위’를 만들고, 그 쇄신위 안에 외부의 젊은 웹툰 작가들까지 테이블에 앉혀서 함께 어떻게 만협을 젊은 조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변화의 의의를 설명했다.

젊은 작가를 대표해 기념식에 온 연제원 한국웹툰작가협회장은 협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2년 방심위에서 웹툰을 유해 물질로 지정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웹툰작가가 협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협회 바깥에 존재하면서 (문제에)대응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만협에서 선배님들이 1997년에 사회에 대항해 싸웠던 걸 토대로 젊은 작가들에게 싸우는 방법을 알려줬다.”

마주 앉은 이들은 플랫폼과 불공정 거래, 작가들의 표준 계약서 작성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논의하고, 작품을 무단으로 퍼 나르는 불법 복제 사이트와의 전쟁도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밤토끼’로 대표되는 웹툰 불법공유 사이트의 출현이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웹툰도 그렇지만, 레진코믹스나 투믹스 같은 유료 웹툰 플랫폼이 큰 피해를 봤다.

만화가들의 수익이 반의반으로 줄어들고, 밤토끼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작가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연제원 작가는 “불법 복제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10년이든 20년이든 저희가 계속 안고 가야 할 최우선적인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협회 부회장을 맡은 신일숙 작가가 보기에 만화계는 지금 과도기다.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산적했다. 특히 협회가 작가의 복지에 신경 써야 할 것이라 본다. 매주 연재하는 현재의 웹툰 플랫폼 구조에서는 작가들이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작품을 내고 사랑받는 작가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들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복지가 우선 되어야 한다.

물론, 뿌듯한 일도 있다. 지난해 웹툰작가협회를 만들어내면서 만화계에서도 신구조화를 이뤄냈다. 만협만 놓고 보면, 항상 쪼들렸던 재정을 정상화하기도 했다. 만협 창립 50주년 행사는 오로지 협회의 자금으로만 기획됐다. 윤태호 만협 회장은 “조금은 조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준비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다”면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역대 최고 회원 수를 달성했다”고 자축했다.

앞으로 더 길게 가기 위한 방안도 고심 중이다. 다음은 윤 작가가 앞으로의 50년을 위해 공개한 ‘미래 선언문’이다.

첫째, 만화 창작의 주체는 만화가다.

둘째,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 보장을 위해 노력한다.

셋째, 모든 계층의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보다 안정적인 체계로 발전시킨다.

넷째, 한국 만화 전통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휴먼 라이브러리 등 다양한 연구 토대를 조성한다.

다섯째, 만화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모든 콘텐츠의 제작사, 플랫폼 업체들과 함께 웹툰 중심의 민간 국제만화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여섯째, 새로운 웹툰작가의 발굴과 현역 웹툰작가들의 재교육을 위해 만화가협회와 웹툰작가협회가 중심이 되는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일곱째, 웹툰 창작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전문 조력집단을 양성하고 성장을 도모한다.

마지막, 한국만화가협회는 미래를 준비하고 발전된 정책을 제안하고 작가들의 권익을 위해 연대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이두호 “표현의 자유 있었다면 일본과 어깨 나란히 했을 것”

김수정 “종로에 함께 나와준 시민들, 지금도 너무 고맙다”

이현세 “후배들이 지켜보니 싸워야 했다”

이충호 “만화계 세대 단절 없애는 것 급선무였다”

윤태호 “내후년, 민간 자본으로 만화 축제 만들 것”

신일숙 “만화가 되려면 만화학과 피해라”

연제원 “웹툰 불법 복제, 오래 싸워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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