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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내후년, 민간 자본으로 만화 축제 만들 것”

만화는 재미와 웃음을 주는 콘텐츠지만, 만화계가 걸어온 길은 굴곡지다. 지난 50년간 만화계는 끊임없이 심의나 불법복제와 싸워야 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오랜 시간 법원에서 다퉈야 했고, 때로는 ‘청소년 일탈’의 원인으로 지탄받았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만화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려 만든 곳이 ‘한국만화가협회’다. 지난 1968년 시작해 올해로 50년이 됐다.

역대 만화가협회장을 역임한 박기정(1, 3대), 이두호(20대), 김수정(21대), 이현세(23대), 이충호(26대), 윤태호(27대) 작가와 신일숙 만협 부회장, 그리고 연제원 웹툰작가협회장을 지난 11일 열린 ‘한국만화가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이들에게 각자의 협회장 시절 가장 중요했던 만화계 이슈와, 앞으로 만화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끼’와 ‘미생’은 윤태호 작가를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윤 작가의 최근 행보는 작가들의 권익확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화 전문 콘텐츠 매니지먼트사 ‘누룩미디어’를 차려 대표를 맡았고, 만화가협회의 회장직도 수락했다. 그가 최근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한국 웹툰의 글로벌 진출과,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표준계약서’ 확립이다.

만협 50주년 기념식에서 윤 작가는 앞으로 50년을 바라보는 ‘미래 선언’을 통해 내후년부터 ‘모든 콘텐츠의 제작사, 플랫폼 업체들과 함께 웹툰 중심의 민간 국제만화페스티벌’ 개최를 선포하기도 했다. 코미콘이나 프랑스의 앙굴렘 국제만화전처럼 만화와 관련한 모든 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윤 작가가 생각하는 만화 중심의 페스티벌은 어떤 모습일까?

 

윤태호 작가

민간 만화 축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관에서 주최하는 페스티벌은 대부분 전 국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 많은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축제는 만화는 물론이고 만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 한 번이라도 만화와 관련한 콘텐츠를 즐기셨던 모든 분을 대상으로 한 축제예요.

만화를 아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축제인가요?

네, 그런 분들이 실질적으로 재밌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런 쪽이 기획 방향이 될 것 같아요. 의례적인, 인사치레 같은 행사 코스나 이런 것들은 만들 생각이 없어요. 진짜 독자나 시청자, 관객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걸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여드리는, 혹은 앞으로 우리는 이런 걸 준비하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이 행사에서 세미나도 하고 작가 사인회도 하고 작품 프로모션도 같이하고 모든 것들을 다 할 수 있게요.

그러려면 재원 등 필요한 게 많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나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비밀에 가까운데요. 민간 자원으로 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들어오나요?

예, 그렇습니다.

롤모델로 삼는 페스티벌이 있나요?

딱 하나만 갖고 이야기할 것은 아니고, 다 성격이 다르니까요. 코미콘이나 앙굴렘 같은 것들을 보면 본받을 점들이 있죠.

협회장님으로서 보시기에 현재 만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요?

계약서죠. 표준 계약서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재를 전제로 범위를 확장하는 계약서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또, 플랫폼들이 옛날과 다르게 연재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작가 매니지먼트까지 하는데요, 그런 것에 대해서 용어 정리랄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작가가 계약을 체결한 스무 살 때와, 나중에 스물다섯 살이 됐을 때는 분명히 다를 거거든요. 그럴 때도 부당함이 없느냐,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협회가 계속 관심을 갖고 보려 하고 있습니다.

협회에 젊은 작가가 많이 있나요?

그렇죠. 웹툰 작가 협회에 가입을 하면서 선택적으로 만화가협회에 동시 가입을 원하는 분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만화가협회가 지금 굉장히 젊어졌죠. 모든 협단체가 정족수랄지,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다 갖고 있는데요, 우리 협회 같은 경우에는 그런 부분이 굉장히 많이 해소된 것이 있죠.

만화가 앞으로 더 길게 사랑받기 위해서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플랫폼만 바뀌었거든요. 작품은 그대로 있고요. 종이에다가 했건, PC에서 나왔건, 모바일로 나오건 상관없이 작품은 계속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 디바이스가 바뀌면서 계약조건이 계속 달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앞으로도 작가는 꾸준히 자기 작품을 열심히 하면 당연히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플랫폼에도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지금 플랫폼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아서 그런 것인가요?

아니요. 문제라기보다는, 네거티브한 지점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해외로 우리의 작품이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해서인데요. 우리 안에서 충분한 시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꼭 우리나라 플랫폼사들과 손잡고 해외로 나가서 언어권이 다른 분들에게도 내 얘기를 들려주고, 좀 행복한 지점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떤 부분에서 한국의 플랫폼과 작품이 글로벌로 경쟁력이 있을까요?

어느 순간엔가 외국의 페스티벌 같은 데에 초대받아 나가면서, 분명히 내가 수출하지도 않았는데도 외국에서 내 작품을 알고 찾아와주는 많은 분을 목격을 하게 된 게 거의 십 년 정도 됐다고 생각을 해요. “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도 내 만화를 보는구나!” 이런 각성이 확 온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다들 시야가 뻥 터져버린 듯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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