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재미와 웃음을 주는 콘텐츠지만, 만화계가 걸어온 길은 굴곡지다. 지난 50년간 만화계는 끊임없이 심의나 불법복제와 싸워야 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오랜 시간 법원에서 다퉈야 했고, 때로는 ‘청소년 일탈’의 원인으로 지탄받았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만화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려 만든 곳이 ‘한국만화가협회’다. 지난 1968년 시작해 올해로 50년이 됐다.

역대 만화가협회장을 역임한 박기정(1, 3대), 이두호(20대), 김수정(21대), 이현세(23대), 이충호(26대), 윤태호(27대) 작가와 신일숙 만협 부회장, 그리고 연제원 웹툰작가협회장을 지난 11일 열린 ‘한국만화가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이들에게 각자의 협회장 시절 가장 중요했던 만화계 이슈와, 앞으로 만화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출판에서 웹툰으로, 가장 성공적인 변신을 한 만화가 중 하나가 이충호 작가다. ‘까꿍’ ‘마이러브’를 그린 출판 만화계의 스타였는데 지금은 다음 웹툰의 프랜차이즈 작가가 됐다. 이 변신은, 이 작가가 출판에 몸담았던 선배 작가들과 웹툰으로 데뷔한 후배 작가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작가가 지난 2014년, ‘젊은’ 협회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300명의 웹툰 작가가 대거 만협에 합류했다. 종이 만화 작가와 웹툰 작가들이 얼굴을 맞대고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이충호 협회장 당선이란 사건은, 원로 작가들을 충격(?)에 빠트리게도 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했다. 웹툰이 만화계 판도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만화=웹툰’으로 시장이 정의되면서 해결해야 할 새로운 현안도 많이 생겨났다. 예컨대 바뀐 플랫폼에 맞춘 표준계약서의 필요성이나, 플랫폼을 상대로 작가의 권익을 요구해야 할 문제의 발생, 불법 복제 사이트의 등장 등이 그 예다. 유명작가의 문하생을 오래 거쳐야 등단할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웹툰은 작가 등용의 문턱을 낮췄다. 서로 다른 작업 환경과 문화 차이로 세대 간 단절이 커진 것도 협회가 고민해야 할 사항이었다. 발등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충호 작가는 싸움닭으로, 3년간 현장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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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작가

만화가협회장을 맡으셨을 당시에 만화계에는 어떤 이슈가 있었나요? 그 이슈는 어떻게 해결, 혹은 진행이 되었나요?

2012년에 한국만화가협회(이후 만협) 이사를 할 때였어요. 만화계에 이런저런 문제들이 터지는데 만협이 대응의 주체가 되지 못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조선일보에서 웹툰의 선정성, 폭력성을 문제 삼고 이어서 방심위가 웹툰 심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피켓시위와 노컷 캠페인 등으로 심의 문제에 대응한 조직과 사람들은 대부분 외부의 젊은 웹툰작가들이었거든요. 협회 임원 중 웹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마도 나와 윤태호, 엄재경 등 몇 명 없었고, 심지어는 40대 중반을 넘긴 우리들이 십 년 이상 막내였어요. 그렇게 노화해버린 만협은 웹툰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만화계의 현안에 더는 대응할 수 없는 조직이 돼버린 거죠.

결국 그런 만협에 한계를 느낀 젊은 웹툰작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났죠. 그대로 둔다면 만협은 제 또래가 막내인 채로 노인정이 될 상황이었어요. 할 수 없이 보다 못한 제가 나서서 이사회를 설득해 ‘쇄신위’를 만들고, 그 쇄신위 안에 외부의 젊은 웹툰 작가들(내 임기와 현재까지 임원으로 활약하는 친구들)까지 테이블에 앉혀서 함께 어떻게 만협을 젊은 조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논의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1년 뒤인 2013년에 300여 명의 젊은 웹툰작가들이 만협 회원으로 가입했고, 그들의 요구로 쇄신위를 이끌었던 두 사람인 저와 윤태호 작가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만협 회장을 하고 있는 거죠.

방심위 이슈는 결국 만협과 방심위가 협약을 해, 만협이 중심이 된 자율규제위원회를 만들어 만화계가 자체적으로 웹툰의 등급조정을 하는 방식에 합의했어요. 그리고 제 임기 3년 동안 플랫폼들과 논의를 해 그 틀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요. 지금 협회에서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계속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협회장을 하시면서 가장 크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앞에 설명했던 2012년의 가장 큰 이슈가 이른바 방심위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았어요.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문제가 생길 텐데, 만화계에 당대의 이슈들을 품고 해결할 수 있는 젊은 조직이 없다는 게 더 심각한 일이었죠. 당시 만협과 젊은 웹툰 작가들 사이의 세대 단절은 심각한 수준이었거든요. 심지어는 1990년대 코믹스에서 활동하던 비교적 젊은 40대 작가 중에도 웹툰에 대해 이해하려 하기보단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진 작가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그러니 그 위 선배들은 어땠겠어요. 변화하는 시대가 낯선 그들에겐 ‘웹툰이 무슨 만화냐?” “웹툰작가들은 그림도 못그리잖아?” 등 무시하고 거리를 두려는 태도가 있었어요.

웹툰작가들 역시 과거와는 전혀 달랐어요. 일단 그들은 과거 문하생 시스템 안에서 만화를 배운 우리 세대와 달리 선후배라는 수직적 관계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가 있는 세대였죠. 그리고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선배들에 대한 반감도 있었을 것이고요. 굳이 자신들의 이슈를 잘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마음도 없는 늙은 선배들과 손잡을 이유가 없었죠.

그렇게 반목하고 갈라져 있던 위아래 세대를 젊어진 만협을 통해서 끌어안는 것이 회장이 된 저의 가장 큰 소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장출마를 하면서 공약으로 ‘분과시스템’을 만들었고, 회장이 된 이후에도 그 분과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세대통합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과거의 선배들이 웹툰을 만화로 인정하고, 웹툰작가들을 후배로 인정하고, 웹툰작가들 역시 과거의 선배만화가들이 자신들의 시작이었고, 만화라는 피를 물려준 아버지, 어머니였음을 인정하게 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협회가 젊고 합리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세대 간에 서로를 인정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지금 만화계는 어떠한 상태라고 보시나요?

만화시장으로 보느냐, 만화계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는 질문이네요. 만화시장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거대 플랫폼들은 사이즈를 키우고 있고, 중소 플랫폼들은 투자가 끝난 이후 생존을 모색하는 중으로 보이고요. 제가 회장을 그만둔 이후 2~3년 사이에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틀어박혀서 원고만 하다 보니,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네요. 만화계라는 시각으로 보면 혁신에 성공한 만협과 그렇지 못한 몇몇 조직들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사태를 두고 갈등하는 모양새도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이슈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죠. 온갖 문제들로 조용할 날이 없달까요.

만화계에 고쳐져야 할 문제라거나, 혹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역시 만화시장과 만화계로 나눠서 이야기할게요. 만화시장은 거대플랫폼들이 사이즈를 키우면서 잘못 흘러가면 독과점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어요. 자신들만의 개성을 갖춘 플랫폼들이 쏟아져나오던 시기의 장점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라는 우려, 기우가 있어요. 그런 현상 중 하나로 보이는데, 작품들의 장르 쏠림 현상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른바 돈 되는 장르인 로맨스나 학원폭력물이 많아지면서, 에이전시에서 다른 작품을 하고 싶은 작가들에게 특정 장르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웹툰 초창기 10년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었다고 보는데, 현재의 이런 흐름은 긍정적이진 않아요. 1990년대 후반의 잡지시장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다가 쇠락의 길을 걸었거든요. 작가들이 하고 싶은 작품이 아니라, 시장에 맞춰서 작품을 상품처럼 찍어내기 시작한다면 몇 년 안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봐요.

만화계의 이슈로 보면, 불법사이트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문제점은, 만화계로 들어오는 정부지원금의 대부분을 집행하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한계와 문제점들이 크게 보여요. 정말 개혁이 필요한 조직이라고 봐요. 해결책을 언급해보자면, 일단 첫째로는 문체부에서는 정부 지원금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한곳으로 몰리는 지금의 흐름을 바꿔야 할 거로 보여요. 이대로 둔다면, 머지않아 더 큰 문제가 터질 거라고 봅니다. 둘째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자체적으로 내부개혁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해나갈 의지를 만화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봐요. 지난번처럼 대충 덮고 넘어가선 안 되죠. 이사장, 원장 등이 움직여야 할 텐데, 지금 모습을 봐선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아요.

만화가 앞으로 더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첫째로는 만화가 개인들이 더 자유로워졌으면 해요. 만화시장이든, 만화계든, 어떠한 외부의 억압도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둘째로는 업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은 작품이 만화 안에 갇히지 않도록 다양하고 큰 그림들을 그려줬으면 해요. 사실 영상화를 많이 하고들 있지만, 드라마, 영화 쪽에만 쏠려있잖아요. 더 만화적인 만화들도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상품 등이 활발하게 쏟아져 나왔으면 해요. 작가들의 만화적 상상력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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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는 전 세계 독자들을 상대로 한 글로벌한 작품이 나와줘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봐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됐거든요. 새로운 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런데 사실 이게 업체들이 돈을 퍼붓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작품이 뛰어나고 그 시대를 사는 세계인들의 정서와 맞아야 하는 거거든요. 이미 음악 쪽에 사례가 있잖아요. JYP나 SM이 엄청난 공을 들였지만, 반응을 얻은 건 싸이, 방탄소년단 등 개인들이었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만화 쪽도 결국은 작가 개인의 힘, 특정한 한 작품의 힘으로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 봐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작가 개개인들이 더 힘을 냈으면 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