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재미와 웃음을 주는 콘텐츠지만, 만화계가 걸어온 길은 굴곡지다. 지난 50년간 만화계는 끊임없이 심의나 불법복제와 싸워야 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오랜 시간 법원에서 다퉈야 했고, 때로는 ‘청소년 일탈’의 원인으로 지탄받았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만화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려 만든 곳이 ‘한국만화가협회’다. 지난 1968년 시작해 올해로 50년이 됐다.

역대 만화가협회장을 역임한 박기정(1, 3대), 이두호(20대), 김수정(21대), 이현세(23대), 이충호(26대), 윤태호(27대) 작가와 신일숙 만협 부회장, 그리고 연제원 웹툰작가협회장을 지난 11일 열린 ‘한국만화가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이들에게 각자의 협회장 시절 가장 중요했던 만화계 이슈와, 앞으로 만화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1998년, ‘임꺽정’의 이두호 선생이 만화가 협회장을 맡았을 때 나이는 56세였다. 이전의 협회장들과 비교해 상당히 젊은 나이였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시대의 변화가 그의 회장 당선을 끌어냈다. 후배들은 이때를 ‘만협 2기’ 로 평가하는데, 그의 당선과 함께 협회에 새로운 피가 대거 수혈돼서다. 1998년은 또, 검찰이 이현세 작가의 ‘천국의 신화’를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한 해이기도 하다. 젊은 이두호는 만화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거리로 나섰고, 임기 내내 법정에서 이현세 작가와 함께 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이 됐다면 어땠을까. 이두호 작가는 재능있는 국내 작가들이 마음껏 그려낸 만화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이 되고 있는 지금, 미래를 위해서 좋은 작가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작가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시대는 만화를 ‘웹툰’으로 바꿔놨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이두호 선생은 ‘인성, 경험, 취재’를 꼭 필요한 요소라 봤다.

 

이두호 작가

1998년 협회장을 맡으시면서 중점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일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거야, 그때 당시 우리가 압박을 받았을 때니까, 만화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쟁취하기 위한 거에 가장 신경을 쓴 거지. 이현세 선생님이 재판을 받았고, 저도 사실은 기소 유예를 받았거든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거 정말로 이대로 가서는 안 되겠다. 여의도에서 시위하는 것도, 내가 알기로는 만화가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 한다는 거는 처음이에요.

 

# 만화가들의 거리 시위 배경_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만화를 둘러싼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졌고, 협회도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1996년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 청소년보호법 입법을 추진하며 다시 안정적인 만화생태계를 위협하자 협회를 중심으로 ‘만화심의 철폐를 위한 대책추진위’를 구성하고 11월 3일 여의도에서 700여 명이 모여 만화인 결의대회 개최를 시작한다. 만화심의 철폐를 위한 기나긴 투쟁의 시작이었다. (자료제공: 한국만화가협회)

 

그때 시위 상황이 어땠나요?

그때 나는 형님이 돌아가셔서 대구에 내려가 있어서 거기에 참여를 못 한 거예요. 그다음에, 내가 회장을 이어받으면서 이현세 씨 재판에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여를 하고. 6년이 걸렸어요, 6년이(1998년 2월 서울지검은 ‘천국의 신화’를 그린 이현세 작가를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혐의로 벌금 약식기소했다).

지금도 표현의 자유에 제약이 많다고 보시나요?

지금은 그때 비하면 아주 뭐 (좋아졌죠).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만화라는 생태계가 더 커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작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작가를 키워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일본이나 유럽의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훌륭한 작가가 없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창작하는 작가가 최고의 미션이라, 잘 육성을 해야 해요. 내 생각에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사회적으로 억압을 받지 않았으면 작가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작품을 했을 거 아니에요? 표현도 자연스럽게 하고. 그러면 내가 생각할 때, 재능이라는 거는 우리가 일본 못지않거든요. 재주가 있다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갈 수도 있는데 그런 제약 때문에 우리가 마음껏 표현을 못 한 거예요.

좋은 작가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웹툰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지금 작가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써야 한다, 이건 내가 모르겠고. 다만, 인성이라든지 작가적인 기질 또는 작가가 가져야 할 소양 같은 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보니까. 테크닉이나 이런 거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테크닉은 달라져도 본질적인 것은 같다는 말씀이시지요?

시대가 달라져도 인생은 변함이 없잖아요. 선배도 있고 동료도 있고. 물론 만화가라는 것이 결국 엉덩이로 그린다고 제가 말은 하지만, 혼자 하는 거는 틀림 없는데,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남들하고 교류도 해보고 여러 가지 경험도 하고, 그러면서 우러나오는 것이 밑천이 되거든요. 어떤 면으로는 작가들이 남들처럼 직장 생활 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 대해 잘 모른단 말이에요.  간접체험 해볼 수밖에 없고. 허영만 씨, 본인이 요리 잘 하는 거 아니잖아요?(웃음) 그래도 뛰어다니면서 알아보는 거죠.

저 같은 경우도 만화를 그리려니까 알지 않으면 못 그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결심하기로는 (만화를 그릴 때) 언어도 사장되거나 없어진 것도 찾아내서 쓰자, 그랬어요. 제 만화 중에 ‘째마리’ 같은, 그런 말은 어디서 잘 못 들어보거든요. 그게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지요. 사람이나 사물 중에 가장 쓸모없는 찌꺼기를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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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가 되려면 인성과 충분한 경험, 정확한 취재가 중요하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지. 나는 그렇게 권하고 싶어.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