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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일기] 티몬 라이브 커머스 비망록

언젠가 미국 아마존 상품을 그대로 긁어서 네이버에 올려 파는 구매대행 판매자를 저격한 글을 썼다. 근데 그 짓을 내가 하고 있다. 누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만드는 걸 쉽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니 내가 그랬다. ‘개미 일기’라는 이름의 이 글뭉치에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상품을 팔아 부자가 되고 싶은 군소매체 기자의 먹고사니즘을 담았다.

몇 달 전. 티몬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티몬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해볼 생각 없느냐는 내용이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열심히 팔고 있는 내 모습이 기특해보였는지, 조금은 잘 나가 보였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지금 심정 같아선 별 생각 없이 그 제안에 승낙한 그 때의 나를 때려주고 싶을 뿐이다.

이 글뭉치를 쭉 봤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헬개미마켓’은 제조사가 아니다. 브랜드사도 아니다. 각각 생활용품, 축산물 유통업체인 두 개의 공급처로부터 상품을 받아서 판매하고 있는 리셀러다. 두 개의 공급처는 모두 소매판매도 하고 있는데, 두 업체의 배려로 헬개미마켓의 상품 판매가격은 공급처의 소매 판매가격과 동일하게 맞출 수 있었다. 리셀러를 한다면 여러 이유로 같은 상품이더라도 소매가보다 판매가가 비싸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티몬 라이브의 조건

다가온 숙제가 있다면 티몬 라이브 커머스 ‘티비온(TV ON)’의 조건이다. 티비온에는 아무나 입점하지 못하고, 판매를 위해서는 티몬이 요구하는 몇 가지 조건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 조건은 가격이다. 티몬은 무엇보다 ‘가격’을 중시하는 판매채널이고, 그래서 입점업체의 상품도 최대한 온라인 최저가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 가격의 기준이 있다면 ‘네이버 검색 최저가’보다 저렴하게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기자는 리셀러, 그 중에서도 하루 한두개 상품이 팔리면 고마운 슈퍼 개미다. 가격을 독립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조사나 브랜드사, 혹은 구매력이 강한 파워셀러가 아니다. 소매 판매자이기도 한 공급업체와 판매가격을 동일하게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이 가격을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내릴 수가 없다. 가격을 네이버 최저가 이하로 낮추기 위해선 상품 공급업체와 협의가 필요했다.

또 하나의 조건은 상품 가격의 통일이다. 라이브 커머스에 출품하는 상품들은 하나의 딜에 여러 옵션으로 들어가는데, 이 모든 상품은 ‘균일가’로 맞춰야 한다는 게 티몬의 요구사항이다. 예를 들어서 9900원짜리 딜을 만든다면, 딜에 포함되는 모든 상품들의 가격이 9900원이어야 한다.

이 말인즉, 경우에 따라서 소분 포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기존에 600g에 1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던 우삼겹과 400g에 1만원에 팔고 있던 에어프라이기용 가브리살이 있다고 치자. 이 때 두 상품을 하나의 딜에서 같이 판매하고 싶으면 1만5000원에 600g짜리 우삼겹을 1만원에 400g으로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거다.

판매가격을 9900원으로 예쁘게 통일한 최종 판매 상품 리스트. 이거 가격 맞추는 거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힘들었다. 중간에 공급업체 미팅만 몇 번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티몬 라이브 커머스에는 또 다른 까다로운 조건이 있으니, 물류비를 ‘무료’로 맞춰달라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쿠팡에서 공짜 배송비를 팡팡 뿌리니 물류비가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숨어있는 물류비가 있고, 그 물류비를 업체가 부담하느냐, 상품가에 녹이느냐, 소비자에게 택배비로 전가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티몬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택배비를 전가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있다. 그렇다고 물류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 또한 저렴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된다.

하지만 기자는 리셀러이기 때문에 무료 물류비를 만들기 위해서도 공급처와 협의가 필요했다. 기자의 공급처는 모두 기존 소비자로부터 3000원 상당의 택배비를 받고 있었는데, 고객에게서 받는 택배비를 ‘무료’로 바꾸고도 남는 이익을 그들에게 제시해줘야 했다. 티몬측 말로는 최대한 장바구니 사이즈를 키우는 식으로 합포장을 유도해서 배송비 부담을 상쇄하면 된다고 한다.

티몬 라이브 커머스는 크게 두 가지 ‘티비온 라이브’, ‘티비온 셀렉트’로 나뉜다. 티비온 라이브는 콘텐츠 기획 및 연출, 라이브 방송을 위한 쇼호스트 섭외 주체가 티몬이다. 티비온 셀렉트는 콘텐츠 기획 및 연출, 방송 주체가 판매자다. 당연히 티몬이 하는 일이 많아지는 티비온 라이브는 셀렉트보다 비싸다. 기자는 돈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는 ‘셀렉트’를 선택했다.

조건은 끝나지 않았다. 티몬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라이브 커머스를 준비하는 판매자에게 받아가는 돈이 있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광고료다. 쉽게 말해서 ‘라이브 커머스’를 위한 1시간짜리 공간을 티몬 플랫폼 안에서 제공하는 조건으로 받는 돈인데 이게 110만원(티비온 셀렉트 기준)이다.

여기에 상품 판매액 기준으로 발생하는 수수료가 추가된다. 판매 수수료는 티몬이 제공하는 딜에 따라 다른데, 담당 MD가 기자에게 추천해준 ‘티몬데이(딜 오픈 후 하루 동안 페이지에 유지됨)’ 기준으로 일정 비중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 금액 또한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하기 전 상품가 설정에 앞서 고려해야 하는 비용이다.

요약하자면 티몬 라이브 커머스에 출연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이렇다. 1) 네이버 최저가보다 저렴한 상품, 2) 한 딜에 포함된 모든 상품가격 통일(소분 작업 필요), 3) 배송비 무료, 4) 광고료, 5) 판매건당 수수료. 이 모든 조건을 감당하고 이익을 만들 수 있다면, 티몬 라이브 커머스 티비온은 꽤 나쁘지 않은 채널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슈퍼 개미 리셀러인 기자가 이 모든 조건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콘텐츠, 만만한 줄 알았는데

12월 21일 월요일. 티몬 담당 MD로부터 연락이 왔다. 23일 수요일까지 상품상세를 준비해야 된다는 내용이다. 라이브 커머스 딜에 포함된 총 7가지 상품의 판매 콘텐츠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상품상세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별거더라. 왜냐하면 출품 판매 리스트에 올린 고기를 정작 판매자인 기자가 잘 몰랐다. 공급처가 원래 기자가 판매하고 있던 고기와는 다른 새로운 라인업을 라이브 전용으로 짜줬기 때문이다. 대체 가브리살과 항정살은 무엇이 다른지, 에어프라이기용 고기와 일반고기는 무엇이 다른지, 미추리 삼겹살은 대체 뭐하는 삼겹살인지 기자가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도 모르는 것을 고객에게 팔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품상세 제작을 위해 상품 공부부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 결과 만들어진 콘텐츠가 아래와 같다. 솔직히 데드라인 맞춰서 상품상세 만드느냐 지난주 기사를 많이 못 썼는데 그래서 내가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회사에 나와서 이러고 있다. 부업 셀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완성된 티몬 딜페이지. 원래 상품명은 저거 아니었는데 티몬 MD가 바꿨다. 솔직히 기자의 디자인 역량이 조금만 더 뛰어났어도 속도는 훨씬 더 붙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지사항 이미지 저거 파워포인트로 만들었다. 사진은 공급처 협찬.

요즘 대세는 예능형 라방?

요즘 라이브 커머스의 대세는 ‘예능형 라이브’다. 홈쇼핑처럼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재미’까지 잡는 형태로 라이브 커머스는 진화하고 있다. 예컨대 티몬은 지난 7월부터 티비온에서 ‘쑈트리트 파이터’라는 이름의 생방송 판매를 4회 진행했다. 첫 회에는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럭키, 랩퍼 퀸와사비, 개그맨 박영진과 이세진 등 유명인들이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판매 경쟁을 벌이는 신개념 웹 예능이라는 티몬측 설명이다. 물론 나는 이런 사람들 섭외할 돈이 없다.

본진에 대한 의리가 있으니 네이버 이야기도 해본다. 네이버는 예능형 라이브 커머스 콘텐츠 ‘리코의 도전’을 27일 저녁 8시 30분 공개했다. 리코는 네이버가 운영하는 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의 진행자다. 이날 첫 에피소드는 ‘5시간 연속 백화점 털기’가 컨셉이다. 리코가 한도를 알 수 없는 제작진 신용카드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전층을 쇼핑하는 과정을 라이브 시청자가 따라가면서 구경한다. 라이브에서 리코가 소개한 상품 중 고객이 구매를 원하는 상품이 있다면 바로 네이버쇼핑에서 구매할 수 있다. 카드 한도가 초과되면 리코의 개인카드로 결제를 해야 한다는 재미요소를 부여했다는 네이버측 설명이다.(잔인한 자식들… 밥값은 못 챙겨줄망정)

지금 기사 쓰면서 리코의 네이버쇼핑 라이브방송 보고 있다. 리코 섭외비용, 백화점 장소 섭외비용 얼마 들었을까. 아, 백화점한테는 네이버가 돈을 받았을 수도 있겠네. 이런 생각밖에 안 나는 것 보니 난 자본주의에 찌든 게 분명하다.

기자도 ‘예능형 라이브’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심재석 바이라인네트워크 대표에게 전문 BBQ 셰프를 라이브 방송에 초청해서 콘텐츠를 기획하면 어떨지 제안했다. 거기 쓸 돈 없으니, 알아서 돈 안 드는 방향으로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돈 안 드는 방향으로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가장 웃긴 두 명을 쇼호스트로 섭외했다. 이종철 기자와 남혜현 기자다. 이들이라면 존재 자체로 예능형 콘텐츠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 두 명은 공짜로 섭외했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뭔 말을 던질지 예측이 안 된다. 좋은 말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자의 준비가 늦어져서 대본도, 사전 연출도, 큐시트도 없다. 여러분은 헬개미마켓 티몬 라이브에서 말 그대로 진정한 ‘라이브’를 볼 수 있겠다.

그래도 나름 1시간짜리 콘텐츠인데, 진행방향에 대해서는 사전에 고민한 게 있다. 사실 기자가 개그맨은 아니다. 기자가 방시혁을 닮아서 웃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얼굴만으로 웃기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현직 기자 쇼호스트니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을 ‘콘텐츠’에 녹여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생각한 게 고기 맛집썰이다. 기자는 돌아다니는 게 일이고, 그러다보면 지역 곳곳의 맛집을 추천 받는 일이 많다. 당연히 고기도 많이 먹는다. 남혜현 기자와 이종철 기자는 헬개미마켓 라이브 방송에서 각자 인생고기 맛집 3군데를 꼽아서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더불어 시청자들의 실시간 댓글 응대도 이 두 분에게 맡겼다. 맨 정신으로 진행을 하지 못할 두 분을 위해서 라이브 방송 현장에는 시바스 리갈을 갖다 놨다.

내일 라이브 방송에서 활용할 요리 재료들이다. 이 재료로 ‘오리엔탈 김치시즈닝 빠삭 BBQ’, ‘시바스 리갈을 곁들인 스코틀랜드식 오돌뼈 볶음’, ‘농협 비매품 만능장을 곁들인 영월식 미추리 삼겹살 볶음’을 만들 거다. 밝히자면, 살면서 요리한 건 10년 전 여자 친구한테 소시지야채볶음 만들어 준 이후로 처음이다.

이종철 기자와 남혜현 기자가 썰을 푸는 사이 헬개미마켓 주인장인 나는 라이브 방송에서 판매하는 고기를 직접 요리할 계획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요리랑은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다. 요리를 하나도 못하는 기자도 ‘에어프라이기’만 있다면 요리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름하여 ‘요알못의 요리 교실’. 근데 정작 고기 샘플은 한 덩이씩 밖에 없어서 예행연습을 못한 게 함정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겸사 진짜 요리가 필요한 ‘오돌뼈 볶음’, ‘미추리 삼겹살 볶음’도 만들 계획이다. 여기엔 영월농협 가공공장에서 판매용 샘플로 받아온 비매품 마법의 양념장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걸 라이브 방송에서 판매하지는 않으니 그 자체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겠나. 이게 정말 맛있는지는 라이브 방송 자리에서 밝혀진다. 영월농협 가공공장 센터장님, 괜찮겠죠?

냉동육을 맛있게 먹으려면 당연히 저온 숙성이 필요하다. 뻥이고, 그냥 방송 하루 전인 일요일 회사에 와서 냉장고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놨다. 해동은 해야지.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내일 라이브 방송 촬영 장소는 회사 사무실이다.

헬개미마켓의 첫 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라이브 방송은 28일 월요일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티몬 티비온 라이브를 통해서 시청 가능하다. 공급처 사장님…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죠?

헬개미마켓 주인장 지옥개미와 어쩌다가 용병으로 끌려온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이종철 기자의 예능형 라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28일 오후 3시 티몬에 방문하면 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개미 일기 모아 보기

1편 – 네이버 셀러가 됐다

2편 – 진짜와 개미의 상품 소싱법

3편 – 개미 셀러가 어떻게든 좋은 상품 찾는 법

4편 – B2B 도매몰 위탁 판매, 할 만 한가요?

5편 – 3개월 삽질의 끝(?), 주매출 80만원 돌파!

6편 – 티몬 라이브 커머스 비망록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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