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핑계로 내가 궁금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로망이 생겼다. 하나는 ‘음주 인터뷰’다. 술 한 잔 앞에 놓고 두런두런 하다 보면,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다음날 숙취로 까먹지 않는다면).

또 다른 하나는, 근사한 여성들과의 ‘수다 인터뷰’다. 마치,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처럼,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언어로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꽤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센 언니’들의 에너지가 터지는, 그러면서 각자 쌓아온 경험치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인터뷰.

그리고, 드디어 그런 기회를 얻었다. 만화가협회 창립 50주년 기념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최경아, 이빈, 단지 작가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말했더니 “함께 얘기하면 더 재미있겠다”고 흔쾌히 허락해줬다. 얼마 후 단체 채팅방을 열었고, 각자의 마감이 겹치지 않는 토요일 저녁으로 디데이(D-Day)를 잡았다. 세 작가는 종종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는 사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최경아 작가와 맥주를 좋아하는 이빈 작가는 데뷔 연도가 같은 오랜 친구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언니들인데, 역시 걸크러시 후배인 단지 작가와도 돈독하게 만난다.

지난 2일 홍대 어느 바에서 이뤄진 세 작가와의 인터뷰는 유쾌했고, 놀라웠다. 사실, 나라는 인터뷰어는 별로 필요 없는 자리였다.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아도 대화는 잘 흘러갔고 중간중간 ‘한국 웹툰의 역사’에 관해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도 꽤 나왔다. 그 살아 있는 증언들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느라 바빴다. 인터뷰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눠 이뤄졌다. 첫째는 세 작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고, 두 번째는 ‘순정만화’라는 장르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여성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술 한 잔, 아니 두 잔, 아아니 석 잔하면서 이어진,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를 공개한다.

<작가 소개>
최경아 작가: 1991년, ‘겨울나비’로 데뷔했다. 이후 만화잡지 파티에 ‘사랑나와라 뚝딱’을 연재하며 사랑받기 시작했고, 잡지 이슈에 ‘스노우 드롭’과 ‘비비(BiBi)’로 순정만화의 대표 주자로 올라섰다. 종이만화에서 빠르게 웹툰으로 넘어온 작가인데, 네이버웹툰에서 ‘크레이지 커피캣’과 ‘우리의 이상한 여행’ ‘우렁집사’를 완결 냈고, 현재는 ‘속삭이는 e로맨스’를 연재 중이다.

이빈 작가: 역시 1991년, 르네상스 신인 공모전을 통해 데뷔했다. 순정만화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시티나 ‘틴에이지 팬클럽’, 여고생 개그 만화 ‘걸즈(Girls)’,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 등, 새로운 스타일의 여성 주인공들로 인기를 얻었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타깃해 그린 ‘안녕 자두야’가 히트를 치면서, 최근에는 ‘자두 엄마’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단지 작가: 2007년 데뷔해 무명 시절을 겪었다. 그러나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낸 ‘단지’로 독자들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됐다. 만화 단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 깃든 폭력과 ‘정상성’이라는 신화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고,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다음웹툰에서 또 다른 일상툰 ‘방탕일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주제,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온 세 작가

BY(바이라인): 세 작가님이 모두 걸어온 길이 약간 다른데요. 최경아 작가는 종이에서 시작해 웹툰으로 빨리 넘어왔고, 이빈 작가는 계속해 종이만화를 그리고 있죠. 그리고 단지 작가는 웹툰으로 시작했고요. 이빈 작가님께 먼저 묻고 싶어요, 계속 종이만화를 그리시는 이유가 있나요?

안녕 자두야의 이빈 작가가 보낸 캐리커처.

이빈: 나는 자두 때문에, 자두가 본업이 됐으니까(웃음). 그때는 이제 ‘안녕 자두야’가 애니메이션 화가 되면서 계속 원작을 만들어야 하니까. 종이 만화로 그리면 컬러링을 해서 학습만화로 나가니까 원작을 만들기 위해서 오랫동안 해왔지.

BY: 반강제로 종이만화를 하고 계신 거군요(웃음). 그런데 지금 웹툰 준비를 하고 계시잖아요, 그건 어떤 거예요?

이빈웹툰 준비를 하는 건, 나이도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 10년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아가지고. 하고 싶은 걸 해보려고. 자두만 그리는 게 지겹기도 하고.

BY: 최경아 작가님께서는 조금 일찍 웹툰으로 옮겨 오셨잖아요? 크레이지 커피캣이 처음이었던가요?

최경아: 종이만화만 할 때는 흑백이었는데, 내가 컬러를 굉장히 좋아했어. 웹툰이 생겼을 때 올컬러에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어. 그래서 도전을 하게 됐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웹툰에 최적화한 컴퓨터 작업도 하게 됐지.

최경아 작가는 엄재경 작가와 부부 사이다. 이날 인터뷰에 (뒤풀이를 노리고) 동행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엄 작가가 한  마디 했다. “내가 설득을 했지” [관련기사] 엄재경, 게임판에서 더 유명한 만화가

최경아: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 종이 만화는 저물어가는 구조? 특히나 작가 생태의 구조가 안 좋았어. 우리한테 전속 계약이라는 안 좋은 계약서를 출판사가 내밀기 시작했지. 독점 계약. 계약금도 없는 독점.

BY: 잡지사에서요? 계약금도 없이요?

최경아: 그걸 신인부터 시작을 한 거야. 우리가 싸움을 하기도 했었는데, “불공정거래다. 이렇게 독점이 될 수 있느냐”라고. 거기에 인터넷 판권도 들어 있는 거야. 이건 할 수 없다, 배분도 그렇고.

이빈지금 웹툰도 작가마다 계약이 다르거든. 잘 알아보고 계약해야지. 만화가협회에 연락하면 계약서를 검토해주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는 게 좋지.

최경아: 이것도 작가의 데뷔 통로 중 하나가 된 거지. 만약에 공모전이나 베도(베스트도전) 이런 데로 들어오면 그 정도는 아닌데, 잘못된 에이전시를 선택하게 되면 그런 경우가 생기지. 그때 나는 컬러 만화에 도전하고 싶었다는 게 순수한 의도였어. 왜냐면 그때 웹툰이 유료가 아니라 무조건 공짜였거든, 다.

 

네이버웹툰에 ‘속삭이는 e로맨스’를 연재중인 최경아 작가가 보내온 캐리커처

 

BY: 유료 시장 생긴 지가 얼마 안 됐죠?

최경아: 고료 받고 했는데, 사실 고료가 적었어.

BY: 그때는 지금처럼 트래픽이 많이 나올 때가 아니었으니까,

단지: 트래픽은 비슷했을 텐데? 시장이 형성이 안 된 거지

이빈: 맨 처음에 웹툰을 시작한 게 야후야, 야후.

단지: 맞아, 야후가 있었다!

이빈: 지금은 (야후코리아가) 철수했지만, 야후가 웹툰을 시작을 했고. 그 전에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어도비 사가 우리나라에서 웹툰 사업을 시작했었다.

BY: 오, 그건 모르는 얘기에요

이빈: 그래서 그때 작가들한테 전속 계약금을 주기도 했었어. 그런데 잘 나가는 작가들한테 계약금을 주고 계약을 했는데, 이후에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을 했나 봐. 시작도 안 해보고 접었어.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안 하더라.

일동: 우와

이빈: 그다음에 나온 게 네이버.

옆에 있던 엄재경 작가가 불쑥 말을 던졌다. “아니 그럼 강풀이나 조석 작가보다도 야후의 웹툰이 더 먼저였다고?”

이빈: 야후 웹툰이 더 먼저예요. 조석 작가는 마음의 소리를 자기 블로그에 연재했었어요. 제가 팬이어서 알거든요. 주호민 작가의 병영일기도 블로그에 올렸었고요.

단지: 제 기억엔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가 2003년인가, 2004년이었는데. 그다음에 파란이 론칭을 막 했고, * 2004년이 맞습니다

이빈: 맞아, 파란도 있었어.

최경아: 강풀 작가가 인기가 있었지.

이빈: 네이버가 지금은 원톱이지만 그때는 다음이 인기가 있었고, 좋은 작가가 있었지.

BY: 얘기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네요(웃음).

이빈: 이 시장이 정말 빨리빨리 변하기 때문에,

최경아: 굳이 종이만화 시대, 신인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무궁무진하지.

BY: 그 얘기 또 나중에 한 번 들어야겠네요! 단지 작가 같은 경우에는 웹툰으로 시작했잖아요?

단지: 그렇죠, 저는 웹이죠.

BY: 그때는 선택의 여지는 따로 없었을 것 같은데요, 굳이 종이만화를 할 이유가…

단지: 접근성이 다르니까. 종이만화는 투고라는 개념이, 종이를 들고 가서 “제 만화 어때요”를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웹툰은 베도에 막 올리면 피드백이 오니까. 실제로 베도에서 그리다가 컨택이 되기도 했고. 우리는 굳이 출판사에 찾아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세대였던 거죠. 접근성은 좋았죠. 그런데 그만큼 너무 싼 인력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이빈: 웹 전에는 어떻게 됐냐면, 폴더폰 시대에도 네이트나 이런 데서 만화 서비스를 했었어. 나 그거 맨 처음에 시작을 했었거든? 그거는 도트를 찍었어.

단지: 그리는 게 아니라 도트를 찍어서 했어요?

이빈: 내가 요즘 강의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서 자세히 아는데. 스티브 잡스에게 모두 감사해야 하는 거야. 폴더폰 시대에는 네이트 이런 데 접속을 해서 과금이 장난이 아니었어. 우리나라가 원래 와이파이 서비스를 안 하려고 했대. 다 애플 덕분이지. 아마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작업은 내가 제일 처음 했을 거야. 1996년인가, 디지털 원고를 한 데이터를 들고 충무로까지 갔었어. 드럼 스캐너와 드럼 프린터로 출력을 하는 데 한 장 당 만원이야.

단지: 자비로?

 

다음웹툰에 ‘방탕일기’를 연재 중인 단지 작가가 보내온 캐리커처.

이빈: 응, 자비로. 컴퓨터로 출력해서 가지고 가면 인쇄를 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출판사에서) 싫어하는 거야. 돈이 이중으로 들고 작업이 힘들다고. 그래서 중간에 잠깐 접었다가 다시 시작한 거지. 사람들이 손으로 그렸다고 생각한 내 옛날 작품 ‘원(One)’이나 이런 게 다 디지털이야. 지금 보면 티도 엄청나. 컬러링 같은 거 보면 다 에어브러시로 촌스럽게(웃음). 그게 1997년에 처음 연재 시작했거든? 경아 언니도 그때 출판사에서 작품을 했지만, 디지털로 하는 걸 출판사에서 싫어했어.

BY: 오, 작가님도 그때 디지털 작품을 하셨었나요? 어떤 작품인가요?

최경아: 스노우드롭. 막판에.

BY: 완전히 웹으로 넘어오기 전의 단계네요. 디지털 작업으로 충무로 시스템이 바뀌는 시대이기도 했고요.

최경아: 나는 신인 때 톤값이 너무 비싸서, 아마 386 컴퓨터일 거야. 그라데이션 종이를 인쇄하는데 한 세 시간 걸렸나? 한 장에. 그때 그래서 포기했었지.

이빈: 내가 그 디지털 작업하는 방법 언니들한테 전수했었어. 책까지 냈었어, 작법. 편집자가 내는 책에 조언을 준거지.

BY: 오 진짜요? 마지막까지 종이를 고수하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까 가장 먼저 시작을 하신 거군요.

최경아: 안녕 자두야가 너무 잘됐어(모두 웃음).

BY: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인 ‘순정만화’로 넘어가려고 하는데요. 그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예전에는 문하생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요즘엔 어떻게 데뷔를 하는지 궁금해서요.

단지: 요즘에는 근데, 고정관념적으로는 사람들이 다 대학 가서 배우잖아요. 대학에도 이제 만화학과가 많아요. 유명한 데로 청강대가 있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대학교? 아니면 전문학원도 많이 생겼고. 그런 거 아니면 혼자 하는 것도.

베도! 베도가 제일 쉬운 것 같아요. 접근성은. 나 어떤 지망생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PD들은 자기들 공개되어 있는 메일로 원고가 들어오는 것을 안 좋아한대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이미 인스타나 베도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그런 걸 안 하고 우리한테 직접 메일을 보낸다? 그러면 자기들은 그게 더 호감이 안 간대. 어떤 식으로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을 선호하나봐. 베도나 인스타 등.

BY: 검증이 약간이라도 된 사람을 선호한다는?

단지: 어, 그 소리 듣고 깜짝 놀랐어. 왜냐면 나 때는 베도 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너무 많은 거야. 인스타도 있고, 내 생각에는 오히려 PD에 보내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봐요.

최경아: 내가 PD라도 그럴 것 같다

이빈: 지금은 또 웹툰에서 유튜브로 갈 거라고, 흐름이.

BY: 유튜브로 만화를 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일까요?

이빈: 내 생각에는 보는 방식이 다른 플랫폼을 만들지 않을까? 동영상이 아니라. 아니면, 어저께 작가 모임에서 들었는데 다시 페이지 만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 왜냐면, ‘폴드’ 폰이 나오잖아. 양쪽으로 된 페이지 만화가 될 수도 있지. 다시 한번 혁신이 또 이뤄지는 것도 가능하고.

단지: 난 개인적으로 페이지 만화가 더 좋아요. 컷 구성도 그렇고.

BY: 페이지 만화가 더 좋은 이유가 있을까요?

단지: 취향 아닌가? 그리는 입장에서는, 웹툰은 거의 연출 방식 자체가 고정되어 있잖아요, 컷이. 그런데 페이지 만화는 그 안에서 쪼갠단 말이에요.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쪼개는 게 더 재밌어요.

이빈: 아마존 킨들로 전자책을 많이 보는데, E-book(전자책)은 스크롤 방식이 아니란 말이에요. 아직 넘겨서 보게 되어 있어. 인간이 가장 보기 편한 방식이 그게 아닌가,

두 번째 주제, 순정만화

BY: 오랫동안 순정만화를 그려오셨고, 앞으로도 그리실 테니까. 꾸준히 그렸고 사랑받아 오셨는데 2000년대 초랑 지금이랑 순정만화에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시대상이 달라졌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하시는 부분이 있는지요.

최경아:  로맨스나 판타지를 녹여내는 데에 작가가 스스로 재밌다고 느끼는 것이나 자기의 경험이 많이 들어갈 거야. 그렇다면 지금하고 첫 번째로 다른 것이 뭐겠어? 여성상. 차별대우나 이런 것을 작가들이 너무나 고민이 되는 거야. 대사 한 마디 쓸 때마다.

단지: 댓글들이 너무 날카로와.

최경아: 많이 고민을 하는게 뭐냐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시대에 갇혀 있었구나. 우리 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그때 분노했던 거를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착잡하더라고.  나도 모르게 사회에 찌들어서 타협했구나, 이런 것들이 생각되면서. 그래, 솔직히 우리가 속물근성이 다 있어.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로맨스를 시작하려고 했었어. 이번에 시작한 ‘속삭이는 e로맨스’도 처음에 그랬는데, 그랬더니 너무 담백하다고 하나? 너무 밋밋한? 너무 착한?

이빈: 임팩트가 없는 거죠?

최경아: 아무 내용도 넣을 수가 없는 거야. 얘는 독립적이고 소탈해. 패션도 일부러 털털하게 했어. 그랬더니 댓글에 “얘, 무슨 오덕 옷이네” 이러는 거야. (일동 웃음). 나는 평범한 인간을 그린 건데, 내가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또 나랑은 다른 층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솔직히 100% 어떤 정의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공부하면서 추구하고자 하는 거를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간과한 건, 내 팬들은 나랑 같이 나이를 먹었다는 거지. 새로운 유저가 아니라. 새로운 유저는 그들대로 (또래의 작가를) 따라가는 거지. 공감도가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나를 좋아하는 팬들은 옛날의 향수, 그런 거로 나를 좋아할 수 있어. 어쨌든 첫 번째로 잃지 않는 것은 로맨스에 대한 나의 판타지.

이빈: 맞어,

최경아: 우린 그걸 그리고 있지 않나.

BY: 순정만화는 작가님들이 각자 가진 판타지를 그리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빈: 나는 언니랑은 약간 반대의 이야기를 내놓겠는데,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왜냐면 내가 나름대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의 반항의 아이콘이었어.

BY: 아, 맞아요!

이빈: ‘Girls(걸즈)’를 할 때 내 모토가 남자주인공이 안 나오는, 여자 주인공만 나오는 만화를 그려보자였거든. 나름대로 나는 그당시에 앞서가는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을 해. 우리 중고등학교 하이틴 로맨스가 굉장히 유행했었어. 문고판으로. 애들이 그걸 다 읽을 때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재벌인 남자 주인공과 대부분 여자들은 비서야.

BY: 요새도 그러지 않나요?

이빈: 내가 얘기한 게 그거야. 당시에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딱 한 번 읽고 덮어 버렸어. 만화 판에 들어와서 나는 굉장히 혁신적이고, 여자가 먼저 키스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 그런데 독자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나는 주류가 아닌 거야. 원래 인기 작가가 아니었고, 처음에 굉장히 비주류 작가였어. 비주류 작가로서 쓴맛을 보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자, 그래서 바꾼 거지. 그것도 그 당시에는 나름 파격이었던 거지.

그때도 지금하고 똑같애. 지금 ‘회귀물’ 유행하잖아? 그때도 그랬어. 정신 차려 보니까 어느 날 나는 어느 나라 공주고, 그런 게 주류였어. 그때도 이미 남자 주인공은 재벌이고 사장이었고, 여자 주인공은 티격태격하는 사원, 비서. 이런 거였던 거야. 나는 그게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순정만화를 하러 돌아와 보니 이 판이 똑같은 거야. 그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설정이.

최경아: 설정은 영원해,

이빈: 옛날에 편집 회의 들어가면 편집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 만화를 보는 독자가 되어 생각해보라고. 판타지를 꿈꾸는 소녀들이 만화를 많이 본다, 물론 네 만화가 인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같이 그런 만화를 수많은 독자는 원하지 않는다라고.

BY현실도 팍팍한데 만화에서까지 팍팍한 게 싫다, 이런 거겠죠?

최경아: 그런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대중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지

BY우리가 보기에 좋은 만화나 드라마가 판매량이나 시청률이 적게 나오는 경향이 있죠

이빈: 내가 ‘브론테 자매’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해. 폭풍의 언덕이라든가, 제인에어라든가. 지금 보면 명작이지만 그 당시에는 하이틴 로맨스야. 어느 문학 평론에서 봤는데, 브론테 자매의 소설이 당시에는 조롱을 당했대, 통속 소설이라고. 근데 사실 지금의 로맨스 소설과 순정만화의 교본이거든. 여자들이 꿈꾸는 판타지와 로맨스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최경아: 현실 로맨스라고 했을 경우, 이게 무슨 서로 칼싸움하는 내용도 아니고 용자를 꿈꾸는 게 아니니 당연히 어떤 설정을 넣겠어, 우여곡절의 러브 스토리라는 거지. 그러니 당연히 계급의 관계라거나, 로맨스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거야, 사실은.

이빈: 히트의 요소 같은 게 있잖아. 오늘도 내가 강의를 하고 왔는데, 애들한테 마지막에 질문을 던졌어. “나중에 만화가는 과연 없어질 것인가? AI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릴 수 있을까?” 애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을 했는데, 이미 스토리 분야에서는 AI가 쓰거든. 왜냐면, 클리셰가 있잖아. 클리셰를 합쳐서 만들면 재밌어. 히트해.

최경아: 클리셰가 없으면 싫어해. 간단히 생각해봐. 내가 어떤 영화를 보거나 할 때, 클리셰가 없는지. 클리셰가 없는 걸 찾아낸다면 다큐(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은데.

이빈: 심지어 다큐에도 클리셰가 있어.

최경아: 하다못해 뉴스도 그래.

이빈: 긴 세월 동안 모든 독자가 좋아하는 스토리 라인이 있거든. 그걸 갖다가 함축한 게 ‘캔디캔디’인 거지. 가난하고 고아인 여주인공. 그를 둘러싼 도와주는 잘생긴 남자들. 중간에 첫사랑이 꼭 죽어야 하고.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어. 그것들을 모두 넣어야 하는 거야.

최경아: 그걸 대입시키면 모든 장르가 다 그래, 사실.

이빈: 우리도 알고는 있는데 잘 안 되는 게 현실이지.

최경아: 나도 처음에 로맨스 작가가 아니었어. 판타지를 했어. 그것도 신인이. 그래서 폭망(완전히 망함)을 했네? 그래도 판타지 연재를 했었어, 잡지에다가. 나름 반응은 신인치곤 괜찮았는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을 해봤어. 내가 돈을 주고 만화를 본다, 그럼 나는 판타지 안 볼 것 같아. 사랑 이야기가 달달하고.

 

그리고, 인터뷰 진행 현장.

BY: 방탕일기도 굳이 따지자면 로맨스가 들어 있지 않나요?

단지: 나는 사실 로맨스는 아니죠. 뭐라 그래야 하지? 사랑 이야기가 그 안에 있긴 한데. 사랑 이야기는 다음 후속작을 그린다면 거기에 들어갈 것 같고. 지금 그리는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가 주된 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스토리 안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요만큼(아주 작게) 들어가는 거죠. 나는 당연히 사람들이, 제목도 ‘일기’ 잖아요. 100% 생활툰으로 알겠지, 했는데 댓글들이 “이거 실화인가요?”라는 거야.

BY: 이렇게 솔직하게 그릴 거라고 생각을 안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단지: 그래서 친절하게 남겼지. “제 얘기입니다” (웃음). “자서전이에요” 하고.

이빈: 나는 단지 만화가 일상툰이라기보다, 극복물이라고 생각해

단지: 맞아요!

이빈: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게 감정이입을 해야 되거든, 모든 창작물에. 감정이입을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려 있어.

단지: 진짜, 언니들이 이야기했잖아요. 모든 대중적인 만화는 로맨스가 있어. 나는 전작도 그렇고 지금 작품도 그렇고 로맨스가 주된 이야기는 아니란 말야. 나는, 나 스스로도 알아요. 나는 A급 작가는 아니야, 대중적인 작가는 아닌 거야. 요만큼의 소수 독자를 끌고 가겠다, 이런 마인드인 거지.

이빈: 그것만 만족시켜도 성공한 인생이야.

단지: 나는 그러고 싶어요. 로맨스가 주되진 않지만,

이빈: 소수를 위한 취향도 있어야 하는 거지.

최경아: 요즘에는 웹툰을 보러 들어가서 하나만 보지 않아.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다 보잖아.

BY: 로맨스가 갖는 효용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단지: 재밌다?

최경아: 힐링? 좋은 음악 듣고 싶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빈: 판타지. 그거 아니면 심심풀이 땅콩?

최경아: 아니, 이 현대사회가 얼마나 무료해, 각박하고. 현실은 너무 가혹해!

단지: 내가 못하는 걸 만화로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거지. 만화 같은 로맨스를 하기 너무 힘들어! 미디어를 보고 만족하는 거지

최경아: 미디어에도 이젠 로맨스가 없어, 넷플릭스를 봐봐, 다 자극적인 거지.

단지: 세대가 확실히 변하긴 했어,

최경아: 로맨스 하나 갖고는 안 되니까. 순정만화라고 해도 그 안에 장르가 다 들어가 있지.

이빈: 나는 그거를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해줄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하거든. 지금 일반적이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스릴러나 호러물이래. 순정 만화나 로맨스에도 호러나 스릴러를 넣으면 집중도가 높아질 수 있는 거지. 수업할 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거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라, 스릴러도 좋고.

최경아: 그렇게 해서 나온 이야기에 독자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한 마디를 하면 보람을 느끼는 거지. 이 로맨스가 1도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아이디어를 쥐어짠 보람!

BY: 아이디어는 어디서 짜세요?

이빈: 나는 옛날부터 학생들이 주된 독자층인데, 지금은 주부도 계시고. 로맨스를 꿈꾸지 않는 상황이니까.

최경아: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냐고! 말을 돌리는데? (모두 웃음)

이빈: 창작자의 기본이 뭐냐고 질문을 많이 던지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많이 해. 우리 어릴 때 인기 있던 ‘캔디캔디’가 끝났을 때, 그게 미완성인거야. 사실은 그게 되게 완성도가 높은 끝인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 뒤편이 나오기 시작했어. 어떻게 보면 속편 개념으로. 그 시절에 잘 나갔던 작가들이 그 뒤편을 그리신거야. 지금으로 보면 팬심? 동인지? 같았던 거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거야, 작품을 보면서 결말이. 그래서 나는 많은 책이나 드라마를 보고 불만족 하라고 말해. 불만족하면 창작욕과 창작물이 나온다. 로맨스가 없는 생활이니까(웃음).

최경아: 다른 창작자한테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극을 받는다고 하지. 그게 최고야.

BY반대로, 겪은 것만 쓰시는 분! 본인의 이야기가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단지: 어, 당연히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부담스럽지만 이것을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하는 것 중에 과연 어느 게 나한테 더 위로가 되느냐를 생각하면 부담이 되지만 말하는 것이 더 나한테는 위로에요.

최경아: 단지 멋있다!

이빈: 스스로 자기가 작품을 통해서 극복을 한 거 같아

단지: 어, 그래서 첫 번째 작품은 너무나 말하고 싶었고. 두 번째 지금 연재하는 거는, 사실은 고민을 조금 했어요. 왜냐면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BY: 가까운 과거이기도 하고요.

단지: 그렇죠. 1~2년 전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전작의 내가 이런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방탕일기를 그리면서 “이런 사람이기도 해”라는 걸 보여주면서 “너네도 한 번 생각해봐, 이렇게 살 수도 있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세 번째 주제, 여성 작가

BY: 여성 작가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을까요? 혹은 제약이라던가?

최경아: 옛날이 심했지. 성차별에 있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당한 사람인데, 작가라는 길은 성차별이 가장 없는 곳이라고 생각을 했었어. 회사랑 얼굴 볼 일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었지. 남자 작가와 여자 작가의 고료가 달랐어.

단지: 어, 그거 웹툰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잖아요.

최경아: (그 당시에) 고료가 남자는 3만원이었고, 여자는 2만원, 2만5000원으로 깎았어.

이빈: 그게 왜 그랬냐면 남자 작가들은 나중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서 가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장 비용을 더한 거야.

최경아: 그리고 우리 때는 그런 게 있었어. “여자 작가들은 일을 못 할 것이다. 체력적으로 나가떨어질 것이다” 이게 사회 전반적인 추세였어. 네가 하면 얼마나 해? 그렇게. 우리는 그걸 오기로 버틴 사람들이었어.

이빈: 언니하고 나하고 만나면 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결혼해서 애 키우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작가가 많이 없어, 우리 주변에서. 우리보다 인기 많고 잘 나가고 잘 버는 작가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경단녀가 된 거야. 결혼하고 애 키우고 하면서, 이게 (작업을) 할 수가 없거든.

BY: 일반 직장만 복직이 어렵다고 생각을 했고, 작가는 프리랜서라 경력단절이 덜 할 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않네요

최경아: 연재중단을 하면 다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이빈: 24시간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해.

BY: 기본적으로 노동 시간이 일반 직장인보다 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겠군요.

최경아: 그리고, 일단 쉬면은 아이디어가 잘 나올 것 같지? 안 그래. 감을 잃어버린다가 첫 번째야. 그림도 실력이 떨어져.

단지: 손이 굳어.

이빈: 지금도 오랜만에 나온 작가가 모 플랫폼에 원고를 넣었는데 콘티만 보고 이 작가가 몇 살이냐, 나이가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야. 옛날에도, 아이를 낳아서 초등학교 보낼 때까지는 자유롭지가 않으니까 연재를 쉬었다가 그 이후에 다시 복귀를 하면, 악플이 와요. 지금만 악플이 있는지 알지? 그때도 똑같았어, 악플이 와 편지로. 더 무섭게. 나 혈서도 받아봤어. 그런데 사랑한다는 혈서였어. (웃음)

BY: (사랑한다는 거는) 좋은 거긴 한데, 무섭네요. 이제 몇 가지 공통질문을 하고 마칠게요. 최근에 하시는 고민이 있다면요?

최경아: 내가 한 30년을 만화를 하는 데 다 좋아, 다 좋은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아. 첫 번째, 힘든 게 어깨랑 허리. 그러다 못 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고. 진짜 노가다 아닌가 싶은데 정신적으로도 아이디어 만드는 게 힘들지만 그건 뭐 직업이니까 그렇다고 쳐. 그런데 너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바로 어깨야.

단지: (이빈 작가를 돌아보며) 언니도 어깨 안 좋아요? 허리도?

이빈: 나도 수술도 하고 했지. 허리 측만은 누구나 있고. 우리는 어깨가 가장 문제야.

최경아: 어깨 염증은 치료를 해도 재발을 해. 그게 제일 억울하더라고.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하는데 어깨가 잘 안 되는 게 너무 억울해. 두 번째로는, 아이디어가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안 되지 않나. 이제는 연재를 빡세게 하기보다, 천천히 모아서 한꺼번에 발표하는. 그것이 나의 최대의 고민이지.

BY: 계속 작품을 하시되, 연재라기보다 여유를 갖고 완결된 작품을 내는 것, 넷플릭스에서 통으로 드라마를 내듯이요?

최경아: 과연 가능할까? 지금은 불가능해. 한 번도 그런 경우가 없었어. 근데 한다면 나를 위해서도 그게 제일 좋지 않을까?

이빈: 언니는 (가능할 거야). 세이브도 많고 정말 성실해. 나는 현실적인 고민은, 사춘기에 들어선 나의 아들. (일동 웃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고, 방문을 걸어 잠근 나의 아들.

나는 오랫동안 자두만 한 거지. 그런데 이 상황이 모든 만화가의 꿈이었던 거예요. 예전엔 한 달에 일고여덟 꼭지를 마감하면서 말도 못 하게 힘들었거든. 내 소원이 그거였어, 로열티 받는 만화 하나 빵 터져서 일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늘이 도와서 자두가 나와서, 내가 만화 안 그리고도 애니메이션이 히트를 치고 다른 제품도 팔리면서, 만화를 안 그려도 생활이 되는 거지. 그게 행복할 줄 알았어. 그게 한 10년 정도 된 것 같아, 자두만 그린 지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공허한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었던 건데, 이것만 하니까. 이건 말하자면 만들어진 게 있어, 착한 만화, 아동 만화. 그런데 내가 하고픈 게 있는데 안 했으니 행복하지 않았던 거야. 이제 나이가 되면서 여기저기 강의를 나가면서 학생들을 보니, 나라면 어떻게 할 텐데, 이런 마음이 나오더라고. 그래서 나는 다시 로맨스 만화, 순정 만화를 하려는 거야.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그게 고민인 거지(웃음).

단지: 저는 연재 들어간 지 이제 딱 2주째잖아요(*현재 시점으로 3주). 사실은 아직도 그게 안 잡혔어요. 스케줄이라고 해야 하나?

최경아: 리듬감?

단지: 리듬이 안 잡힌 거야. 너무 걱정이 되는 거는 이러다가 정말 종일 원고만 하고 있을 것 같은 거야, 시간이. 지금 최대 이슈가 그거에요. 어떻게 하면 워라밸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정말 하루에 다섯 시간만 일하고 싶어.

최경아: 넌 꿈이 크구나. (일동 웃음)

단지: 너는 계획이 있구나, (웃음). 왜냐면, 언니는 공무원처럼 일한대요, 하루에 딱 여섯시간 일한대. 근데 이거는 정말 이상적인 거고. 웬만한 작가들은 열 시간, 열두시간 일하거든요. 자기의 노력을 적당히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걸 할 줄 모르는 거야, 작가들이. 그래서 뼈를 깎아서 원고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면 건강이 날아가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나는 체계적으로 일하지 않았거든요. 콘티 갈아 엎고,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이빈: 오래 하면 돼

단지: 오래? 오래 하고 싶지 않다고요(웃음)

이빈: 아니, 작품을.

단지: 나도 인세 받고 싶다!

이빈: 그렇다고 행복한 작가 생활은 아니었다고.

단지: 맞아, 돈 번다고 다 행복하지는 않아

이빈: 그래도 놀 때는 좋았어, 외국에서도 살아보고(웃음).

BY: 이제 물어볼 게 앞으로의 계획과, 후배들에게 할 조언 두 개가 남았네요.

단지: 계획이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게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의 연재를 생각하고 있는데, 휴재 없이 무사히 연재하는 게 일단은 목표고. 아무래도 내 얘기다 보니, 리플에 약간씩 반응을 안 할 수가 없는데 그런 거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처음에 생각한 대로 잘 이끌어 나가는 게 목표예요.

최경아: 나는 이제 연재를 하는 것보다, 수작업으로 다시 돌아가서 정말 하고 싶었던, 신인 때 못했던 판타지를 다시 도전을 해보자. 나는 어차피 지금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거는 매일 공무원처럼 일하도록 버릇을 들여왔기 때문에 고거만 유지하면 가능할 것 같아.

단지: 정말 성실해

최경아: 고거만 나 자신을 잘 컨트롤 해서 해보는 게 나의 계획이야.

이빈: 아까 말한 것처럼 진짜 간만에, -나의 부업이었는데 본업이 된 자두 말고- 본업인 순정만화로 10년 만에 돌아왔는데 새 작품을 잘하고, 사실 지금도 팬들하고 돈독한데. 나는 중학생 때 만난 팬이 있는데 지금도 따로 만나.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나를 기다려준 팬들이 있는 거야. 실망시키지 않게 재미있는 콘텐츠로 보답을 해야 할 텐데.

BY: 이빈 작가님 만화는 정말 ‘또라이’가 많았어요. (웃음). 그 또라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이빈: 또라이 만화라서 그런지, 나는 사실 학교 다닐 때 굉장히 범생이었어. 초중고 다 반장하고 학생회장하고, 지도부였고.

최경아: 성향이 반대로 간다니까.

이빈: 천계영 씨 만화를 봐도 굉장히 파격적인데, 천계영 작가는 굉장히 범생이거든. 내 만화도 범생이들이 굉장히 좋아해.

BY자, 마지막으로 작가들, 특히 여성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하나 해주세요

최경아: 네이버 작가만 해도 여성 비율이 더 높다고 해. 연말 파티 같은 것도 가 보면 여성 작가들이 많아. 뿌듯하더라고. 잘 그릴 수 있는 여건이 공평하고, 주어진 것도 많고.

내 개인적으로는 남녀를 떠나서 해주고픈 말은, 성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든 면에서. 내가 실수했던 것들이 그거거든. 무언가를 생각했을 때, 성급하게 빨리 잘됐으면 좋겠다고 누구나 생각하잖아. 그래서 자신을 불태워. 버닝을 해. 그 결과는 진짜 체력 고갈. 병을 얻어. 그러면 진짜 남는 게 없어. 두 번째로, 그 버닝을 한 결과가 연중(연재중단)을 해. 짧게 끝낸다고. 댓글에 못 이겨서 “다른 작품으로 승부 낼 거야” 라고. 어떻게 보면 젊어서 할 수 있는 결정이지만, 사실 작품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긴 호흡으로 한 번 더 깊게 생각한 후 결정해야 해. 자신을 책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운동을 하라(웃음).

이빈: 언니는 운동 전도사야. 나도 언니랑 데뷔 연도가 똑같아. 1991년도야. 오래 한 작가로서 말하고 싶은데, 건강 챙기고.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길게 봐라. 슬픈 이야기인데, 젊어서 선배들이나 동료 작가가 과로사로 돌아가신 경우가 꽤 많아. 너무 가슴 아파.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진짜, 우리 트라우마가 심했었어. 자기 작품도 좋고 불태우는 것도 좋은데 자신을 돌보면서, 작품이나 인생 모두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조절하면서 가늘고 길게 오래 가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최경아: 아, 댓글에 신경 쓰지 마라.

단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나는 후배라고 하면 현직 작가가 생각나는 게 아니라 항상 데뷔 못 한 아마추어 작가들이 먼저 생각나는 거예요. 왜냐면 내가 무명이 길어서 그런가? 그래서 항상 뜨지 못한 아마추어나, 뜨지 못한 프로도 비슷하니까. 그 친구들이 생각나는데. 저는 많이 헤맸던 것 같아요. 내가 뭘 잘하는지 몰랐던 거야. 내가 어떤 이야기에서 열정을 쏟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아마추어들은 너무 계산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작법만 배운 거야. 그래서 여기엔 뭐가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자기가 뭘 재밌어하는지 모르니까.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그런 거를 찾아보면.

난 항상 그 이야기를 해요. 저도 이래 보이지만, 데뷔가 12년이 됐어요. 중간에서 포기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길게 보고 천천히 생각하면, 죽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기회는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웃음). 너무 좀 그런가? 언젠가는 오더라고. 물론 돈 때문에 힘들 때도 있겠지만, 참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빛이 오는 날이 분명히 있다. 정말 좋아하면 포기하지 않는 게 좋지 않나?

최경아: 좋아하는 걸 찾는 게 굉장히 어렵잖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그런데 굉장히 깊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마치 유체 이탈하듯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바라보다 보면, 내가 (주로) 하고 있는 게 내가 좋아하는 거더라고. 그게 자기의 장르야.

단지: 그런데 그게 갓 스무 살이 된 사람에게는 자기 객관화가 어려워요. 많이 실패하지 않나요?

최경아: 나도 실패했었어. 실패는 꼭 해봐야 해. 실패를 해야 알아.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