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노동자’를 자기 직원처럼 부려도 되나요?

주문대행 및 배달중개 플랫폼 3사(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가 배달업무를 수행하는 라이더들을 마치 플랫폼 소속 직원처럼 부리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배달 라이더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29일 ‘3개 플랫폼사 AI 검증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플랫폼 3사가 자사 AI 배차를 이용해 플랫폼 이용자이자 긱 노동자인 배달 라이더들의 업무 날짜와 시간, 방법을 통제하고, 나아가 교통법규위반과 추가적인 감정노동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달 라이더들은 왜 AI 배차를 거부하는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라이더유니온은 소속 라이더들이 직접 참여한 플랫폼사 AI 검증 결과를 종합해 발표했다.(관련기사 : 배달기사 vs AI,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 직접 검증한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라이더들이 AI 배차에 대해 자율적으로 수락과 거절을 선택해 운행할 경우 시급 중위값이 1만6931원이었음에 반해, AI 배차를 100% 수락할 경우 1만4038원, 모든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운행할 경우 1만3421원으로 하락했다.

3개 플랫폼사 AI 배차 검증에 따른 배달 라이더 시급 차이(출처: 라이더유니온)

 

소득은 하락했지만 주행 거리는 오히려 증가했다. 자율 선택 운행의 경우 건당 평균 주행 거리가 3.8km였던 반면, AI 배차 100% 수락 운행의 경우 4.6km로 약 1km가량 증가했다. 결과발표를 담당한 박수민 연구자는 “많은 분들이 간과하시는 것이 배달 라이더가 운행을 위해 소비하는 자부담금”이라며 “3.3%의 세금, 유류비, 보험 및 렌털비, 엔진오일과 브레이크패드 등 소모품 교체비가 매일 소요되는 라이더들에게 주행 거리 증가와 소득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는 일은 생계에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3개 플랫폼사 AI 배차 검증에 따른 배달 라이더 주행 거리 차이(출처: 라이더유니온)

 

필요할 땐 ‘직원’처럼, 보험 등 근로환경은 ‘나 몰라라’?

라이더유니온이 직접 AI 배차 알고리즘 검증에 나선 근본적 이유는 ‘강제성’에 있다. 각 플랫폼이 라이더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공하는 ‘AI 배차 모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운행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정책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의 근간인 유연성과 반대되는 관리·감독이 이뤄지고 있는 한편 운행 유지를 위한 비용은 라이더들이 감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① AI 배차에 일감 몰아주기?

현장 증언을 위해 참석한 배달 라이더 A씨는 “AI 배차 기능이 없던 시절부터 배달업을 해왔다”라며 “과거에는 오히려 AI 배차 주문 건이 적었고, 후에 5:5로 비율이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AI 배차 건이 아니면 업로드되는 주문이 몇 없어 일감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 AI 배차를 강제로 사용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② 업무 방식 통제

검증 결과를 근거로 하면 AI 배차는 수익과 운행 거리 면에서 비효율을 야기한다. 때문에 라이더들은 AI 배차를 활용하면서 비효율적인 주문 건은 거부하고, 운행효율을 높일 수 있는 주문 건을 중심으로 잡는다. 그런데 이 같은 행위에 대해 플랫폼들이 페널티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AI 배차를 연속 거부하면 플랫폼 3사 모두 배달 라이더의 운행에 페널티를 부과한다”라며 “배달의 민족은 ‘배차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 문자를 보내는데, 이는 즉 일감을 주지 않겠다는 뜻의 경고와 같다. 요기요는 AI 배차 수락률에 따라 라이더 등급을 나눈다. 이를 통해 등급이 높은 라이더만 주문량이 많은 날짜와 시간에 높은 단가로 일할 수 있도록 스케줄 선점 기회를 준다. 쿠팡이츠는, 라이더들 표현으로 ‘징역’을 보내는데, 앱 사용 자체를 일주일 동안 금지한다”라고 설명했다.

요기요는 AI 배차 수락률에 따라 배달 라이더들의 등급을 나눠 차등적 혜택을 주고 있다.(출처: 라이더유니온)

 

③ 실시간 관리·감독

고객 편의를 위해 배달 라이더들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 공개하는 기능도 라이더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플랫폼과 음식점 점주, 주문 고객 모두가 라이더의 현 위치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앱상에서는 귀여운 캐릭터가 움직이지만, 라이더 입장에서는 본인이 엄연한 개인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모 배달 라이더는 “고객에게 음식을 건네는 순간 ‘왜 000(지명)에서 몇분이나 가만히 계셨어요?’라는 말을 듣는데, 기분 나쁘기보다는 무서웠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박 위원장은 “AI 배차의 기술적 한계로 이미 조리를 마친 지 10분이 넘은 주문 건을 배차받기도 한다. 놀란 나머지 최대한 빨리 음식점으로 도착해보지만, 이미 사장님 표정이 말이 아니다. ‘사장님, AI 때문에!’라고 호소해봐도 상할 대로 상해버린 감정은 어찌하지 못한다”라고 현장 경험을 증언하기도 했다.

사장님 마음이 상하는 것도, 배달 라이더가 더 속도를 내는 것도 고객이 이 둘에게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별점 평가 항목에 음식에 대한 항목, 배달 속도에 대한 항목이 존재해 평가를 매기게 되고, 플랫폼은 이를 기반으로 음식점과 라이더에게 다시금 등급을 부과한다. AI 배차 수락률과 더불어 사실상 플랫폼이 배달 라이더의 인사고과를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④ 추가적 감정노동

결국 배달 라이더는 빠른 배송을 강요받으면서 음식점과 주문 고객 모두로부터 감정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박 위원장은 이를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라고 표현했다. AI 배차는 실거리가 아닌 직선거리를 기반으로 배달 시간 및 요금을 책정하기에 표기된 배달 예정 시간과 다를 수 있다. 또 엘리베이터가 없는 또는 고장 난 건물, 오토바이 진입 금지 구역 등과 같은 갖가지 변수들을 AI 배차가 사전에 알려주지 않기에 관련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를 마냥 음식점 점주와 고객들에게 이해해 달라 감성적으로 호소할 것이 아닌, 플랫폼 운영과 업무 프로세스 차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라이더유니온의 주장이다.

라이더유니온이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⑤ 보험, 유류비, 범칙금 등은 여전히 자부담

결과적으로 강제성은 계속해서 높아지지만, 배달업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여전히 자부담으로 남아있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배달 라이더는 세금, 보험료, 유류비 등을 합해 전체 배달 수익의 16%를 운행 유지비로 지출하고 있다. 배달 속도를 위해 무리하다 발생한 범칙금 또한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라이더 각자의 운행 스타일, 체력관리 방법, 주력 지역에 대한 주행 노하우 등이 무시된 채 플랫폼이 원하는 방식의 업무를 강제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관련해 연대발언을 담당한 신필균 우분투재단 이사장은 “아직까지 배달 라이더에 대한 고용보험은 사각지대로 남아있고, 이륜차 관련 수리비 역시 표준 단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도기적 노동환경에 내몰린 배달 라이더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빠르게 제도를 개선 및 마련하도록 도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영국 우버 기사는 노동자, 판단 핵심은 ‘강제성’

영국의 우버 운전기사들은 지난 5월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영국 대형 산별노조 GMB가 우버 운전기사를 대표해 우버와 노동 조건 등을 협상할 권리를 회사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우버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위 사례가 세계 최초다. 협약에 따라 GMB는 3개월마다 한번씩 사측과 만나 근로조건, 임금 등에 대한 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

그보다 앞선 2월 영국 우버 운전기사들은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영국 대법원은 우버가 운임 등 계약조건을 일방적으로 책정하고, 운전자가 승차를 거부하면 우버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점 등을 들어 “우버 운전자는 노동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우버는 대법원 판결 후 영국 자사 운전자들에게 최저임금, 유급휴가, 연금 등 노동자 지위에 따른 권리를 보장했다.

물론 영국에는 ‘Worker’라는 특수한 지위가 있어 위와 같은 결정이 비교적 쉬울 수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관련기사 : 그래서 ‘플랫폼 종사자’가 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긱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관련 기준을 마련하고 있듯 향후 국내 배달 라이더들이 처한 환경에 맞는 지위와 법률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신승윤 기자 <yoo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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