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 vs AI,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 직접 검증한다”
배달라이더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배달 플랫폼 3사의 AI 알고리즘을 직접 검증하는 실험에 나섰다.
최근 플랫폼 3사는 AI 알고리즘 사용을 권장하며 빠른 배달과 배차 효율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라이더들은 AI 알고리즘 배차가 노동통제 및 불공정한 배달료 문제를 유발한다며 반박했다. 또 AI 알고리즘 배차를 거부하면 경고 메세지를 띄우거나(배민), 계정 정지(쿠팡이츠), 라이더 등급하락 및 배달료 차감(요기요)의 불이익을 주며, 평점 시스템을 통해 노동자를 통제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라이더유니온은 미디어 데모스와 협력해 배달 플랫폼 3사의 알고리즘 시스템을 직접 검증하고, 이를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한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은 총 3가지 방법으로 검증을 진행하며, 장소는 강남, 마포, 강동, 강북, 강서, 경기도 및 부산이다.
※ 11:30 ~ 13:00 실험에 참가하는 라이더들을 줌으로 연결, 유튜브 생중계 진행
① 6월 7일(월), AI 알고리즘이 주는 모든 배달 건을 100% 수락해서 배달
② 6월 8일(화), 평소대로 불리한 배달 건은 거절하며 배달
③ 6월 9일(수), ‘신호데이’ 설정해 교통법규를 모두 준수하여 배달
라이더유니온 측은 “오랫동안 AI알고리즘의 직선거리 기준 배달료와 배달시간이 불합리했다”라며 “산과 강, 이륜차가 갈 수 없는 도로 등을 고려하지 않아 배달회사들은 실제 이동하는 거리보다 적은 금액을 라이더에게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캡처 사진 등을 이용해 증언했고, 최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남산 뚫고 가란 소리? AI 핑계 대며 배달수수료 후려치기’로 다시 화제가 되면서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한 상황”이라고 이번 검증 실험 취지를 설명했다.
정면승부의 기록 : AI 배달 건 100% 수락
검증에 참여한 배달라이더들의 배달현황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먼저 진행된 ‘AI 알고리즘이 주는 모든 배달 건을 100% 수락해서 배달’ 검증은 시작부터 라이더들의 깊은 한숨과 함께 진행됐다. 라이더들의 주된 고충은 아래와 같다.
① 배차 거리
AI 알고리즘은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배차를 진행하지만, 중구에서 운행 중이었던 라이더는 산을 넘는 등 실거리 차이가 발생해 그만큼 시간 및 비용적 손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2~3km씩 떨어진 지역으로 픽업을 갔다가 다시 비슷한 거리를 이동해 배달하도록 반복적으로 유도하여 비효율을 극대화 시킨다는 설명이다. 실제 강서에서 시작해 배달 2건 만에 강남으로 호출받은 라이더가 있었다.
② 핀 위치 오류
배달받을 곳을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에 표시하는 ‘핀’이 엉뚱한 곳에 찍혀있는 경우. 이때 라이더는 회사 측으로 전화해 위치 수정 등 추가 작업을 요구했고, 당연히 그 사이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평점 등은 라이더가 감수해야 하는 상황.
③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라이더들이 AI 알고리즘만을 믿고서 도착한 곳이 처음 가보는 대학교, 대형 아파트 단지 또는 상가라면 주문 고객, 음식점, 배달라이더 모두가 괴롭다. GPS만 봐서는 건물 이름과 구조가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고객과 직접 통화를 하더라도 접선이 쉽지 않다. 초대형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처음 가면 키오스크가 제공하는 ‘매장 찾기’를 통해 원하는 매장 위치를 확인해야만 방문이 수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몇십분이고 헤매듯, 라이더들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 평점은 또 떨어진다.
④ 노 라이더 존
특정 건물이나 단지에는 ‘배달 라이더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AI는 그런 거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라이더를 보내고, 취소하면 패널티다. 자매품으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있는데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하필 그날 고장 난 경우에는 주문 고객과의 협상을 통해 중간 접선이 가능하다. 실제 한 라이더는 12층 배달 건을 8층 계단에서 마치기도 했다.
⑤ 늘어지는 ‘조대’
‘조대’란 조리대기의 준말로, 라이더들이 음식 픽업 전 조리를 마치기까지 대기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때 라이더들은 보통 음식점 밖에서 기다리는데, 매장 안에서 대기하는 행위를 일종의 영업 방해 또는 음식점 사장님을 닦달하는 행위가 될 수 있어 생긴 매너다. 이 조대 시간이 길어질수록 라이더는 손해를 보는데, AI 알고리즘이 조리를 마치는 시간을 맞춰주지 못하여 15분씩 기다리는 사례가 발생했다.
또 묶음배달의 경우 첫 음식을 픽업한 뒤 다음 픽업의 조대가 길어지면서 첫 음식의 주문 고객의 경우 ‘왜 라이더는 내 음식 픽업하고 여기 가만히 있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당연히 라이더 평점은 떨어질 것이고, 이런 모습이 과연 스마트 배차라고 할 수 있냐는 게 라이더의 입장이다.
⑥ 피크타임 & 똥콜
라이더들에게 점심 및 저녁 시간은 황금시간대로 주문이 몰리는 만큼 각종 프로모션 혜택을 받을 좋은 기회다. 그러나 AI 알고리즘은 이 시간에 하필 B마트 배달로 라이더를 배차했는데, B마트 배달은 픽업까지 대기시간도 긴데다 프로모션 혜택에서도 벗어나기에 누구도 원치 않는 건이다. 라이더들은 ‘AI 배차를 명목으로 기피 배달 건을 강제하는 행위’라며 ‘배달 단가를 높여 라이더를 유치하든 해야지 배달 거부 페널티를 무기로 배달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⑦ 피자를 반 접어서 넣었는데요
AI 알고리즘은 노 라이더 존 말고도, 아직까지 라이더가 보유한 배달통의 크기 및 종류와 배달할 음식의 성격을 파악해 매치할 수 없는 구조다. 관련해 다양한 사례들이 쏟아졌는데, 대왕피자를 배달통에 넣지 못해 직접 라이더가 손으로 들고 갔다던가, 음료 또는 아이스크림의 온도 문제로 분쟁이 생겼다던가 등이 대표적이다. 라이더들은 ‘라이더 스스로 콜을 잡으면 본인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구조적 문제 유무까지 검증한다
향후 라이더유니온은 차례대로 검증을 진행하고, 해당 검증을 통해 모인 데이터를 통해 플랫폼들과 개선점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오는 9일 진행 예정인 교통법규 준수 ‘신호데이’ 검증은 그간 배달 라이더들 스스로의 문제라고만 인식됐던 안전 문제가 정말 개인의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에 따른 필연적 현상인지 파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신승윤 기자> yoo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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