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졌잘싸] ④ 망할 것 같은 순간, 대표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나?
스타트업의 90%가 실패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10%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쏠립니다. 나머지 90%를 조명하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누구나 망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창업이 있다면, 폐업이 있기 마련입니다. 폐업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 단계이기도 합니다. 예비 창업자와 경영자, 투자자 그리고 폐업을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스타트업,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폐업을 하고, 또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연재 순서>
① 어떤 스타트업이 폐업을 고려하나
② 전문가에게 묻다, 스타트업이 폐업하는 법
③ 망한 스타트업 자산 삽니다, 팝니다
④ 망할 것 같은 순간, 대표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나?
스타트업을 운영 중이거나 운영해봤던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에게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 사업을 하면서 최소 한 번 이상 ‘회사가 망할 것 같은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정치, 경제와 같은 대외적 요건이든,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내부적인 요건이든 무언가에 의해 한 번쯤은 회사의 위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바이라인 네트워크>가 폐업을 했거나 폐업 직전까지 간 창업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회사가 망할 것 같은 순간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았다. 회사의 운영자금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본업에서 벗어난 일을 하고 있을 때,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 대표들은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어려운 순간을 맞이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바이라인 네트워크>가 인터뷰한 다섯 명의 창업자들은 세 가지 이유로 폐업을 했거나, 계속해서 사업을 이어갔다. 다섯 명의 창업자들이 위기가 왔을 때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례 1. 런웨이가 코 앞일 때
벤처투자사(VC) 캡스티치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를 창업해 몸 담고 있는 김형진 파트너는 지난 2008년 자동차 상태 진단 솔루션 스타트업인 카페인모터큐브를 창업했다. 그는 약 10년간 회사를 이끌었지만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해 폐업을 한 바 있다. 그는 “재무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저와 또 다른 창업자는 공대 출신으로 회사의 재무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 결국 당장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다. 기업의 현금흐름이 꾸준히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폐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중요한 것은 런웨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이사를 비롯한 창업자들은 회사의 운영자금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항시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런웨이 시기는 1년으로 늘어났다. 투자를 받더라도 주금 납입일을 고려하면 3~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만약 회사가 수익을 꾸준히 내지 못한다면, 런웨이를 더욱 보수적으로 잡고 대내외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의 회사 운영 금액을 준비하고 위기 관리를 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 위기가 닥쳤다. 런웨이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남겨둬야 한다. 요즘처럼 투자가 어려운 시기에는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스타트업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고용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창업자들이 재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쾌한프로젝트의 홍주열 대표는 과거 창업 당시, 폐업 직전까지 갔다고 얘기했다. 홍 대표는 2014년 간편식 제조 브랜드 테이스티나인을 창업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날이 갈수록 회사 운영 자금은 고갈됐다. 홍 대표는 이 때 문을 닫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전했다.
“제품을 내놨지만 고객들의 반응이 없었고 동시에 현금이 소진되면서 런웨이가 3~4개월 정도 남았다. 투자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3개월 후 회사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직원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혼자 남아 영업을 뛰었다.”
홍 대표는 직원들을 내보내 비용을 아껴가며 어렵게 회사를 운영했다. 당시 가장 컸던 비용 중 하나가 인건비였던 만큼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회사 제품이 대형마트에 입점하면서 회사는 기사회생을 하게 되었고, 홍 대표는 회사를 매각했다.
사례 2. 본업에서 벗어난 순간
핀테크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대표 A씨는 과거 소셜 앱 서비스 스타트업 창업 이력이 있다. 당시만 해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때라, A씨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렇다 할 수익모델(BM)이 없었다. 결국 A씨는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면 사업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시스템통합(SI) 외주 사업으로 손을 뻗었다.
“소셜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수익모델은 만들지 못했다. 스타트업은 사업 아이템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외주 프로젝트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 먹고 살기 위해 SI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A씨는 본업을 제쳐 두고 외주 프로젝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일손이 모자라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외주 프로젝트에 매달린 결과, A씨는 번아웃이 왔다고 털어놨다. 그 순간 A씨는 사업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었다. 외주 프로젝트를 하려고 사업을 시작한 것인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결국 사업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사실 이때 회사가 망했다고 봐야 한다. 외주 프로젝트는 회사를 살리고자 한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가 망하는 길로 들어선 것과 다름 없었다.”
게다가 당시 런웨이가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A씨는 회사 매각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운이 좋게 법인을 매각할 수 있었다. A씨는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피보팅이 아닌 이상, 본업에서 벗어나는 순간 회사의 존폐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2022년 인공지능(AI) 콘텐츠 솔루션 스타트업을 창업한 B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B씨는 서비스가 당장 돈이 되지 않자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당장 생활을 해야 했고, 제품에 들어가는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료 등을 충당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됐다. 정작 회사 제품에 시간을 쏟지 못했다. 이때 B씨는 “회사가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고백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한 돈이 필요해 일용직, 외주 등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쏟으면 내 일을 하지 못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르바이트 수익을 제품에 투자했지만 시장의 반응이 없었다. 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결국 사업을 접기로 결심했다.”
그 후 B씨는 클라우드 서비스 구독을 종료하고, 사무실을 내놨다. 현재까지 B씨의 법인은 폐업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사례3. 시장 반응이 안 좋을 때
익명을 요청한 C씨는 지난 2018년 마케팅 솔루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러나 5년 만에 회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C씨는 폐업 이유에 대해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답했다.
“제품을 만들기 전 시장조사를 할 때는 해 볼만 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제품이 나오고 목표하는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열었을 때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후 제품을 여러 차례 업데이트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다. 이때 폐업을 결심했다.”
C씨는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서비스 업데이트를 하거나, 이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면 아이템을 바꾸는 피보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러한 노력도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만약 몇 차례 피봇을 해도 안 된다면 이는 시장의 요구와 흐름을 잘못 읽었거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법인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품을 끝까지 개발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남아있는 자금을 다 쓰면 안됐다. 자금이 없을 때 폐업을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직원들에게 줄 급여, 퇴직금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렇듯 C씨는 폐업을 결심했다면 회사의 자금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만약 자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깔끔하고 명료한 정리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폐업 작업에 돌입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C씨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남아있어 직원들에게 급여, 퇴직금을 지급하고 회사를 폐업할 수 있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