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졌잘싸] ③ 망한 스타트업 자산 삽니다, 팝니다

스타트업의 90%가 실패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10%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쏠립니다. 나머지 90%를 조명하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누구나 망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창업이 있다면, 폐업이 있기 마련입니다. 폐업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 단계이기도 합니다. 예비 창업자와 경영자, 투자자 그리고 폐업을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스타트업,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폐업을 하고, 또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연재 순서>
어떤 스타트업이 폐업을 고려하나
전문가에게 묻다, 스타트업이 폐업하는 법
망한 스타트업 자산 삽니다, 팝니다

“스타트업의 90%는 어차피 망해요. 그러면 좋은 아이디어를 빨리 구현해보는 것이 낫지, 굳이 처음부터 모든 걸 직접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 필요가 있나요?”

세상 도발적 발언이다. 빌드업랩스는 폐업을 하는 스타트업으로부터 자산을 사들여 그 자산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판매하거나, 혹은 그 둘을 이어주는 이른바 ‘지적자산 업사이클 플랫폼’을 만든다. 사이트의 이름은 ‘리부트’. 사업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폐업이나 피보팅을 하려는 50여 곳의 회사가 리빌드에 매각 의사가 있는 자산을 상품으로 올렸다. 어차피 망하면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것, 자산을 매각해 재기의 비용을 마련하라는 이들의 조언이 먹혀 들었다.

팔려는 사람만 있다고 시장이 형성되진 않으니, 이들 망한 스타트업의 자산을 사려는 구매자도 있어야 한다. 빌드업랩스는 이때, 아주 유명한 경구를 꺼낸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즉, 당신이 어떤 사업을 하든 간에 서비스를 처음부터 새로 구축하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니, 굳이 그 비용을 다 들이지 말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솔루션을 사다가 고쳐 쓰라는 거다. 그렇게 아낀 시간과 비용으로 시장 테스트에 힘 쓰는 것이, 스타트업이나 기업 입장에선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확률적으로 창업 기업의 90%가 망하는 것이 현실인데? 굳이 아이디어를 상품화 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빌드업랩스는 정장현 대표(사진 왼쪽)와 한병철 CTO(가운데), 김남수 이사(오른쪽)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외 대기업에서 일했고, 컨설팅을 업으로도 삼아봤으며 창업도 해봤던 이들이다. 누구는 비즈니스 모델 구현에, 누구는 개발에, 누구는 전략 수립에 강점이 있어, 각자의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줄 수 있는 구성이라고 서로를 소개한다. 만나서 사업을 하자 마자 일년 만에 망했는데, 이들은 심지어 이 망한 상황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창업 아이템을 피보팅 하다가, 자신들의 망한 솔루션을 사겠다는 매수자를 만나면서 리빌드의 사업화를 구체화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상품화해서 마켓 테스트를 충분히 해야 사업을 접어도 빨리 접을 수 있고, 그래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면서 “그러려면 남이 서랍 안에 가지고 있는자산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구체적 비전과 현실적 전략, 폐업 기업의 현황 등을 들어봤다.

지적 자산 업사이클이라니,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게 됐나?

정장현 대표= 폐업을 하거나, 사업이 어려워져 피보팅을 고려하는 분들이 많지 않나. 우리 역시 그랬는데, 그때 우리가 가진 자신들이 너무 무가치하게 버려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도 여러 서비스를 검토했는데, 그런 것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잘못된 상품을 만들어서라기 보다 사업화를 했을 때 충분한 사이즈가 나오지 않거나, 혹은 우리가 사업하기 어려운 시장이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상품을 서비스를 잘 만드는 것과 잘 파는 건 다르다는 뜻이다. 후자의 역량이 없다면, 잘 만든 것들도 다 0원에 버려지더라. 우리가 지금 여기 서울핀테크랩에 사무실을 얻고 있는데, 여기 입주한 회사들에서도 나가는 분들을 많이 본다.

(폐업한다는 점에서) 리부트의 고객들 아닌가?

정장현 대표=  맞다. 그 분들을 보면, 이미 마케팅 채널도 어느정도 탄탄히 있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누군가한테는 필요한 자산이다. 본인들한테는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는 거고 상황이 안 되니까 다 0원에 사실상 버려지더라. 그래서 “왜 그렇게 버려야 할까?”를 생각했고,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런 사실에 많은 분들이 공감은 해줬다.

호응이 있나?

정장현 대표= 그렇다. 특히 폐업하는 분들한테는 호응이 크다. 이분들에게는 어차피 0원에 버려질 자산인데, 이렇게 판매하면 수익이 생기니까.

그런데 반대로, “누구한테, 얼마에 팔 것이냐”는 것이 더 어렵다. 관련해서 질문을 되게 많이 하시더라.

우리 생각은 이렇다. 폐업 하려는 회사의 비즈니스는 인수합병(M&A)의 관점에선 무가치할 수 있어도, 이걸 하나의 자산으로 보면 충분히 상품가치가 나온다. 이런 자산이 필요한 회사가 새로 똑같이 만들 때 드는 비용 대비, 자산 인수가 더 싸다면 충분히 시장 가치가 있다. 똑같은 걸 새로 만들 때 보다, 안 쓰는 자산을 소싱하는 비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하다면 가능성 있다고 방향을 잡았다.

게다가 이 자산에 조금 더 가치를 붙여 준다면, 상업적으로 더 유의미해지지 않겠나. 기존의 대표님들도 생각지 못했던 형태의 잠재 고객을 찾아 거래를 연결해 드리거나 하는 식으로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생각하기에 어떤 곳들이 주요 매수자인가?

정장현 대표= 창업을 준비하는 팀은 물론이고, 지금 하는 서비스가 있더라도 그에 연계한 신사업을 하려는 곳들도 많다. 또, 기업의 현업 부서에서도 특정 기능은 전부 엑셀로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우리의 타깃이다. 이런 곳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솔루션 중에서는 이미 스타트업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상권 분석 솔루션을 만든 스타트업이 있다. 프랜차이즈 창업 대표를 겨냥해 플랫폼을 개발했으나 시장에 서비스를 팔진 못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은 프랜차이즈 본사의 출점 전략 담당 팀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겠나? 기존에는 이런 팀들이 엑셀로 자료를 다운 받아 타당성 분석을 수기로 하는데, 이런 솔루션 자산을 가져다 쓰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리빌드는 어떻게 돈을 버나?

정장현 대표=  리빌드에 매물이 올라오면 이를 매수자가 구매해 산다. 적정 가격을 해당 솔루션 신규 구축에 드는 절반 정도로 매기려 한다. 중개 모델에서 우리 수수료는 매수가의 20% 정도로 책정했다. 우리가 아예 매물을 구매한 후, 매수자를 발굴해 팔기도 한다. 이때는 우리가 먼저 매물을 사들였기 때문에 판매 대금이 수익이 된다. 또, 소스코드를 굳이 한 군데서만 사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반복 판매가 일어났을 땐 40%의 수수료를 받는다.

혹은, SaaS 구독 형태로 사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인원이 적어 구독 서비스의 유지 관리가 힘에 부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 유지 관리를 할 수 있는 조직들과 파트너십을 미리 맺기도 했다.

폐업 하는 곳들을 눈여겨 볼 텐데, 주로 어떤 곳들이 요즘 폐업을 많이 하나?

정장현 대표=  매출 파이프라인을 B2C 서비스로 가진 다양한 플랫폼, 커뮤니티 서비스들이 요즘 많이 힘들다. 트래픽을 기반으로 매출을 만들어보겠다고 최근 2~3년 내에 출발했던 스타트업이 더 힘든 부분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또, 사업 형태와는 별개로 대표나 팀 구성이 어떤지에 따라 페업하는 경우도 많다. 영업이나 투자 유치를 공격적으로 하는 성향인 경우에는 매출이 좀 덜 나더라도 더 버틸 수 있는지 여부를 크게 결정하더라.

좀전에, 피보팅을 했다고 했는데. 원래는 무엇으로 창업했나?

정장현 대표=  빌드업랩스는 처음에 상업용 부동산 투자 정보를 주는 솔루션 플랫폼으로 시작했다. 1년 정도 운영하면서, 가격대가 높은 상업용 부동산은 오프라인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스스로 차별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만든 온라인 플랫폼을 이 시장에서 사업을 잘 하는 오프라인 플레이어들에게 ‘영업 지원 솔루션’으로 쓰라고 판매했다. 정확히는, SaaS 형태로 계약을 해 납품하는 형태였다.

폐업하는 자산을 매각, 수익을 내는 레퍼런스를 스스로 만들었다 

정장현 대표=  일종의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이 사례는 한 번 자산 매각에  대한 비용을 받는 것은 아니고 월 이용료 개념으로 서비스를 매수해 간 형태다. 이후에는 여러 사업모델을 테스트 해봤는데, 그중에 ‘해외 업계 전문가를 찾아 인터뷰 할 수 있도록 인재 정보를 제공하는 모델’이 있었다.

이 사업도 키워보고 싶었는데 시장 사이즈가 너무 안 나오더라. 그래서 접으려고 판단했고, 이 모델을 사갈 것 같은 잠재 매수 고객들에게 컨택을 해봤다. “우리 이거 안 하기로 했다”고 말하니, “그럼 이거 우리가 쓸테니 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지금 저희 리빌드 홈페이지 메인에 판매 사례로 올라와 있다.

옛날에는 사무실 폐업하면 책상이나 의자, 집기 같은 것만 매각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사이트에서부터 소프트웨어 서비스, 솔루션 까지 모두 매각의 대상이 되겠구나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실제로 거래될 수 있나?

정장현 대표=  지난 6월과 7월에 자산 매각을 하려는 곳들과 만나봤다. 생각보다 여러 곳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했고, 지금 기준으로는 50곳 정도에서 자산 매각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매각 의뢰가 들어와 있는 건들을 보면,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도 있다.

예를 들어 타로나 사주와 같은 것을 전문가와 전화 상담 하는 서비스들이 요즘 좀 많아졌는데, 이런 사이트들은 대체로 서비스 자체가 유사하다. 그렇다면 굳이 이 웹사이트를 새로 개발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개발돼 있는 걸 사서 로고와 색을 바꿔 쓰는 것도 방법이다. 이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망한 자산 삽니다, 팝니다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한병철 CTO= 우리는 이 사업을 ‘스타트업 장례 서비스, 상조 서비스’라고도 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이어주는 플랫폼이지만, 올라오는 상품이 일반적이지 않다. 이걸 구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진 않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 쓰나?

한병철 CTO= 매물로 나온 자산의 환경을 구매자가 원하는 환경으로 변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기존에는 그런 부분을 수작업해야 했는데 이걸 자동화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보는 것은 코드를 넣으면 알아서 코드를 분석, 필요로 하는 환경을 클라우드에서 자동으로 세팅해주고, API 까지 자동으로 연동하는 것이다.

또, 기본적으로 구매자가 사이트나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무조건 체험하게 해주자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므로, 이미 폐쇄된 사이트도 클라우드에 올려 동작하게 만들어 트라이얼 버전으로라도 체험하게끔 만드는 환경 구현 역시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장현 대표= 자동화와 관련해서는, 양측의 의뢰를 받아 거래가 성사되기 까지 ‘자실 실사 -> 가치 평가 -> 세일즈 -> 판매 계약’ 등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돌아야 한다. 그런데 자산 실사와 같은 부분은 자동화가 가능하다. 구축되어 있는 사이트의 코드를 넣으면 텍스트로 설명이 나오고, 그 설명을 우리가 고객 프렌들리하게 UX 적으로 녹여 내는 것을 고미하고 있고, 자동화를 일부 구현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어떻게 되나?

정장현 대표= 매수자 확보다. 매각 자산을 소싱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매각 자산을 사가는 사례가 생겨야 이 사이클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인식이 생길 거다.

한병철 CTO= 스타트업을 하는 분들이 팀 빌딩부터 개발까지 직접하려 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이 생긴다. 스타트업은 90% 이상은 원래 망하는데, 굳이 직접 다 가져가려 하지 말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사서 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선뜻 원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본인이 본인 거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인데, 그걸 어떻게 바꿀거냐가 우리의 고민인다.

있는 걸 사서 고쳐 쓰는 게 합리적이지만, 왠지 사서 쓰는 것이 내가 창업하는 느낌을 안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병철 CTO=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고려했으면 좋겠다. 이왕 망할거면 안전하게망하셔라, 우리의 제안대로 있던 걸 사서 쓰면 두 번 더 망할 수 있다(웃음).

(웃음) 그렇다. 비용을 절약했으니, 그 비용으로 두 번 더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장현 대표= 우리가 그랬다. 우리가 이전에 창업할 때도 서비스상으로는 거의 똑같고, 심지어는 훨씬 훌륭한 제품이 많았다. 그런데 그걸 새로 만든다고 6개월, 7개월을 썼다. 그리고는 사업을 제대로 못해 망했다. 망하는 것도 제품을 다 만들어 봐야 알 수 있는 건데, 그렇다고 이런 실패의 과정을 모두 직접 만들어가면서 겪는 것은 너무 손해이지 않나.

그러니 굳이 만들어 쓰지 말고, 누군가 만들어서 안 쓰고 있는 것, 서랍 안에 보관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있으니 그걸 쓰면 더 나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제안이다. 우리가 찾아서 제공하면 그 서비스 들 중에서 필요로 하는 걸 골라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사업을 더 확장하려는 부분도 있나?

정장현 대표= 연말까지 해외 파트너십을 만들려고 한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확보한 매물을 해외 매수자를 찾아 연결하려 한다.

한병철 CTO= 자동화 콘셉트 자체가 글로벌을 염두에 둔 거다. 이 사업의 잠재력이 터지려면(충분히 사업성을 확보하려면) 글로벌로 안 가면 의미가 없다.

정장현 대표= 내년 초부터는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새로 개발하지 말고 이거 사서  쓰세요”를 본격적으로 영업하려 한다. 연초에는 정부 지원금이 배부되는 때이지 않나.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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