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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짬바] IT 마케팅의 장인이 된 영문학도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납니다. IT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 그리고 기사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업계 내 실력자들의 얘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이런 분들을 최근 신조어로 ‘짬바’라고 칭하더군요.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유와 노련미를 뜻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일궈온 열정피플의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IT산업은 정말 빠르게 바뀌는 곳이다. 날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기업의 등장과 퇴장도 매우 빈번하다. 무언가 새로운 트렌드가 뜨는가 싶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다른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잡을 때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에 적응했다 싶으면 곧바로 또다른 변화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 쉬지 않고 변화에 대처해 나갈 때 생존할 수 있다.

SAS코리아의 마케팅을 이끌고 있는 정미교 전무는 지난 30년간 이 바닥(?)을 지켜온 인물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 인텔, 컴팩, HP, 실리콘그래픽스, SAS 등 그가 거쳐온 회사 이름만 들어도 IT의 역사나 다름없다. 이 시간 동안 당연히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에 적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가능할 것이다.

그가 IT 업계에 처음 몸을 담았을 때는 아직 인터넷도 대중화되기 이전이다. 그가 이 산업에 들어온 이후 인터넷이 보편화 됐고, Y2K라는 웃지 못할 호들갑이 있었으며, 닷컴버블이 터진 후 산업이 위축되나 싶더니 또 모바일이라는 광풍이 불었고 지금은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로 들어섰다. 모든 기업이 IT기업화 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변화를 현장에서 겪어냈다.

그는 이 시기동안 줄곧 ‘B2B 마케터’로 존재해왔다. IT 업계에서의 ‘마케팅’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트렌드를 고객의 눈높이에 맞게 전달하는 일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고, 기술과 고객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하나의 산업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30년 정도 일했다면 ‘장인’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 그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간접적으로 느껴보도록 하자.

SAS코리아 마케팅 총괄 정미교 전무

– 전무님, 안녕하세요. 전무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SAS코리아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는 정미교입니다.

– 전무님 경력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저는 썬마이크로시스템에서 출발을 했어요. 그곳에서는 스캇 맥닐리(썬마이크로시스템 공동창업자) 하고 개인적으로 얘기도 하고, 실리콘밸리 벤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 다음에는 인텔에 갔어요. 당시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인텔 인사이드’라는 마케팅 프로그램을, 저는 획기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인텔에서 일하게 됐어요. 인텔에서는 제조업 스타일의 프로세스 중심의 문화를 경험했죠.

그 다음에는 컴팩 컴퓨터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 컴팩은 노트북에서 시작해서 데스크탑 서버 제품군으로 확장하는 시기였어요. 굉장한 IT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고, 한국의 파트너 생태계를 만드는 마케팅 프로그램을 하면서 IT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에코 시스템으로 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컴팩이 HP에 합병되면서 M&A를 당하면 얼마나 서러운지 경험도 했고, HP에서 일을 하다가 실리콘그래픽스로 이직을 했습니다. 실리콘그래픽스는 정말 기술 중심의 회사였고, 전형적인 미국 기업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컴퓨터 비전 이런 거 그 때부터 슈퍼컴퓨터로 구현했었거든요.

이후에는 하드웨어의 성장이 둔화되고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되면서 SAS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SAS에서는 한국 마케팅을 하다가 그 다음에 동북아시아 마케팅을 함께 담당했고, 지금은 다시 한국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 거쳐온 회사들이 장난 아니네요. 이름만 들어도 그냥 IT의 역사군요. 원래 IT와 관련이 있는 공부를 하셨나요? 어쩌다가 IT 업계에 들어오신 거예요?

실은 영문학을 전공을 했는데요. 컴퓨터 관련된 서적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 일을 하다가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영입하는 글을 보게 됐어요.

– 설탕물 언제까지 팔 거냐?

설탕물 팔래? 세상을 바꿀래? 그 말이 제 머리에 이렇게 딱 꽂힌 거죠.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곳에 있어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IT에 왔죠.

– 처음부터 IT업계에 작심하고 들어온 거군요.

그렇죠. 당시에 제 친구들은 대부분 국내 대기업에 가거나, 공부를 계속했어요. 하지만 저는 세상은 IT가 바꿀 거라고 봤기 때문에 IT가 하고 싶었고, 또 국내 대기업에서 인턴십으로 일을 해봤는데 너무 보수적인 문화가 숨막히더라고요.

– 마케팅을 하게 된 계기는 뭐예요? 처음부터 마케팅을 하려고 했었나요?

제가 여러 IT 서적을 번역하기도 했지만 엔지니어를 할 지식까지는 없었고, 그렇다고 세일즈로 가기에는 경험도 너무 없었죠. 기술과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고객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접근할 수 있었던 분야가 마케팅이었고, 그래서 시작했죠.

– IT업계에서의 커리어가 썬마이크로시스템부터 시작이시죠? ‘저 회사에 내가 들어가야겠다’ 작심하고 들어간 건가요?

IBM이나 썬마이크로시스템의 매뉴얼이라든지 이런 걸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썬마이크로시스템에 들어갔어요.

– 썬은 지금도 전설 같은 회사인데, 그때는 어떤 회사였나요? (기자 주. 썬은 솔라리스라는 운영체제와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자바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창시한 회사로, 2010년 오라클에 인수됐다.)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 기자들이 취재 가면 그냥 쉽게 스캇 맥닐리 CEO가 직접 인터뷰하던 그런 때였죠. 스캇 맥닐리 그분은 진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시는 분이에요. 

– 인텔은 어땠나요?

인텔은 기업의 문화를 헤드쿼터부터 시작해서 말단 조직에까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 전파하는 그런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아마 1993~1994년 정도로 기억하는데 당시 본사 HR에서 한국지사에 지시가 내려왔어요. 앞으로 누구누구 부장님~ 이런 식으로 부르지 말고 서로 퍼스트네임(이름)을 부르라고요. 글로벌 정책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사장님부터 너무 당황했죠. 연장자 분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그랬더니 (HR이) 막내한테 너도 반대냐고 묻더군요. 막내는 반대 아니라는 답을 했고, 곧바로 시행됐죠.

– 지금은 우리나라도 영어 이름을 부르거나 ~님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아요.

네,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한국적 문화 색깔을 그렇게 확 빼기가 쉽지 않거든요.

– 사실상 30년 동안 하나의 일을 하신 거죠?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일단 제가 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고요. 전 한 회사에 10년이상 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10년 이상 한 회사에서 일하면 그 환경에 너무 익숙해지고 결국 나는 퇴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IT산업은 10년 사이클 내에 계속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80년대 메인프레임 중심에서 90년대초 클라이언트/서버로, 2000년에는 Y2K와 닷컴 버블로, 2006년이후에는 클라우드와 모바일 중심으로, 2020년 이후로는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으로… 이렇게 IT산업이 변화하고 요동치면서 지루함으로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거에 익숙해졌을 때 퇴보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항상 경계하려고 하는데 IT 산업은 굉장히 산업이 드라마틱한 트렌드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변화 덕분에 재미를 유지를 하면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SAS에 오신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래서 이제 제 입장을 변경해야겠네요? (웃음) 10년 이상 한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다라는 건 10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 싫다’라는 의미거든요. SAS에서는 초기에 코리아 마케팅을 했지만 중간에 동북아시아 마케팅을 경험했어요. 다양한 나라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경험하면서 그게 저에게는 새로운 변화였던 거죠.

– 많이 다른가요?

예를 들면 일본에서 한 3000명 이상 되는 컨퍼런스를 하는데, 휴식시간이 됐어요. 한국에서는 휴식시간이 되면 웅성웅성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데, 일본 분들은 너무 조용한 거예요. 다들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와서 소리없이 다시 자리에 앉는 이런 모습이 (제 입장에서는) 인상적이었죠.

– 30년 동안 이 산업에서, 이 업을 하셨는데…

30년이라는 표현이 어쩌면 저에게 독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휴,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 심 기자 님의 인터뷰 요청이니까 응한 거지, 평소 같으면 안 했을 거예요.

– 감사합니다. (웃음) 이 일을 하시는 동안 기억날 만한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Y2K 준비하던 때가 생각나요. 컴팩 컴퓨터에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1999년 12월 31일 시뮬레이션도 진짜 많이 하고, 조를 짜서 계속 밤새 컴퓨터를 지켰어요. 대단한 준비를 하는 건 아니고 (컴퓨터 옆에서) 그냥 밤새는 거예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스토리가 우리의 리소스를 얼마나 쓸데 없이 낭비 시키는가를 보았죠.  돌아보면 위험의 가능성이 있었을까, 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검증되지 않은 모든 가설은 가설일 뿐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점검하고 정말 팩트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가설일 뿐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 전 지금도 궁금해요. Y2K 대비해서 많은 회사들이 컴퓨터를 다 바꾸거나 Y2K 대비 프로젝트도 많이 했잖아요. 그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 대비를 잘한 덕분인지, 원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는데 사람들이 과잉으로 호들갑을 떤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느낌이 있어요. 저희는 시스템 아키텍처를 바꾸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순번 정해가지고 컴퓨터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를 계속 지켜봤던 거거든요.

– 혹시 IT업체들이 일부러 공포심을 자극해서 컴퓨터나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일으키려고 했던 걸까요?

그런 고민도 되죠. 그래서 계속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 Y2K 이외에 개인적으로 진행한 일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게 있다면요?

컴팩에서 e코리아 캠페인이라는 걸 했어요. ‘e코리아’라는 표현도 제가 제안한 것인데, 국내 파트너를 육성하기 위한 그런 캠페인이었어요. 컴팩코리아가 한국의 파트너 육성을 위해 (본사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국내 파트너에 재투자하는 콘셉트였어요.

저는 계속 다국적 기업에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고민도 약간 있었거든요. e코리아 캠페인을 하면서 (한국 파트너 기업에) 도움을 주고 약간의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이 될 수 있었어요.

– 마케터로 계속 일하셨는데 마케팅도 엄청나게 바뀌었잖아요. 계속 새로운 게 나오는데 이런 변화를 따라잡는 데는 문제는 없었나요?

잘 따라 못 잡고 있어요(웃음). 과거에는 투자의 개념으로 마케팅을 많이 들여다봤다면 지금은 비즈니스 임팩트가 더 중요하게 됐어요. 마케팅 예산도 많이 줄었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이 중요해졌어요. 마케팅 비용 1달러 당 얼마를 벌었느냐, 이런 게 중요한 시대가 됐죠. 어카운트 기반 마케팅이라는 콘셉트가 나왔는데, 약간 세일즈와 마케팅이 섞여 있는 형태로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또 마케팅의 많은 부분들이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어요.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섞여야 한다고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제 보스는 “SAS가 디지털 마케팅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해”라고 하죠. 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디지털만으로는 안 된다는 소신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사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 디지털 마케팅, 비즈니스 ROI, 지금의 이런 트렌드가 저랑 잘 맞지는 않아요. (웃음)

– 과거에 의견충돌이 있던 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봐 내가 맞았자나” 또는 ‘아이쿠, 내가 틀렸네” 라고 말할 만한 게 있다면요?

인텔에서 마케팅을 할 때였어요. 인텔은 하이엔드 프로세스를 시장에 계속 드라이브해야 해요. 그런데 삼성이나 LG같은 국내 컴퓨터 브랜드들이 기존 매출이 좋으니까 하이엔드로 쉽게 안 넘어가요. 그래서 인텔에서는 중견기업인 삼보컴퓨터와 협업을 많이 했어요. 삼보컴퓨터에 최신 프로세스를 탑재해서 시장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전략이죠.

사실 저는 그래도 1, 2위 브랜드와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글로벌 마케팅 팀하고 논쟁도 많이 했는데, 그런데 돌아보면 세컨 티어를 움직여서 시장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전략이 맞았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들은 제가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계기였죠.

– 요즘의 제일 큰 고민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도 있나요?

요즘은 아무래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에요. 저희가 그거를 셀링(selling)을 해야 하기도 하지만, 저희도 그걸 당하기도 해야 되거든요. 당한다는 의미는, 과거의 매니저의 역할과 지금의 역할이 너무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검토하고 승인해주고 일부 조언해주는 역할이었는데, 지금은 다 수평 구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매니저도 실무를 많이 해야 하고 업무 자체가 디지털로 진행이 됩니다. 적응해야 하는 시스템도 많고 저도 모르게 수시로 제 스케줄에 미팅 요청이 24시간 들어오니까 약간 멘붕이죠. 지금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많이 단련이 됐어요.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는데, 저에게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그런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적응이 쉽지 않아서) 불편한 점도 있는데, 좋은 점도 많아요. 저희가 하는 모든 액티비티를 투명하게 볼 수 있고, 저도 글로벌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트를 다 볼 수 있고, 제 의견을 쉽게 제시할 수도 있고… 평평해진 세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다만 그 부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도 해야 합니다.

– 억울하지는 않으세요? 옛날 선배들은 시니어가 됐을 때 도장만 찍으면 됐을 텐데…

개인적으로 그런 건 안 좋아해요. 저는 좀 더 필드에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면서 견디려고 하겠습니다.

– 디지털 업무 환경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엄청 많잖아요. 제 또래만 해도 슬랙 같은 거 처음 접하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거든요. 이런 업무 환경에 익숙해지는 건 어렵지 않나요?

익숙하지는 않지만 더듬더듬 하는 거예요.

–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적응에 실패한 적은 없나요? “야, 그냥 방으로 와서 보고해” 뭐 이런 거…

그러면 이제 그만 집에 가야죠.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죠. 그래도 재미는 있는 것 같아요.

– 요즘 직장의 시니어들이 “Z세대는 정말 다르다” 뭐 이런 이야기 많이 하거든요. 전무님도 그런 걸 느끼나요?

그런 걸 느끼죠.

– 어떤 점이 다른 것 같아요?

추구하는 가치, 그 다음에 소통하는 스타일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추구하는 가치는 조직보다는 일단은 개인의 가치가 우선합니다. 저희 세대는 조직과 개인의 가치가 적어도 같거나, 조직이 좀 더 우위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스타일도 정말 거침이 없어요.

일하는 방식 면에서는 디테일하게 정리해서 소통을 해야 해요. 다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하면 질문이 20개 들어와요. 구체적으로 디렉션을 주기 위해 제가 일을 더 해야 하는 경우가 있죠. 이게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다르다는 걸 이해하면서 그들의 코드에 맞춰 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럼 이전 세대는 두루뭉술하게 디렉팅 해도 알아서 착착했나요?

알아서 착착 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못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못 살아남았죠.

– 그럼 어떤 게 더 좋은 거 같나요?

어떤 게 좋고 나쁘고를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들이 미래의 주역이 될 거기 때문에,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인 거죠.

– 소위 MZ세대에게 조언을 한 마디 하신다면?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조금 더 크게 두어야, 그만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개개인을 보면 글로벌 인재로 손색이 없어요.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좀 더 넓히면 그만큼 더 성장하게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 일상에서 리프레시하는 방법 같은 것도 있으세요?

저는 운동을 계속 해요. 코로나 기간에도 조심할 건 조심하면서도 계속 운동을 했죠. 피지컬하게 근육이 생기고 힘이 생기니까 정신적으로도 좀 건강해집니다.

또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우어삼락(Our 3樂) 모임이 있거든요. 같이 공부하고 재미있게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고 하는 모임인데, 그 모임이 10년도 넘었어요. 다양한 업계의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경제적 경향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스터디를 하는데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 제 주변은 모이면 술이나 먹는데…

저도 술만 먹는 모임도 있고, 또 이런 모임도 있는 거죠.

–  전무님,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 댓글

  1. 아 오늘 기사도 너무 좋네요. 인사이트도 있고요. 저는 고인물을 지나 썩은물 단계로 가고 있는데… 반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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