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윤식 네이버 대외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 인터뷰
2003년 심근경색 쓰러져…마라톤하며 몸과 마음 다스려
포털과 언론 제휴 관계 속 중재자 역할…힘들고도 보람차
“건강한 을의 마인드로 생각하라…기자와는 논리 싸움해야”

이전 참조 기사: [IT짬바] 어쩌다 홍보했다가 양대 포털을 꿰뚫은 이 사람

“2003년도 말이었을 거예요. 가슴이 계속 아파서 위장 쪽인 줄 알고 위장약을 먹으면서 한 달을 있었죠. 계속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걸 무시했습니다. 결국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갔고, 심장 스탠트 시술을 받았죠. 그걸 겪으면서 홍보를 잠시 놓았던 거 같아요. 이재웅 대표도 이러다가 사람 죽겠구나 하셨고, 그때 직장생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죠. ‘편한 일을 하자’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다음 홍보 담당이었던 원윤식 네이버 대외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는 갑작스럽게 쓰러진 이후 1년여간 사내 업무에 매진한다. 인적자원관리(HRM) 분야로 갔다가 인력 재배치가 ‘몸에 맞지 않는 일이구나’ 실감하고 그 당시 생소했던 콘텐츠 광고 상품 영업을 맡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 끝에 관세사 자격시험에도 도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2005년 다음을 그만뒀다.

“관세사 공부 중에 와이프가 임신했고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흐르지 않았어요. 같이 공부하던 아내도 미래를 불안해하고 애도 키워야 하고, 그러다가 코원에 지원해서 다녔죠. MP3플레이어 회사로 음질이 좋다 소문도 났었고, 마니아들에겐 유명한 회사였습니다. 이후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면서 ‘내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했다가, 코원에서 구주도 주고 연봉도 올려준다 해서 주저앉았죠(웃음). 그러다가 채선주 대표가 네이버 홍보조직을 크게 만들기 위해 사람을 뽑는다는데, 아무도 못 뽑았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원 전무는 채 대표에게 믿을 만한 후배를 추천했다. 그 후 이렇다 할 답이 없던 채 대표가 대뜸 원 전무에게 ‘같이 일해보자’라고 요청한다. 와이프는 네이버 입사를 반대했다.

“다음에서 힘들어했고 죽다가 살아났는데 왜 네이버에 가려 하느냐 라고 와이프가 반대하더라고요. 사실 네이버에서 업무를 3년여 경험하고 나와서 ‘홍보 관련 사업을 하겠다’라는 조건으로 와이프한테 허락받고 네이버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엉덩이가 무거워지더니 15년째 있게 됐네요. 이제 엉덩이에 본드를 붙이고 앉아있는데, 이제는 후배들한테 떠밀리게 생겼어요(웃음).”

원윤식 네이버 대외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

원 전무와 채 대표는 경쟁사의 대등한 홍보 관계였다. 그러다가 상사로 모시게 된 것이다. 어떤 감정이었냐고 물었다.

“어쨌거나 밑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자존심 상해도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웃음). 그런데 협업을 하고 같이 일을 해보니, 제 보스로 계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훌륭하고요. 그렇지 않다면 벌써 떠났거나 했지, 이렇게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갈 이유가 없죠.”

네이버는 수많은 언론과 제휴사이기도 하다. 뉴스 포털 서비스 때문이다. 네이버 덩치가 커지고 이용자가 몰리면서, 점차 대외커뮤니케이션의 고민이 커졌다. ‘여론을 좌우한다’는 정치권의 공격도 무수히 받았고, 주요 언론에선 뉴스 아웃링크(포털이 아닌 언론사 페이지에서 뉴스 내용 노출) 강제 전환 등으로 압박이 들어왔다.

“전반적인 산업 지형이 바뀌면서 나타난 신구 충돌이 아닐까요. 신구 화합이 없다면 솔루션이 없어요. 지금도 그 과정에 있긴 합니다. 언론사들과 접점이 있는 부서가 많지만, 그래도 홍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거 같습니다. 정말 힘들고 험난한 시기도 있었어요. 올드 미디어와 플랫폼 간 갈등 속에 홍보의 역할을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상생 파트너로 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회사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기자 입장도 이해하고 그러면서 언론과 관계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죠.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홍보실이 인정받고 승진 기회도 보상도 많아지고, 몸은 힘들었지만 인정받고 있다는 것 때문에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그가 기업 홍보만큼이나, 열정을 바친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된 ‘달리기’다. 매일 10킬로미터(km) 이상 뛴다고 한다. 인터뷰 중에 ‘달리기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평범하게 즐기는 수준을 넘어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풀코스(42.195km) 마라톤은 물론 울트라·산악 마라톤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는 ‘매일 뛰는 남자’라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홍보는 감정노동 측면이 강한데, 그걸 술이나 정적인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 말고, 자기를 극한으로 몰아갈 수 있는 운동을 하나씩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땀을 흘리고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감정의 회로가 변합니다. 스트레스에 둔감해지는 거죠. 저처럼 매일 할 필요는 없고요. 자기만의 운동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그럴 때 한 번씩 나가서 쫙 풀어주고 하면 다시 일할 동력이 생깁니다.”

YouTube video

원 전무에게 후배 홍보인이나 홍보를 꿈꾸는 구직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더니 기자 입장에서 고개가 숙어지는 대답을 내놨다. ‘진짜 프로’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영상 인터뷰에도 흔쾌히 응했다. ‘자녀가 홍보로 일한다면 응원하겠나’라고 물었더니 “아빠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고 있으니 이 길은 아니겠구나 생각하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기자와 교과서적인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홍보는 세일즈맨이죠. 이미지를 판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자와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하면 쉽지 않아요. 절실하되 건강한 을의 마인드로 생각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 보니 기자와 불가근불가원(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 관계를 지켜야되나 생각도 들고요. 친하게 또는 아예 안 보고 지낼 수도 있겠죠. 부정적인 기사는 분명히 나오게 돼 있는데, 그걸 인간관계로 덮으려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라고 봅니다. 제가 8개 기업을 거쳤는데, 그런 관계로 접근하면 힘들어요. 논리 싸움을 해야 하고요. 그리고 기자를 10년 선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자기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도 세일즈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글.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 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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