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네트워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납니다. IT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 그리고 기사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업계 내 실력자들의 얘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이런 분들을 최근 신조어로 ‘짬바’라고 칭하더군요.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유와 노련미를 뜻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일궈온 열정피플의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장중혁 블록체인경제연구소장(바라고 대표) 인터뷰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자, 30년 뒤 암호화폐로 가능성 찾아
“암호화폐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제 확산시키겠다”
몸담은 ‘크립토 워커스 다오’ 팀 12월부터 ‘길드 월렛’ 서비스 지원

몰아치는 칼바람에 숨 쉴 틈조차 없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장중혁 블록체인경제연구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암호화폐로 세상을 바꾼다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지만, 그는 암호화폐가 중앙집중된 화폐 금융 체제를 흔들고, 저개발국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장중혁 블록체인경제연구소장은 2017년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를 발굴하던 아이블록 대표를 역임했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18년에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투자자문회사 아톰릭스랩을 창업해 커스터디(수탁)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는 ‘크립토 워커스 다오(Crypto Workers DAO)’라는 탈중앙화자율조직(DAO) 프로젝트를 통해 저개발 지역에서 암호화폐로 수익을 얻는 직업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알게 된 건 5년여밖에 되지 않았다. 본래 그는 20년 동안 컨설팅 회사에 다닌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30년 전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동시에 물질만능주의,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체제 변동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체제에서 멀어지고 싶은 굳은 신념이 있었다. 계급혁명론을 통해 사회의 부패를 이끄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은 마이너 중 마이너 사상이었다. 그는 그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저는 꾸준히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할 거야, 평등한 세상을 만들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한계에 부딪히더라고요. 특히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상처를 많이 입었었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여러 공산주의자가 했던 실험으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구나”

그는 단단한 권력 구조 내에서 세상을 바꿀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느꼈다. 결국 그는 너무나도 높은 권력의 벽에 자신의 꿈을 가슴 깊이 묻어두기로했다. 그가 바랐던 ‘평등한 세상’이라는 건 단순 이상에 불가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 소장은 자기의 신념을 접고 컨설턴트로 20년 동안 살아왔다.

생각의 변화를 겪게 된 건 2017년이었다. 은퇴하기 전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남기고 싶었고 무엇이 좋을까 탐색하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알았다. 물론 블록체인의 존재는 2012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2012년 한 회사의 신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블록체인, 그리고 이에 파생된 암호화폐가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신념을 이룰 가능성이 될 줄 몰랐다.


“저도 낙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세상을 바꿀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해보겠다는 무의식적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암호화폐로 세상을 바꾸는건 쉽지 않겠죠. 한 5%나 되려나요? 그러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실현 가능성이 1%라고 할지라도, 도전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죠”

자본주의 체제의 부조리를 부술 방법, 그게 바로 암호화폐였다. 대학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가능성을 30년이 흘러서야 찾은 것이다. 그러나 마음가짐은 그때와 다르다. 대학생이었던 당시에는 ‘지식인’으로서 타인을 계몽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있었다면 현재는 자신 스스로가 불만스러운 체제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길을 지나가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두들겨 맞고 있으면 이걸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 지나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인 거예요. 현 사회 체제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요. 옛날에는 ‘이게 올바른 거고 당신들은 틀렸어’였다면 이제는 ‘난 혁명을 이끌어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럼 대체 암호화폐가 어떻게 현 자본 체제를 바꾼다는 걸까. 암호화폐의 어떤 점이 그를 이끌었던 걸까. 그는 대학 시절 설득되지 않았던 것이 암호화폐로 설득이 가능하다는 점을 짚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득할 필요가 없기에’ 실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그 근거로 ‘사이퍼펑크(Cupherpunk)’ 개념을 제시했다.

사이퍼펑크란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사용자 성장에 의해 바뀌는 세상을 말한다. 이는 기존 기업이 독식하던 사용자의 재산권을 소유의 형태로 돌려주자는 웹3.0의 개념과 뜻을 공유하기도 한다.

“현재 저개발국에서는 자국 화폐 대신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이용해요. 그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이념을 공감해서 쓰는 것일까요? 아니요. 수수료를 아낄 수 있으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되니까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이념을 공감하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닌 거죠. 저는 여기서 ‘탈 계몽주의적 사회변형’을 꿈꿀 수 있다고 봤어요”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을 알리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다.

그는 그렇게 그 쓰임을 넓혀가면 현재의 경제 체제를 흔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암호화폐가 ‘국경’이라는 장치를 없애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제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인구가 약 3억인 인도네시아만 해도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인구가 400만이 채 되지 않아요. 그럼 나머지 국민들은 대부업체 같은 곳에서 돈을 빌린다는 뜻인데 이는 연간 이자율이 365%에 달해요. 일주일에 이틀 일하면 하루치를 모두 이자로 줘야 하는 거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데 국민 간, 국가 간의 빈부 격차가 줄어들겠어요?”

그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와 세계 화폐 금융 경제가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다며, 저개발국에서 소득이 발생해 돈을 빌려 갈 필요가 없어진다면, 현 금융 체제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1~3%의 사람들의 상황이 바뀐다면 현재의 불평등한 금융 체제는 무너질 거라고 말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크립토 워커스 다오’라는 팀도 이러한 목적에서 탄생했다. 금융과 같은 권력을 통해 이익이 집중되는 체제를 벗어나 세계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는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 물론, 이것만으로 체제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국경과 금융 기관을 넘어 자국 화폐의 불안정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크립토 워커스 다오’는 이번 달부터 전 세계 44개국에 암호화폐를 달러 혹은 자국 화폐로 환전할 수 있는 ‘길드 월렛’ 서비스를 지원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200개국으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에너지 같은 초과이윤 창출이 가능한 다양한 분야에서 암호화폐를 버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이런 활동은 제가 좋은 사람이라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저개발국이 돈이 없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모든 과학 기술 문명의 성과들은 돈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점, 저개발 지역에서 태어날 새로운 세대 또한 성취를 만들어 낼 자격이 있다는 점에서 현 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인류가 파국으로 나아가는 걸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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