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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리] 돈 안 되는 C2C택배의 돈 되는 ‘구멍’ feat 주유소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일주일에 한 편,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 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주유소를 빌려서 C2C택배 사업을 하는 업체가 있으니 ‘홈픽(법인명: 줌마)’이다. 이 업체의 사업모델은 간단하다. 택배 발송을 원하는 고객이 지정한 시간에 사람이 방문하여 화물을 픽업(수거)하고, 전국에 있는 홈픽과 제휴된 410여개의 SK에너지, GS칼텍스 주유소 물류거점에 집하한다. 그렇게 모아놓은 화물을 오후 7~8시 즈음 제휴 택배업체인 한진의 간선차량에 인계하여 허브앤스포크 택배 프로세스를 타서 다음날까지 고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전달한다.

그렇게 고객이 홈픽에 지불하는 요금은 3500원부터 시작한다. 택배업체의 방문택배(CJ대한통운 기준 5000원부터 시작)보다는 저렴하고, 편의점택배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GS칼텍스 주유소에 주차된 홈픽 물류차량과 SK에너지 주유소에 입지한 홈픽 물류공간. 홈픽은 주유소별로 위탁 계약한 물류기사(피커)를 관리하는 대리점을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주유소의 일정 공간을 홈픽에게 제공하고 임대료를 받는다.

고객 입장에서 홈픽을 쓰면 무엇이 좋은가. 핵심은 ‘시간지정’이다. 홈픽은 고객이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맞춘 방문 픽업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고객은 처음 홈픽에 방문 픽업을 요청할 때 오전 9시부터 18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홈픽 기사(‘피커’라 부른다.)의 방문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홈픽 기사용앱에서 확인한 시간대별 주문 내역. 시간지정(Timely)은 홈픽이 내거는 물류의 핵심가치다.

이는 여타 택배업체들은 제공하기 어려운 서비스다. 기존 택배업체들은 C2C택배 수거 시간을 택배기사의 자율에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고객이 정확한 방문 시간을 시스템에서 지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혹여 어떻게 지정 요청을 하더라도 그때 정말 택배기사가 올지도 명확하지 않다. [참고 콘텐츠 :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뭉쳐 ‘C2C 택배 플랫폼을 만든 이유]

택배업체가 못하는 것이 홈픽이 가능한 이유는 운영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홈픽은 주유소 거점당 1명 이상의 수거기사(‘피커’라 부른다.)를 위탁 계약 형태로 운영한다. 배송과 집하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택배기사와 달리 홈픽 피커는 방문 픽업에 집중하기에 여유가 있다. 하루에 약 40개의 화물을 고객이 요청하는 시간에 방문하여 픽업한다.

김영민 줌마 대표는 “택배사도 방문픽업 서비스를 하지만 택배업체의 프로세스 자체가 택배기사의 여유 시간에 고객에게 방문하는 식으로 운영하다보니 고객은 늘 기다려야 한다”며 “우리나라 택배 서비스가 C2C로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현 시점에서 C2C는 거의 안 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시간지정’이 홈픽이 내거는 택배사 방문픽업 대비 강점”이라 말했다.

또 다른 C2C택배의 대체재인 ‘편의점 택배’와 비교해도 홈픽의 강점은 있다고 한다. 편의점 방문부터 포장, 송장 부착까지 고객에게 필요한 번거로운 과정을 사라지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편의점에 가면 키오스크에 택배 정보를 입력하고 무게를 재고 고객이 알아서 포장하는 프로세스가 포함되는데, 홈픽 방문픽업은 그런 번거로움이 없다”며 “상품 확인은 홈픽 피커가 진행하며, 픽업한 화물에 송장을 출력해서 붙이는 것 또한 우리가 하기 때문에 편의점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홈픽 주유소 거점에 비치된 송장 프린터. 홈픽은 포장(Packing)과 송장 부착 등 부가적인 업무를 고객 대신해서 해주기도 한다.

요컨대 홈픽은 제휴를 통해 ‘주유소’를 택배 서브터미널처럼, 각각의 주유소에 지입기사를 고용하는 ‘대리점’망을 확충하여 ‘시간지정 방문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여전히 돈 안 되는 C2C, 열쇠는 ‘B2C화’

홈픽이 종전 시장에 있는 C2C택배 서비스보다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맞다. 하지만 숙제가 있으니 C2C택배는 여전히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돈이 안 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한데, 규모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명의 고객에게 하나 혹은 몇 개의 발송상품을 픽업하는 C2C와 하루 수백~수천개 이상의 B2C 픽업은 당연히 ‘효율성’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C2C 택배는 비싸다. 누구도 택배 가격이라고 알려진 2500원에 택배를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이 2500원이 기업이 내는 가격, 그러니까 B2C택배 기준 가격이기 때문이다.

홈픽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홈픽의 큰 그림이 있으니 C2C의 B2C화다. 김 대표는 “C2C 시장은 작기 때문에 B2C까지 준비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방문하여 무엇인가 가지고 오는 시장은 생각보다 클 것이라 생각한다”며 “사실 C2C택배만 보더라도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게는 작은 시장 규모가 아니다. 닿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된 것”이라 말했다.

B2C화의 방법 ‘반품’

홈픽이 공략하는 첫 번째 C2C의 B2C화는 ‘반품’이다. 익일배송률 90%가 넘을 정도로 고도화된 배송 시장과는 달리 반품은 여전히 미개척 영역이다. 반품 신청을 하면 택배기사가 내일 올지, 모래 올지, 언젠가 올지 알 수가 없다. 대표적인 이유는 앞서 C2C택배가 안 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택배기사들에게 반품 수거는 B2C택배에 비해 돈이 안 되는 영역이고, 그렇기 때문에 소홀하다.

그렇다고 이커머스 화주의 니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홈픽 창업 전 NS홈쇼핑에서 SCM팀장으로 일했는데, 당시 김 대표의 생각이 이렇다.

“홈쇼핑업체에서 일하면서 느낀 게 당일배송을 하겠다고 하는 업체들은 많은데, 반품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객이 반품을 접수하면 홈쇼핑 업체가 택배업체에 데이터를 넘겨주고,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송장을 뽑아서 택배 대리점에서 기사가 수거를 가는데 반품이 있으면 가져오고, 없으면 말고의 패턴이 반복 됐습니다. 1주일이 지났는데 왜 반품 상품 수거를 안 하냐는 고객 클레임이 들어오기도 했고, 직접 우체국으로 가서 반품을 보내고 홈쇼핑업체에 따지는 고객도 있었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홈쇼핑 업계의 반품률은 공산품을 취급하면 통상 20% 내외였고, 의류 같은 경우는 반품률이 치솟는 구조다. 식품은 그나마 낮은 편이라서 10% 이내라고 한다. 만만한 수치가 아니고, 여기에 시장이 보인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모두가 배송에만 신경 쓰는 와중, 반품이야 말로 완벽한 틈새라는 생각을 했다”며 “반품을 한다면 기존과 다른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기존과 다른 서비스라고 한다면 고객이 반품을 원할 때 바로 방문하는 서비스, 궁극적으로 시간지정 반품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래서 시작됐다, 홈픽의 반품. 지난 13일 11번가는 홈픽과 제휴한 ‘시간지정 반품 서비스’를 공개했다. 11번가에서 반품 신청시 ‘홈픽으로 발송’ 메뉴가 추가됐는데, 이를 통해 고객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말은 오전 9~11시까지 1시간 단위로 반품 방문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가장 빠른 시간으로 1시간 이내에 택배반품 수거 요청이 가능해진 것이다.

11번가에서 선택할 수 있는 홈픽의 시간지정 반품 서비스

11번가 반품 서비스의 프로세스는 홈픽의 C2C택배와 같다. 홈픽의 ‘피커’가 고객의 자택을 방문하고, 주유소에 화물을 집하하여, 택배 제휴업체인 한진 간선차량에 인계한다. 화물의 목적지가 ‘고객이 원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고객이 반품하길 원하는 상품 화주의 물류센터 혹은 사무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홈픽 입장에서는 1년에 한 번 무엇인가를 보낼지 말지도 모르는 고객을 공략하던 것에서 수많은 고객에서 반품 물량이 터져나오는 이커머스 업체 하나와의 제휴로 안정적인 규모를 만들 수 있다.

김 대표는 “11번가 외에도 위메프, CJENM 오쇼핑 부문과도 홈픽을 통한 반품 서비스 제휴를 하고 있다”며 “차이가 있다면 11번가는 고객이 홈픽을 통한 반품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고, 위메프와 CJ오쇼핑은 콜센터 상담사가 반품이 잘 안 되는 주문을 확인해서 홈픽에 넣어주는 구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B2C화의 또 다른 방법 ‘배송’

홈픽의 가까운 미래에는 반품을 넘어선 ‘배송’이 있다. 원래 하던 C2C택배가 아닌 B2C택배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시간지정 배송’으로, 택배업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을 차별화할 전망이다. 그리고 시간지정 배송을 만드는 전제 조건은 ‘공간’과 ‘재고’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홈픽은 올해 초 한 대형 홈쇼핑업체와 n시간 배송을 테스트 했다. 홈쇼핑업계에선 n시간 배송을 프로모션 하는 상품이 있는데, 이 상품의 배송건을 홈픽이 맡아 처리했다는 것이다.

방법은 홈쇼핑 방송을 송출하기 전에 판매가 예측되는 지역의 홈픽 물류거점(주유소)에 상품을 재고로 보관해두는 방식이다. 만약 방송시간이 오전이라면 방송이 끝나고 홈쇼핑업체 물류센터가 다수 입지한 경기도 군포에서 상품을 픽업해서 목적지 근방 주유소 거점에 흩뿌리는 방식 또한 가능하다. 고객 최접점에 있는 ‘주유소’를 마이크로 물류센터로 활용하여, 시간지정 배송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홈픽의 주유소 거점에 보관된 상품들. ‘주유소의 물류허브화’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 양대 주유소의 큰 그림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이 거점이 크라우드소싱 배송이 결합된 생활물류 거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홈픽의 배송 서비스는 중고거래 시장까지 확장했다. 물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홈픽은 중고나라, 번개장터, 헬로마켓 등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의 배송 서비스까지 제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번개장터는 11번가와 마찬가지로 고객이 홈픽 배송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또한 C2C의 B2C화다.

물론 기존 중고거래 플랫폼은 원래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C2C 형태다. 하지만 홈픽 입장에서 중고거래를 하는 고객을 일일이 만나서 홈픽을 알리는 것과, 중고거래 플랫폼 하나와 제휴하여 수백만명의 사용자풀을 한꺼번에 끌어당기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김 대표는 “고객에게 다회전 시간지정 배송을 하기 위해서는 고객 가까운 곳에 물류거점이 필수”라며 “기존 물류센터와 생활 접점의 마이크로 물류거점이 연결된 주문이행(Fulfillment)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시간지정 픽업 서비스가 가능하다. 홈픽은 먼저 픽업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앞으로 배송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

한편, 홈픽은 현재 하루 3만개 이상의 물량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픽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물량을 월 80만개 이상으로 보고 있으며, C2C가 B2C화된 ‘제휴물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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