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시작 전에 ] 독자님들, 최근에 만화 보신 적 있습니까? 그것도 ‘순정’ 만화요. 제가 지금부터 순정 만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소년 소녀들의 복잡미묘한 삼각관계’를 타이틀로 단 이 만화는, 10대의 마지막 여름에 ‘사랑’이라는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 얼마나 ‘바이라인 네트워크’와 안 어울리는 설명이란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화 ‘그 해 여름’을 소개하는 이유는 첫째, 그간 ‘웹툰 작가를 만나다’ 시리즈에 남성 작가, 액션 만화만 주구장창 등장했기 때문이고요,

둘째 우리도 장르 한계를 넘어 조금 더 다양한 만화를 접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순정만화 재밌습니다. 그 해 여름. 듣기만 해도 얼마나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그런 제목입니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혹시 이 글을 보는 솔로 제하 님들의 새로운 연애를 위해서라도, 이 웹툰에 도전해봅시다.

김현 작가

김현 작가

김현 작가(본명 김현주)가 코미코에 연재한 웹툰 ‘그 해 여름’을 보곤, 아 이거 *BL물이구나 싶었다(*BL은 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자끼리 사랑하는 게이물을 뜻한다). 김 작가를 만나기 전 미리 준비했던 질문도 ‘BL물에 대한 편견’이나 ‘BL시장의 미래’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장르를 오해했다. 내 스스로가 ‘BL물에 대한 편견’에 갇혀 있었다. 김 작가는 ‘그 해 여름’을 ‘학원 성장물’ 로 정의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커 가면서 사랑하는 상대가 남성이 될 수도 여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웹툰 도입부에 서로 사랑하는 남성이 나왔다고 해서 만화를 BL물로 한정지은 것이다, 내가. 인터뷰는 처음부터 내 KO패로 시작했다.

김현 작가를 지난 7일 서울 홍대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웹툰 ‘그 해 여름’은 김 작가의 데뷔작이다. NHN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 ‘코미코’를 통해 한국과 일본, 대만에 동시 연재한다. 대만에서는 요일별 인기 만화 1위에 올랐다. 앞으로는 스페인어로 번역해 멕시코에서도 연재할 예정이다.

그는 데뷔 전 일본에서 만화전문학교를 다니다 출판만화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일본에서 출판 만화를 배우고 한국에서 웹툰으로 데뷔한 다소 독특한 경력이다. 마침, 그의 만화 ‘그 해 여름’의 3부가 이달 말부터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동시 연재를 시작한다. 그에게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만화 시장과 최근 순정만화 트렌드, 웹툰 플랫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엔 ‘그 해 여름’의 장르가 BL인줄 알았다

내 만화 장르가 BL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여자다. 그 여자의 시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아이 둘과 엮이면서 생기는 사건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이걸 BL이다 아니다라고 장르를 한정지으면 이야기의 엔딩이 정해져 버린다. 오히려 BL이라는 것을 하나의 장치로 이용하는 게 이 만화의 구성이다. 딱히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는 만화가 되도록 그리려고 한다.

일본에서 만화를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역사학을 전공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전공하진 않았다. 일본으로 건너간 건, 부모님도 “만화를 그릴거면 오히려 다른 문화에서 공부해서 너만의 것을 살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신 영향도 있다.

일본의 만화전문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여러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단편 원고를 제작하며 어시스던트 일을 병행했다. 졸업 후에는 현지 광고디자인회사에서 일하면서, 귀국 후에도 외주 일을 하면서도 계속 투고는 했었다.

어떻게 데뷔했나, 그리고 코미코를 데뷔 플랫폼으로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웹툰 준비를 하면서 스터디를 했다. 그때 스터디 구성원 중 하나가 코미코에서 연재를 한다. 그 친구가 코미코를 소개해줬다. 투고해보라고. 보니까 나랑 잘 맞을 것 같았다. 코미코가 일본에 기반을 다져놔서, 여기서 연재하면 글로벌 진출도 쉬울 것 같았다. 사이트 자체도 좀 건전한 느낌, 전연령가 느낌이 있어서 내 만화의 주요 타깃인 중고등학생들이 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웹툰을 준비하는 사람끼리 모여 스터디를 하나? 그러면, 서로의 만화에 대한 평가도 하고 그러는지 궁금하다

인터넷 카페 같은 데서 스터디원을 구해서 모인다. 웹툰을 자기 혼자 준비하면 아무래도 동기부여가 잘 안되니까 같이 만나서 정보도 주고 받고 한다. 그렇지만, 서로 만화에 대한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모두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 부분은 조심스럽다. 스터디에서 중요한 것은, 지망생들이 정보가 많이 없으니까 서로 알고 있는 걸 교환하고 그림도 보여주고 하는 거다.

코미코가 다른 플랫폼과 다른 점이 있나

작가가 1인 PD 역할을 한다. 플랫폼에서 일하는 편집자가 원고에 터치를 하지 않는다. 창작은 100% 작가에게 맡기는 점이 다르다.

작가가 편집자(PD)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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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맞다. 다른 플랫폼에서는 원고 내용으로 회의도 하고, (성적이) 부진하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한다. 원고를 수정하기도 하고. 이게 맞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그런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터치를 안 받는 쪽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코미코 플랫폼만의 장점이라고 본다.

김 작가의 만화를 BL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최근엔 BL이 인기가 많으니까. BL의 인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원래 이쪽은 인기가 많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실에서는 (BL을)많이 볼 수 없으니까 돈 주고 사보는거 아니겠나. 판타지 아닐까 한다.

김현 작가가 코미코에 연재 중인 웹툰 '그 해 여름'

김현 작가가 코미코에 연재 중인 웹툰 ‘그 해 여름’

그렇다면, ‘그 해 여름’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아직 모른다. 완결이 나와봐야 알 것 같다. 이달 말부터 시즌 3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 시즌2까지는 남자 캐릭터들의 과거 얘기에 초점을 맞췄다. 시즌3에서는 다시 여자 주인공의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가 돌아올 거다. 클라이막스다. 누가 누구랑 이어질지 아직 모르는 그런 단계다. 다시 이야기를 전개시켜야지.

수많은 장르 중, 순정 만화를 택한 이유가 있나

연애 하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닐까(웃음). 여중, 여고를 나와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연애에 대한) 환상이 많았다. 그때 소설을 많이 썼다. 그게 지금의 바탕이 된 것 같다. 내 만화를 보면, 여중 여고 시절 거리와 골목 같은 곳들을 배경으로 많이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순정만화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황미나, 이미라, 이은혜, 원수연 등 순정만화 전성기였던 거 같다. 지금의 순정만화와 그때의 순정문화가 달라진 점이 있나?

1990년대 순정만화하고 지금은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순정만화는 소설을 읽는 느낌이 있었다. 한 페이지에 긴 글이 산문처럼 있었다. 그게 매력이 있다. 그방식은 뭐랄까, 시적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트렌드는 어떤가

지금은 순정 만화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감정 표현을 깊게 다룬다. 예전엔 스케일 큰 이야기가 많았다면 요즘은 더 집약적이고 스케일은 작지만 깊이 있는 감정표현을 많이 다루는 걸로 보인다. 이게 웹툰과도 잘 맞고 독자들도 호응이 좋다.

감정 표현을 깊이 있게 다룬다는 건 어떤 걸까?

서사보다 인물의 감정선에 더 집중한다. 웹툰을 예로 들면, ‘영상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컬러지 않나. 예전 만화보다 동적인 느낌의 연출이 가능하다. 애니메이션 스틸 컷 같은 느낌도 낼 수 있다. 예전에는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못했던 건데, 스크롤은 어떻게 보면 무한대다. 그래서 감정 표현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 연출을 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뜻이고, 이런 도구로 감정선을 잘 풀면 (독자가) 캐릭터에 이입하기가 쉽다.

일본 얘기를 해보자. 일본 만화 시장은 어떠한가

(신인 만화가 입장에선) 좋다. 길은 열려 있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데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데뷔했나

순정만화를 그리다보니 섬세한 감정 표현이 많다. 이런 것은 그 나라에서 살지 않으면 터치하기 힘든 부분이다.  일본에서 연재하게 되면 일본말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에서 일하는게 오히려 나한테 더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그 해 여름’이 인기가 있다는 건, 일본 사람들의 정서를 잘 건드린다는 것 아닌가

코미코에 일본 전문 편집부가 있다. 그래서 일본 독자들의 정서에 맞게 번역을 한다. (*코미코 측 설명에 따르면, NHN엔터테인먼트의 현지팀이 번역을 맡고 있다. 이 팀들은 ‘한게임’이 글로벌 진출 때부터 일해온 ‘현지화 전문’ 팀이다. 번역 외에 각국 정서에 맞게 배경이나 색감 등을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출판만화를 준비 중이었다가 웹툰으로 바꾼 계기가 있나

‘*클립 스튜디오’라고 만화 제작 프로그램이 있다. 그게 없었다면 웹툰을 하지 못했을 거다. 클립 스튜디오는 컴퓨터 프로그램인데 포토샵과 유사하다. 최근엔 모든 작가들이 이 프로그램을 쓰는 것 같다. 만화 그리는 데 최적화한 프로그램인데, 어시스턴트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 1인 제작에 최적화 되어 있다. 작품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클립 스튜디오는 원래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원화 작업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최근엔 웹툰이라는 시장이 생기면서 이쪽에 맞게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현재 코미코용 클립 스튜디오 페이지가 만들어질 정도로 사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댓글은 많이 보나

본다. 최대한 상처를 안 받으려고 좋은 댓글만 본다(웃음). 자기 전에도 댓글을 생각하기도 한다. 만화를 그리다 힘들 때 댓글을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댓글이 있는게 더 좋다는 뜻인가

있는게 무조건 좋다고 본다. 독자 입장에서도, 작품을 서로 어떻게 봤는지 공감할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만화가 있나

장르는 계속 로맨스일 거다.  ‘순정’은 나한테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다. 긴 호흡의 진지한 이야기 보다는 밝고, 내가 그리면서도 가벼운 그런 이야기가 나한테 맞다는걸 느낀다. 시대물을 그리게 되더라도 (순정을 기반으로하는) 시대물이 되지 않을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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