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작가

김수용 작가

‘윈드밀’을 들어봤나. ‘나이키’는?

나는 그 모든 걸 만화 ‘힙합’을 통해 알았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 우리나라 춤꾼들을 키운 것은 팔(八)할이 ‘힙합’이라 말하겠다.

김수용 작가가 그린 만화 ‘힙합’이 출간된 지 20년이 됐다. 김 작가는 ‘춤’ 만화로 독보적이다. 특히 스트리트 댄스라는, 당시엔 처음 보는 장르를 들고나와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니며 스스로를 ‘힙합 꼰대’라고 부른다. 나이를 먹으니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겠지만, 그래도 힙합 하는 꼰대가 되겠단 거다.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페이스북을 보다가였다. 낯익은 이름이 만화 그리는 모습을 라이브로 방송하고 있었다. 어머, 이게 그 김수용인가! 하는 생각에 연락했다. 새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그가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지난 25일 오후, 김수용 작가를 강북 수유에 위치한 ‘스튜디오 지하’에서 만났다. 여전히, 커다란 옷을 입고 머리엔 두건을 두른 채였다.

김수용 작가는?

1996년, 만화 ‘힙합’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만화가 김준범 선생의 문하생으로 시작해 웹툰 작가로선 최초(이자 유일하게)로 전문 댄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춤을 주제로 계속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진조크루’ ‘젊음의 행진’ 등이 대표적이다. 작가집단 ‘지하’의 소장이자, 인기 만화가로 활동하며 서울 강북 수유동 자영업자들과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고 있다.

만나서 반갑다

그동안 나간 인터뷰를 봤다. 그런데, 정말 영우 형(신영우 작가)이 자기가 왕자병이 아니라고 했나? 이 이야긴 꼭 써 달라. 신영우 왕자병 맞다.

ㅋㅋㅋ 안다. 그런데 어쩌나,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걸. 오늘 보니, 김수용 작가가 신영우 작가보다 더 잘생긴 것 같다

고맙다.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자서 얼굴이 좀 부었다. 감안해서 봐달라.

SBS 특채 댄스팀 출신인데. 요즘도 춤을 추나

가끔.

윈드밀 한 번만…

안 된다(단호).

바이라인네트워크 독자 중에 ‘힙합’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영상으로 인사해 줄 수 있겠나 

(웹툰 작가 인터뷰 중) 영상은 내가 처음인가!

페이스북 라이브로 작업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게 인상적이다

내가 방송을 하는 이유는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화실에서 혼자 작업하다 보면 갑자기 공황이 들이닥칠 때가 있다. 그나마 방송을 하면서 떠들게 되면 이게 좀 치유가 되더라.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건데, 어쨌든 방송을 하고 나면 다 폭파를 시켜버린다. 작업할 때 페이스북 친구들이 들어와 수다 떨고 하는 용도로 쓴다.

공황장애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2015년에 ‘젊음의 행진’이란 작품을 연재하다 중단된 적이 있다. 일은 하는데 통장엔 잔고가 없었다. 생활고가 심했다. 아이 교복 살 돈이 없었으니까. 스트레스가 컸다. 그때 발작이 처음 왔다. 지금은 많이 덜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발작이 온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비가 오면 더 그렇다. 공황이 날씨를 타더라. 그럴 때면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는다.

페이스북 라이브를 시작한 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방송하는 시간은 고정이 돼 있나?

대중없다. 작업할 때 그냥 한다. 처음에는 일주일 내내 매일 방송한 적도 있고. 그런데 요즘은 재정비 기간이라 한동안 못 하고 있다.

방송해보니 어떤가

페이스북이 라이브를 시작한 지 얼만 안 되지 않나. 근데 이게 재밌다. 작년 초쯤 시작했는데 그땐 얼굴 보면서 방송했다. 내가 공황이 온 이후로 독주를 못 마시겠어서 주종을 막걸리로 바꿨다. 막걸리 방송을 한 거지. 그때 작업하는 걸 방송했으면 좋겠다고 매일 말했는데, 곰스튜디오에서 화면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라. 그래서 바로 시작했다.

조금 안타까운 건 배경음악이다. 클래식을 틀어도 저작권에 걸린다고 방송이 잘린다. 한 번 잘리면 일주일씩 방송을 못 한다. 1970년대 한국가요는 필터링이 안 되긴 하지만, 그거 틀고 하면 너무 꼰대 같고(웃음). 어쨌든, 이제 새 작품 작업도 본격적으로 들어갔으니 다시 한번 해봐야지, 슬슬.

새 작품을 준비 중인가

‘젊음의 행진’을 리마스터할 거다. 지금은 타깃을 젊은 층으로 전환하는 재정비 기간이다. 스토리가 완전히 다시 바뀔 거다. 1세대 댄서인 아버지와, 지금 춤을 추는 아들 이야기가 기본인데, 예전엔 아버지 시점으로 그린 만화였다면 이번엔 아들 시점이다. 그러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전혀 다른 만화가 될 거다.

제목도 바꿀까 생각 중이다. ‘비트 스트리트’라는 영화가 있는데, 전 세계 힙합 하는 친구들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리스펙트를 담아 ‘비트 스트리트’로 바꿀까 한다. 댄서들도 다 기억하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연재 플랫폼은 어디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능한 많이 읽히는 곳이면 좋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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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힙합이란 한 장르로 꾸준히 작품 생활을 해왔다

춤만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픈 생각도 있었다. 존경하는 작가 선생님 중에서도 춤 좀 그만 그리라는 분도 있었고. 그래서 다음에 ‘좌우’라는 작품을 했었다. 현대 판타지물인데, 나중에 개인 사정으로 스토리가 조금 빈약해졌다. 좋아해 줬던 팬들한테 욕도 먹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젊음의 행진’ 프롤로그를 보고, 내 스승인 김준범 작가가 “이렇게 그리면 춤 그리지 말라고 한 내가 뭐가 되냐”고 칭찬을 해주더라. 그때 기운을 얻었다.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힙합이라고 생각한다. 후배 중에서도 힙합을 그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춤 중에서도 하필 힙합에 꽂힌 이유는 뭔가

마이클 잭슨과 박남정 형님 때문이지.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박남정 형님이 화실에 왔다고 자랑하지 않았나

‘젊음의 행진’을 기획하고 취재하면서 일 세대 댄서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 비보이들의 조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취재를 하다가 박남정 형님을 알게 됐다. 조만간 함께 일도 하게 될 것 같다.

어떤 일인가

예전에 뮤직비디오에 들어갈 그림을 그린 경력이 있다. 박남정 형님하고도 비슷한 일을 할 것 같다. 지금 콘셉트를 잡고 있다. 아, 지금 봐도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보다 박남정 형이 더 잘하는 것 같다. 멋있다. 문워크 만큼은 진짜 최고다.

본인도 춤을 잘 추지 않나. 그런데 왜 만화가가 됐나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다. 그러던 중에 마이클 잭슨을 알게 된 거지. 학교 다닐 땐 수업 시간에 그림 그리고, 쉬는 시간엔 춤췄다. 방과 후면 어머니 무용학원에 갔는데 그만한 연습실이 어딨나. 환경이 참 좋았다(웃음). 춤만화를 그리기에 최적화된 성장기를 겪었다. 행운이다.

전문 댄서로도 활동하지 않았나

김준범 선생 밑에서 문하생 생활을 하다가 SBS에서 댄서를 뽑는다는 방송을 봤다. 내가 스트리트 댄서 만화를 준비하는데 정작 댄서들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취재도 할 겸 겸사겸사 나가볼까 했는데 덜커덕 상을 받아버렸다. 그래서 SBS에 특채로 들어가게 됐다. 선생님 마감 끝나면 양해를 구하고 방속 녹화하고 연습하고 그랬다. 남다른 경험을 하게 된 건데, 그게 ‘힙합’이란 만화가 나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춤을 보통 잘 춘 게 아니라는 얘긴데.  인정 받은 김에 아예 댄서로 나가고 싶단 생각을 안 했나

안 해본 건 아니다. 음반 제의도 들어왔었다. 근데 나는 작가로 남고 싶었다. 갈등도 했는데, 지금 선택이 잘한 거라 생각한다. 댄서도 취향에 맞는 직업이긴 하지만, 만화 쪽이 더 어울렸던 사람이었던 거지. 나를 ‘댄서 출신 만화가’라고 하는데, 나는 춤 만화를 그리려고 댄서가 된 거다. 정확히 말하면 ‘만화를 그리다 춤을 췄던 작가’라고 보는 게 순서가 맞다.

‘힙합’에 나오는 캐릭터 ‘바비’가 당시 모든 비보이의 경쟁자 아니었나

진조크루랑 일을 할 때, 이친구들이 내 만화 ‘힙합’을 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말하더라. 그 만화가 나올 때 초중생이었던 이들이 지금 세계 대회 우승을 석권하는 비보이들이 됐다.

요즘은 어떤가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이, 지금까지는 우리나라가 비보이 강국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고 하더라. 옆 나라 일본이나 중국 같은 경우는 조기교육이 장난 아니다. 어린 친구들한테 제대로 된 스트리트 댄서들이 일 대 일 교육도 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물론, 우리도 예전보단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어린 친구들이 춤에 흥미를 가질만한 만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힙합에 나오는 동작이 실제로 검증된 동작들이라서, 당시에 춤을 추던 친구들이 교실에서 많이 따라 하곤 했는데

최초라 오류도 많았다. 춤 이름이나 용어 같은 걸 나름 정리한다고 취재하고 발로 뛰어다녔는데. 듣다 보면 여기선 가위차기라 하고, 저기선 나이키라 하고 서로 달랐다. 지금은 나이키가 고유명사가 됐는데 그걸 그대로 쓸 수도 없고. 상표니까. 나이키에서 협찬하는 것도 아니고(웃음).

차기작은 '젊음의 행진'을 리마스터한 '비트 스트리트'가 될 예정이다.

차기작은 ‘젊음의 행진’을 리마스터한 ‘비트 스트리트’가 될 예정이다.

최근에 작업할 때 참고하는 영상이나 댄서가 있나

예전에는 마이클 잭슨 투어 비디오 하나 구하려고 이태원 바닥이나 세운상가를 돌아다녔다. 비디오 하나 구하면 아무도 안 보여주고 몰래 봤다. 일 세대 댄서 형님들도 자료 구하면 자기만 봤다고 하더라. 문하생 때는 샘플 서적을 구하면 그게 그렇게 귀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카드 게임을 할 때면, 각자에게 제일 귀한 것 – 나는 권총 샘플집을 걸 테니, 너는 비행기 샘플집을 걸어라- 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뭐, 요즘은 유튜브가 있지 않나. 인터넷에 검색어 한 번 치면 고화질 샘플이 다다닥 나오는데. 그만한 샘플집이 어딨겠나.

다른 작가들 인터뷰를 하면, 스크롤이 아닌 페이지 형식으로 작업을 많이 하더라

스크롤로 작업했었다. 그런데 ‘진조크루’부터 다시 페이지 작업으로 돌아갔다.

많이 다른가

예를 들면, 만화책은 다음 페이지 넘어가기 전 마지막 컷에 포인트를 줘야 한다. 페이지가 접히는 부분을 기점으로 시선 처리가 가운데로 맞춰줘야 보기 편한 것도 있고. 그런데 스크롤은 그 나름의 독특한 연출이 있다. 요즘 세대에게 맞는 훌륭한 연출인데, 출판으로 책이 나왔을 때는 그 연출이 죽는다.

웹툰이 그대로 출판만화로 나오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있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가 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국외 시장에 나가려면 아직 출판물이 더 유리하다. 물론 웹툰은 우리가 최강국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점점 웹툰이 발전하고 있지만, 유럽이나 미주권은 아직 책 시장이 더 크다. 해외 진출까지 욕심부리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걸 생각하게 된다.

춤이라는 주제는 글로벌로 더 잘 팔릴 분야 아닌가

‘진조크루’는 해외에서도 유명한 팀이라 나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브레이크댄스’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는데, 여기 나온 배우가 실제 댄서다. 내가 마이클 잭슨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더니 바로 메시지가 왔다. 내 만화를 봤다고. 같이 만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 제의하는데 깜짝 놀랐다. 정말 영광이었다.

편집툴도 잘 다루는 것 같다

공황이 왔을 때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많이 만져 봤다.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뒤처지진 말자고 생각해서 3D툴도 많이 공부했다.

스튜디오 지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벌써 22년이 됐다.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부터 했다. 우리는 작가 집단이다. 수유리에 만화가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 사람들과 함께했다. 지금은 많이 이사 가고 해서 멤버도 바뀌었다. 나는 소장으로서 꿋꿋하게 지하를 지키고 있지(웃음).

딸이 춤을 추더라

유전자가 골고루 갔다. 아들내미는 그림 그리고, 딸내미는 춤을 춘다.

반대는 안 했나

적극 지지한다. 내가 춤을 시작했을 때도 부모님이 반대를 안 했다. 우리 어머니가 춤을 췄다. 내가 그 영향을 받았듯, 내 아이도 내 영향을 받았겠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그래서 나도 이왕이면 제대로 추라고 조언한다. 나가면 대부분 상을 타올 만큼 재능도 있다.

혹시, 물어보지 않아 못한 말이 있다면

만화가 협회에서 작가들의 공휴일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최소한, 설이나 추석 명절에는 작가들도 가족 보러 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들한테 ‘이번 명절에 뭐해?’하고 물으면 ‘뭐하긴 뭐해 마감하지’ 라고 답한다. 아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휴재할 때 악플이 달리기도 한다. 작가는 외로운 직업이다 보니 악플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물론, 무조건 관대하게 봐달라는 건 아니다. 프로의 마인드로 일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대부분 모든 작가가 같은 생각일 거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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