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2025] LG가 키노트에서 앞세운 건 제품 아닌 AI
한 가족의 일상을 다룬 짧은 드라마 한 편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새벽에 기침한 사람을 위해 밤사이 실내 온도를 알아서 조절해 주는 가전, 차에 오르기 전 놓고 온 텀블러를 기억해 주고 길이 막히면 실시간으로 회의를 연결해 주는 차량 시스템, 퇴근 후 거실에서는 목소리를 또렷이 잡아주는 TV까지. 이 모든 장면이 바로 LG전자가 CES2025 현장에서 선보인 ‘공감지능(AI)’으로 구현된 미래 생활 모습이다.
행사 명칭은 ‘LG 월드 프리미어(LG WORLD PREMIERE)’, 주제는 ‘공감지능과 함께하는 일상의 라이프스 굿(Life’s Good 24/7 with Affectionate Intelligence)’이다. LG전자가 매년 CES 개막 직전에 열어온 미디어 대상 프리쇼를 올해는 아예 드라마 형식으로 바꿨다. 발표자가 무대에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대신, 공감지능 기술이 우리 생활에 스며드는 순간들을 연극처럼 구성해 현장감을 높인 것이다.
공감지능, 물리적 공간과 가상환경 잇는 ‘총체적 경험’
행사 중 가장 반복적으로 들린 말은 ‘총체적 경험’이었다. LG전자는 AI가 단순히 하나의 제품 기능이 아니라, 집·차량·상업용 공간, 나아가 가상세계에서까지 끊김 없이 이어져야 진짜 의미의 ‘공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LG전자가 꼽은 핵심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수억대 규모의 ‘커넥티드 디바이스(Connected Devices)’, 둘째,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알아서 제어하는 ‘AI 에이전트(Capable AI Agents)’, 셋째,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제공되는 ‘통합 서비스(Integrated Services)’다.
이날 행사에서 소개된 LG전자의 AI 에이전트 ‘LG 퓨론(FURON)’은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공간 센싱 기술, 고객 생활 패턴 등을 종합해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가전이 잠을 깨운 후 온도를 올려줄 수도 있고, 차 안 센서가 목소리나 심박수를 통해 운전자의 컨디션 변화를 감지할 수도 있다. 결국 지능형 기기들이 서로 연결돼 일상 곳곳에서 작동함으로써, 사람마다 다른 상황과 취향을 능동적으로 파악한다는 게 LG전자의 구상이다.
미래 일상 한 편의 드라마로… “밤새 기침 소리가 들려 방 온도를 높였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한 가족 구성원의 하루를 그린 드라마 형식이다. 아침에 기상하면 AI 홈 허브가 “밤새 기침 소리가 들려 조금 더 따뜻하게 조절했다”고 알려주고, 가족 스케줄을 훑어보며 오후에 병원 검진이 잡혔으니 같이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는 운전자가 놓고 나온 물건을 챙겨주거나, 심박수가 높아졌다고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준다.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 회사에 늦을 것 같으면, 차량에서 곧바로 화상회의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집과 차 등 물리적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사용자는 물 흐르듯 대화를 이어간다. 드라마 속 대사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이미 일부 기능이 시제품 수준으로 작동 중이라는 점이 시연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기술을 넘어 사람과 더 가까워지겠다”는 LG전자의 선언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연달아 펼쳐졌다.
“LG alone no more” …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협업 선언
총체적 경험을 구현하는 데는 막대한 기술 자산과 생태계가 필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LG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전격 발표했다. AI 기술 선두주자 중 하나인 MS와 힘을 합쳐, 집·차량·상업용 공간까지 아우르는 ‘공감지능 기반 통합 서비스’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양사는 LG전자가 보유한 방대한 고객 인사이트에 MS의 AI 역량을 접목해, 음성인식이나 음성합성 수준을 한층 높인 이동형 AI홈 허브(프로젝트명 ‘Q9’)부터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고객이 필요할 것 같은 일정을 예측해 제안하거나, 낯선 억양을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에이전트를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분야 협력도 주목할 만하다. MS가 구축하는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에 LG전자의 대형 냉방기술 ‘칠러(Chiller)’와 열관리 솔루션을 투입해 에너지 효율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예정이다.
세탁기·오디오·노트북까지 AI를 품다
실제 제품에도 공감지능은 다양하게 적용된다. 세탁공간을 혁신하겠다고 내놓은 ‘LG 워시타워’는 커다란 7인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사용자별로 가장 많이 쓰는 세탁 코스나 위젯을 개인화한다. 내부 듀얼 인버터나 AI DD 같은 핵심 기술도 AI 기반으로 운영돼, 빨래 무게나 재질에 따라 자동으로 코스를 설정한다.
음악 기기에도 AI가 스며든다. 새로 공개된 ‘LG 엑스붐(XBoom)’ 시리즈는 사운드·조명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최적화된 상태로 들려주며, 유명 뮤지션 윌아이엠(will.i.am)과 협업해 AI 라디오, AI 사운드 캘리브레이션 등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노트북 분야에서도 ‘LG 그램 AI(Gram AI)’가 주인공이었다. 녹화된 영상에서 특정 단어를 찾을 수 있는 ‘온디바이스 AI 타임 트래블’ 기능을 넣었고, 클라우드와 연동해 일정·검색 등을 챗봇처럼 처리하는 ‘그램 챗 클라우드’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게 했다.
B2B로 영역 확장… “AI로 모든 공간이 ‘서비스’가 된다”
LG전자는 가정에서 모빌리티로, 이제는 B2B 영역까지 AI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를 “소프트웨어 중심의 바퀴 달린 생활공간”으로 규정하고, 운전 중 화상회의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스마트팩토리 분야에서는 AI·로봇 기반 제조 솔루션을 전 세계 다양한 공장에 공급 중이다. 데이터센터 협업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에너지 절감과 함께, AI 인프라가 돌아가는 핵심 시스템까지 개선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LG전자가 목표하는 바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고객에게 공감지능을 바탕으로 ‘총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조주완 CEO는 재차 강조했다. 60여 년간 제조 역량을 쌓아온 LG가, 이제 가전·디스플레이·HVAC·로봇·소프트웨어 분야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메시지다.
“Life’s Good”이라는 변함없는 기치
기조연설을 마친 조주완 CEO는 “AI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든,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 주도하고 사람에게 이로운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LG전자가 걸어온 길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라이프스굿(Life’s Good)’이라는 궁극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이 그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CES 2025 프리미어 쇼가 기존 발표 방식을 뒤집은 것처럼, LG전자는 “혁신을 소개하는 방식까지 리인벤트(REINVENT)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술 그 자체만 내세우기보다, 드라마 형태로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공감을 기반으로 한 미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관건은 이 ‘공감지능’이 제품에서 끊김 없이 작동해 우리의 일상에 안착할 수 있느냐다. CES 무대에서 펼쳐진 드라마가 실제 생활로 이어지는 순간, LG전자가 말하는 진정한 ‘새로운 공간 경험’의 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