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 상장사 대표지만, 만화인 김준구
“아저씨 돈 많이 벌어요?”
10년 전에, 김준구 네이버웹툰 부장을 인터뷰했을 때, 그가 강연에 나가면 청소년들에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아저씨 돈 많이 버느냐”였다고 했다.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아저씨, 돈 진짜 많이 벌었어.”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 말 그대로 잭팟을 터트렸다. 네이버 자회사이자, 네이버웹툰 모회사인 미국 법인 웹툰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나스닥에 27일(현지시각) 상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받을 보상액은 9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자 평사원에서 시작한 경력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대박이다.
웹툰엔터테인먼트 공모가는 희망범위 최상단인 21달러, 보통주 1500만주를 발행해 3억1500만 달러(약 4300억원)를 조달했다. 이를 통한 기업 가치는 26억7000만달러(약 3조7000억원). 상장 직후 주가가 10% 이상 급등해 장중 23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이날 종가 23달러를 대입한 기업가치는 34억5000만달러(약 4조7800억원)다. 투자업계(IB)에서 예상한 기업가치 5조원도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기업가치 4조는 너끈’ 네이버웹툰 본사, 미국 나스닥 상장]
네이버웹툰의 상장 소식은 웹툰·웹소설 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웹툰이 잘 나간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종식 이후에 콘텐츠 시장의 힘이 다소 빠졌다. 웹툰 활황기에 만들어진 제작사들도 지금은 수익을 내기 빠듯한 상황이다. 네이버웹툰이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 받으면서 미국에 진출한 것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만화를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만화로 미국 가서 큰 돈 번다’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이 꿈을 현실로 만드는데 김준구 대표의 역할이,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정말 컸다. 과거로 돌아가본다면, ‘웹툰’은 네이버가 작심하고 키운 사업 영역이 아니다. 김준구라는, 진짜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이것도 되는구나’ 확인하며 키워온 그런 영역이다. 웹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작가들을 쫒아 다니면서 “작품을 내놓으라” 닥달하던 김준구라는 개인기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한국시간으로는 27일 새벽에 열린 나스닥 상장 기자 간담회에서 김 대표는 “네이버에서 웹툰을 만들면서 누가 시켜서 만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켜서 하는 일은 좋아서 하는 일을 못 이긴다. “개인적으로 제가 엄청난 팬인데 더 재밌고 많은 콘텐츠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시에 출판 시장이 너무 어려워서 새로운 콘텐츠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하면 제가 신작을 더 많이 볼 수 있을까 이런 개인적 욕망과 욕구에서 시작했다” 이게 네이버웹툰의 시작이다.

솔직히 말해서, 만화가가 아닌 만화 관계자 중에 일반 대중에 가장 유명한 이가 그다. 연예방송 프로그램에서 작가 기안84를 잡아다가 옆에 앉혀놓고 마감 시키는 모습으로 TV에 등장하기도 했다. 작가들은 김준구를 ‘준구형’ 등으로 작품에 소환한다. 때로는 악마같은 편집장으로, 때로는 친근한 동네형 같은 존재로 노랑머리 김준구 대표는 대중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웃기는 존재로 웹툰에 표현되는 걸 김준구 대표도 본인도 별로 꺼려하지 않는 것 같아 독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래서 돌아본다. 김준구는 얼마나 만화 덕후(마니아)였나. 그간 취재하면서 들었던 김준구 대표, 개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다.
그가 입사했던 20년 전에는, 네이버에 만화는 출판만화를 디지털화하는 사업에 불과했다. 심지어 김준구 본인은 만화 관련 사업팀이 아니라 신입 개발자로 네이버에 입사했다. 이때 김준구의 똘끼(?)가 발현한다. 원래는 다른 데 썼어야 할 예산을 가져와서는 첫 웹툰을 만들어냈다. 그게 김규삼 작가의 <정글고>. 당시에 정글고를 안 본 중고등학생을 찾기가 더 힘들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어낸 작품이다. 정글고 연재로 김규삼 작가도 기사회생했다. 위 사진 속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에 서 있는 남성이 김규삼 작가인데, “출판 만화잡지 연재에서 잘리고 시장에서 퇴출당했다고 느꼈을 때” 웹툰이 활로를 열었다.
회사 지원 없이 작품 공모를 위해 사비로 상품을 만든 일도 꽤 알려진 일화다. 만화가들이 아주 많이 모인 자리에서 역시 사비를 털어 술을 사는 경우도 있다. 대략 15년 전만 해도 만화가들 한테 웹툰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만화계 원로나 기성작가들은 “웹툰이 그게 만화냐” “IT 하는 사람이 만화를 알긴 하겠느냐”라는 말을 하던 때다.
당시 김준구 사원은 작가들을 한명한명 찾아다니면서 설득했다. 덕후의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야근이었겠지만, 그에게는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을 만날 기회였다. “제가 선생님 만화 다 가지고 있다, 8800권의 만화를 소장하고 있고, 선생님 만화도 다 봤다”라고 말하는 청년을 작가들이 싫어할 리 없다. 심지어 이현세 작가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지 않은 자신의 작품을 김준구 사원에게 빌려가는 일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성 작가들도 “준구가…”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게 됐다. “너는 만화계 사람”이라는 인정도 받았다.
알려지기로 김준구 대표는 술을 즐겨하지 않는다. 잘 마시지 못하는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이든 언제든 작가가 부르면 택시 타고 달려나가는 생활을 오래 했다. 잠도 하루에 서너시간 밖에 못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작가와 일에 시간을 오래 할애한다. 웹툰 본사가 미국에 생기고, 본인도 출장을 자주 나가야 하는 지금은 예전만큼 작가들을 자주 만나긴 어려울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형호제 하는 만화계 인맥은 김준구 대표를 따라 갈 사람이 드물다.
만화에서는 칼 같은 편집장으로 주로 그려지지만 의외로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여린 면도 있다는 후문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친분으로 연재가 허용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회사에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네이버웹툰과 함께 커온 작가들, 특히 자신이 발굴해 잘 알려진 작가들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업계에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벌었고, 아주 유명한 기업인이 됐으니 어쩐지 재미없게 살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자신의 SNS에 좋아하는 드라마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조석 작가는 나스닥 상장 간담회에서 “지금 네이버 웹툰이 성공했을 때를 가장한 시트콤을 찍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만화 덕후 김준구는 지금 누구보다 만화 같은 일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