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10년 존버해 빛보기 시작한 H2

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을 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화제가 됐던 ‘RE100’을 기억하십니까? 이 단어는 신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100% 전환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의 이름이죠.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는 달리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지 않으니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대안이죠. 그러나 그렇게 좋은 걸 알면서도 쉽게 전환하진 못했습니다. 전기라는 것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계획된 수요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태양광이나 바람은 기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그래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긴 시간 쓸 수 있을 만큼의 전기를 미리 쟁여 놓을 수 있는 저장공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에너지 저장 용량이 커서, 정격 출력으로 네 시간 이상 전기를 방전할 수 있는 저장장치를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라고 부릅니다.

이런 장주기 ESS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이지만, 실상 이 일을 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크게 열리지 않아, 계속 기술을 개발하면서 버티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할 ‘에이치투(H2)’라는 회사는 맷집이 대단합니다. 무려 10년을, 장주기 ESS 시장을 기다리면서 버텼고 그 와중에 남들은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플로우 배터리’ 기술의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이따가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플로우 배터리는 액체 상태로 전기 에너지를 저장해 놓는 기술을 말하는데 국내외로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H2는 이제 수출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플로우 배터리를 독일, 폴란드 등에 판매해왔는데 지난해 연말부터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240억원 규모의 공급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에 있기도 합니다.

열릴 듯 안 열리는 시장을 어떻게 기다렸느냐고 묻자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무한 신뢰가 있었다고 말하는 한신 대표(=사진)를 최근 충남 계룡에 위치한 에이치투연구소에서 만나봤습니다.

연구소를 찾기 전부터 워낙 달변이란 이야길 들었어서 신재생에너지와 ESS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오겠구나 싶었는데, 정말로 그랬습니다. 심지어 “전기는 왜 넘치게 만들면 안돼요?”와 같은, 이과생이라면 이마를 탁 짚고서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한 질문에도 아주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H2는 어떤 회사?
카이스트 박사 출신인 한신 대표가 2010년 창업. 장주기 ESS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바나듐 흐름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생산한다. 국내에서는 바나듐 원소를 활용한 ESS가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이 분야에서 국내에서 처음 상용화 사업 실적을 거둬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 화두인 탄소중립 부문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태계 구축을 위한 변화를 꾀한다.]

누적 투자 유치금: 510억원. 2023년 1월에 더터닝포인트, 인비저닝파트너스, 케이티앤지 등으로부터 23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받았다.

충청남도 계룡시에 위치한 H2 연구소

part.1 장주기 ESS의 중요성

지금 왜 장주기 ESS 시장이 열린다고 말하는 건가?

그동안은 신재생에너지의 양이 많지 않았다. 지난해 분산에너지법이 공포되면서, 앞으로는 신재생에너지에 ESS를 의무적으로 붙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고 있다.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어느 정도 비중인가?

통상은 신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 공급량의 20%를 넘기면 안 된다. 태양광이나 바람을 사람이 통제할 수 없으니, 20% 이상 비중을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게 될 경우 갑작스럽게 생길 수 있는 전력 공급 공백을 막기 어려워서다.

20%가 넘어가면 전력 수급에 매우 민감한(critical) 문제가 되므로 반드시 ESS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그 20% 선이 넘어갔다. 제주도에 가면 풍력발전기가 그냥 서 있는 걸 종종 보게 된다. 고장이 난 게 아니라 일부러 세워놓은 거다. 전기가 남기 때문에 발전하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거다.

말을 들을 수록 ESS가 매우 중요한데. 그간은 왜 ESS 시장이 없었나?

신재생 에너지와 탄소 중립은 바늘과 실의 관계다. 신재생 에너지가 많아져야 그리드가 흔들린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재생에너지가 몇 기가와트(GW)나 존재하는지 카운트 하지도 않았다. 있으나 마나 수준으로 전력에 크게 기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를 해왔다. 한강에 누가 물을 조금 붓는다고 해서, 한강 물 수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게 변했다. 2020년 말에 우리나라가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이게 굉장한 기폭제가 됐다. 2050년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시험 날짜가 결정된 거다. 이제 준비를 해야 하는 데다 제주를 비롯해 호남 지역 등에서 태양광 발전량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눈에 띄게 신재생에너지의 영향력이 늘어났나?

지난 정권에서 태양광 발전을 장려하면서, 1메가와트(MW) 이하의 태양광 발전의 경우에는 별도 인허가 절차 없이 신청만 하면 (발전시설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그런데 그 1MW라는 양이 절대로 적은 것이 아니다. 꽤 넓은 태양광 발전소라 볼 수 있는데, 이런 발전소가 사실 제대로 인허가를 받으려면 대략 2~3년은 걸린다. 왜냐하면, 송배전망이 꽉 찼기 때문에 아무리 신재생 에너지를 만들어도 이 에너지들이 움직일 통로가 없다.

차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다닐 수가 없겠다

정부 정책은 신재생에너지로 가고 있는데, 그 정책을 위한 발전소를 설치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발전소나 변전소에 대용량의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를 갖다 놓는다면, 길이 딱 막혔을 때 “잠시 여기 기다리고 있어, 여기 저장했다가 길이 뚫리면 보내줄게” 하면 된다. 이게 송배전망의 사업자들이 대용량의 ESS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지금 이야기한 것 처럼, 장주기 ESS 시장이 이제야 열리고 있다. 10년 전에 창업했는데, 어떻게 버텼나. 지금까지는 이게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니었는데

일단은, 대용량의 장주기 ESS가 꼭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언제가 되느냐 하는 ‘때’의 문제이지, 무조건 되긴 된다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답은 알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알고 있지만 실천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이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왜 장주기 ESS로 창업을 했는지, 어떤 확신이 있었는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을 것 같다

내가 이 사업을 시작할 2012년에만 하더라도 “3~4년만 있으면 지금처럼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열리는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3년이 지나도 안 되더라.

그 3년이 세번은 반복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시장이 열리는 시기가 늦게 찾아온 것이 좋은 점도 있다. 아니, 오히려 10년 전에 이런 시장이 열렸다면 그때는 오히려 우리에게 안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아니다. 제품력 때문이다. 그때는 우리도 제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기술이 있으니 3~4년이면 제품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막상 일을 해보니까 장주기 ESS가 너무 크고, 복잡하더라. 거의 그냥 자동차 수준이다. 부품 수도 많고 그래서, “아 이건 벤처기업이 만들 수 있는 레벨의 제품이 사실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만 하더라도 저희 스스로 경쟁력 있는 제품이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5월에 공장을 준공했다. 지난해 1월, ‘제 10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이 나왔는데, 그 이전에는 장주기 ESS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시그널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차근 차근 준비해왔고, 시장의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공장을 만들었다. 남들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부분이다.

Part2. 플로우 배터리의 가능성

본격적으로 기술 이야기를 해보자 H2가 만드는 것은 어떤 기술인가?

플로우 배터리다. 아래 그림을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은데. 왼쪽 그림이 흔히 휴대폰이나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LIB)’다. 그리고 오른쪽이 우리가 만드는 플로우 배터리인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VFB)’다.

위의 왼쪽 그림을 봐달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배터리가 LIB처럼 생겼다. 양극과 음극 전극 사이에 분리막이 있고, 양극의 리튬 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며 배터리가 충전되고 음극의 리튬 이온이 양극으로 돌아가며 에너지를 방출, 방전하는 식이다. 배터리마다 각자의 장점이 있지만, LIB는 화재의 위험이 있다. 전해액이 휘발성 물질인데, 리튬 이온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100% 이동하지 않고 남은 찌꺼기의 부피가 커지면 분리막을 찢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합선이 일어나고, 갑자기 온도가 올라가는데 전해액이 휘발성 물질이다 보니 열 폭주 하듯 배터리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오른쪽 그림을 보면, 전해액이 아예 배터리 바깥에 별도로 존재한다. 전기가 액체 상태의 전해액에 저장이 되기 때문에 전해액 통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이 전기를 저장할 수 있다. 전극을 통해 충전과 방전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 따라 전해액이 순환하므로 ‘플로우’라는 말이 붙는다. 전해액 통이 크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용도로 쓰기 적합하진 않지만, 대량의 전기를 저장해놓고 있어야 할 발전소나 송배전소에서는 아주 적합한 모델이라고 볼 수있다. 전해액이 휘발성 물질이 아닌 물인데다, 전극과 별도로 떨어져 있어 화재 위험도 적다.

그렇다면 장주기 ES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 보다는 안전성인가?

어떤 목적(애플리케이션)으로 쓰느냐에 따라 더 중요한 것이 달라진다. 그런데 장주기 ESS는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다른 시간대에 방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효율보다는 안전성이나 전체적인 수명, 비용 등을 더 따져봐야 한다. 이걸 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발전 자산의 수명 기간 동안 발생하는 비용의 총합)라고 하는데, 발전소를 짓는 것 외에도 연료비, 유지보수비, 인건비 등 발생하는 비용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휴대폰에 들어가는 배터리에는 LCOE가 중요하지 않다. 한 번 사면 2년 정도 후에는 교체하니까, 배터리 수명이 15년 이상 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런데 보통 발전소는 한 번 건설하면 20년, 40년, 60년 동안 쓴다. 발전소를 짓고 오랜 기간 운영하는데 드는 총 비용이 얼마냐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플로우 배터리는 장주기 ESS에 최적화된 배터리이다. 마침, 정부가 장주기 ESS 지원 사업을 시작한다. 아까 말한 10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보면, 20.85 기가와트(GW) 장주기 ESS 도입을 확정짓고, 2036년까지 최대 45조원(29조~45조원) 규모의 사업을 한다. 장주기 ESS를 위한 배터리 기술에 언급된 것이 리튬이온과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 그리고 나트륨 황 배터리(NaS)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H2에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그렇다. 2036년이면 지금부터 10년이 조금 더 남은 상황이다. 1년에 2조~3조원씩 팔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산을 하려면 투자를 엄청나게 늘려야 한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에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를 하는 곳이 H2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캐파를 가지고 얼마나 공격적으로 투자하느냐에 따라 플로우 배터리가 장주기 ESS 도입 사업에서 차지하는 용량이 결정될 거라고 볼 수 있다.

정부 계획안에 리튬이온이 있는데, 그 시장은 거의 대기업이 많지 않나. 플로우 배터리가 경쟁력이 있을까?

리튬이온배터리는 굉장히 작게도 만들수 있고, 단기적 측면에서 효율도 좋다. 다 좋은데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고, 쓰면서 용량의 감소도 심하다. 그래서 LCOE 관점에서 15년 이상 장기적으로 보면 그 밸류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장주기 ESS는 방전되는 용량의 감소가 없어야 하고, 성능도 줄어들면 안 된다. 그런 개념에서 플로우 에너지가 유리하다고 볼 수있다.

대기업과 경쟁하게 될 텐데, 혹시나 어떤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신재생에너지가 싼 것이 아니다. 아직 얼리 스테이지의 기술이다 보니 기존의 값싼 화석 연료와 경쟁하려면 반드시 보조가 있어야 한다. 전기차도 보조금이 없으면 잘 안 팔리지 않나. 만약 신재생에너지가 제일 싸다면 저절로 이 시장이 열렸을 거다.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는 정책적 지원 없이는 절대로 정착 되기 어렵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같은 것이 생겼고, 연간 전력의 일부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하게 된 거다.

마찬가지로, 장주기 ESS를 의무화에서도 현재 배터리 기술 중 성숙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은 리튬 이온 배터리 밖에 없다. 휴대폰, 노트북, 전기차만 하더라도 시장이 매우 크게 형성되어 있다. 이런 경쟁자와 아직은 초기 시장인 플로우 배터리가 같은 조건으로 경쟁을 하면 초기 시장에선 힘들 수밖에 없다. 더 여유 있는 경쟁자들이 단기간 동안 값을 확 낮추면 다른 경쟁자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 시장에서는 리튬 이온 배터리와 플로우 배터리 기술을 반드시 구분해서 별도의 물량으로 정부에서 할당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정부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께 코스닥 상장 계획도 갖고 있다. 회사의 공신력을 높여 우수한 사람을 채용하려 한다.

더불어, 두 번째 공장을 준비를 하고 있다. 향후 2년 안에 2공장이 만들어질 거다. 지금은 330메가와트시(MW·h) 용량의 공장을 갖고 있는데, 제2공장은 최소 1기가와트시(GW·h) 급의 공장을 완성할 예정이다. 다른 회사들이 플로우 배터리를 해야겠다고 뛰어들기에는, H2 수준으로 공급하기에 최소 10년이 넘게끔 준비를 해야 할 거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그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수있도록, 우리가 아예 발전소 시스템을 만들어 핵심 기자재를 공급하고, 그 사람들이 발전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려고도 하고 있다.

업데이트

앞으로 에이치투와 관련해 새로 나오는 뉴스나 관련 기사는 하단에 계속해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새로 궁금한 소식이 있다면 계속해 찾아주세요!

* 관련기사: [그게 뭔가요] 40조 시장 열리는 장주기 ESS(feat. 바나듐)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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