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가요] 40조 시장 열리는 장주기 ESS(feat. 바나듐)
신재생에너지, 좋죠. 깨끗하고, 에너지가 고갈될 위험도 없고요. 그런데 왜 많이 못 씁니까. 나라 전체에서 매일 쓰는 전체 전기의 양을 신재생에너지로 딱 맞춰 공급하기 어려워서죠.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낀다거나, 바람이 멈추면 에너지가 생산되다 딱 멈추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매일 필요로 하는 전기의 양이 있는데, 이것보다 전기가 많이 공급되거나, 혹은 적게 공급되면 ‘정전’이 일어날테니 전체 전기 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쉽게 늘리기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이 문제를 앞으로는 좀 해결해보겠다는 내용의 발표를 정부가 했습니다. 해님이나 구름, 바람을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가능하냐면요. 평소에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하는 전기를 커다란 저장장치에 저장해놓았다가, 필요할 때 꺼내쓰겠다는 것이죠. 당장 에너지 생산이 멈춰도, 이 저장장치로부터 4시간, 6시간, 8시간씩 필요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방전)할 수 있다면,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가능해질테니까요. 이렇게 긴 시간 전기를 방전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저장해 놓는 장치를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라고 부릅니다.
장주기 ESS 확대 계획
지난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 확대 및 일부 지역 보급 집중에 따라 수급 불균형, 주파수 안정도 저하 등 계통 불안정 심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여 동기조상기와 저장장치 확보 필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백업설비 구성을 위해 약 최소 29조원에서 최대 45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2036년까지 20.85기가와트(GW) 규모의 에너지 저장장치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죠.
정부 정책과 투자금이 장주기 ESS 시장을 열어젖히고 있는 셈입니다. 큰 돈과 기술이 필요하므로 이 시장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회사들도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 보입니다. 정부는 “(백업설비인) 기타 저장장치는 리튬, 나트륨, 이온, 레독스 플로우, 마그네슘 등 다양한 소재와 기술에 대해 중립적으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이중에 좀 낯선 단어가 있습니다. ‘레독스 플로우’입니다. 리튬 이온 전지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이나 혹은 전기차 충전 같은 데서도 많이 쓰이니까 낯익은데, 레독스 플로우는 잘 들어보지 못한 단어죠.
레독스 플로우 전지란?
레독스 플로우 전지(RFB)는 대형에너지 장치로서 신재생 에너지와 같은 전력발생이 일정하지 못한 상황이나 전력수요가 급증감해 효율적인 에너지의 운용이 요구될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지모델을 말합니다(레독스 플로우 전지의 레독스 쌍, 2013, 황병현, 김기택). 오, 개념은 알겠는데 동작원리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밑에 그림을 잠시 좀 보고 오겠습니다.
크게는 전극과 전해액이 보이네요. 이 에너지 저장장치에서는 전기 에너지가 전해액에 저장됩니다. 그러다가 전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액체 상태로 저장이 되어 있는 전자를 전극으로 보내서 충전과 방전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전자의 순환이 있으므로 ‘플로우 배터리’라고 표현하는 것이고요. 대용량으로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려면 전해액 통이 크면 클수록 좋겠네요.
레독스 플로우의 대표 주자 ‘바나듐’
이 전해액의 활성물질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 것이 ‘바나듐’이라는 원소입니다. 국내에서는 에이치투(H2)라는 회사가 바나듐 플로우 에너지저장장치(VFB) 기술을 오래 개발해왔기 때문에, H2로부터 위의 사진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바나듐 원소가 독특한 것 중 하나는 전기가 방전됐을 때와 충전됐을 때 색이 바뀐다는 겁니다. 산화 상태에 따라서 보라색, 녹색, 푸른색, 노란색 등으로 달라져서 현재 이 에너지저장장치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산화 상태 역시 안정적이라는 것이 배터리로 쓰기 좋은 점이고요. 바나듐은 철광석과 같은 광물에서 추출할 수 있고, 비교적 매장량이 많은 편이기도 합니다.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는 확실한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물과 같은 전해액에 바나듐 원소를 녹여 만든 것이므로 폭발의 위험이 없어 안전하죠. 그리고 전해액 통이 클수록 더 많은 전기를 머금고 있을 수 있으므로, 대용량의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드는 데 맞춤합니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2차 전지 중에서는 수명도 가장 긴 편이라, 통상 20년 정도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전기를 많이 저장해놓고 있어야 하는 발전소나 송전소에 적합하고요, 대신 크기를 작게 줄일 수 없어서 전기차 배터리로는 쓰기 어렵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생각해보면 좋겠는데요. 리튬 이온 배터리는 저렇게 큰 별도의 커다란 전해액 통이 없으므로 작게 만들어 쓰기 좋아 전기차에서 이용 가능하지만, 대신에 양극전극과 음극전극을 둘러싼 전해액이 휘발성 물질로 이뤄져 있어 폭발 사고가 날 위험이 존재합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하는 곳에서도 그런 위험 때문에 휘발성 물질의 전해액이 없어도 되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고요. 발전소는 특히 화재 위험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므로 바나듐 플로우 전지와 같은 대안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정리하자면, 장주기 ESS 시장이 열리면 리튬 이온 배터리를 비롯해 전기 에너지를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여러 저장장치가 더 많이 필요해질 겁니다. 게다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를 만드는 곳이 많으므로, 리튬 이온 배터리의 공급 역시 늘어나겠죠. 다만 리튬 이온 배터리는 화재의 위험이 있으므로 안전한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레독스 플로우 배터리가 대안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죠. 전해액이 물이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적으니까요. 그 레독스 플로우 배터리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바나듐을 활성원소로 전해액에 녹여 쓰는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가 되겠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