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캔 뚜껑 하나가 불러올 수 있는 변화 – 이그니스

이라인네트워크에서 타트업을 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얘기는 알루미늄 캔에 관한 것이다. 콜라나 사이다가 들어있는 그 캔이다. 알루미늄 캔 뚜껑이 지금처럼 마개를 당겨 여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무려 1975년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캔 뚜껑을 열려면 날카로운 칼날로 뚜껑을 절삭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다칠 위험이 컸고, 뒷처리도 어려웠다. 그런데 마개만 당겨서 열 수 있다니, 당시로는 혁신이었다.

그러기를 오십년. 여전히 우리는 알루미늄 캔을 마개를 당겨 딴다. 불편함은 남았다. 한 번 마개를 딴 캔 음료는 다시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없다. 뚜껑을 막을 수 없어 금방 쏟아져 버린다. 대체 수단을 써서 억지로 마개를 막는다고 해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건 김 빠진 탄산이다. 500ml 짜리 플라스틱 음료 용기는 만날 수 있지만, 500ml 짜리 알루미늄 콜라 캔을 만날 수 없던 건 이런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이그니스는 이 알루미늄 캔 뚜껑을 교체해 시장을 바꿔보겠다는 스타트업이다. 원래는 ‘랩노쉬’와 같은 간편식으로 창업했고, 지금도 식음료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푸드테크 회사다. 그러나 이그니스가 최근들어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알루미늄 캔 뚜껑 덕이 큰데, 최근 348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캔 뚜껑을 열고 닫겠다는 기술에 투자사들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캔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모두가 했겠지만, 의외로 기술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하는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를, 최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이 회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밀개폐식(밀어서 열고 닫는) 뚜껑을 4세대 캔 뚜껑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어떻게 열고 따느냐의 문제

밀개폐식 뚜껑이 열리는 순서. 마시다 남은 캔 음료를 가방에 넣어 돌아왔는데 흐르지 않았다.

일단, 캔 뚜껑을 따 보자

이 캔 뚜껑은 기존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개선됐나

우선 열었다가 다시 닫을 수 있다. 들고다니면서 가방에 넣고 마셔도 새지 않아 보관이 편하다. 6개월 정도는 탄산이 보존된다. 알루미늄 캔을 사용하면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플라스틱 페트 한 병을 알루미늄으로 바꾸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의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재활용률도 페트병은 7% 밖에 안되는데 알루미늄 캔은 80%에 달한다.

왜 캔 뚜껑에 관심을 갖게 됐나?

실리콘밸리에 ‘캔 워터’라는 상품이 있다. 미국에서 현재 잘 팔리고 있는 브랜드인데, 현지에서 플라스틱이 환경 문제가 되다보니 생수를 캔에 담아 파는 콘셉트로 시장에 나왔다. 마케팅도 “플라스틱에 죽음을 선고한다”는 악마 콘셉트라 눈에 띄었고, 지금은 주류로 편입이 돼 엄청나게 잘 팔린다. 한국에도 이런 제품을 가져와 만들면 너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캔 시장이 독과점이라 굉장히 재미있는 특색이 없으면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밀개폐 식 형태로 된 캔워터를 봤다. 똑같이 캔 워터지만 밀개폐식 뚜껑이 달려 있어서, 너무 사용성이 좋았다. 이 제품이라면 차별성을 갖고 (한국에서도) 출시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그니스가 처음 개발한 것이 아닌가?

독일에 있는 ‘엑솔루션’이라는 업체에서 밀개폐식 알루미늄 캔 뚜껑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었다. 이 업체를 만나 바로 이야기를 진척시키려 했는데, 코로나라서 미팅이 어렵다고 하더라. 당시가 2021년 말이었는데, 무조건 비행기표를 끊어 현지로 찾아갔다. 서너달을 설득해서 한국에서 캔 뚜껑 판매 독점권을 얻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이 솔루션 회사가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한 거다. 당시에 이미 엑솔루션의 뚜껑으로 만든 캔 음료를 편의점에 납품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뚜껑을 확보하기 위해서 엑솔루션 인수전에도 뛰어들었고, 결국 인수했다.

◼ 스타트업만이 할 수 있는 인수법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

한국의 스타트업이 글로벌 특허를 갖고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번에 투자 유치를 받으면서 투자자들도 그걸 제일 궁금해 했다. “이렇게 좋은 회사를 왜 대기업들이 미리 사가지 않고 이그니스와 같은 작은 스타트업이 인수하게 됐느냐”라는 질문이다(웃음). 생각보다 타이밍과 운이 잘 맞았는데, 독일의 파산법이 굉장히 강하다. 엑솔루션의 경우 생산 안정화를 위해 미국에 설비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받았는데, 그 투자사의 자금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회사가 매각에 이르기까지 됐다.

그런데 매각 주관사가 “한 달 안에 실사를 마치고 대금을 납입할 수 있는 회사”를 인수의 조건으로 걸었다. 결재 라인이 복잡한 대기업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조건이다. 이그니스가 원래 납품을 받던 업체라 상황을 먼저 인지했고, 빠르게 행동했다. 거의 불가능한 스케줄이었는데, 한국과 독일 변호사로 팀을 꾸려서 2주 만에 독일 전체로 실사를 돌고 3주만에 납입까지 마치는 굉장히 빠른 프로세스로 진행했다. 나중에 현지 언론에서 “100개 정도의 업체가 입찰을 들어왔는데, 아시아의 한 업체가 인수해갔다”는 기사가 나왔더라. 실사 당시에는 경쟁업체가 몇 군데인지 조차 몰랐다.

이그니스가 340억원대 투자를 받은 데는 엑솔루션 인수의 공이 크지 않았나

그렇다. 글로벌로 성장할 가능성을 만들어줬다. 게다가 특허 서류만 팔아도 사실 본전은 남는다. 엑솔루션을 인수하면서 핵심 기술을 가진 이들을 모두 그대로 고용승계 해 인재를 확보했다. 또, 엑솔루션에서 이미 영업해 놓은 곳들이 있어 글로벌로 판매처를 가져오기도 했다.

밀개폐식 캔 마개를 이미 적용해 판매하는 곳들이 있나?

일단 이그니스가 자체 개발해 판매하는 탄산 브랜드로 ‘클룹’이 있다. 클룹에 엑솔루션의 밀개폐식 마개가 적용하고 있다. 이 클룹이 이그니스가 그간 만들었던 브랜드 중 가장 빠르게 초반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보통 음료 업계에서는 한 브랜드가 연간 100억원어치 정도 팔리면 메가히트라고 한다. 그런데 클룹이 출시 첫 해에 100억원 매출을 넘겼다.

글로벌 고객사도 몇 군데 있다. 오비맥주를 인수한 앤호이저 부시 인베브(ABI)가 엑솔루션의 뚜껑을 적용한 하이볼을 월마트에서 판매 중이다. 세계 최대 와인 기업인 갤로에서 만든 하이볼과 펩시 자회사인 마운틴뷰 일부 제품에도 우리 뚜껑을 달았다. 엑솔루션이 기술은 좋았고 영업을 계속 해왔지만 생산 안정화가 안되어 있었는데, 이그니스가 회사를 인수하고 생산 안정화를 시작하면서 납품이 시작됐다. 지금도 글로벌 업체들과 계속 미팅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판매처를 늘리고 있다.

생산 물량이 어떻게 되나?

현재는 연간 2~3억개 정도 만들고 있다. 현재 공장을 증설 중인데, 내년 상반기 정도면 생산량이 최대 6억 개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전체 음료 시장으로 보면 아주 작은 규모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캔 음료가 1년에 60억개가 팔린다. 미국에서는 700억캔이다. 그래서 적어도 연간 생산량이 30억개는 되어야 음료 시장에서 의미가 있는 판매량을 가진다. 계속해 확장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뚜껑만 봐서는 이게 어려운 기술인가 싶기도 하다

20개국에 180개 정도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단순해 보여도 특허가 집약된 기술이다. 기존의 알루미늄 캔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만들려면 뚜껑의 높이가 전체 9mm를 넘기면 안 된다. 지금까지 밀개폐식 뚜껑에 도전한 곳은 여럿이었으나 그 기술장벽을 넘지 못해 실제 생산에 들어가진 못했다. 얇게 만들어 기존의 생산라인에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음료와 탄산이 새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술력이다.

가운데 몬스터의 경우 밀개폐식 뚜껑을 시도했으나 뚜껑의 높이를 줄이지 못해 생산에는 실패했다. 밑에 클룹 등에 적용된 밀개폐식 뚜껑은 전체 높이를 6.5~7mm에 맞췄다.

문제는 단가일 것 같은데

고가의 음료는 캔 뚜껑에 큰 영향을 받진 않지만 생수처럼 저렴한 음료의 경우엔 단가가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밀개폐식 뚜껑이 기존의 캔 뚜껑에 비해 제작원가가 더 비싸긴 하다. 하지만, 현재 제조 설비를 통합하고 있는 데다 생산량이 늘어나면 일반 캔 뚜껑보다 아주 약간 비싼 정도로 가격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캔 뚜껑의 원가가 30원 정도라면, 30원 후반, 40원 초반대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

국내 업체 반응도 판가가 60~70원만 돼도 도입해 팔고 싶다는 곳들이 많다. 원가를 낮추고 나면 캔 업체에더 이걸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뚜껑을 도입해서 기존에 350ml로만 팔던 음료를 500ml짜리로 팔 수 있으면 판매가도 올라간다. 캔 음료를 만드는 업체 입장에서도 더 큰 마진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 알고 있던 알루미늄 캔 음료의 용량이나 모양도 좀 달라질 수 있겠다

그렇다. 맥주가 아닌 탄산 음료로 500ml 짜리가 나온 건 클룹이 처음이다. 그래서 업계에서 우리를 신기하게 보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이 원샷 하기 어려운 음료가 있다.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와 같은 음료 부문에서는 확실이 이런 밀개폐식 뚜껑에 대한 수요가 있을 거라고 본다.

작은 뚜껑이 불러올 수 있는 변화가 크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솔루션 공장을 확장하려 한다. 생산 물량을 확보해 밀개폐식 뚜껑을 알루미늄 캔 뚜껑의 4세대 표준으로 만들어 적용하는 브랜드 개수도 늘리고 싶다. 그리고 상장도 목표로 한다. 내년에는 해외 시장의 매출 포지션도 전체의 10% 이상 가져가려 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