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웹툰 결말 결정하고, 보상도 나눠 가진다”

절대 강자가 있는 시장에서 신입이 펼 수 있는 효과적 전략은 무엇일까? 룰에서 이탈하는 것일 수 있다. 웹툰은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플랫폼의 절대 강자가 있는 시장이다. 이제 막 플랫폼의 문을 연 치즈코믹스는, 제3자가 보기에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이라고 부르기에도 작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들고 있는 룰 파괴용 무기 만큼은 의미가 있다. 지금 웹툰 시장을 형성하는 세 주체를 거칠게 ‘작가-플랫폼-독자’라고 본다면 치즈코믹스는 이중 가장 소외된 주체, ‘독자’에 무게 중심을 두도록 플랫폼을 설계했다.

독자 무시하는 플랫폼이 어디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모두 독자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치즈코믹스가 하는 주장은 “작품의 생산에 독자가 기여하게 하고, 작품에서 난 수익을 독자도 나눠가져야 한다”이다. 이런 주장이 왜 나올 수 있었냐면, 치즈코믹스를 만든 스타트업 ‘오지’가 원래 웹3.0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회사여서다.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보상을 나눠 갖도록 하는 것은 웹 3.0의 주요 철학 중 하나다.

오지는 이 철학을 치즈코믹스에 담았다. 독자가 매 회 결말을 선택하게 하고, 작가는 미리 창조한 세계관 안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아들여 줄거리를 창작해 나간다. 작품의 IP가 성공해 굿즈를 만들거나 2차 저작물을 생산하게 되면, 그때 벌게 된 돈은 작가와 독자, 플랫폼이 나누는 방식의 수익 모델을 설계했다.

독자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은 기존의 플랫폼이 만들어 놓은 웹툰 시장의 룰에서 이탈하는 방식이다. 아직 규모가 작아 성공을 담보하긴 어렵지만, 유의미하게 성장한다면 콘텐츠를 생산하고 수익을 나누는 비즈니스 모델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플랫폼을 계획하고 운영을 준비 중인지, 이홍인 대표와 배승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왼쪽부터) 오지 이홍인 대표, 배승준 COO.

웹툰의 결말을 독자가 투표한다

웹툰의 내용이 내 선택에 따라 변화한다는 개념 자체가 조금 생소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투표 기간을 조금 길게 잡아두고,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에 대해 이해하도록 학습하는 시간으로 준비했다. 우리 서비스의 핵심 가치는 5월 15일 경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전에 네이버에서 인터랙티브 웹툰을 시도했다. 독자의 이름이 반영되기도 하고 내용의 흐름을 결정짓도록 선택지를 주기도 하고. 기존의 시도랑 비교하면 무엇이 다른가?

하일권 작가의 ‘마주치다’가 그런 시도를 했었다. 당시에도 화제성은 좋았지만 시스템적으로 정착하지는 않았다.

(# 하일권 작가가 ‘마주치다’를 연재한 때는 지난 2017년. 당시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인터랙티브 웹툰과 관련해 하일권 작가와 한 인터뷰를 첨부한다. 참고기사= 독자와 마주쳤다, 하일권)

하 작가의 웹툰은 흥미로운 시도였지만, 그 이후에 인터랙티브 웹툰이 꾸준히 나오진 않았다

처음에 인터랙티브 웹툰을 하겠다고 유저 인터뷰도 하고 투자자들과도 논의를 했는데, “하일권도 안 됐는데 너네가 어떻게 하겠냐”는 이야기들을 하더라. 그래서 분석을 좀 해봤는데, 당시 ‘마주치다’에는 인터랙티브 요소 외에도 증강현실(AR)을 비롯해 다양한 기술이 사용됐다. 일종의 기술경연처럼 사용자들이 느꼈을 것 같다. 사용자가 웹툰을 보면서 기대하는 것이 조금 무너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웹툰은 스토리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습득하는 차원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유튜브나 틱톡 같은 동영상이 동적인 미디어인 반면 웹툰은 그래도 정적인 형태로 내 감성적인 부분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볼 수 있다는 부분이다. 스토리성과 독자가 자기 사용 패턴을 스스로 콘트롤할 수 있는 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도록 치즈코믹스를 설계했다. 게다가, 기존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선택지를 모두 사전 제작한 다음 독자에 제공하는 것이라 진정한 인터랙티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즈코믹스는 인터랙티브를 어떻게 구현하나?

엄밀하게는 실제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가가 일주일 동안 작업을 해 연재되는 형태이므로, 진짜 인터랙티브라고 본다. 현실 세계에서도 내가 하는 선택이 진짜 내 삶을 변화시키지 않나? 기존 콘텐츠는 그런 변화의 요소가 없었는데, 우리는 그런 요소를 추가해 차별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치즈코믹스에 연재되는 만화도 A냐 B냐, 둘 중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 아닌가?

더 다양한 상호작용 라인을 만들어 두려 한다. 하지만 아직은 초반이라 제한된 형태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구현하는데, 기본적으로 독자는 작가가 제공하는 스토리를 감상하고 싶다는 욕구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제한적으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그 경험에 대한 익숙도가 높아지면 다른 방향의 상호작용 라인도 구축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선택 결과에 따라 작품을 그려야 하면 세이브 원고(미리 작업해 준비해 놓는 원고) 만들 없는 구조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거나, 노동 강도가 세지지 않을까?

보완하는 장치를 한 두가지 마련했다. 첫번째는, 회당 웹툰 컷 수를 30~40개 정도로 짧게 만들었다. 작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독자들이 ‘숏폼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걸 반영했다. 또, 연재 시작 전에 작품의 세계관을 작가의 머리 속에 확실하게 자리잡아 놓고 연재 중에는 캐릭터가 스토리에 따라 이동하는 형태로 작업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참여를 하더라도 작가가 어느정도 안정성 있게 연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비즈니 모델은 어떻게 잡았나?

1차적으로는 투표를 할 수 있는 투표권을 유료로 판매한다. 투표권의 개당 가격은 기존 웹툰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미리보기나 완결보기 값과 유사한 300원 정도로 일단 책정을 했다.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도 도입했는데, 투표나 댓글과 같은 참여를 일종의 작품 기여도 경험치로 계량화하고, 이 수치가 쌓일수록 레벨이 올라 굿즈와 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이 붙을 예정이다. 추후에 작품 인지도가 올라가고 팬덤이 형성되면 작품 세계 안의 여러 IP를 활용해 1차적으로는 캐릭터 상품화를 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작품 빨리 흥행하려면 인지도가 있는 작가들이 참여해야 같은데

기존의 플랫폼에서 성과를 낸 분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지금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작가분들이 대략 150명 정도인데, 연재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세계관 설정이나 1화 콘티 작업을 해보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현재는 다섯분의 작가가 연재를 시작했고, 추후에 그 숫자는 늘어날 거다. 하반기 목표치는 15개 정도의 작품 라인업을 운영하는 거다.

작가들에게는 시스템이 어떠한 강점이 있다고 설득했나?

작가들이 웹툰 시장에 진입하는 것 그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다소 초과 공급 상태라 보여진다. 소비자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는데 그에 반해 굉장히 많은 웹툰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방향성도 다양성보다는 양적으로 많이 생산하는데 집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많은 작품이 같은 형식으로 제공되다보니 작가 개인은 주목받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릇 자체가 달라지면 그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동일한 매체에서 똑같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경쟁하는 시스템보다는, 우리가 조금 다른 형식을 제공할테니 여기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해 주목을 받는 게 어떻느냐는 식의 제안이다. 여기에 굿즈와 같은 2차 저작물의 유통도 플랫폼에서 담당해 작은 규모 매출도 가능하다고 말을 하면, 수긍하는 분들이 있다.

투표에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는 독자의 수가 얼마나 되면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기존 웹툰 플랫폼에서 유료 소비자들이 쓰는 평균 소비 금액이 대충 월 1만원 정도 쯤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수준으로 구매하는 독자들이 우리 플랫폼에서 최소 5000명 정도는 확보가 돼야 우리가 그리려는 그림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들과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하나?

우리가 신생 플랫폼이니 기존 플랫폼보다는 조금 더 작가에 우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핵심적인 부분은 2차 창작이나 활용에 대한 수익금을 작가분들이 훨씬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거다. 원래는 IP 토큰이라는 형태로 작가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투표한 만큼 지분을 받아갈 수 있는 조각 투자 모델을 구상했지만, 아직은 법적 제도가 다 마련되어 있지 않아 조금 이르다는 판단이 들었다. 현재로서는 IP를 2차로 활용하는 권한 자체를 독자가 50%, 작가가 40% 플랫폼이 10% 가져가는 형태로 생각 중이다.

두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사용자 참여를 활성화하고, 작품이 잘 되면 독자도 같이 돈을 버는 것 말이다

우리는 원래 웹툰에 집중하는 회사는 아니었다. 웹3.0기술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사용자가 기여를 하고 응당한 보상을 받는 것”에 대한 기술적 성숙도나 소비자 인식이 아직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웹툰으로 넘어 왔다. 기존의 웹툰 플랫폼은 “좋은 웹툰을 제공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서 구매하는 것”에서 끝났다. 그런데 웹3.0의 개념을 도입하면, 사용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아지고 활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가져갈 수 있다.

웹3.0의 기술적 부분은 걷어낸 다음, 일단 “기여한 만큼 보상을 가져가자”는 웹 3.0의 원칙을 웹툰 플랫폼에서 실현해 잘 키워보려고 한다.이렇게 되면 기존 웹툰 시장의 논리인 “최대한 많은 작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과는 다른, “고객과의 관계를 탄탄히 해서 더욱 튼튼한 팬덤을 만들어내는 형태의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의 양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은 요일마다 작품 수를 가득 채워놓는다. 그래야 한 번에 여러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수요도 맞출 수 있고, 다시보기나 미리보기와 같은 유료 상품 결제도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다섯편, 열다섯편 같은 정도의 작품 수는 너무 적지 않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것은 웹 3.0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플랫폼인데, 형태 자체가 양으로 승부를 보는 플랫폼은 아니다. 탄탄한 고객 관리를 통해서 소수의 IP를 계속해 키워나가는 모델이 조금 더 먹혀 들지 않을까?

플랫폼이 작동하는 과정이나 철학은 사실 웹3.0과 같아 보인다. 웹3.0과 결합할 콘텐츠 후보 중에서 웹툰을 고른 이유는?

NFT 커뮤니티도 운영을 해봤고, NFT 판매도 해봤는데, 접근성 문제와 IP 부재의 문제를 느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웹툰 플랫폼을 시도하게 됐다. 접근성 문제는, 웹3.0 프로덕트들이 로그인부터 어렵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터넷 서비스처럼 간편 로그인이나 이메일 등록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지갑으로 로그인을 하는 형태다. 굉장히 복잡하고, 비밀 번호도 외우기 어려운데다 잃어버리면 절대 찾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기존의 콘텐츠를 즐기는 분들도 이런 (복잡한) 경험을 수용하는 이들이 굉장히 소수라는 판단이 들었다. 기술적 접근성 문제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두번째 자체 IP 부재 문제는, NFT를 판매해봤지만, 세계관과 내러티브(서사)가 없는 단편적 그림은 팬덤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약한 구심력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장이 점점 투기화될 뿐더러, 진짜 콘텐츠를 소비하는 분들이 NFT에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한 비주얼과 내러티브라는 두 요소를 담은 최소한의 매체를 찾아야했고, 그게 웹툰이라고 생각했다.

IP의 2차 활용에서 ‘굿즈’를 강조하고 있는데, 굿즈가 영향력이 있나?

(굿즈를 비롯한 IP 활용은 배승준 COO가 담당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배 COO가 했다)웹툰 쪽도 굿즈에 관심을 점점 더 가져가는  추세다. 최근에는 네이버나 카카오도 굿즈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통계를 봐도 2차 창작인 굿즈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텀블벅이나 와디즈 같은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이런 상품을 많이 출시하는 경향도 강하다

아직은 웹3.0의 기술이 치즈 코믹스 플랫폼에 붙어 있진 않은데

기존에 NFT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 (플랫폼에 기술을 붙일) 준비는 다 되어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사용자들이 기술을 그렇게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단계를 밟아가려고 하는데, 지금은 아예 사용자가 블록체인 기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형태지만, 나중에는 플랫폼에서 토큰을 받아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추가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투자 유치 상황은?

지난해 퓨처 플레이랑 필로소피아 벤처스에서 초기 투자를 받았다. 현재는 팁스에 선정된 상태다.

이름이 오지인가

오리지널 갱스터의 약자다.  NFT 업계에서는 한 분야에서 존경받는 이들을 오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판단했을 때는 아직까지 이런 초창기 산업에서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처럼 존경받는 선도적 서비스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스스로 그런 서비스를 많이 출시해 오지 포지셔닝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름을 오지라고 붙였다.

앞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은?

인터넷에서 두 가지 화두는 웹3.0과 인공지능(AI)이다. 사용자들이 자신이 보유한 NFT가 작품에 나올 수 있도록 작가에게 출연을 부탁하는 모델도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GPT 모델을 활용해 사람들이 키워드를 입력하면 소설의 첫 문단을 작성해주는 기능도 테스트 중에 있다. GPT가 다른 것은 잘하지만 창의적 글쓰기에 약한 부분이 있고, 한국어도 부족하다는 부분에서 빈틈이 있다. ‘AI 소설 어시스턴트’ 같은 걸 만들어서 사용자가 저희 서비스에서 소설을 출품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사용자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음 문장을 추천받거나 기존 문장의 보완을 도움 받을 수 있도록 (창작) 모델을 학습시키고 고도화하는 것을 준비 중에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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