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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취업] ‘문송’ 뚫은 그녀, 실리콘밸리도 가능합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 따라 취업 시장이 예전만 못한 상황입니다.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올해 긴축 정책 시행과 함께 보수적인 인력 운용 방침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날씨는 풀리고 있지만, 취업 시장엔 여전히 한파가 몰아치고 있네요.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가 기업 현직에 몸담은 다양한 인사들을 찾아 취업준비생과 이직을 고민 중인 분들이 참고할 만한 유익한 읽을거리와 정보를 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최근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당찬 그녀를 만났습니다. 문과 출신으로 실리콘밸리 대표적인 기술 기업 시스코(Cisco)에 근무 중인 김세희 프로덕트 디자이너(34)인데요. UX 디자이너로도 불리네요.

<참고기사: 왜 여전히 실리콘밸리를 말하나 (feat.경험담)>

김 디자이너는 작년 9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 나왔던 곽수정 메타 뮤직 에디터가 추천한 인사인데요.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할 일이 있어, 곽 에디터에게 주변인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가진 김 디자이너를 만나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제 직무가 UX 디자인, 여기서는 프로덕트 디자인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그쪽에서도 디자인 시스템이라고 조금 더 디테일한 영역이에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일련의 가이드라인(지침)의 집합을 만들고 관리하고 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품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라는 가이드를 주는 역할을 하는 팀에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김 디자이너는 시스코의 화상회의 협업 솔루션 ‘웹엑스 팀즈(Webex Teams)’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웹엑스 팀즈 개발자를 위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고 보면 됩니다. 웹엑스 팀즈는 일반 소비자용이 아닌 기업용 솔루션인데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많이 쓴다고 하네요. 그녀는 “써보면 되게 좋다”며 웃었습니다.

“UX 디자인이 그나마 다른 분야에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80%가 디자인 전공자이긴 하나, 그렇게 전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도 합니다. 심리학 전공자도 있고요. 저는 토종 문과로 언론홍보랑 경영을 전공했는데, 이 분야로 넘어오게 됐죠. 사실 이런 케이스가 많지는 않아요.”

그녀는 실리콘밸리에서 너무 일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꿈을 위해 도전했고, 꾸준히 준비한 끝에 기업용 솔루션으로 유명한 시스코에 입사했는데요. 이제 3년차입니다. 그전엔 한국IBM에서 마케팅 직무에 몸담았습니다.

“여긴 테크 회사들이 많아서 수요가 많은 직업이 개발자입니다. 그런 쪽이 아니면 VC(벤처캐피탈)나 투자 이런 쪽 수요가 많은데요. 디자인도 많고요. 제가 마케팅을 했고 그쪽으로도 알아봤는데, 너무 수요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외국인 신분으로 여기에 살기 위해선 비자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마케터는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아요. 연봉 조건도 낮은 편에 속하고요.”

그녀가 ‘디자인’으로 과감히 눈을 돌린 이유입니다. 문과 출신이 테크 기업으로 넘어올 수 있는 루트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요.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을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 디자이너는 ‘후회하기 싫어서, 실리콘밸리’라는 브런치북을 운영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일하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점은 노력하면 거기에 걸맞은 보상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여기에선 인턴이 프로젝트를 맡아도 잘 되든 안 되든 끝까지 책임지고 갈 수 있거든요. 맡은 프로젝트는 아무도 터치할 수 없습니다. 오너십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장도 크고 아무래도 스케일이 훨씬 크니까 제가 만든 버튼 하나도 많은 사람들이 쓰니까 그게 정말 멋있는 경험인거 같아요.”

그녀는 ‘일하는 문화’와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서와 다른 말 그대로 ‘수평적인 관계’도 짚었는데요. 인턴이 디렉터나 리더에게 농담을 던지거나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분위기라고 하네요.

“여기에선 제가 뭘 입든 언제 출근하고 퇴근하든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진짜 수평적인 체계가 잡혀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정말 내 일만 신경 쓰고 하면 된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예요.”

김세희 시스코 프로덕트 디자이너 (사진=본인 제공)

김 디자이너는 쉽지 않은 타지 생활의 고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행을 결심하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이 꽤 있다고 하네요. 그럴 때 현지 커뮤니티가 도움이 되곤 합니다. 한국인 커뮤니티 내에 서로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다고 하네요.

“제가 브런치북을 쓰게 된 이유는 여기 왔는데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너무 오고 싶은 열망이 컸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업까지 바꿨는데 말이죠. 막상 그게 이뤄지고 나니까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중간에 한국에도 갔다 왔는데 더 심해졌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브런치를 하게 됐고요. 더 좋은 조건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신 분도 계시지만, 여기 왔다가 가족이나 친척 친구가 아무도 없다 보니까, 번아웃이 와서 또 향수병 때문에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고요.”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나, 한국에서도 일하고 여기서도 일해본 경험에서 말하자면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분들보다 결코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 기준에서 제일 일 잘하는 분은 전 직장 상무님입니다.(웃음) 여기 시장이 크다 보니 주목을 받는 것이지, 과대 포장된 부분도 분명 있어요. 너무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부분만 보고 허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워 주면서, 현실적인 부분도 짚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레이오프(해고)’였는데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퇴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외신을 보셨을 겁니다.

“레이오프를 보면서 정말 내가 미국에 살고 있구나 그런 걸 느껴요. 어느 날 갑자기 아는 사람이 없고 그럴 때가 있거든요. 조직 개편도 많은 편이고, 1년에 한 번은 무조건 하는 것 같아요. 당일이나 전날 레이오프를 통보하는 회사도 되게 많더라고요. 갑자기 인트라넷 접속이 안 되고, 인사팀에서 와서 ‘너 오늘 해고야’라고 영화에 나오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이처럼 실리콘밸리에선 레이오프가 일상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해고당했다고 저성과자라고 보는 시각은 없다고 하네요.

“여기에선 정리해고 대상자를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시선은 전혀 없고 회사가 진짜 비용 절감을 위해 잘랐구나 이렇게 보는데요. 그래서 레이오프된 사람들을 연결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고요. ‘오늘 정리해고 대상자냐’ 하면서 바로바로 연락이 온대요. 물론 기분은 좋지 않죠. 다만 해고 자체만으로 이 사람의 실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보시면 됩니다.”

김 디자이너에게 실리콘밸리 연봉 수준을 물었더니, 빅테크 기준으로 보면 1년차도 연봉 10만달러(약 1억2700만원)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다만 버는 만큼 세금으로 많이 나가고, 살인적인 현지 물가로 체감 연봉은 더욱 낮아진다고 합니다.

“제가 혼자 사는데, 스튜디오 아파트라고 하죠. 원룸인데요. 보증금은 1500불이고요. 한화로 월 300만원을 넘게 내요. 이게 여기 평균치인거 같아요. 팔로알토에 있는 원룸이면 400만원도 하고 이래요. 장을 보면 간단한 거만 사도 50불이 넘고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그녀에게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더니, 진지한 고민을 당부했습니다. 또 폭넓은 시야를 주문하더군요. 너무 큰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모든 이들에게 실리콘밸리가 답은 아닐 수 있어요. 저는 원하는 게 뭔지 알았고, 여기에 살고 싶었고 그런 것 때문에 늦은 나이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왔고요. 어찌 됐건 잘 지내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와서 실망할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할 거 같고요. 행복해지자고 돈을 버는 건데, 아까 행복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을 하면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합니다. 30대에 와도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고요. 저도 미국 외에 옵션으로 봤던 곳이 싱가포르가 있었고요. 독일 베를린도 테크가 발전돼 있어요. 독일어를 해야 되긴 하나, 외국인들이 많고요. 영국 런던도 테크 쪽 수요가 많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 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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