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다운사이클 본격화”

“반도체 가격이 하락한다”

“반도체 재고가 증가한다”

요즘 이런 내용의 기사,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시장조사업체나 연구기관에서 발간한 보고서나, 주요 반도체 기업의 실적발표, 증권사 리포트 등에서 국내 반도체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내용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빠르게 오르내리고 그 주기가 짧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 내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다수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업계도 예의주시한다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국내 반도체 산업을 두고 위기라 하는 이유와, 각 기업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경기침체, 미중 경제분쟁… 바람 잘 날 없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5일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전문가 중 76.7%는 현재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 전문가는 3.3%에 그쳤고요. 위기 상황이 내후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도 58.6%에 달했습니다. 그만큼 국내 반도체 상황을 어둡게 보는 시각이 많은 겁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 현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먼저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고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스마트폰이나 PC 등 디바이스 중심으로 수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디바이스가 팔리지 않으니 이에 탑재되는 반도체도 팔리지 않습니다. 이는 곧 재고 증가로 이어지고, 재고가 증가하면 반도체 가격은 하락하게 되죠.

반도체 기업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리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보고서를 통해 “디바이스, 완성차 업체가 부품 재고를 조정하고 있으며, 파운드리 기업은 웨이퍼 투입을 축소할 계획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서도 지난 8월 반도체 시장 성장률 전망치를 13.9%로 잡았는데요, 이는 전년 동기 반도체 시장 성장률인 26.2%에 비해 12.3%p 하락한 수치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도 지난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반도체 재고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해당 기업의 하반기 실적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고요.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동맹’이라 칭하면서 중국과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부터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중국과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반도체 수출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로부터 메모리를 주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우리나라만큼 메모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이 없었거든요.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의 아시아권 반도체 동맹 칩4(CHIP 4) 동맹에 가입한다고 할 때,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중국이 양쯔강메모리테크놀로지(YMTC)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중국 내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 제재로 인해 다른 국가와 협업하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다른 주요 기술국가와 손을 잡기에 어렵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는 겁니다. 결국 중국은 메모리도 자립화하는 데 팔을 걷어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이러나 저러나 우리나라는 중국 시장을 점차 놓게 된다는 말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제동향 9월’ 자료에 따르면, 7월 반도체 산업 가동률은 4월 고점에 비해 14.3% 가량 하락했고, 제고율은 전월 63.0%에서 95.7%로 상승했습니다. 우려한 대로 반도체 산업이 하강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KDI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둔화된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경제적, 정치적, 지정학적 측면을 봤을 때, 국내 반도체 산업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위기보다 장기 호황을 본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을 살펴보면, 좀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상황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추후 또 다시 호황이 찾아올 때 이득을 더 많이 보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현 국내 반도체 업계 분위기입니다.

그 일환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은 생산라인 투자를 꽤 공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SK하이닉스는 10월 중으로 청주에 M15X 신규 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습니다. 다가올 10년을 대비해야 하는데, M15X 착공을 통해 미래 성장기반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SK하이닉스는 해당 공장에 향후 5년 간 약 15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고, 2025년 초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SK하이닉스 측은 “업황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 데다가, 전문가 사이에서는 2024년부터 서서히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해 2025년에 반등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M15X는 다가올 호황기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K하이닉스 청주공장 생산시설 단지도 (자료: SK하이닉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로 지난 7일 평택캠퍼스 3공장을 가동하고, 4공장 착공 준비 작업에도 착수했다고 밝혔죠. 삼성전자는 지난 7월부터 평택 3공장에 낸드플래시 양산 시설을 구축하고 웨이퍼 투입을 시작했는데요, 추후 극지외선(EUV) 공정 기반 D램과 5나노 이하 파운드리 등 선단(Advanced) 공정 시설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공유했습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반도체 경기 사이클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불황기에 투자를 적게 하면 호황기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며, 내년까지 좋아질 모멘텀이 보이지는 않지만 연구개발에 더 투자해 위기를 좋은 기회로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바라보겠다는 입장을 표한 것이죠.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전기전자 산업이 무너질 정도로 위기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제패하고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기업이 위기라고 하지만, 정작 애플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메모리, 디스플레이 없이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공급망 다변화의 일환으로 애플을 비롯한 주요 기업이 중국 메모리, 디스플레이 기업을 찾고 있지만,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때문에 이들이 중국 물량을 지속해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분명 국내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러싼 거시경제(매크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언젠가 다시 반도체 호황이 온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지금 기업도 이후에 올 호황기에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고요. 그 호황이 언제 올 지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