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농업] ④ 농산물 가격을 생산자가 결정할 수 있으려면
‘농업’은 다소 막연한 주제였습니다. 스타트업 그린랩스가 차세대 유니콘의 대열에 오르고, 또 다른 스타트업 록야는 커머스 기업 컬리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죠. 농업과 관련한 스타트업이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우리 농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현장에서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농촌의 세대교체에서부터 생산과 유통, 기후, 규제, 자본, 식량 자급 등. 취재 기간 만난 이들의 고민과 비전을 독자님들께 전하려고 합니다. [편집자 주]
시리즈① 농촌에 미래 세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시리즈② [인터뷰] 새로운 생산을 고민하는 스타트업
시리즈③ 우리 식탁에 농산물이 도착하기까지, 유통
시리즈④ [인터뷰]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장의 노력
시리즈⑤ 농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절대적 키워드, 기후
시리즈⑥ 축산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시리즈⑦ [인터뷰] 자본은 왜 기후를 주목하나
청년 인턴과 프랜차이즈. 농업과는 언뜻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들이다. 농업에 이 둘을 적용한 이는 서울의 대기업을 다니다 10년 전 귀농, 경북 상주시에서 스마트팜을 운영해 온 박홍희 씨다. 그가 만든 ‘우공의 딸기’는 기존의 수경재배에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해 딸기 생산량과 품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홍희 대표는 우공의 딸기를 통해 농촌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사례를 만들려고 한다. 농촌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문제를 청년 인턴제를 통해 일부 해소하고, 또 이 청년들이 동일한 재배방식을 적용해 균일한 품질의 작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프랜차이즈 방식을 도입했다. 스마트팜 농장 관리 정보통합(SI) 서비스 자회사인 씨앗주식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박 대표가 하나씩 만들어내는 ‘처음’은 농민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로 읽힌다. 박 대표에게서 우공의 딸기를 운영하면서 겪은 현장의 문제를 들어봤다.
도시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농사로 방향을 틀었는데, 왜 그런 결정을 했나?
농업을 미래 비즈니스로 보고 창업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처음 농촌에 내려올 때 확실하게 방향을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활해보니 농업이 충분히 하나의 인더스트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관점에서 농업의 규모를 키우고 과학화하고 기술영역을 접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정립했다.
우공에서는 딸기를 어느 정도 규모로 재배하나?
1년에 한 150톤에서 170톤 정도 생산한다. 재배면적으로는 대략 1만평 정도다. 현재 정규직이 열다섯명 있고, 수확시기에는 단기로 정규직만큼의 인원을 고용한다.
농업을 선택하고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체계가 너무 없다는 거였다. 강연에 가면 늘 하는 이야기가 “농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자영업자”라는 이야기다. 농부는 농사 외에도 트럭 운전, 배관, 전기 기술 등 온갖 일을 다 할 수 있는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비즈니스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나 지원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의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쌀 중심의 농업에서 작목 전환과 농지 개혁, 농촌의 노동력과 연관한 세대교체가 농업정책의 핵심일 거라고 본다. 급진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데, 식량 안보 차원에서 쌀에만 보조금을 주는 것이 작목 전환을 어렵게 하고, 우리 농업의 개혁을 더디게 하는 요소라고 본다. 또 농사 현장에 맞지 않게 묶어놓은 농지법도 개정되어야 한다. 지금은 법적으로 농지 위에 화장실을 포함한 어떤 건축물도 들여놓을 수 없다. 또, 새로 농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농지를 구하기도 힘들다. 이런 부분은 현실을 고려해 개선되어야 한다.
이중에서도 농업의 세대 교체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이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지금의 주요 농업 인구인 고령층이 10년 후에도 농사를 짓기는 어렵다. 그러면 그 뒤에 누군가 이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정부에서 나름 노력하는 것이 청년 농부를 육성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걸로는 모자라다. 일년에 몇백명을 모아 교육시키는데, 지금 현실을 보면 농업인구가 일년에 몇만명 단위로 줄어든다.
우공의 딸기에서는 ‘청년 인턴 농부’를 받아서 멘토링을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인턴 농부제가 원래 있는 건가?
우리가 만든 거다. 딸기 농사를 배우고 싶어하는 청년들을 받아서 월급을 주면서 키우고, 그렇게 성장한 청년들이 독립하거나 혹은 회사와 같이 성장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주로 어떤 청년들이 많이 지원하나?
귀촌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다. 청년들 입장에서는 투자할 자산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 그리고 두번째로 ‘재배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농업의 문턱이 높아 접근하기 어렵다. 그 부분을 해결해주고 싶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손이 되는 거고. 그렇지만 조금 힘든 부분도 있다.
어떤 부분이 힘들까?
이 친구들은 숙련자가 아니고 생판 처음으로 농사라는 걸 짓는다. 또 농림부나 지자체에 급여 지원 등을 요청해서 일부 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그 기간이 6개월에서 10개월 정도로 짧다. 제대로 농사를 배워서 독립적인 농부가 되려면 최소 2~3년은 걸린다. 두 작기는 돌아봐야 하니까. 그런 부분이 아쉽다.
청년 인턴 제도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인턴 제도가 많이 보편화되지 않아서일 것 같은데
그렇다. 멘토링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 역량을 갖춘 농가가 흔하지는 않다. 또, 초보가 바로 내 일의 전력이 되지 않는다(웃음). 인턴들도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고 온다기보다, 농촌을 체험해보자는 정도일 때가 많아서 활성화가 어렵다. 그런데 이건, 우리 농장의 케이스라 농업 전반의 현실을 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보편적인 문제를 짚는다면?
각도를 바꿔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청년 지원책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선 청년들이 충분히 재배 기술이나 경영 역량을 키울 수 있을 만큼의 기간을 갖지 못한다. 지자체들에서도 여러 지원을 하지만 인원 수나 기간에서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또, 어떤 지원들은 현장의 필요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장의 필요라면?
바로 일손이 되지 않는데 이렇게 부담스럽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결국 현실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투입된다. 그사람들이 우리나라 농업에 기여하는 폭이 훨씬 크다. 이들을 무조건 나쁜 쪽으로만 보고 쫒아내는 것은 농업 현장에서는 우려스러운 일이 된다. 이들을 오히려 합법화하고 양지로 끌어내 활성화하는 제도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유통 얘기를 해보자. 우공의 딸기는 초신선 작물이라 새벽배송에 유리할 거라고 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히려 새벽배송을 하지 않고 직배송을 하던데
우선은 새벽배송을 중단한 상태다. 신선식품인 딸기는 수확 후 사흘안에 소비자한테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형 유통사들은 중앙집중식으로 유통을 하다보니 물류센터를 거친 후 전국 거점으로 뿌려진다. 직배송은 다음날 소비자가 받아볼 수 있지만, 대형 유통사를 거치면 오히려 신선도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 이 문제는 모든 농산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딸기 같은 신선식품에 한한 이야기다.
다만, 새벽배송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다. 유통업체에서도 리드타임의 문제를 알고 있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음 작기부터는 배송 과정을 앞당겨 가는 방법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하도록 같이 고민하는 중이다.
유통의 리드 타임 문제가 있는데, 수출에서는 어떻게 푸나?
딸기는 항공으로 수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국내 소비자보다 해외에서 상품을 더 빨리 받아볼 수 있다. 아침에 수확해서 오후에 포장, 트럭에 실어 올려 보내면 대략 당일 자정에 뜨는 동남아행 화물기에 실을 수 있다. 아침 6시에 현지에 도착해 거기서 유통망을 통해 시장에 뿌리면 전날 수확한 딸기를 동남아 소비자들은 다음날 점심때 쯤 우리 딸기를 맛볼 수 있는 형태다.
딸기가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판매가 될 수 있겠다. 지금의 애플망고나 샤인 머스켓처럼?
그보다는 좀 더 대중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에 바나나의 위치를 생각하면 된다. 당시에는 바나나가 큰 맘 먹으면 사 먹을 수는 있는 그런 존재였는데, 동남아에서 딸기가 그렇다. 300g 짜리 한 팩이 10달러 정도에 팔린다.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을 비롯해서 동남아에서 그정도 가격을 내고 딸기를 사먹을 정도의 고객군은 많다.
그런 나라들에 지금 딸기가 가고 있나?
가고는 있는데 문제도 있다. 수출에 최적화한 시스템이 없다. 일단, 생산지와 도착지 모두에 콜드 체인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대규모 물량을 확보할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 두 가지가 우리나라의 신선식품 수출이 빨리 활성화가 안 되는 두 가지 이유다.
대규모 물량 확보는 왜 어렵나?
우리나라 농가가 전부 소농 체제라서 그렇다. 우공의 딸기가 딸기 스마트팜 중 가장 큰 농장인데, 이게 6000평이다. 하루 1톤을 재배한다는 것은 1kg짜리 1000상자가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이정도 양가지고는 바이어가 붙지를 못한다. 이 규모로 해외 무역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양도 문제지만 품질이 균일하지 못한 것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나?
농협을 비롯한 유통업체에서 농가의 물량을 모아서 수출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들 한다. 그런데 이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농가별로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등급이 서로 다르면 바이어가 사가지 못한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이야기를 하는 거다.
스마트팜 프랜차이즈 모델을 더 설명해달라
생산자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거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프랜차이즈라는 말을 붙인거지,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청년 인턴을 육성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는데, 결국은 같은 농법으로 동일한 품질의 퀄리티 있는 농산물을 만들 수 있는 농부를 직접 육성하는 수밖에 없다. 기존의 농가들을 모아서는 어렵다.
기존 농가로는 어려운 이유가 뭘까?
우선 스마트팜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이분들이 모여서 같이 뭔가 하는데 익숙치 않아 한다. 또, 지금 농촌에서 나이가 70이면 젊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 직접 청년을 키워서 이들이 독립해서 농장을 차리면 그게 프랜차이즈 농장이 되는 거다.
여러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나 민간의 지원이 들어간다면, 가장 시급한 부분은 어디라고 보나?
기본적으로 정부 보조금이나 지원을 바라지는 않는다. 일반 농민하고 내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농업이 정상적인 산업군으로 자리 잡으려면 보조금에 이끌려가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본다. 그게 결국은 시장을 왜곡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 보조금을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은 출발선이 굉장히 다르게 된다. 대신, 대출과 같은 일반적인 금융 프로그램을 조금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지금은 대출이 어려운가?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다. 예를 들면 심사기간도 오래 걸리고 상환 기간도 짧다. 우리 농장의 경우에 유리온실을 지으면서 법인이 4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5년 거치 10년 상환을 해야 한다. 농사가 떼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아니고, 일반 벤처기업처럼 수익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농사를 아주 잘 지어도 버는 돈보다 갚아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구조다.
상환 기간이 짧은게 문제가 되겠다
사람들이 “너네는 규모가 큰 농장이니까 그렇지 않으냐”고들 하는데, 농민들은 다 마찬가지다. 그규모가 작을 뿐, 대출 받아서 시설을 짓고 시작한다. 대신, 규모가 작은 곳은 수익도 적다. 각자의 규모에서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거다. 상환 시기를 20년 정도로는 늘려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짓는 농부라고 하더라도 지금 구조로는 결국 흑자도산이 나게 될 수 있다. 회계적으로는 흑자지만 대출을 갚을 만큼은 아니니까 말이다.
구조를 빨리 바꿔줘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농촌 보다는 다른 업종들처럼 정상적인 금융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대출 받아 진입해서 시설물을 올리고 지속가능한 농사 경영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도 농업에 들어오지 않겠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프랜차이즈 말씀 드린 것처럼 청년들을 받아서 계속 육성을 시키고 동일한 농법과 철학으로 만드는 우리 재배 네트워크를 계속 늘려나가는 게 목표다. 10년 뒤에는 몇십만평 정도 규모의 딸기 농사를 짓고 싶다. 이렇게 되면 저 혼자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재배 네트워크가 가동되어야 한다. 생산자들이 힘을 갖게 만드는 그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비전이고 꿈이다.
생산자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지금은 농산물 가격 결정을 농민이 할 수 없다. 그 결정권을 가져오려면 생산물량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재배 네트워크를 계속 넓혀가려 한다. 비농업인들이 쉽게 농촌에 접근해 농사를 영위할 수 있도록 스마트 농업 을 확산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 두가지가 당장 가진 목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