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농업] ② “세상을 먹여 살리겠다”, 엔씽
‘농업’은 다소 막연한 주제였습니다. 스타트업 그린랩스가 차세대 유니콘의 대열에 오르고, 또 다른 스타트업 록야는 커머스 기업 컬리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죠. 농업과 관련한 스타트업이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우리 농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현장에서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농촌의 세대교체에서부터 생산과 유통, 기후, 규제, 자본, 식량 자급 등. 취재 기간 만난 이들의 고민과 비전을 독자님들께 전하려고 합니다. [편집자 주]
시리즈① 농촌에 미래 세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시리즈② [인터뷰] 새로운 생산을 고민하는 스타트업
시리즈③ 우리 식탁에 농산물이 도착하기까지, 유통
시리즈④ [인터뷰]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장의 노력
시리즈⑤ 농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절대적 키워드, 기후
시리즈⑥ 축산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시리즈⑦ [인터뷰] 자본은 왜 기후를 주목하나
올 초, 국내 농업 스타트업이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농장을 지어서 신선채소를 길러내고 있는 엔씽이다. 엔씽은 수상 소식 외에도 몇차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는 일을 벌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채소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인 중동 지역에 채소 키우는 컨테이너를 통째로 수출한 일이다. 최근에는 이마트 물류창고 옆에 아예 수직농장을 차렸다. 여기서 키운 채소는 이마트 물류창고로 곧바로 직행, 전국 이마트 매장에 곧바로 뿌려진다.
물류창고 옆 대형 수직농장 건설은 엔씽에 의미가 깊다. 생산에서 유통까지 농작물의 밸류체인을 바꾸겠다는 엔씽의 로드맵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창업 8년만에 스마트팜의 수익성을 증명했는데, 이것이 미래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야 한다. 그러려면 시설 확대에서부터 노동력 확보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이 일을 엔씽은 어떻게 풀어내려고 할까? 또, 농업에서 어떠한 비전을 보고 있을까?
다음은 “세상을 먹여살리겠다”는 김혜연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이천 이마트 물류창고 옆에 농장을 지었다. 그리고 생산한 채소를 이마트 전점에 출하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김혜연 대표를 다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엔씽에 대한 참고 기사: [바스리] 21세기 문익점 프로젝트 이끄는 엔씽, [IT TMI] CES에서 농업혁명 기술을 보여준 ‘엔씽’)
이마트 이천 물류센터 옆에 신선채소를 생산하는 엔씨의 농장이 지난해 12월에 완공됐다. 2월에 첫 파종을 했고 4월 14일에 첫 수확을 해서 전량 이마트로 공급했다.
이 농장의 물량은 어느 정도 되나?
연간 100톤이다. 대략적으로, 80만포트가 자라는 거다. 한 포트를 1인분으로 치환하면, 80만인분이 이 물류센터에서 자란다. 우리 입장에서는 큰 물량이지만, 이마트 전체가 취급하는 물량에 비하면 아직은 아주 작다. 따라서 앞으로 물량을 계속해 늘려야 한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공장 자체가 커져야 하나, 아니면 이 안에서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둘 다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생산량을 더 늘리는 방법을 연구 중이고, 농장 자체도 더 큰 규모로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이마트와의 계약은 어떻게 이뤄졌나?
일단은 고향이 이천이다(웃음). 그래서 명절이나 이럴때 오가면서, 여기가 위치가 정말 좋다는 걸 알았다. 서울과도 가깝고, 경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5분 정도 거리다. 기존의 용인 농장에서는 자체 생산에 집중해왔는데, 이 농장을 규모화하고 길러낸 작물을 시장에 공급하려면 물류센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때마침 시리즈B 투자를 받으면서 투자사에서 이마트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대형 마트 옆에 물류창고를 만든다는 것은 이전부터 계획해온 로드맵에 있지 않나?
그렇다. 창업 초기부터 어느정도 윤곽을 갖고 시작했으나 엄청나게 뚜렷한 상태는 아니었다. 2014년에 시작해서 창업한지 8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그 로드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물류창고 옆에 농장을 짓기 전에 용인농장에서 키운 채소를 먼저 네 개 이마트 매장에 테스트 삼아 공급했고, 그렇게 1년 간 반응을 보면서 자금 조달과 농장 조성까지 왔다. 그사이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환경의 변화도 있었다.
아, 코로나. 코로나가 사업에 영향을 많이 미쳤나?
되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구매하는 고객들이 (스마트팜의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1인 가구들이 훨씬 많아졌고, 이들이 기존에는 밖에서 식사를 해결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재택이 늘어나면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확 뛰었다.
집에서 해먹어야 하니까
그러다보니 배달과 이커머스 시장이 많이 컸다. 그동안은 오프라인 마트에서 채소를 고를 때 ‘시각적인 것’이 중요한 판단요소였다. 직관적으로 어느게 더 싱싱한지 보이니까. 그런데 온라인으로 구매하면서는 반대로 저 작물이 어떻게 재배됐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정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고객들이 수경재배, 유기농으로 키운 것에 대해 더 많이 인지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사람들이 밭에서 자란 걸 더 선호할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스마트팜에서 경작한 채소를 먹으면서 이게 굉장히 깨끗하고 맛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다. 프리미엄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농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나?
스타트업은 속도감이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많이 한다. 물론 그것도 어렵다. 그렇지만 저희는 실무를 해야 한다(웃음). 뭐 하나 짓거나 진행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동석한 엔씽의 김윤정 실장이 “AB 테스트가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렇겠다. 공장을 하나 지으려고 해도 라인도 만들어야 하고,
사람도 구해야 한다. 아무리 완전 자동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기도 남부권이나 충청북도 정도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너무 멀어져서?
멀기도 하고, 사람이 없다. (지도의 충청북도를 선으로 그으면서) 위쪽 라인은 땅이 없고, 아래쪽 라인은 사람이 없다. 진짜 이거 심각하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한테는 (지금의 인구구조가) 별 관계가 없이 보인다. 그런데 지금 평균 나이 통계를 보면 계속 올라간다. 농촌 인구 나이 통계를 보면 절반이 65세 이상이다.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진다는 얘기니까
꼭 농업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없는 건 문제다. 만약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70세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게임 업계를 어떻게 보게 될까?
노후화된 산업이라고 보지 않을까?
게임은 안 해도 죽지는 않는다. 그런데 농업은 안 하면 죽는다. 게다가 농업이 이어지지 않고 끊기면, 종자주권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농업의 재배 기술도 이어지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좀 가치 있다고 평가 받는 종자는 대부분 해외에서 소유권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양고추다.
청양고추가 우리나라 게 아니라고?
그렇다. 해외 종자 기업에서 대부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문제가 재배기술이다. 아무한테나 땅을 줄테니 농사 지어보라고 한다고 지을 수 있는게 아니다. 세대가 끊긴다는 것은 산업 자체의 밸류체인이 다 끊어진다는 걸 뜻한다.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 어느 포럼에서도 나온 이야기인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종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사와서 키울 수는 있다. 그런데 밸류체인이 끊긴 채로 가게 되면 해외에서 종자를 줘도 키울 수가 없다. 아예 해외 기업들이 키워준 작물만 먹을 수가 있는 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데
엔씽이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에서 우리같은 스마트팜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기도 하다. 저희는 우선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농장을 운영하는 매뉴얼 같은 것도 전반적으로 쌓아가고 있다.
또, 이런 창업팀들의 평균 연령이 굉장히 낮다. 3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이 많다. 유수의 대학들과 연계해서 젊은층에서 농업과 관련한 인재를 키우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함께 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팜 관련 창업이 많다. 그중에서는 코로나 이후 도심의 공실을 활용해 레스토랑 근처에서 스마트팜을 하는 시도들도 있다
얘기를 많이 들었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물류의 개념에서 봤을 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 지구적으로 농산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기후위기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탈중화한 솔루션을 말하고 있고, 완전히 소비자 중심의 인근에서의 생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되려면, (도시별로) 큰 물류센터가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도심에서의 생산은 완전 자동화가 이뤄져야 수익성이 있는데, 그러려면 규모의 경제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시설비를 투자하는 의미가 있다. 저희가 봤을 때는, 먼저 생산양을 늘린 후에 그 다음 단계로 (도심의 스마트팜이) 가능성이 있다.
농업 스타트업을 하면서 고민하는 바가 있다면?
세상을 먹여살리는 기업이 되자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규모를 키울 수 있을까다. 농업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장이다. 스마트팜이이나, 스마트팜에서 나오는 지속가능한 푸드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폭증한다. 이전에는 이 시장에 물음표를 가진 분들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런 시선은 있긴 하지만, 거의 전 산업전인 단계에서 스마트팜의 작물을 프리미엄으로 인지하고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지금 규모를 최대한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정부나 산업계에서 지원이 필요한 게 있나?
우리나라의 유리온실 면적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매우 넓다. 그런데 1992년에만 해도 유리온실이 일반 건축물과 똑같은 규제를 받았다. 그러다보니 일반집이나 건물을 짓듯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도 똑같은 규제를 받았다. 그러던 것이 농업용으로 지위를 인정받은 후 건립 절차가 간소화됐다.
지금의 스마트팜을 위한 수직농장이 예전의 유리온실과 같은 상황이다. 기술을 검증 받았고 수익성이 있다는 것까지 올라온 단계에서 그다음으로 가려면 규모의 경제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1992년에 만들어진 농업용 건축물에 대한 규정이 아직 그대로다. 유리온실까지만 농업용으로 인정을 한다.
법적으로 농업용 건축물로 규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점이 불편한가?
농업 재배 시설로 수직농장 하나가 더 들어가기만 해도 건축이나 대출 등에서 유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규제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규정이 없어서 문제인 거다. 이천 농장을 지을 때 100% 현금으로 지었다. 또, 농업 재배 시설이 아니므로 농지에 짓기도 어렵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금까지는 없던 형태의 새로운 재배 시설들이 나올 텐데 그때마다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외부 환경 변화를 말했었는데,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나 전쟁 등으로 인해서 세계적인 공급망 자체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농업이나 먹거리 같은 경우 변화에 아주 크리티컬하게 반응하고 있다. 대체로 시장이 (농산물 생산과 유통 변화의) 중요성을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고 그 기술력이 쌓이도록 해야 글로벌로 나아가는 농업 기업도 생길 수 있다. 그러려면 새로운 재배 기술이 나왔을 때 같은 문제에 부딪히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