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일주일에 한 편,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 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자, 저와 같이 ‘버터헤드레터스’를 심으러 가봅시다. 버터헤트레터스가 뭐냐면요, 활짝 핀 꽃처럼 생겨 일명 ‘꽃송이 상추’라고도 불리는 뉴질랜드산 채소입니다. 이파리가 두툼하고 달아, 최근 아주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요.

우리가 함께 들어갈 곳은 밭이 아닙니다. 컨테이너입니다. 작물을 수경재배하는 곳이라, 균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네요. 머리카락 흘리지 않게 모자를 쓰고, 위생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습니다.

소독도 필수겠죠. 노파심에 말하는데 이 등은 제 등이 아닙니다. 뭔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기분도 드네요, 메스.

이 깨알보다 작은 씨앗을 핀셋으로 잘 집어서

포슬포슬한 배지 위에,

잘 심고 꾹꾹 눌러줍니다.

이 씨앗은 양분을 머금은 물에 뿌리를 내려 LED 의 조명을 쬐고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이렇게 쑥쑥 자랍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키우지 못했던 타이 바질 같은 작물도 이 컨테이너에서는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고온다습한 태국의 작물인데요, 저는 컨테이너에 들어가자마자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온도와 습도 아래서만, 타이바질이 쑥쑥 자란다고 합니다.

요 길쭉한 녀석이 바로 타이바질입니다. 타이바질을 경기도 용인에서도 키울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환경을 통제하는 컨테이너가 있기 때문이죠.  컨테이너에 작물을 키운다는 이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요?

엔씽이라는 스타트업입니다. 혹시, ‘차세대 스마트팜 플랜티 큐브, 중동 진출’ 같은 제목의 기사를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작물을 키우는 이 컨테이너가 중동 지역의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작물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도 크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회사를 만든 건, 농부가 아니라 전자통신공학을 전공한 30대 청년 김혜연(사진)입니다. 비닐하우스를 수출하는 회사에서 일했고, 엔씽 창업 후 IoT 센서를 개발해 비닐하우스에 실제 적용하는 경험을 하면서 농업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상업적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키우느냐’입니다. 엔씽에서 주로 키우는 작물은 국내에서는 잘 나지 않는 채소류입니다. 로메인 상추라든가,  타이 바질 같은 것들이죠. 다른 나라 음식이 많이 들어오면서, 찾는 곳은 많아졌지만 수입해 먹어야 하거나 재배 농가 수가 적어 공급이 불안정하고 몸값이 비쌌던, 그 작물들 말이예요.

낯선 나라 작물의 재배가 가능해진 이유는 당연히 기술의 발전 때문이겠죠. 환경을 통제하는 기술은 지금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작물을 골라 키울 수 있게 돕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플랜티 큐브는 생육환경을 각 채소가 가장 좋아하는 조건으로 맞춰줍니다. 수십번의 테스트를 반복하며 환경의 영향 없이 일년 내내 시장에 내다 팔 수 채소류를 길러낼 수 있게 됐다네요.

재배 환경을 통제한다는 건, 파는 걸 먹게 되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걸 살 수 있게 된다는 걸 뜻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먹거리도 달라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다양해지죠. 바뀌는 식문화에 따라 어떤 작물이 인기를 얻을지 연구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을 엔씽이 한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이걸 ‘문익점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요, 아시죠? 목화씨를 고려에 처음 들여온 문익점 선생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존에는 국내에서 못 키웠던 작물을 들여와 어떻게 키우는지 연구해서 상품화까지 하는 걸 목표로 한다는 건데요. “시장에서 원하는 먹거리를 발견해서 키워 전달한다”는 개념이라고 하니, 어쩌면 식탁에 계속해 새로운 종류의 쌈채소가 올라오는 날을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왜 수많은 작물 중 채소냐고요? 수많은 농산물 중, 아직까지 시장에서 패권을 쥔 곳이 없으면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기 때문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입니다. 사실, 곡물을 큐브 안에서 키우기는 어렵죠. 딸기나 참외 같은 과일은 비닐하우스의 경쟁력이 셉니다. 그런데 채소는 그렇지 못하죠. 게다가 잎채소는 보관도, 유통도 어렵습니다. 중간에 유통마진도 많이 낍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심하게는 1000배까지 가격 차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엔씽은 크게 세 가지 사업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네요. 단기적으로는 플랜티 큐브 자체를 판매하는 겁니다. 아마도 주요 타깃은 안정적인 채소 공급처를 찾는 해외 기업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은, 작물 자체를 파는 거죠. 지금은 타이 바질이나 로메인 상추 같은 채소를 공급받고 싶어하는 레스토랑을 겨냥하고 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플랜티 큐브로 구성된 농장을 수도권의 유통 물류 창고 옆에 건설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작물 재배 환경 뿐만 아니라, 공급량 조절이 가능해지니까 가격 통제도 가능하겠죠?

또,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콘텐츠화해 플랫폼에서 유통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엇, 작물이 어떻게 콘텐츠가 되냐고요? 잠시 김혜연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다양한 작물이 각각의 콘텐츠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저희는 작물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하고, 퍼블리싱 한다고 생각해요. 게임이나 음악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퍼블리싱 하듯이요. 작물 자체는 물론이고, 키우는 과정이나 스토리, 재배환경에 대한 데이터 모두가 콘텐츠가 될 수 있죠.”

가능성 있게 들리시나요? 이 이야기는, 앞으로의 농부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농부가 하는 일이 논밭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얘기고요. 축적된 데이터를 갖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도 할 수 있고, 또 컨설팅을 할 수도 있겠죠? 토마토를 키우며 얻은 데이터를 판매하는 도시 농부가 많아질 수 있겠네요.

또, 서울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것도 가능합니다. 원격 제어가 되니까요. 제가 이날 살펴본  플랜티 큐브는 태블릿으로 생육환경을 제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김현중 엔씽 농업개발팀장이 직접 시연하는 모습인데요,

 

이건 엔씽이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 ‘큐브 OS’ 입니다. 재배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장을 자동 운영하게 하죠. 모든 농장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관리하기 때문에 서버 용량을 유동적으로 확장할 수 있고, 농장 환경이 급변할 때는 인터넷 센서가 이를 측정, 대처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봐요, 이게 원격 모니터링으로 살펴본 농장의 모습입니다. 서울에 살면서 용인의 농장을 콘트롤 할수 있겠죠?

이래서, 플랜티 큐브를 다른 나라에서 탐내기도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식량 자급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안정적으로 신선한 채소를 나라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중동이나 러시아 같은, 농사 짓기 척박한 환경에서 플랜티 큐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로 수출할 플랜티 큐브를 부산항에 보내기 위해 상차하는 모습입니다.

생육환경을 갖춘 컨테이너를 그대로 배에 실어 수출하는 거죠. 40피트(8평) 컨테이너 농장을 기능별로 입구동, 육묘동, 재배동 등으로 모듈화해 완전 밀폐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온도, 습도, 방역 등 재배 환경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이 8평 공간의 컨테이너에서 연간  3톤의 신선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하네요.

중동에 진출한 플랜티 큐브의 첫 재배 작물은 ‘로메인 상추’라네요. 앞으로 아부다비 현지의 유통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정된 고수익 품종 위주로 재배 작물을 확대하고 재배된 샐러드 채소, 허브류 등은 운영사를 통해 현지 신선채소 시장에 유통할 계획이라고 하니, 지켜봐야겠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