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사람들 ⑪] 요즘 금값이라는 ‘PO’는 무슨 일을 할까?
[바이라인네트워크 창립 6주년 기획, 스타트업과 사람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다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도 20개사 가까이 등장했습니다. 스타트업에 투자되는 자본의 규모도 이전과는 다릅니다. 대기업이 자본 싸움에서 스타트업에 밀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창립 6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기획의 특징은 ‘사람들’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비춰본다는 점입니다. 스타트업 창업가와 투자자를 비롯해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스타트업에 들어가고 싶은 취업준비생, 스타트업이 만든 플랫폼에서 일하는 긱 노동자 등을 바이라인네트워크가 만나봤습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좀더 이해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편집자 주.
⑪ 프로덕트오너라는 새로운 직업의 세계
지슬기 스타일쉐어 프로덕트오너(PO)를 만나기 직전,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와 인터뷰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류 대표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직업을 모두 잡아먹는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인간의 직업 중 하나로 PO를 꼽았다. 일은 기계가 하더라도, 그 일이 잘 굴러가도록 설계하고 끌어가는 지휘자의 역할만은 인간이 해야 할 터인데, 그 일을 하는 사람이 PO라는 것이었다.
지슬기 씨는 처음부터 PO는 아니었다. 스타일쉐어에 디자이너로 입사해 거의 창업자인 윤자영 대표와 동급으로 회사에 오래 다녔다. 회사 내 별명이 ‘스쉐 고인물’로 통한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다가, 회사의 턴어라운드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시점에 본인 역시 직업의 턴어라운드를 꾀했다. PO는 프로덕트의 전반을 살피면서 문제를 해결할 우선순위를 정하고 개발자, 디자이너와 커뮤니케이션해 목표를 달성해내는 사람들이다. 흔히들 ‘미니 CEO’라고 부르는데,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크다.
류 대표의 말을 듣고 지 PO의 경력을 살펴보니 과연, 인터뷰이를 잘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PO라는 직업은 스타트업에서 몸값 귀하기로 유명한데, 아직 PO라는 직책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터이고, 실제로 그만큼 일을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된 사람도 별로 없다. 지 PO가 흥미로운 점은,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신이 만드는 제품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스스로 손들어 PO가 됐다는 점이다. 지 PO에게서 자신이 왜 PO가 되려 했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들었다.
여기 오기 직전에 PO가 대단한 직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PO가 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런 말을 하나?
PO가 된지 이제 9개월 차다. 앞서 내가 관찰해온 PO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뛰어나고, “아, 저런 것도 해야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진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미니 CEO’라고도 하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까 그 ‘미니 CEO’라는 말이 괜히 멋있어서 붙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만큼 PO한테 주어지는 권한이 많을 것 같다
가장 큰 권한은 어떤 일(프로젝트)을 할지 직접 선택해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 같다. 또, 실제 진행되어 가는 일이 미리 설정한 목표와 일치하는지, 그 목표가 달성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기존과는 다른 부분이라 생각한다.
기존에 PO라는 직업이 없을 때에도 프로젝트는 진행되어 왔다. 기획하는 사람도 있었고. PO는 어떤 부분에서 기존의 총괄 기획자와 역할이 다른가?
내가 느꼈을 때는, 기존의 기획자 역할은 어떤 기능을 어떤 전략하에 진행해야 하는지를 정하고, 이후 일을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순서대로 맡기는 역할을 해왔다. 다시 말하면, 기획자는 그 기능이 잘 나가게 하는 일을 우선으로 쳤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PO한테 기획은 수단에 불과하다. 목표를 어떻게 잘 달성할 수 있을지, 그 방법 자체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이 기존의 기획자와는 다른 점이다.
조금 더 감을 잡기 위해서 PO가 되어 진행한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고 싶다
여기, 이 사진을 먼저 봐 달라.
비포 앤 애프터다
왼쪽과 비교해서 오른쪽의 배너가 커진 것 같고, 뭔가 복잡했던 것들이 정리된 인상을 받지 않나?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온다
기존에는 각각의 메뉴 페이지를 각자 집중해서 파는 형태로 일을 해오고 있었다. 인기 탭을 맡은 이는 인기 탭 안에서 열심히 프로덕트를 만들고, 데일리 탭을 만드는 이들은 데일리 탭만 열심히 하고.
통상은 그렇게 일하지 않나? 설사 일이 겹치더라도, 자기가 맡은 것만 잘하면 되니까
그러다보니까 첫 화면은 계속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서 ‘뷰티’ 하나만 보더라도 여기 저기에 중복해서 표출되는 식이다. 그러면 이용자들은 스타일쉐어 앱에 와서 “얘는 뭐고, 쟤는 뭐지?” 와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처음 방문한 이용자라면 이 많은 메뉴 중에서 뭘 눌러야 할지 모르는 그런 복잡함이 크겠더라.
스타일쉐어가 AKMU(악뮤) 이찬혁 님과 함께하는 새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그 목적 자체가 신규 유저를 데려오는 데 있다. 그러면 새로 온 많은 유저에게 기존의 첫 화면은 (이용자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효과가 잘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매력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었겠다
그래서 이 메뉴를, 우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위주로 정리하고 남겨서 화면의 복잡성을 탈피하자는 것에서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뀐 메인 화면의 느낌은 잡지 같아 보인다. 그렇게 의도를 한 건가?
그렇다. 이 작업을 할때 모든 팀의 리더와 다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커머스는 물론 마케팅팀, 커뮤니티팀 등 모두. 이분들이 주요하게 했던 이야기가 “우리는 패션 플랫폼인데 첫 화면에 그런 감도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우리가 패션 매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조금 더 멋있게 보여줬으면 좋겠고, 유저들이 메뉴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을 고려해서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면 어떻게 조율을 하나?
일단은 모든 의견을 듣고 작업을 하므로 크게 이견이 있는 부분은 없다. 일단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목적을 다른 팀들과 공유하고,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부분이나 평소에 아쉬웠던 부분에 대한 의견을 모두 받는다. 우리가 해결할 문제를 같이 해결하겠다는 전제로 의견을 수집해서 최대한 다양한 안을 펼쳐놓았다. 이렇게까지 다양하느냐 싶을 정도로 많은 내비게이션을 제안하고, 그 안에서 다시 의견을 취합하다보니까 나름 쉽게 조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프로젝트의 첫 목표는 무엇이었나?
유저들이 왔을 때 “뭐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부분을 해결하고 싶은 게 제일 컸다.
메뉴가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모른다는 문제 말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서 ‘뷰티’라는 카테고리에서 스타일쉐어가 계속해 새로운 콘텐츠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를 모르는 유저들도 있다. 유저 인터뷰를 하다가 “데일리룩 피드를 보신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런게 있었나요?”라고 되묻는 고객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를 명확히 인지시키려 했다.
여기, 이런 작업물도 있다. 이건 ‘인기 탭’이 바뀐 결과물이다.
이것도 기존과 화면이 바뀌었다. 사진이 커지니까 확실히 좋아보인다
구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사용자환경(UI)이 바뀌었다. 사진이나 메뉴의 배치를 다르게 해서 우리가 집중하는 ‘패션’을 명확히 보여주려 했다. 또, 배너를 디스플레이 하는 방식도 개선했다. 간단한 사용성을 가지면서 이용자도 기존에 쓰던 메뉴를 다시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디자이너와 소통도 많이 했고, 디테일에 신경썼다.
통상적으로 앱 화면을 감각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군더더기들을 많이 제거하려고 신경을 썼다. 기존의 답답한 느낌이 뭔가 조밀한 구성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사진과 글자가 겹치거나 그라데이션이 들어가는 것들이 복잡한 느낌을 준다. 사진은 사진대로 잘 보이게 사진과 글자 영역을 확실히 분리해서 시원하게 스타일을 잘 보여주려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
논의를 시작했던 때부터 보면 두 달 좀 넘게 걸린 것 같다.
대략, 어떻게 제품을 구성하게 되는지 알겠다. 이런 변화가 있는데는 스타일쉐어가 PO 중심의 스쿼드(미니 스타트업처럼 그 안에 PO와 디자인, 개발 등 역량을 모두 갖춘 일종의 풀스택 조직) 중심으로 운영 체계를 바꾼 것도 배경이 됐다고 들었다. 변화의 이유는 무엇인가?
서비스 규모가 커지면서 ‘커뮤니티’와 ‘커머스’로 분리를 해 조직을 운영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몇년 운영해보니까 유저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과는 괴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끼리만 커뮤니티와 커머스로 나눈거지, 유저의 입장에서 스타일쉐어는 커뮤니티와 커머스가 분리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만날 때 겪는 문제를 중심으로 조직을 나누자는 얘기가 나왔다. 기존에는 조직을 유저를 잘 획득해서, 그 유저가 서비스에 잔존하도록 하는 식으로 조직을 구성했다면 지금은 ‘발견 -> 크리에이터 -> 커머스 검색 -> 구매 후 경험’이라는 네 스쿼드로 나뉘어서 움직인다. 유저들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상품을 잘 발견하도록 돕는 여정,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자기 사진을 잘 올릴 수 있도록 돕는 여정, 전반적인 구매 여정, 그리고 이용자나 입점사가 상품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여정을 각 단계별로 나눈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타일쉐어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재편했다는 뜻인데.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정’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기존에는 우리가 나누기 편하도록 페이지 단위로 업무를 나눴다. 그러다보니까 모두가 공통으로 만나게 되는 첫 화면은 누가 책임지느냐에 대해서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겼다. 모두 자기 페이지만 보게 되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다.
그래서 페이지 중심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생산자의 여정을 중심으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도를 기반으로 스쿼드 조직이 짜였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직이 바뀌게 되면 업무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고, 혹은 일하는 사람들이 변화에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당연히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유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관점이라는 것을 대부분 이해해줬다. 그리고 일을 할때 혼선이 있을 수 있는 곳끼리 카운터 스쿼드를 정해놓고, 자주 싱크업 미팅을 했다. 그런 공유의 자리가 효과가 좋았다.
이제는 지 PO가 왜 PO가 되었는지 얘기를 해보고 싶다. 디자이너로 입사했는데, PO로의 전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내가 먼저 PO를 하고 싶다고 자원했다.
열린 조직이다. 왜 전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디자이너로서 10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미션을 받으면서 일을 하다 보니까 좀 새로운 게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제품 성장이 조금 둔화된 시점에 내가 턴어라운드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스타일쉐어가 성장이 둔화됐다고 봤나? 턴어라운드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았나?
일단 저희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인데 이게 자연발생적으로 그냥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그 관리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우리가 비즈니스를 전개하느라 그 니즈를 제대로 못 봤던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파악해서 빠르게 실험하고 결과를 내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다소 느렸거나 임팩트가 크지 않은 것을 문제라고 봤다. 그래서 나도 잘은 못할 수 있지만, 그래도 빨리빨리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문제 해결에 손을 든다는 것이 진짜 쉬운 일은 아닌데. 그게 가능했던 조직 분위기가 있을까?
내가 손을 들긴 했지만, 지지해 준 분들이 있다. 디자이너였을 때 “더 많은 성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답답하다”는 내말에 디자인 팀장님이 선뜻 “슬기님이 그런 의지가 있으니 PO를 한 번 해보면 어떠느냐”고 말씀을 해주셨다. 혼자였다면 입밖으로 꺼내기 힘들었을 거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PO는 미니 CEO라고 했는데, 창업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단 스타일쉐어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은 게 첫번째다. 그 경험을 잘 쌓아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걸 꿈꾸고 있다.
그게 창업 아닌가(웃음)
자영님(윤자영 사업 대표)과 얘기를 하다가, “슬기님이 일을 잘 하게 되면 슬기님한테 좋은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내가 일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의 큰 부분이 됐다. 내가 PO가 되고 싶었던 것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의지가 있고 일을 잘 하고 싶어 하는 걸 알기 때문에 여기에 나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런 노력을 하면서 창업을 하거나 아니면 창업팀에 합류하는 일도 생각하고 있다.
좋다. PO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재질의 사람이면 좋을까? 어떤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보나?
사람이랑 얘기하는 것에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제품의 히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팀도 있지만, 그런 세세한 내용을 다 파악하기 힘든 외부 팀도 있다. 항상 “했던 얘기를 또 한다”는 생각으로 얘기하는데, 그런 거에 지치거나 힘들어하지 않아야 한다. 항상 “처음 얘기한 것처럼” 잘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런 끈질긴 부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덕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상품 발견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한 아이템을 고민 중이다. PO가 하는 일 중에는 기존에 있던 프로덕트를 더 잘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발견 루트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다. 이번 분기에는 새로운 상품 발견의 루트를 만들어보는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