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사람들④] 은행의 문법을 깨다
[바이라인네트워크 창립 6주년 기획, 스타트업과 사람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다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도 20개사 가까이 등장했습니다. 스타트업에 투자되는 자본의 규모도 이전과는 다릅니다. 대기업이 자본 싸움에서 스타트업에 밀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창립 6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기획의 특징은 ‘사람들’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비춰본다는 점입니다. 스타트업 창업가와 투자자를 비롯해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스타트업에 들어가고 싶은 취업준비생, 스타트업이 만든 플랫폼에서 일하는 긱 노동자 등을 바이라인네트워크가 만나봤습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좀더 이해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편집자 주.
④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스타트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중에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대기업에 다니던 이들도 포함되어 있죠.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들었고, 또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창간기획에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긴 사람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금융권에도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존재합니다. 고객 수와 자본 측면에서 대기업에 속하는 시중은행과 이제 막 여·수신 상품의 포트폴리오를 갖춘 인터넷전문은행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같은 은행이지만 상품이나 서비스 방식 등에서 주는 느낌의 차이는 꽤 큽니다. 일하는 방식에서도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은 서로 다를까요.
약 6년 전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면서 시중은행에서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말하길, 큰 틀에서 은행업은 같지만 업무의 방식부터 기업문화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고 주장하는데요.
지난해 금융권 S은행에서 토스뱅크로 적을 옮긴 송관석 수신스쿼드 매니저도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송관석 매니저는 S은행에 약 10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몸을 담았었는데요. 토스뱅크로 와보니 업무 범위, 방식, 동료들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새로웠다고 합니다.
직급과 나이를 구별하지 않고 ‘OO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존댓말을 쓰는 것부터, 정장이 아닌 조거팬츠나 맨투맨 등 편안한 옷차림을 입는 것, 개발자나 기획자, 디자이너 등이 맡은 업무에 구분없이 의견을 주고 받는 것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상품을 기획할 때 공급자가 아닌 철저히 고객 중심에서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강조합니다.
송관석 토스뱅크 수신스쿼드 매니저를 만나,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무엇이 같고 다른지 들어봤습니다.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약 10년 간 시중은행을 다니다가 작년 7월 토스뱅크에 합류해 예금, 수신 상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수신 상품 관련 정책이나 규정을 직접 만들어 관리하고 있고, 이 규정과 정책을 바탕으로 토스뱅크 2% 통장, 지금이자받기 등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부터 운영, 관리까지 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수신 상품을 만드는 것부터 엔드투엔드까지 관리를 하고 있는 셈이죠.
업무 범위가 꽤 방대하네요.
수신 상품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다 관여를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업무 범위에서 시중은행과 차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네. 시중은행은 상품을 만드는 팀, 마케팅을 하는 팀, 상품 출시 후 관리하는 팀, 규정 담당 팀 등 업무 별로 부서가 나눠져 있는데요. 반면, 저희는 실적으로 업무가 한 군데로 집중되어 있어 (상품 혹은 서비스의) 내부에서 태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순간을 다 같이 하는 구조라고 말하고 있어요.
한 팀에서 모든 것을 하게 되면 다양한 직군이 소속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시중은행과 비교해서 설명을 하자면, 시중은행은 현업 담당자, 개발을 맡는 별도 IT부서, 디자인부서, 데이터 분석 부서 등이 있는데요. 따라서 뭔가를 추진할 때는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을 해야 하는데, 개발자들에게 왜 이 상품을 출시하려고 하는지부터 어떤 것이 포인트인지 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반면, 토스뱅크는 현업 담당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데이터분석가 등이 한팀에 있어 누구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모든 것을 만들어가다보니 불필요한 시간이나 노력에 대한 낭비가 필요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온전히 상품과 서비스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얘기를 들었을 때 시중은행과 토스뱅크의 조직구조나 업무 방식이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점에서부터 토스뱅크로 이직을 결정하기가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전 직장을 10년 정도 다니면서 출근하고 일하는게 재밌었는데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전 직장에서 느꼈던 불편함이나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것들. 예를 들어 상품을 출시하는 업무보다 관리하는 업무만 하다 보니 생기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품을 이렇게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욕구가 있었는데, 토스뱅크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래도 토스뱅크로 이직을 결정하시면서, 기대하는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특히 토스뱅크 구인구직 홈페이지에는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는 문구가 있었는데요.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했죠. 그런데 막상 입사를 해보니 진짜라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점에서 느끼신거죠?
이곳 동료들은 제가 열심히 일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제가 입사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이곳의 개발자들은 개발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던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책을 정할 때도 개발자분이 오셔서 의견을 주시는 등 개발자 입장에서만 일을 하는게 아니라 현업의 입장에서도 일을 하는 것이죠.
반대로 현업 담당자들도 IT 지식이 높지 않지만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등 업무의 경계 없이 일을 하고 있어요. 이곳에선 이 점이 자연스러워요.
전해 듣기론 ‘이자지금받기’ 서비스도 그렇게 시작됐다고요?
네, 결이 비슷한데요. 저희는 상품을 최초 출시할 때부터 시중은행이 해오던 것들에 대해서 이게 당연한것인지,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이자지금받기 서비스도 왜 은행이 정한 약관에 명시된 날에만 이자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을 했어요. 결국 내부에서 오랜 시간 토론을 한 끝에, 이자 주권을 고객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서비스를 출시하게 됐죠.
내부에서도 반응이 좋았어요. 저희는 서비스를 오픈하기 전 항상 내부에 먼저 공개를 하는데, 이때 들어오는 다양한 피드백을 주고받아 개선점 등을 고민하거든요. 이자지금서비스는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어요.
시중은행과 토스뱅크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웠던 경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첫 출근할 때는 어땠나요?
출근 전 회사에서 편한 복장으로 입고 오라고 해서 저도 나름 편안하게 옷을 입고 갔는데요. 외투를 들고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로퍼를 신고 갔죠. 그런데 회사로 가니까 저만 이런 복장이어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때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게 진짜 편한게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전에는 항상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정장에 넥타이까지 메고 갔어야 했으니까요. 지금은 후드나 조거팬츠 등 편안하게 입고 다니고 있어요.
토스뱅크에는 젊은피가 많아 시중은행과 분위기가 확 다를 것 같은데요.
맞아요. 또 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것이 이곳에서 아무도 제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거였어요. 원래 어느 조직에나 누군가 새로 오면 이름, 사는 곳, 나이 등을 자연스럽게 묻게 되잖아요. 그런데 토스뱅크에서는 아무도 제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거에요. 다 ‘OO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팀원도, 어려보이는 팀원도 모두 ‘관석님’이라고 부르는게 자연스러운거에요.
직전 회사에서는 직급도 있었고 때에 따라 반말, 존댓말 등을 써야 했다면, 님을 붙이고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존중해 주는 것이 수평적인 문화의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스뱅크에서 가장 즐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 당일 업무를 다 끝내고 나면 일부러 개발자들 옆에 기웃거려요. 코딩하는 모습을 보며 혼자 추측을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오픈(Open)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계좌개설이랑 비슷한 걸까라며 고민하죠.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관심을 가졌다가 얼마 전 서버 개발자분에게 직접 코딩을 배워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개발자분도 반기면서 저에게 HTML을 활용해 홈페이지 게시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해줬죠.
전 직장에서는 개발자분들에게 기획안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끝나는데, 이곳에서는 바로 옆에서 개발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이 없었으면, 제가 개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못 했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 다양한 걸 경험하면서, 금융에 대한 가치관이나 비전 등이 바뀐게 있을까요?
토스뱅크에 와서 느낀 것은 지금까지 시중은행의 상품을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은행이 올해 오픈뱅킹 가입자 수를 정했는데 실적이 부족하면 오픈뱅킹 관련 상품을 만드는 등 은행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상품을 출시했었는데요.
토스뱅크에서는 뱅킹 앱 안에 문구 하나를 정할때도 하루 안에 못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문구를 보고 고객들이 명확하게 인지를 할 수 있는지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등 고객 중심의 마인드가 강한 조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네, 그렇군요. 이곳에 오신지 이제 1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으세요?
저는 평생 은행 일만 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토스뱅크에 와보니 은행 일만이 아닌 또 다른 저의 다음을 그릴 수 있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모바일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이 모바일 제품을 만들고, 모바일 환경에 대해 이해를 하다 보니 다른 일도 해볼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나의 역량이 더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