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업하던 주현씨, 왜 페이스북 UX 디자이너가 됐나

나는 송충이다. 그래서 솔잎을 먹고 산다. 무슨 말이냐 하면, 태어날 때부터 뼛속 깊이 문과생이라 “개발자, 기획자 몸값 최고”라는 뉴스에도 새로운 도전을 해볼 엄두를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성과를 낸 사람은 우선 존경하고 본다.

미국 메타(구 페이스북)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는 박주현(케일라) 씨는 그런 의미에서 솔잎을 거부한 케이스다. 그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사회에선 영업과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서른 즈음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결국엔 메타에 입성했다. 영업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서비스 사용자경험(UX)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중에 문과생 출신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식을 듣자마자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문과생이 UX 디자이너로 일하는 게 어렵지는 않은지, 실리콘밸리, 게다가 메타에서 일하는 것은 어떠한지 묻고 싶었다. 현재 탈잉에서 UX 디자인 강의도 하고 있는데, 당신과 같은 사람이 더 생기려면 교육이나 문화는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마음 넓은 주현 씨는 다행히 나의 부탁을 들어줬고, 바다 건너에 있는 관계로 줌으로 만났다. 주현 씨의 퇴근 무렵 연결된 화면 너머에서, 그는 “한번씩 국밥도 먹어줘야 하고 자장면도 시켜줘야 한다”고 말하며 대화를 편안하게 이끌었다.

실리콘밸리 메타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는 케일라(박주현) 씨.

Part1. 문과생 박주현은 어떻게 메타 UX 디자이너 케일라가 됐나

한국에서도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관심사다. 그런데 그들은 백그라운드가 거의 기술이다. 주현 씨는 문과생 출신이라고 해서 흥미로웠다. UX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나?

정치외교학 전공에 경영이 부전공이었다. 2013년께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국내에도 IT 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인기가 많아지던 시절이었다. 경영 공부를 하면서 케이스 스터디를 했고, 그러면서 UX 디자인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당시에는 흥미가 있었을 뿐인데, 사회에 나와서 국내외 대기업의 영업 마케팅을 하면서 그 일이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맞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게 UX 디자인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초기 스타트업(탈잉)에 합류해서 일했는데 당시에는 직원이 다섯명이던 시절이다. 사무실도 없어서 자취방에서 컴퓨터를 갖고 일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직무 구분이 없어서 기획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UX 디자인에 해당하는 일도 했다.

이후에 글로벌 IT 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면서 미국 출장도 자주 가고 했는데, 그때 실리콘밸리에서 UX 디자이너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스타트업에서 쌓은 경험과 미국 출장을 다니면서 얻은 확신이 결합되면서 미국 유학을 가기로 했고 UX 디자인 공부를 병행했다.

일단, UX 디자인이 뭔지부터 물어야 같다

사용자경험에 관한 모든 활동을 UX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보통 메타에서는 ‘캐피털(대문자) D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디자인(D)에는 리서치, 콘텐츠, 디자인 등등 사용자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들어간다.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겪게 되는 총체적인 경험에 관여하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맞다. 보통 디자인이라고 하면 프로덕트 개발 사이클의 끝단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기획자’라는 포지션이 따로 없다. ‘엔드 투 엔드 프로세스’에 들어가는 모든 문제의 정의와 전반적인 해결 과정에 디자이너가 관여한다.

메타에서 현재 UX 디자이너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정확히는, 메타에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내 경우에는 페이스북 내부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지만, 내부에서 사용하는 서비스들이다. 메타에서도 비교적 신생 조직이라 프로덕트가 다 새롭고, 디자이너의 수도 적다. 그래서 굉장히 독립적으로 권한을 갖고 있을 하고 있다.

UX 디자이너로 일할 있는 많은 선택지 중에, 하필 실리콘밸리, 거기에 메타 이유가 있다면?

미국에 오겠다고 결정을 한 게 2018년이다. 그때만해도 UX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한국에서는 많이 낮은 편이었다. 이왕 UX 디자인 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김에, 그 분야를 가장 선도하는 지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야망이 있었다(웃음). 그리고 그 바람을 막연하게 희망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영업, 마케팅을 담당했는데 실리콘밸리로 출장갈 일이 많았다. 현지 경험을 조금씩 해보면서 여기 와서 살면서 일해볼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왜 ‘메타’냐고 묻는다면  실리콘밸리의 기업들도 문화가 조금씩 다르다. 메타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일을 해봤다. 1975년에 창업해서 지금은 임직원이 15만명이 넘는 굉장한 공룡 기업이다. 그런데 메타는 2004년에 생겨나서 굉장히 가파르게 성장한 회사다.

임직원도 5만명이 조금 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하면 그 규모가 3분의 1 수준이다. 규모가 작은 만큼 회사의 업무가 돌아가는 속도도 다른데, 소셜미디어처럼 굉장히 격동하는 분야에서 빠르게 일을 하는 문화가 내게는 더 맞았다. 또, 메타라는 조직이 굉장히 수평적이라 개개인에게 주는 오너십이 굉장히 크다. 리더십이 강하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면모가 있는데, 그게 내 업무 스타일과 맞았다.

업무 중인 박주현 씨. 사진제공= 박주현

직업을 바꿨으니 적응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문과 출신이 UX 디자인 일을 하면서 유리한 부분이 있을까?

유리한 부분이 많고, 그래서 많은 이가 도전해줬으면 한다. 현재 (탈잉에서) “정외과 출신에 영업,마케팅을 하던 사람이 어떻게 여기서 일을 잘 할 수 있느냐”를 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실제로 고과가 좋았고 승진도 빨리 했다. 평가가 좋은 이유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과생이 더 많은 도전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이 있는데, 여기에서 2013년에 미국 UX 디자이너들을 모아놓고 실무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답의 1, 2, 3위가 “남들을 설득시키는 일” “남 앞에서 내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일” 같은, 토론이나 발표, 설득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UX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케팅을 공부하는 문과생들이 가장 잘 하는 역할이다. 많이 쓰고 발표하고 분석하고 요약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문과생이 계속해 배우는 역량 아닌가.

현실 업무에서도 그런 역량이 적용되나?

테크 회사에서 프로덕트를 만들 때는 디자이너가 혼자 일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나 프로덕트 매니저, 데이터 사이언스 팀 전체가 움직여서 함께 일한다. 결국에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열심히 잘 만든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얼마만큼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 문과생과 개발자는 다른 언어를 쓰는 듯한 느낌이 때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팁을 있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UX 디자이너 면접을 볼 때 꼭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엔지니어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이냐,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결을 하느냐를 꼭 물어본다. 내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디자인은 프로세스”라는 점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디자인을 완성하는데 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디자인의 초기 단계부터 엔지니어를 참여시킨다. 디자인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때 엔지니어가 충분히 참여할 수 있게끔 한다면, 엔지니어도 함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의견을 납득하기 쉽다.

두번째는?

공대생은 각자 맡은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데 특화돼 있는 사람들이다. 약간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반면, 우리는 디자이너니까 남에게 공감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일을 잘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 맞게끔 그 사람에게 가장 잘 통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거다. 엔지니어가 내 디자인을 납득 못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텐데 그걸 배우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런 기술적 제약이나 조건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면, 이건 이러이러한 이유로 괜찮을 거다”라고, 상대편의 언어를 구사하면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Part2. 또 다른 케일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미국 유학 준비를 하면서 UX 관련 공부를 했다고 답했다. 사실, 탈잉과 같은 인터넷 교육 과정에서 UX 배웠나 했다(웃음)

그것과 관련해 할 말이 있다. 유학 준비를 하던 때가 2018년인데, 당시만해도 한국에서 UX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낮았다. 그럴듯한 UX 디자인 수업이 없었고, 제목은 같아도 알고보면 그냥 웹디자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수업으로는 배울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배우기 어렵기 때문에 영문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혼자 공부한 경우가 많았다.

2018년이라고 하면 사실 되게 과거도 아닌데, 그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웹디자인과 UX디자인에 대한 구분도 모호했던 시기였나 보다

지금은 좀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저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디자이너들이 실무 강의를 하는 수업도 많다.

이제는 정말로 직업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교육의 환경이 바뀌고 있는 같다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이전에는 공부하고 학교가서 졸업할 때 되면 취업 준비를 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선형적으로 진행돼왔다. 그런 시대는 진작에 끝난 것 같다. 열두살 인도 친구가 NFT 아트를 파는 시대다. (정규) 교육이라는 게 따로 있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직업을 만들고 금전적인 활동까지 할 수 있다.

미국에 와서 놀랐던 것이, 학교에서 해커톤을 나갔는데 같은 팀에 열아홉살짜리 남자애가 있었다.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하는 친구인데, 벌써 구글과 일을 해봤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구글 같은 경우에는 대학에 막 진학하는 고등학생을 모아서 컴퓨터 공부를 따로 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직업 교육을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상당히 일반화됐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서른이 다 되어서야 UX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십대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다면 삶에서 얼마나 이득인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1984년생 마크 저커버그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국영수 위주로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취직을 위한 공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틀에서 진작에 벗어나야 하는게 맞고, 이미 벗어나고 있기도 하다.

실리콘밸리로 가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해줄 있는 조언이 있다면?

일단, 가서 뭘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할 건지를 확실히 정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직업에 실리콘밸리가 적당한 곳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생기고, 그 뒤에 오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어서다. 확신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계속 무너진다. 실리콘밸리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실리콘밸리가 천국은 아니다.

확신이 생긴 이후에는 현실적인 부분을 조언한다. 비자 문제다. 어느 비자로 미국에 올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으로 비자를 잘 준비해서 미국에 오면 그 뒤는 상대적으로는 쉬운 것 같다. 일단 건너오는 게 가장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 일하는 건가?

사람이 성과를 내려면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나 혼자 잘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적재 적소에 피드백을 주고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성과를낼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이 굉장히 성숙하게 자리 잡아 있다. 고과 평가에도 동료 리뷰를 받는데, 그 때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상대편이 상처받을까봐, 혹은 나보다 직급이 높아서 등의 이유로 얘기를 잘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런 의견 교환이 잘 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마치 끝없이 성장할 수있을 것만 같은 착각,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단점이 있다면?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다 테크 산업에 종사하고, 거기에만 몰두해 있다보니까 예술이나 문화 같은 것이 약하다. 회사에서도 테크 얘기만 하는데 퇴근 후에 만나는 사람들도 테크 이야기만 한다.

어떤 계획이나 비전을 갖고 있나?

UX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지만, 디자인과 관려한 일은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다. ‘직업은 가볍게 일은 무겁게’가 요즘 갖고 있는 모토다. 새로운 일이 계속 생겨나는 시대에 하나의 직업으로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디자인이라는 일은 게속 하되, 어떤 일을 해나갈지는 계속 고민하면서 지낼 것 같다.

예술가가 수도, 창업가가 수도 있고 미국에 수도 아니면 다른 어떤 나라에서 살게 될지 모르는 일이겠다

그럴 것 같다. 열심히, 오는 기회 마다하지 않고 살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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