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어느 스타트업의 일일 직원이 됩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시간 꽉 채워 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보면서 이 회사가 어떤 고민을 갖고 무슨 일을 하는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등을 알아보려 합니다. 하루 출근했다고 회사를, 산업을 모두 알 수는 없겠죠. 다만, 한 시간 만나 짧게 인터뷰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자의 노동력이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일손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평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는 컨퍼러스 참가를 위해 찾는 장소라고만 생각했다. 오가며 반짝이는 상점을 보면서 아, 저 곳 가서 쇼핑이나 하고싶다든지 혹은 저 집 음식 맛있어 보인다는 생각만 했지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눈여겨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작업복과 작업화를 신고 코엑스 한 가운데에서 음식물 분리수거통을 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간은 죄 많은 동물이다. 숨만 쉬고 산다고 생각하는 이조차 끊임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끊임 없이 ‘배출’을 한다. 고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거나 재활용해 다시 자원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주 중요한 분야지만 혁신은 더뎠다. 왜냐, 굳이 폐기물 처리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폼나는 창업 아이템이 많기 때문이다.

리코(reco)는 드물게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낸 스타트업이다. 음식물 쓰레기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다. 일단, 음식물 쓰레기가 대략 여생을 어떻게 보내는지부터 알아야 다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이 식당에서 밥숟가락을 내려놓은 후 남은 잔반이 어떤 여행을 하는지 간략하게 그려봤다.

글씨가 이래서 죄송하지만, 대충 알아보셨을거라 생각할게요. 고맙습니다.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면 운반업체가 이를 수거해 처리장으로 옮긴다. 처리장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 재활용 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나눈 후 재활용 작업을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이 작업 과정에서 리코는 비합리적인 문제점을 발견했다.

리코가 발견한 ‘음식물 쓰레기 시장’의 비합리성

1) 식당은 폐기물을 배출한 만큼, 그 양에 따라 수거 업체에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기존의 수거 시스템에서는 제각각의 수거통을 사용해 정량 체크가 어렵다.

2)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모든 내용이 수기로만 기록된다. 즉, 배출자가 지난 관리 이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3) 단순히 수거에서만 끝나므로 용기 세척이나 주변 환경 관리를 요청하기 어렵다

4) 폐기물 처리가 적법하게 이뤄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5) 신뢰할 만한 폐기물 수거업체와 처리업체를 개인 사업자가 쉽게 찾기 어렵다.

리코의 창업자인 김근호 대표는 원래 미국 증권사 트레이더 출신이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체의 컨설팅을 하다가 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2018년 10월에 창업했다. 절대로 없어질 리 없는 시장인데 전혀 디지털화가 되지 않았고, 개선에 대한 요구는 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업자가 많다는 걸 발견했다. 게다가 경쟁자도 없어 보였다. 지금 당장 진입해 솔루션을 만들어낸다면 이 시장의 혁신을 일궈내는 리딩 기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창업한지 만으로 딱 2년이 지났고, 디지털 솔루션을 공개한지는 이제 7개월이 됐다. 그 사이 리코는 서울 지역 370여개 업체와 계약했다. 롯데 시그니엘, 몬드리안 호텔, 안다즈 호텔, 동대문 노보텔 등이 고객이다. 지난 3월에는 삼성동 코엑스 스타필드에 입주한 모든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계약을 따냈다. 알음 알음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리코를, 찬 바람 불기 시작한 지난 7일 이호준 바이라인네트워크 인턴기자와 함께 찾았다. 발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고 있는지를 묻기 위함이었고, 또 실제 음식물 쓰레기 수거 현장은 어떠한지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 쓰레기 수거 투입 다섯 시간 전, pm 2:10


김근호 리코 대표와 약속한 출근 시간은 오후 2시였는데, 신입 주제에 샌드위치를 먹다가 10분이나 늦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체에 가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 순 없다며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다. 사실은 조금 남겼다.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급하게 털면서 리코 사무실로 들어섰다.

김근호 리코 대표. 리코는 리소스 커넥터(resource connector)의 줄임말이다. 자원을 연결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늦어 허둥대는 신입사원과 달리 김근호 리코 대표는 차분히 회사 소개를 준비 중이었다. 리코의 신입사원은 열외없이 출근 첫 날 대표와 직접 질의응답을 나눈다. 리코의 전체 업무를 대표만큼 잘 알고 있는 이는 없을테니 가장 적절한 답변자라 판단해서다. 준비된 PPT를 열고, 김 대표가 리코의 자체 서비스 ‘업박스(UpBox)’를 소개했다. 업박스는, 리코가 앞서 발견한 음식물 쓰레기 수거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통합 솔루션이다. 정확한 배출량 확인 불가능, 폐기물 배출량의수기 관리, 용기 미세척, 적법 처리 관리의 어려움 등을 업박스라는 시스템으로 해결코자 했다.


리코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나, pm 2:14


다음은 업박스가 어떻게 기존 음식물 쓰레기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김 대표가 설명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리코가 업박스로 제시한 ‘음식물 쓰레기 시장’ 문제의 해결책

1) 식당은 폐기물을 배출한 만큼, 그 양에 따라 수거 업체에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기존의 수거 시스템에서는 제각각의 수거통을 사용해 정량 체크가 어렵다.

-> 규격화된 사이즈의 통에 내부 눈금을 만들어 실제로 폐기물이 얼마나 배출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수거통의 뚜껑을 열면 눈금으로 폐기물의 부피를 확인할 수 있으니 신뢰를 얻을 수 있다.

2)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모든 내용이 수기로만 기록된다.  즉, 배출자가 지난 관리 이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 고객용과 수거 기사용의 디지털 앱을 만든다. 기사는 음식물 수거용기를 회수함과 동시에 즉시 배출량을 앱에 올린다. 고객이 원할 경우 사진을 첨부한다. 고객이 앱에서 일, 주, 월 단위로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수거되었는지와 이에 따른 비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3) 단순히 수거에서만 끝나므로 용기 세척이나 주변 환경 관리를 요청하기 어렵다

-> 수거된 용기는 코엑스 지하 2층의 현장 사무소에서 곧바로 세척해 청결을 유지한다.

4) 폐기물 처리가 적법하게 이뤄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 앱을 통해 자신이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가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수거차량의 동선이 추적되기 때문에 불법 매립지 등으로 갈 확률이 낮다.

5) 신뢰할 만한 폐기물 수거업체와 처리업체를 개인 사업자가 쉽게 찾기 어렵다.

-> 노하우를 쌓은 후 폐기물 배출업체와 폐기물 수거, 처리 업체를 연결하는 중개 플랫폼을 만든다. 2년 간의 운영 노하우와 고객사들로부터 받은 평가 데이터로 믿을만한 업체를 추천한다.

쓰레기 배출 이력을 찾아보게 하는 솔루션.

 


전체 폐기물 시장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의 비전, pm 2:30


김 대표가 제시한 해결책을 보면 눈치챌 수 있듯, 리코는 시장의 문제점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풀어가려 한다. 실제로 창업 후 1년은 기존 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음식물을 수거해 봤다. 그 경험을 토대로 개선점을 도출해 올 3월 디지털 앱을 선보였다. 김 대표에 따르면 업박스 앱을 만들고 나서 고객상담(CS)이 70%가 줄었다. 고객불만은 대체로 “왜 이렇게 비용이 많이 나오느냐, 제대로 관리한 것 맞나?” 같은 것인데 수거 후 관련 데이터를 앱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비용도 그때그때 알아볼 수 있으니 굳이 전화를 해 따질 필요가 줄었다는 이야기다.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기사들도 차량에 태블릿을 부착, 앱으로 일정을 관리한다. 리코 측에 따르면 앱 사용 후 쓰레기를  빼먹고 수거하지 않는 일이 줄었고, 실시간 문제 상황을 리포트 할 수 있어 빨리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화면 터치로 숫자만 기록하면 데이터가 정렬되니까 매일 수기 일지를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줄어든 것도 업무 환경이 개선된 점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지난 5월,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쓰레기 배출자에게도 관리감독의 의무가 더해진 것도 리코에 호재다. 지금까지 폐기물관리법에서는 쓰레기 처리에 대한 의무 부과가 쓰레기 수거와 처리 업체에만 있었다. 즉, 그동안 일반 식당에서는 쓰레기 수거업체에 처리 비용만 지불하면 그뿐, 쓰레기가 이후 적법하게 처리되었는지 여부는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됐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로 폐기물 관련 사고가 났을 때 배출자가 제대로 관리했다는 기록이 없으면 같이 책임을 물게 됐다.

Q. 쓰레기가 적법하게 처리되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A. 수거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다 돈이죠. 제대로 허가된 곳에 버리면 100원 매출에서 50원을 처리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데 불법 처리업체를 쓴다거나 혹은 직접 불법으로 매립을 해버리면 비용이 많이 줄겠죠. 그래서 간혹 폐기물 불법 처리와 관련한 뉴스가 나오는 겁니다.

김근호 대표는 내년을 리코의 또 한 번의 도약 시점으로 보고 있다. 목표는 업박스의 플랫폼화다. 데이터를 꾸준히 모으는 이유기도 하다. 당연히 다루는 폐기물의 종류도 많아질 예정이다. 음식물 쓰레기 외에 각종 영업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폐기물 수거와 처리, 재활용을 위해 업박스의 ‘엔드 투 엔드’ 시스템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다만, 리코가 그 모든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출 순 없다. 그래서 플랫폼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폐기물 업체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검증했으므로, 적법절차를 잘 지키면서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곳을 폐기물 배출업체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려 한다. 배출자와 수거업체 외에도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그 결과물을 가져다 사용하는 곳 등 가치 사슬 안에 들어오는 모든 구성원이 업박스라는 플랫폼 안에서 파트너를 찾을 수 있게 한다는 비전을 세웠다.

“폐기물도 결국은 남는 자원이잖아요. 버려지면 폐기물이지만, 쓰면 자원이니까요. 이 폐기물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고 싶어요. 음식물을 시작으로 폐기물 전체 시장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 저희 목표죠.”

Q. 국내 폐기물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A. 음식물 포함, 국내 전체 폐기물 시장 규모는 12조원 정도예요. 하지만 데이터를 100% 믿을 수 없죠. 이 데이터가 각 기업의 리포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폐기물 배출량을 리포트하고 각 지자체가 그걸 취합해 환경부에 제공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언더리포팅’을 해요. 굳이 정확하게 리포팅을 해야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고, 오히려 정확하게 기재하면 줄이라는 잔소리만 듣죠. 따라서 딱 필요한 수준까지만 리포팅을 하니까, 정확한 숫자를 알기 어렵죠. 저희는 실제로는 20조원에서 25조원 사이가 국내 폐기물 시장의 규모라고 봐요.

김 대표는 폐기물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항상 규제의 대상이고 잘해봐야 이득을 얻긴 커녕 칭찬을 받을 일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업체 입장에서는 당장 내 눈앞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리코는 앱 안에서 ‘환경 지표’라는 것을 제공한다.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가 퇴비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 당신 업체가 환경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자원의 선순환을 이루려면 관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하는 부분이다.

뇌동윤 이사가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리코 최고운영책임자인 뇌동윤 이사와도 수업시간(?)을 가졌다. 뇌 이사와의 이야기 중에 흥미로웠던 점은 최근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의 증가였다. 일년 사이 리터 당 처리 비용이 거의 50% 올랐는데 놀랍게도 지난해 10월 처음 발병된 ‘아프리카돼지열병’ 이 큰 영향을 끼쳤다. 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환경부가 음식물 쓰레기의 돼지사료화를 막자 처리 비용이 급등한 것이다. 돼지 농가에서 사료로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비율이 전체의 30~40%를 차지했는데 이 길이 막히자 관리 비용이 치솟았다.

뇌 이사와 인터넷 검색으로 신뢰할 만한 쓰레기 수거 업체와 처리 업체를 찾아보는 경험도 했다. 실제로 찾아보니 어느 업체가 신뢰할 만한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호준 기자는 그 사이 한 폐기물 업체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알아보는 열정도 보였다. 질수야 없다고 검색의 속도를 높이는데 뇌 이사가 “신뢰할 만한 곳을 찾았느냐” 묻더니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쓰레기 수거업체들이 영세한 곳이 많아 평판 조회가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뇌 이사의 숙제는 결국, 업박스가 준비하는 ‘중개’ 플랫폼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리코의 개발자와 기획자, 디자이너는 무엇을 고민하나 pm 4:35


다소 질문이 많았던 신입직원 탓에 대표와 면담이 길어지면서 이후 일정들도 조금씩 밀렸다. 귀찮은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준 경영진에게 감사. 오후 4시 35분, 손열호 CTO의 주재 아래 ‘앱 사용성 개선’과 관련한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업박스 앱을 사용의 불편 사항이나 건의사항을 파악하고  빠르게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토론하는데 집중해 이뤄졌다.

(사진 왼쪽부터) 리코 서정우 매니저(운영관리팀), 박인광 매니저(운영관리팀), 김현임 디자이너(개발팀), 손열호 개발총괄(개발팀).

손열호 개발총괄은 “사람들이 반복작업을 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신경쓰고 있다”며 “일하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구경하다가 패턴을 갖고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면 이를 빨리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반복 업무에 쓰는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게 큰 목표”라고 말했다.


쓰레기 수거의 현장으로, pm 6:30


뇌동윤 이사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강남 테헤란로에서 삼성동 코엑스로 이동했다. 오후 6시면 음식물 수거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퇴근 시간의 강남대로는 꽉 막혀 뚫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했다. 코엑스에 도착한 시간은 예상보다 늦은 오후 6시 30분. 택시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따라 뛰다시피 걸었다.  뇌 이사의 뒤를 빨리 쫓아가지 않으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코엑스의 주차장이 미로처럼 느껴졌다.

지하 2층에는 리코의 현장팀 사무실이 있다. 수거 기사님들이 주로 근무하는 곳이다. 먼저 출근해 한 차례 작업을 마친 이동원 매니저, 정택헌 매니저와 인사를 나눴다. 이 매니저로부터 오늘 하루 입을 작업복(업박스 로고가 새겨진 후드집업)과 면장갑, 작업화를 받았다.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내 오늘 코엑스 음식물 쓰레기의 분리수거를 책임지리라. 이 생각은 그러나, 이 매니저로부터 일종의 안전교육을 받으면서 산산히 깨졌다.

“무거워서 못 옮겨요. 수거통을 앞으로 반쯤 기울여서 끌어야 쉬운데,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러다가  수거통을 엎기도 해요.”

이때부터였다. 수거통이 무거워봤자지 내가 감자밭에서 응? 20kg이 넘는 감자 포대를 응? 두손으로 번쩍 들어서 트랙터에 옮겨본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수거통을 엎어서 주변을 음식물 쓰레기 천지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은 내 예상 선택지에는 없었다. 저걸 쏟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ㄷㄷㄷ 떨면서 이동원 매니저의 뒤를 따라 코엑스 지하 1층 상가로 나섰다.

“어떻게, 하나 끌어볼래요?”

일단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찬 분리수거 통을 이동원 매니저로부터 인계받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딱 하나의 생각만 떠올랐다.

“쏟으면 큰일 난다”

 

이호준 바이라인네트워크 인턴 기자(사진 앞), 우성진 리코 매니저(뒤)

이런 공포는 나같은 초보자만 느끼는 게 아니다. 올 1월 리코에 입사해 이제 베테랑이 된 우성진 매니저는 마치 해탈한 사람 같이 말했다.

“처음 했을 때는 작업자 입장에서 쏟으면 안 되니까, 그게 제일 무서웠는데 한 번 쏟아보니까 괜찮더라고요.”

“… 쏟아보셨어요?”

“네, 괜찮아요. 얼른 삽으로 퍼서 다시 담았어요.”

“아, 삽이 있군요…”

해탈한 자, 우 매니저를 따라 강남 시내를 누비는 수거차량에 올랐다. 서울 시내는 골목이 좁기 때문에 5톤 차량이 그대로 다닐 수가 없다. 1톤짜리 트럭으로 먼저 음식물을 수거해 충남 예산의 처리장으로 가는 5톤 트럭에 옮겨 담아야 한다. 우 매니저는 이날 두 명의 초짜를 태우고 코엑스 지하 주차장에서 오크우드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해 쓰레기를 수거했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꼭 힘이 센 것은 아니다. 마른 체격의 기사님들이 음식물이 가득 든 수거통을 한 손에 하나씩 두개를 가뿐하게 끌고 가는데 나는 하나의 수거통을 끌고 가는 것도 벅찼다. 통을 엎지 않도록 하는 것에 무조건 주의했다. 굳이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데다, 지금까지 친절했던 오늘 내 동료들의 얼굴이 굳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함께 쓰레기를 나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반적인 음식물 배출량이 줄었다는 것이나, 업체마다 수거 기사에게 요청하는 내용이 다른다는 것 등을 알게됐다. 업체마다 수거를 원하는 요일이나 시간이 모두 다르고, 또 매번 수거할 때마다 관리자의 검수 아래 용기를 교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관리자는 “오늘은 세 명이나 왔네”라며 낯선 얼굴 반겨주기도 했다. 수거된 쓰레기가 예산으로 모두 떠나고 현장이 정리되는 시간은 새벽 1시. 리코 창업 초기에는 그래서, 전체 회식을 새벽 1시에 시작하는 일도 있었다.

 

리코의 문영선 매니저가 수거해온 음식물 쓰레기를 5톤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이 차량은 이날 막 출고되어 나온 업박스 전용 차량이다. 깔끔한 트럭 디자인이 업무 사기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우성진 매니저의 차량에서 내려 수거해 온 음식물 쓰레기를 5톤짜리 업박스 차량에 옮겨 담는 작업을 모두 마친 후 신입직원들은 먼저 퇴근을 했다. 이호준 기자와 나는 입었던 작업복과 구두를 벗었다. 코엑스 지하 2층 사무실에 일하는 현장 직원 중 230mm의 신발을 신는 사람은 없었기에, 이곳엔 나만 신을 수 있는(?) 작업화 한 켤레가 생겼다. 언제든, 일손 부족한 날에 부르라 인사하고 코엑스를 나섰다. 밤 9시 20분. 밖은 깜깜했고, 현장의 기사들은 또 다시 쓰레기 수거를 위해 차를 몰았다.

안녕, 나의 작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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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network
바이라인네트워크 이호준 인턴기자 nadahoju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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