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은 아닙니다만] 웹툰작가가 되고 싶어서 웹툰작가를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웹툰작가가 되는 법> 박자연이 쓰고 커뮤니케이션북스가 2020년 3월 31일 출간. 값 1만4800원. 부제: 세밀한 묘사와 대담한 질문, 그리고 웹툰작가들의 솔직한 답변.
절박해서 시작한 인터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웹툰작가 되는 법’을 쓴 박자연 작가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사표를 내고는 어린 시절 꿈이었던 웹툰작가에 도전했다. 한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을 대중에 알렸는지 그 비책을 얻으려 인터뷰에 나섰다. 김보통, 민서영, 김태권, 이종범, 이서현, 이현석, 김양수, 단지, 김명호, 이림. 총 열 명의 작가가 자연 씨의 물음에 답했다.
“만화가로서 수필가로서 필요한 건 그림 실력이나 작문 실력이 아닌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작가 준비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려요. 그림과 글을 익히는 데 집착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요.” <아만자> 김보통 작가
“저는 만화 작가들이 너무 만화에만 치우쳐서 한 분야만 파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평생 직업이라는 게 없는 시대니까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면 좋겠어요.” <썅년의 미학> 민서영 작가
어쩌면 오해일 수 있는 부분이다. 만화가는 꼭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거나, 성공할 때까지 한 우물만 깊이 파야 한다는. 그런데 현실 작가들은 인터뷰에서 지망생들의 이런 불안을 달랜다. 만화가라는 직업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많은 길이 열리고, 그 경험으로 인해 더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또, ‘완벽한’ 상태의 그림 실력으로 데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작가들의 조언에 따르면, 그림이라는 것도 연재를 해야 실력이 는다. <노인의 집>을 그린 이림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그림의 미학도 달라지는 것이므로, 어떤 얘기를 풀어내고 싶은 것인지를 먼저 돌아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그림이 부족해 표현이 어렵다면 그림작가와 협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도 조언한다. 박자연 작가는 이림 작가의 말에 “한결 마음을 놓았다”며 웃는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에게, 동료로서 선배로서 성실히 대답하는 작가들의 모습은 다정하다.
이 책의 강점은 명확한 독자 타깃이 있다는 점이다. 웹툰 작가 지망생들이다. 인터뷰어 본인이 웹툰 지망생이므로, 인터뷰 전반에 불필요한 질문이 드물다. 인터뷰이가 된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작품을 시작하게 됐는지, 작가로서 생명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작가 지망생들에 어떠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줄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인터뷰 대상자가 된 작가들도, 일반적인 인터뷰어가 아니라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답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성실하게 도움이 될 만한 단어를 골라낸다.
그 과정에서, 작가들의 고민도 읽힌다. 그중 하나가 ‘불안’이다. 작가를 준비하는 사람도, 작가의 길에 이제 막 접어드는 사람도, 또 작가로 10년을 밥 벌어 먹고 산 사람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불안이다. 이 책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작가들이 어떻게 그 불안을 다스리는지, 그리하여 그 존재 자체를 없앨 순 없는 불안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제 작업 속도가 느린 편이다 보니 다음 이야기는 분명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작가로 오래 살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안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중략) 당시엔 정말 너무 불안했거든요.”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
물론 작가들의 말이 모두 일관되진 않는다. 작가마다 각자의 스타일과 철학이 있으므로, 같은 질문에도 다른 답이 나온다. 예컨대 김보통 작가는 남과의 경쟁을 피하고 자기 길을 가기 위해서는 플랫폼을 탈피할 것을 권유하지만, 민서영 작가는 조금 더 빠르게 웹툰작가라는 직업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한 번은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십자군 전쟁>의 김태권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기 채널’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
이미 1년 전에 쓰인 이 책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박자연 작가는 자신이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작가들에 “플랫폼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만약 전업 웹툰작가의 길을 걷는다면 그 자신이 플랫폼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이 인터뷰에서 플랫폼의 부정적인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을 말한다. 예컨대 김태권 작가는 “안정적인 고용이 되지 않는 플랫폼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반해, <단지>의 단지 작가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플랫폼이 주는 이득이 있다”는 접근성의 강점을 이야기했다.
각 인터뷰의 끝에는, 박자연 씨가 초보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꿀팁이 제공 된다. 어떻게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지, 그 통로의 종류를 말해 주는 것 외에도 어떤 태블릿이나 프로그램이 쓰기 편한지와 같은 세세한 정보도 녹아 있다. 웹툰 작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면, 또 그 세계로 몸을 던지고 싶은 이라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다 떠나서, 인터뷰가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구성한 덕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에 들린 종이책의 무게가 가벼운 것과 달리, 그 안에 담긴 질문과 답변은 무겁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어 무겁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