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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미니시리즈 ‘조선로코-녹두전’이 25일 종영된다. 녹두전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애담을 그렸다. 프로그램 소개에 나온 한 줄 요약을 옮기자면 “미스터리한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잠입한 ‘전녹두’와 기생이 되기 싫은 반전 있는 처자 ‘동동주’의 발칙하고 유쾌한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김소현과 장동윤이라는, 요즘 인기 있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네이버웹툰 ‘녹두전’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작가 혜진양은 녹두전의 싹을 ‘역사 속 인물의 일기 한 줄’에서 찾아내었다. 세자 시절 피난 가던 광해군 일행 중 한 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에서 “왕세자의 빈궁께서 해산을 하셨다”는 글귀를 보고 만들어진 만화다. 만화 속 광해군의 원자는, 정통 역사서에는 없는 인물이다.

“해산을 하였다” 한 마디 외에는 그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 혜진양 작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했다. 왕세자의 아들이 들키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녹두전이 웹툰으로 사랑받고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작가의 이런 상상력이 빛을 발했다.

혜진양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독특한 그림체다. 구미호 같은 동양적인 소재나 수묵채색화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 웹툰 작가는 드물다. 그림만 보면 “아, 혜진양 작가의 작품이구나”를 알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스토리다. 대체로 판타지와 현실을 잘 섞거나, 또는 역사서에 기록된 단 한 줄의 일기를 발췌해 나름의 상상력을 펴는 것이 멋졌다. 마지막은 작품의 드라마화다.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IP의 확장이다. 혜진양 작가는 이 부분에서 성과를 거뒀다.

‘녹두전’의 웹툰작가 혜진양을 지난 9일 서울 노원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반려견 ‘잔디’를 산책시키는 것 외에는 집 밖 출입을 잘 안 한다는 작가는, 이날 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외부 강의를 하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강연과 인터뷰로, 평소의 하루 치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하게 됐다며 어색해하던 작가는, 자신이 원작을 쓴 드라마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너무 좋다”면서 활짝 웃었다.

 

작가 혜진양이 반려견 잔디와 함께 한 모습을 그린 캐리커처다. 출처=혜진양 작가.

 

설정이 재미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면서, 역사서엔 없는 기록을 그렸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냈나?

첫 시작은 안동에 국학진흥원이었다. 안동이 유교 문화가 가장 발전한 곳인데, 국학진흥원에서 유교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방치되어 있던 일기나 역사적 사실 기록 등을 모으다 해석하는 작업까지 했다고 한다. 그동안 묻혀있던 많은 기록이 나오기 시작했다. ‘녹두전’에 나온 기록은 ‘정탁’이라는 분의 일기인 ‘피난행록’에서 나온 기록이다.

 

<피난행록, 정탁>

1592512(신미)

큰비가 내렸다. 사시 정삼각에 왕세자의 빈궁께서 해산을 하셨다.

 

피난행록을 해석하다 보니 임진왜란 때 선조와 광해군, 정탁, 그리고 정탁의 자제분이 같이 피난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광해군의 빈궁이 아이를 낳았었다는 기록이 정탁의 일기에 한 줄 나왔다. 비 오는 날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록이었다. 아들인지 딸인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안 나온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안동 국학진흥원이 창작자를 초청한 캠프에서 이런 식의 알려지지 않은, 상상력을 자극할 소재를 작가들에게 무한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녹두전’이다.

한 줄을 갖고 상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창작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왕의남자’가 생각이 났다. ‘공길’이라는 인물도 실록에 나온 몇 줄의 이야기를 보고 만들어진 것 아닌가. 그렇게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녹두전’을 그리기 전에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이걸 반드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선 시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만화로 된 ‘조선왕조 500’년을 읽는 걸 시작으로 해서 선조부터 광해, 중종까지 공부했다. 기록을 공부하고 연표를 짜고, 정탁이라는 분의 일기를 보며 자제인 정윤저와 정윤목의 삶을 보다 보니까 저절로 스토리가 나오더라.

임진왜란 때 정탁의 자제 정윤목이 궁에서 일을 했던 기록이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궁에서 나왔다. 나이도 광해군과 비슷했다. 연표를 짜보니 정윤목과 광해군이 친구처럼 지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중요한 일을 맡겼을 수도 있다는 상상까지 갔다. 그걸 베이스로 ‘녹두’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흔히 숨겨져 있는 왕세자는 정체가 밝혀지거나, 혹은 임금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역모를 저지를 수 있는 새싹이 될 수 있다. 빨리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왕세자의 아들이 도망을 치려면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성별을 바꿨다. “유교 기반의 나라이니 과부행세를 하고 과부촌에 들어가면 숨기 편하지 않을까”로 시작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연표를 만들고, 캐릭터 인물을 얹으니 다른 작업보다 오히려 더 매끄럽게 이야기가 나왔다.

역사물을 그리면 고증을 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데

공부하는데 머리가 아프긴 했었다. “내가 왜 이걸 했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웃음). 그런데 바대로 내가 짜놓은 연표를 맞춰가는 희열도 있었다. 마무리할 때까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모든 스토리를 완료했을 때 느낀 것은 이전 작품에서는 못 느껴본 재미였다.

주인공들의 이름을 녹두, 동동주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

내가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도 그런 편이고.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캐릭터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독자분들이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녹두전 단행본 표지

녹두전도 그렇지만 전작인 미호이야기한줌 물망초같은 작품들도 그림에서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느껴진다

한국적인 걸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다. 한복도 좋아하고, 지금 하는 게 처음 사극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극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에서도 같은 슬픈 정서도 느껴지고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다 보니 그렇게 나왔다. 얼떨결에 하고픈 이야기가 다 한국적인 거였다. 지금 연재하는 ‘그놈은 흑염룡’은 현대극이라 걱정을 조금 했는데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신다.

현대극은 분위기가 다른데 그리기가 어렵지 않았나

계속 그리던 걸 안 그리고, 안 그려봤던 걸 그리니까 그 부분이 재미있다. 사극 같은 경우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걸 100% 상상해서 그렸다. 그러다 보니 막힐 때가 있었는데 현대극은 상상의 범위가 넓어져서 이야기를 짤 때 더 편안하다.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짜놓고 시작하나

성격상 1회부터 마지막까지 시나리오를 다 짜놓고 시작한다. 각 화에 무슨 내용이 들어갈까 까지 다 나와 있다. 물론 연재를 하다 보면 1회분으로 생각한 내용이 10회가 되기도 하고, 4회분으로 생각한 게 1회가 되기도 한다. 추가로 들어가고 빠지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시나리오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거의 완전하게 시나리오를 짜놓고 연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장기연재만 하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린다. 시나리오를 짤 때부터 그렇게 복선을 짜고,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그런 스토리를 좋아한다.

앞으로 그릴 작품은 어떤 장르인가?

차기작은 다시 사극으로 갈 것 같다. 확 맛을 들였다. 현대극도 재미있긴 한데 사극을 한 번 더 해보고프다.

이유는?

사극으로 그려보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

녹두전은 영상화가 되어 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녹두전’ 같은 경우에는 내가 네이버에 제안을 넣을 때부터 “드라마만 팔면 됩니다”하고 들어갔다. 웹툰 연재를 위한 스토리도 드라마화에 최적화해 다듬었다. 제작사에서 네이버 쪽으로 드라마 제안이 왔었고, 나는 무조건 오케이를 했다.

지금 연재 중인 그놈은 흑염룡도 처음부터 드라마화가 목적인가?

그렇다. ‘그놈은 흑염룡’도 드라마화가 목적이다. 염룡이도 엔딩까지 짜여져 있어서 언제든지 제안이 오면 딱 (시나리오를) 내놓을 수 있다.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은 어떻게 봤나. 마음에 드나?

너무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고 절을 하고픈 기분이다(웃음). 내가 너무 내 드라마를 좋아하는 티는 안 내려고 했었는데(웃음). 드라마 ‘녹두전’의 덕질(팬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제작이 1%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원작 웹툰 ‘혜진양’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각색부터 시작해서 감독, 작가, 배우님들이 너무 퍼펙트하게 잘하고 있어서 설렐 수밖에 없다. 자기 작품의 드라마를 이렇게 좋아하는 티를 많이 내는 작가가 없어서 부끄럽기도 한데, 언제 또 좋아하는 걸 티를 내보겠나.

제작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나?

정말 아무런 참여도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나?

진행상황은 물어봤는데, 대본을 공유해줬다. 읽는 순간 너무 재미있었다. 대본을 진중하게 읽어야 하는데 다음 장이 궁금해서 진짜 이렇게 (손으로 대본을 후다닥 넘기는 시늉을 하면서) 빨리 넘기면서 읽었다. 좋아요, 좋아요라고 한 기억밖에 안 난다.

배우들도 만나봤나

원작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더라. 인터뷰에서도 원작 ‘동주’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는 멘트를 많이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영화도 있고,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왜 드라마를 원했나

웹툰의 영상화가 그렇게 많이 안 되고 있을 때도 이상하게 나는 “언젠가 드라마 판권을 팔 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게 꿈이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보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작품을 준비하더라도 영상을 염두에 두고 그린다.

줄곧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이다. 이 플랫폼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많은 독자 수와 쉬운 접근성이다.

이미 네이버웹툰에 연재했던 작가라고 하더라도, 다시 연재 기회를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들었다.

매번 제안서를 낼 때마다 떤다. ‘그놈은 흑염룡’을 넣었을 때도 진짜로 밥을 못 먹었다. 너무 덜덜 떠니까 담당자가 “벌써 몇년차인데 이렇게 떠세요”라고 하더라. 나도 작품을 넣을 때마다 항상 떨린다.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혜진양 작가 작품의 주요 독자층은 어떻게 되나?

방에서 잘 안 나가고 일만 한다. 강아지 ‘잔디’를 산책시키는 것이 외출의 전부다. 그래서인지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느낌이다. 방에서 원고만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어서 피드백을 잘 모르겠다. 기록을 보면 30대 이상 여성이 많이 읽어주신다고 하는데, 따로 타깃을 정하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쭉 해왔다. 내가 전달하고픈 이미지와 스토리를 그리는 것 같다.

데뷔한 지 얼마나 됐나

네이버 기준으로는 내년이 십 년이 된다. 나도 신기하다. 계속 연재를 했는데 시간이 2년씩 지나고 이러니까. 나도 내 나이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고. 염룡이를 연재하면서 좀 놀랐다. 독자 중에 “2004년에 태어났어요”라고 하는 분이 있더라. 나한테는 어제 같은 기억인데, 만화가가 시간의 흐름을 잘 못 느끼게 하는 직업인 것 같다. 계속 똑같이 그리고 또 그리다 보니까 30대가 되었더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그놈은 흑염룡’이 내년 중에 연재가 끝날 예정이다.

연재 기간이 짧다

그런데 모른다. 장기가 될 수도 있다(웃음). ‘짧고 굵게 가자’는 목표를 세웠다. 또, 염룡이를 끝내고 나면 총 5권 완권으로 기획된 ‘녹두전’을 마무리할 것 같다. 지금 4권까지만 해놨다. 그리고 나서 차기작을 또 들어가야지. 작품을 영상화하고 싶다는 꿈을 이뤘으니, 나이 오십을 넘어서까지 이 자리에서 “혜진양 작가님”이라 불리면서 만화를 그리는 게 새로운 목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